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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공개 구혼-51화 (52/201)

51화

“좋아. 대신 얼굴을 좀 가려야겠어. 감기 기운이 좀 있는 것 같아서.”

“감기요? 어떡해요. 약을 좀 가져올까요?”

“그 정도는 아니니 걱정 마. 대신 얼마 전에 말레 상단에서 들여온 베일로 된 얼굴 가리개 있지? 그것 좀 가져와. 게르피온에선 무희들이 쓴다는 그것.”

“아, 뭔지 알아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얼른 가져올게요.”

잠시 후 상자를 들고 돌아온 세실이 안에서 레이스로 된 베일을 꺼냈다.

“생각보다 너무 예쁜 것 같아요. 오늘 주인님이 하고 나가시면, 주문이 쇄도할 것 같기도 하고요.”

로엔은 푸른빛이 도는 베일을 집었다.

잠자리 날개처럼 섬세한 베일에는 이국의 아름다운 꽃이 수놓아져 있었다.

양쪽 끝에 달린 고리를 귀에 걸어 고정하자, 눈을 제외한 나머지 얼굴이 가려졌다.

거울에 비춰 보니 꽤 만족스러웠다. 커다란 눈이 강조되자 묘하게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났다.

이 정도면 캐서린과 제인이 아무리 눈썰미가 좋다고 해도 저를 알아볼 수는 없을 듯했다.

“주인님, 먼저 나가세요. 전 차를 준비해서 나갈게요.”

로엔이 고갤 끄덕이곤 사무실을 나갔다.

그리곤 티타임이 열리는 방 안으로 들어서자, 앉아서 얘길 나누고 있던 레이디들의 시선이 일제히 로엔에게 향했다.

“어머, 시모네타 님?”

그중 루시가 그녀를 알아보곤 알은체를 해 왔다.

“루시 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네. 그런데 그건 뭐예요? 얼굴을 가린 천요. 너무 아름다워요.”

루시가 로엔의 얼굴을 가린 베일에 관심을 내비췄다.

“그건 뭐예요? 새로 들어온 물건인 모양이네요.”

비단 루시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자리에 앉아 있던 레이디들 모두 로엔이 쓰고 있는 얼굴 가리개에 관심을 보였다.

“게르피온에서 레이디들이 사용하는 물건인데, 얼마 전 상단에서 가져왔더군요. 제가 감기에 걸려서 여러분께 옮기면 안 될 것 같아 써 본 건데, 의외로 괜찮은 것 같네요.”

“혹시 또 있나요? 너무 예뻐서 구매하고 싶은데.”

“세실이 오면 가져오라고 할게요. 아, 마침 나오네요.”

세실이 트레이를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로엔이 자리에서 일어나 티 테이블에 찻잔과 함께 간단한 쿠키를 세팅했다.

“세실, 사무실에서 이것 좀 가져와 줄래? 여기 계시는 레이디들께서 관심이 있으신 모양이야.”

로엔의 부탁에 세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그리곤 황급히 자릴 떴던 세실이 상자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여기 있어요. 말레 상단에서 얼마 전에 들여온 물건이라, 아마 칼라일에선 여기밖에 없을 거예요.”

특별히 먼저 보여 주는 것이니, 관심 있으면 빨리 구매하라는 투였다.

세실은 장사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다.

“그래요? 저도 하나 주시겠어요? 내일 경마장에 가야 하는데, 햇빛 때문에 신경이 쓰였거든요. 모자 대신 쓰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어머, 정말 그렇겠네요. 얼굴을 가려 주니 햇볕에 탈 리도 없고. 무엇보다 눈만 보여서인지, 신비롭게 보이네요. 저는 시모네타 님이 하고 계시는 푸른 베일이 마음에 드네요. 혹시 똑같은 게 있나요?”

제인이 로엔이 쓰고 있는 얼굴 가리개에 관심을 보였다.

“그것이라면, 여기에 있어요. 취향이 맞게 진주로 장식을 한다면 더 예쁠 것 같네요.”

세실이 상자 안에서 로엔과 똑같은 푸른 베일을 집어 제인에게 건넸다.

제인이 서둘러 얼굴 가리개의 양쪽 끝을 귀에 고정했다.

“어때? 이상하지 않아?”

제인이 한껏 기대에 찬 표정으로 세실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평소에도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레이디 제인의 아름다운 눈이 강조되니 더 예쁜 것 같아요. 잘 어울리세요.”

“진심이야? 정말 내가 예뻐?”

“네. 제가 레이디 제인께 거짓말을 할 리 없잖아요. 직접 거울 좀 보시겠어요?”

제인은 세실이 건네는 거울을 받아 들고는 요리조리 거울에 제 모습을 비췄다.

평범한 생김새의 제인의 얼굴 중 가장 예쁜 게 눈이었다.

그래서인지 베일을 쓴 얼굴이 실제보다 훨씬 예뻐 보인 건 사실이었다.

특히 하관의 뾰족한 턱 선이 푸른 베일과 베일 위에 수놓아진 이국의 꽃에 가려지자, 인상 또한 훨씬 부드러워 보였다. 결점까지 가려지는 효과였다.

다들 똑같은 걸 느꼈는지, 레이디들의 손이 분주해졌다. 베일을 집어 드는 손 역시 욕심이 묻어났다.

순식간에 상자 안에 가득 들어 있던 베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레이디 캐서린도 하나 하시는 게 어떨까요? 이 노란색 베일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제인의 권유에 캐서린이 못마땅한 표정을 했다.

심기가 편치 않아 보였다.

아마, 얼굴 가리개 하나로 눈에 띄게 예뻐진 레이디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분명했다.

“저에겐 필요하지 않은 물건 같군요. 그러니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껏 가져가세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죠? 듣자하니, 좀 그러네요.”

베일을 쓰다듬던 레이디 한 명이 불쾌한 듯 캐서린을 쏘아보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 저 레이디 이름이 뭐였더라?

분명 전에 본 것도 같은데.

“헤이즐 홈볼트세요. 홈볼트 백작가의.”

세실이 눈치 빠르게 로엔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헤이즐 홈볼트라면, 에런 홈볼트의 여동생인 모양이었다.

“별 뜻 없이 한 말이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레이디 헤이즐. 말 그대로 저는 여기 있는 레이디들처럼 얼굴을 가리는 것보단, 드러내는 게 훨씬 났거든요.”

요것 봐라. 이건 완전 돌려 까고 있잖아.

그렇게 생각한 순간 방 안에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캐서린의 말속에 담긴 의도가 뻔히 읽혀서다.

“어머, 레이디 캐서린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모양이군요.”

헤이즐 홈볼트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곤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레이디 헤이즐?”

“무슨 소리긴요. 파티에서 거절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했을 때 수치심을 가려 줄 용도로도 딱이란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레이디 캐서린만큼 이 베일이 필요한 사람이 없을 듯한데. 그렇지 않나요, 레이디 캐서린?”

순간 캐서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수치심에 입가에 경련이 이는 게 보였다.

당연히 자릴 박차고 일어나 방을 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캐서린은 자존심 때문에 방을 나가는 대신, 헤이즐 홈볼트를 죽일 듯 쏘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캠벨 후작가에서 캐서린이 진 로이슈덴에게 접근하기 위해 이용해던 이가, 에런 홈볼트였다. 아마 제 오빠가 그런 일에 이용당했던 게 기분이 상했던 모양이다.

“캠벨 후작가에서의 일을 두고 하시는 말씀 같은데, 제가 부끄러워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요?”

캐서린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노선을 정한 모양이다.

“설마 너무 충격이라 그날 일을 잊으신 건 아닐 테죠? 저는 분명 공작님께서 귀찮게 구는 레이디 캐서린을 단칼에 거절하는 모습을 직접 봤거든요. 얼마나 부끄럽던지. 같은 레이디로서 모멸감이 들 정도였다니까요. 귀족가의 레이디가 거리의 여인도 아니고, 품위 없이 꼬리를 흔들다니.”

헤이즐이 꼭 집어 그날 일을 다시 상기시켰다.

순간 캐서린의 입가에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하지만 이내 타고난 배우처럼 억지 미소를 만들어 냈다.

아마, 티타임에 참석하기 전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걸 미리 예상한 듯 보였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답니다, 레이디 헤이즐. 그곳에서 절 향해 환하게 웃던 홈볼트 백작님도 기억나고요.”

제 오빠를 거론하자, 헤이즐의 눈동자가 분노로 번뜩였다. 당장에라도 머리채를 잡고 싶은 눈치였다.

팽팽하게 날 선 긴장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삼킬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뻔뻔하게 굴다니. 저 같으면 얼굴 들고 밖에 나오지도 못할 것 같은데요. 낯가죽이 두껍지 않아서.”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 전 제가 부끄럽게 여길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친 것 아닐까?

이건 뻔뻔하다 못해 기억 상실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죠?”

“저는 존경을 표한 것뿐이었거든요.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끈 분을 보고 너무도 기쁜 마음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게 불찰이긴 하지만요.”

“헛!”

너무 어이가 없는지, 헤이즐은 반론 대신 헛웃음만 지었다.

“게다가 함께 계셨던 라우렐 데칸 백작님도 같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로이슈덴 공작님께서는 전쟁터에 오래 계시느라 사교계의 예법엔 전무하다고요. 그러니 제발 저더러 용서해 달라고요.”

“…….”

케서린의 말을 듣고 있던 헤이즐이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사실이라 반박할 수 없어서였다.

“그래서 넓은 아량으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런 괴상한 소문이 돌 줄은 저도 몰랐네요.”

캐서린은 마치 피해자처럼 굴고 있었다.

“정말 어이가 없군요. 그러니까, 레이디 캐서린의 그날 행동은 존경의 표시일 뿐, 아무런 사심도 없었다는 건가요?”

“네, 그래요. 저는 그날 전쟁 영웅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처럼 들떠 있었을 뿐입니다. 캠벨 후작가의 파티에 참석한 분들이라면 다들 알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닌가요?”

“…….”

캐서린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서란 게 중론이었다.

“아마 제가 아니었더라도, 로이슈덴 공작님이라면 똑같이 행동하시지 않았을까요? 소문처럼, 아니 소문보다 더 냉정한 분이시라 전 좀 놀랐거든요.”

“뭐, 그랬을 것 같긴 하더군요. 워낙 공작님 성격이 까칠하신지라.”

루시가 은둔자의 숲에서의 일이 떠올랐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캐서린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록스버그 공작님에겐 예외였지 않나요? 기사의 도를 행하셨잖아요. 그것도 아주, 아주 정중하게요.”

헤이즐이 잊었을까 봐, 그날의 일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그분은 공작 신분이니 예외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차가운 성격의 로이슈덴 공작님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가문의 수장이시니까요.”

캐서린이 거북스러운 표정으로 록스버그 공작과 저와의 차이점을 시인했다.

“얘기 중에 죄송하지만, 제가 좀 끼어들어 될까요?”

로엔이 중재자로 나서자, 그제야 레이디들의 얼굴에 안도의 감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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