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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공개 구혼-60화 (61/201)

60화

“록스버그 공작, 뭘 그렇게 보는지 궁금하군.”

불쑥 들려온 에드윈의 목소리에 로엔이 고갤 돌려 그와 마주했다.

“글로리아를 보고 있었습니다.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니 제 선택이 옳은 것인지 잠시 망설여서져서 고민이 되기도 하고요.”

“지금이라도 바꾸는 게 어때? 늦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건네는 에드윈의 태도가 미심쩍었다.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태도가 의뭉스럽기까지 했다.

로엔은 정말 고민이 된다는 듯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 정말 어리석은 모양입니다. 폐하의 제안은 깊고 넓은 마음만 받겠습니다.”

에드윈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 돈을 잃는 거야 그대의 자유니. 자아, 그럼 본격적인 베팅을 할 시간이군.”

에드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로엔의 선택 따위엔 전혀 관심도 없다는 듯 앞을 주시했다. 그리곤 글로리아의 안장에 부착된 번호와 똑같은 1번 팻말을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난 1번 말에 걸겠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에 있던 시종이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달칵, 소리와 함께 상자의 뚜껑을 열자 상자 가득 들어 있는 금화가 보였다. 여기저기서 놀라움이 담긴 탄성이 들려왔다.

어느새 경마장 안은 흥분된 고양감으로 가득했다.

뒤이어 귀족들의 베팅이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에드윈의 눈치를 보는 건지, 로이슈덴 공작가의 말인 켈피에게 베팅을 하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애프터눈 티타임에서 뭔가 언질이 있었던 건가?’

귀족들의 태도가 평소와 달리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록스버그 공작? 이제 그대만 베팅하면 되겠군.”

에드윈의 물음에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로엔에게 향했다. 설마 대놓고 로이슈덴 공작가의 말에 베팅을 할까, 궁금한 눈치였다. 로엔은 제게 닿아 있는 귀족들의 시선에 천천히 숨을 골랐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귀족들에게 보여 줄, 돈지랄의 순간이기도 했다.

“스미스, 준비해 온 것을 테이블에 올려 주겠어?”

“네, 주인님.”

스미스가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 놓여 있던 상자들을 테이블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하나, 둘. 상자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귀족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대체 뭘 얼마나 준비한 걸까요?”

“상자 수만 많지 별것 아닐 수도 있으니, 기다려 봐야죠.”

“정말 어지간히도 시선을 끌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간단하게 어음 한 장만 들고 오면 될 일을.”

시기심 가득한 악의적인 목소리가 여과 없이 귓속에 박혀 들었다. 스미스 역시 귀족들의 수군거림을 들었는지 슬쩍 눈살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로엔은 그럴 것 없다는 듯 손을 뻗어 스미스의 손등을 툭툭 두드린 다음, 에드윈 쪽으로 고갤 돌렸다.

“폐하, 결정했습니다. 스미스, 상자의 뚜껑을 열어 주겠어?”

“네, 주인님.”

달칵, 소리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상자의 뚜껑이 차례대로 열리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설마 저게 다 호리우스의 눈은 아닐 테죠?”

“내가 뭘 본 건지. 내 눈이 의심스럽네요. 상자에 든 게 금화가 아니라 호리우스의 눈인 건…….”

마지막 말은 스미스가 상자를 여는 소리에 묻혀 사그라들었다. 악의적인 비난을 쏟아 내던 귀족들은 어마어한 돈의 위력에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듯 꾹 입을 다물었다.

웅성거리던 소음이 한순간 사라졌다. 대신 눈을 동그랗게 뜨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상자를 홀린 듯 쳐다볼 뿐이었다.

“저는 7번 말인 켈피에게 걸 생각입니다.”

로엔이 테이블 위에 7번 번호표를 올려놓자, 여기저기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예상은 했지만, 그것이 실체화되자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그리고 관람석 안에 묘한 침묵이 흘렀다.

로엔이 고갤 들자 에드윈의 서늘한 눈과 마주쳤다. 순간 로엔은 당혹감에 숨을 삼켰다. 그녀를 쏘아보는 에드윈의 눈빛 때문이었다.

사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계속해서 밑밥을 깔아 놓았던 거였다. 앵무새처럼 우승할 말보단 다른 것을 선택할 생각이라고. 사랑에 빠져 돈 따위 탕진해도 상관없다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런데 에드윈은 그녀가 배신이라도 한 것처럼 살벌한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누가 보면 정말 내가 황제를 배신하고 로이슈덴 공작과 모반이라도 일으킨 줄 알겠네.’

로엔은 검은 베일 안에서 혀를 끌끌 찼다.

“록스버그 공작, 후회하지 않겠나? 그 많은 돈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에드윈은 지금이라도 베팅 말을 바꿀 기회를 주는 척하며 종용하고 있었다.

‘베팅 금액이 너무 과했던 걸까? 아니면 진이 켈피의 기수로 나와서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네.’

평소 쿨하게 굴던 에드윈이 굉장히 질척대고 있었다. 그리고 귀족들 역시 에드윈과 로엔 사이에 감도는 묘한 긴장감에 호기심을 숨기지 못했다.

“배려 감사합니다, 페하. 만약 이 경기에서 제가 이것을 다 잃더라도 전 기쁠 겁니다. 어차피 로열 에스콧에 오기 전부터, 이것을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거든요.”

로엔이 다시 한 번 기부의 뜻을 밝혔다. 켈피의 등 위에 앉아 있는 기수가 진 로이슈덴이란 걸, 절대로! 모른다는 듯이.

에드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직도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한 것이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인가?”

로엔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베팅에 대한 질문이 아님을 알았다. 이건 황실의 티룸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이 했던 계약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직도 그 계약이 유효한 건지 묻고 있었다.

“폐하, 저의 충심은 언제나 진심입니다.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답니다. 제가 누구를 마음에 담든, 상관없이. 폐하의 부름에 언제나 순순히 응할 것입니다.”

이제 알아들었을까?

로이슈덴 공작을 사적으로 마음에 품었다고 해도, 절대 황제인 에드윈을 배신할 생각 같은 건 없다고 돌려 말한 것이다.

‘뭐, 알아들었겠지. 사촌인 진 로이슈덴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 있지만, 그래도 황제씩이나 된 사람인데.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머리쯤은 있을 거야.’

아니, 있어야 했다. 로엔은 오늘에서야 에드윈이 진에게 느끼는 감정이 적대감을 넘어선 지독한 열등감과 질투심이란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 감정으로 인해, 그녀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도.

“공작, 그대도 알아줬으면 좋겠군. 나 역시 한 번도 그대를 의심한 적이 없음을 말이야. 그대가 어떤 자를 마음에 품었든 상관없이. 그댄 아주 현명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니까.”

경고였다. 배신하면, 죽이겠다는. 그러니 현명하고 이성적이게 행동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로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허릴 숙여 예를 갖췄다. 일종의 맹세였다. 록스버그 가문은 황실인 존더부르크에게 복종한다는.

고갤 든 로엔은 천천히 경기장 쪽을 바라보았다. 켈피 위에 탄 진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이며 표정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날아드는 날카로운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말 로이슈덴 공작님에게 단단히 빠진 모양이네요.”

“제 말이요. 아주 돈으로 그의 마음을 사려고 수작질을…….”

“그래도 놀랍긴 하네요. 저 어마어마한 돈을 고작 경마 시합 베팅에 쓰다니. 그 정도로 록스버그 공작가의 재력이 대단하다는 것이겠죠?”

마지막 말에 귀족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기실 로엔이 켈피에게 베팅한 금액은 광산 하나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기가 질려 돈으론 절대 록스버그 공작 앞에선 자랑을 할 수조차 없을 터였다.

“놀랍긴 하네요. 흉측한 소문에 가려 공작가의 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지 못하다니.”

역시 돈 자랑만큼 귀족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좋은 회유책도 없는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 괴물 주제에 돈으로 진을 사려 한다고 비난하더니,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재력에 더는 입도 뻥긋 못 하고 있었다.

“록스버그 공작님, 혹시 호리우스의 눈을 딱 한 번만 구경해도 될까요?”

누구였지?

갑작스럽게 말을 건네 오는 귀족을 보며, 로엔은 그가 누군지 떠올리려 애썼다.

“얼마든지 구경해도 좋습니다, 하델 자작.”

마지막 순간에 그의 이름이 기억이 났다. 캐서린을 쫓아다니던 추종자들 중 하나였었다.

“절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하델 자작이 허리까지 숙이며 비굴하게 아첨을 해 왔다. 순간, 로엔은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돈이 가진 영향력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저도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많은 양의 호리우스 눈은 처음이라. 저도 한 번만…….”

너 나 할 것 없이 허락을 구해 오는 귀족들을 보며 로엔은 고갤 끄덕였다.

“닳는 것도 아니니 마음껏 보셔도 됩니다.”

로엔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귀족들이 체통 따윈 벗어던지듯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세상에, 다 최상급이네요.”

“록스버그 공작가에서 2년 전에 광산을 구매했었다던데, 이게 그 광산에 매장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얕은 정보로 아는 척까지 해 대는 귀족들을 보며 로엔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무엇보다 최상급의 호리우스의 눈을 보는 귀족들의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아마 지금쯤 귀족들의 머릿속엔 록스버그 공작가가 소유한 재산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빠르게 머릴 굴려 댈 터였다. 그리고 괴물 공작의 흉측한 흉터와 재력을 두고 저울질을 할 테고.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을 사발째로 들이켜는 꼴이었다.

“자, 그만! 다들 자리로 돌아가라. 귀족으로서의 체면까지 잃고 돈에 눈이 먼 승냥이처럼 굴지 말고.”

에드윈의 날 선 지적에 귀족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재빨리 자리로 돌아갔다. 그제야 그들의 행동이 뒷골목의 무뢰배보다 못했음을 깨달은 모양이다.

“소란을 일으켜 죄송합니다, 폐하.”

로엔이 귀족들을 대신해 사과했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록스버그 공작. 돈에 눈이 멀어 제 행동이 얼마나 추한지 알아채지 못한 자들의 잘못이지.”

에드윈의 노골적인 비난에 귀족들은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히며 고갤 들지 못했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정말 천박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부우웅, 부우웅웅!

때마침 다시 들려온 나팔 소리에 에드윈을 비롯해 귀족들의 시선이 경기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어색했던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려는 모양입니다.”

로엔 역시 경기장 쪽으로 고갤 돌렸다. 그러다 연신 귀족들과 눈이 마주쳤다.

평소와 다른 위화감에 로엔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행히 베일 속에 얼굴이 가려져 있어 귀족들은 로엔의 불편한 심기를 읽지 못한 듯, 또다시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어 왔다.

본격적으로 록스버그 공작가 앞으로 줄을 설 모양이다.

귀족들의 속성을 뼛속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놓고 그녀에게 아첨을 하는 꼴이 정말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만큼 가관이었다.

‘혼자 보기 아까울 지경이야.’

로엔은 한숨을 내쉬며 진을 눈으로 좇았다. 내색할 수 없었지만, 초조함이 밀려들었다.

로엔은 제발 아무 일 없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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