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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공개 구혼-40화 (41/201)

40화

‘이건 좀 오번데?’

로엔이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자릴 뜨려는 순간, 입구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캐서린 캔싱턴이었다.

화려하게 빛나는 금발과 창백한 피부. 거기다 사람의 시선을 끄는 고혹적인 아름다움이 더해진 캐서린은 같은 여자가 봐도 매력적이었다.

파우더 룸에서 보았을 때도 그랬지만, 푸른빛이 감도는 드레스를 입은 캐서린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사교계의 꽃이란 칭호가 어울릴 만큼.

캐서린은 귀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캠벨 후작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리곤 한껏 우아함을 뽐내며 후작을 향해 예를 갖췄다.

“후작님, 훌륭한 파티에 초대해 주셔서 감합니다.”

“아드리안 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이디 캐서린이 누추한 파티에 참석해 주니,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울 따름이지. 캔싱턴 백작은 함께 오지 않은 모양이군.”

“영지에 급한 일이 생기셔서 내려가셨거든요. 돌아오시는 대로 후작님께서 안부를 물으셨다고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레이디 캐서린. 즐거운 시간 보내도록 해요.”

“그런데 이분은?”

캠벨 후작이 고갤 돌리며 이야기를 끝내려 하자, 캐서린이 재빨리 진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그 모습에 로엔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뻔히 로이슈덴 공작이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바라보는 속내가 읽혀서다.

“아, 그러고 보니 레이디 캐서린은 처음 보겠군. 로이슈덴 공작님이시지.”

어쩔 수 없이 캠벨 후작이 두 사람을 소개했다.

“공작님, 케서린 캔싱턴입니다.”

캐서린이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진에게 예를 갖췄다.

하지만 진은 환하게 웃는 캐서린에겐 관심조차 없다는 듯 굳은 표정이었다.

더욱이 캐서린이 건넨 인사에 귀찮다는 듯 호응조차 해 주지 않았다.

“어, 저는…….”

진의 냉정한 반응에 캐서린의 뺨이 당혹감으로 붉어졌다.

지금껏 누구도 저를 무시한 적이 없는 터라, 진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캠벨 후작님, 그럼 저는 이만 친우들과 할 얘기가 있어서.”

캐서린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저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후작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릴 뜨려 했다.

“홈볼트 백작님?”

캐서린이 재빨리 진의 일행으로 보이는 에런 홈볼트를 불렀다.

“무슨 일이시죠, 레이디 캐서린?”

갑작스레 이름을 불린 에런 홈볼트는 당혹감을 감추며, 캐서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의도는 뻔하다.

지금껏 참석한 파티에서 사교계의 꽃인 캐서린과는 마주칠 때마다 눈인사를 한 게 다였다.

그런데 아주 절친한 사이인 양 제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로이슈덴 공작님을 노리는 것이군.’

캐서린은 에런 홈볼트의 반응에 안심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자릴 뜨려던 진이 걸음을 멈춘 걸 보며, 속으로 웃었다.

이제 그럴듯한 화젯거리만 꺼내기만 하면…….

“홈볼트 백작, 할 얘기가 있는 모양인데 자릴 피해 주지.”

어, 잠깐…….

이게 아니었다.

등을 돌린 채 멀어지려는 진을 보며, 캐서린이 평소의 냉정함을 잃고 진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 로이슈덴 공작님. 드릴 말씀이 있……. 엇!”

캐서린이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혔다. 그녀가 그의 팔을 붙잡는 순간, 진이 더러운 것이라도 닿은 듯 차갑게 쳐 냈기 때문이다.

“내게?”

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홈볼트 백작을 보았다.

그러자 에런이 저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깰 으쓱해 보였다.

“할 얘기란 게 뭐지?”

“전승기념식 퍼레이드에서 공작님을 뵈었습니다. 그 후로 직접 만나 뵙고 싶다고 생각했었고요.”

진이 특유의 무감한 얼굴로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서늘한 빛이 감도는 은청색의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어, 그러니까, 저는 공작님을 뵙고 직접 승전을 축하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전승기념식 퍼레이드를 본 사람만 수만 명이지.”

“네?”

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캐서린이 어색함을 감추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짜증이 난 듯 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백치도 아니고. 웃기는 왜 웃는 건지.”

“…….”

불쾌한 듯 튀어나온 진의 욕설에 주위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어, 저는…….”

캐서린 역시 욕설을 들은 듯 얼굴을 붉힌 채 입술만 달싹였다.

“넌 수만 명의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란 뜻이다. 그러니 내게 중요한 존재라도 된 것처럼 굴지 말아 줬으면 좋게군. 귀찮은 걸 참아 내는 것도 짜증이 나던 참이니까.”

제 손에 검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목을 베어 버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공작님!”

진의 거친 말투에 라우렐이 상황을 무마하려는 듯 진을 불렀다. 그리곤 눈짓으로 그만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제야 캐서린에게 향한 살기를 거둬들였다.

“죄, 죄송합니다, 공작님.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너무 반가워서…….”

“답답하긴. 이래서 멍청한 레이디들은 딱 질색이라니까.”

진이 더는 말도 섞기 귀찮다는 듯 자릴 떴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레이디 캐서린. 공작님께서 워낙 사교적인 모임에 처음이라.”

라우렐이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사과했다.

“아니요. 5년 동안 전쟁터에 계셨으니 당연히 그럴 테지요. 괜찮습니다. 공작님께 대신 전해 주시겠어요? 제가 심기를 건드려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고요.”

캐서린은 라우렐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고갤 숙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다 못해 창백해져 있었다.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라우렐이 캐서린을 향해 예를 갖추곤 서둘러 진을 뒤따랐다.

“레이디 캐서린, 제가 휴게실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보다 못한 에런 홈볼트가 말을 건넸다.

“아닙니다, 홈볼트 백작님. 갑자기 머리가 아프네요.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캐서린은 모멸감에 바들바들 떨리는 주먹을 꽉 쥐곤 등을 돌리곤 그레이트 홀의 입구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캠벨 후작님, 레이디 그리젤라. 파티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록스버그 공작님.”

로엔은 캠벨 후작과 그리젤라와 인사를 한 뒤, 천천히 홀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뒤로 귀족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라 들려왔다.

“세상에! 조금 전 우리가 뭘 본 거죠?”

“로이슈덴 공작님은 소문처럼 무례하네요. 레이디 캐서린에게 백치라고 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하지만 친하게 군 건 사실이잖아요. 아무 사이도 아닌 것도 맞고요.”

“그럼 로이슈덴 공작님이 괴물 공작에게 기사의 도를 표한 건 어떻게 설명할 거죠? 두 분도 아무 사이 아니잖아요.”

“설마 로이슈덴 공작님이 록스버그 공작님에게 마음이 있는 건 아닐 테죠?”

“미쳤어요. 설마 그게 가능할 리 없잖아요.”

“하지만 레이디 캐서린은 무시하셨잖아요.”

“욕도 하셨죠.”

“내 말이 그 말이에요. 사교계의 꽃인 레이디 캐서린에겐 무례하게 굴었지만, 스캔들 상대인 괴물 공작에겐 무려 기사의 도까지 행했잖아요. 그러니 더 문제죠.”

로엔이 그레이트 홀을 나온 순간, 귀족들의 수군거림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로엔은 코웃음을 쳤다.

분명 내일부터 캠벨 후작가에서 벌어진 일들로 사교계가 들썩일 게 뻔했다.

현관으로 가기 위해 복도를 따라 걷는데, 갑자기 검은 인영이 로엔의 앞을 가로막았다.

예상대로 캐서린 캔싱턴이었다.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축하해요, 레이디 캐서린. 새로운 가십거리의 주인공이 되신 걸.”

더는 화를 억누를 필요를 느끼지 못한 듯 캐서린이 표독스러운 눈으로 로엔을 쏘아보았다.

“괴물 공작 주제에. 감히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그러니까요. 내일부턴 불운한 괴물 공작보다 레이디 캐서린의 이름이 귀족들이 입에 오르내리게 될 텐데. 정말 안타깝네요.”

“그 입 닥쳐요.”

“입 닥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레이디 캐시린 같은데? 감히 공작인 내게 무례를 범하다니.”

로엔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태도를 바꾼 로엔을 보며, 캐서린이 정신이 든 듯 입을 꼭 다무는 게 보였다.

그제야 지금 제가 상대하는 이가 록스버그 공작이란 게 떠오른 모양이다.

“제 걱정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록스버그 공작님이야말로 순진하시네요. 제 가십은 공작님을 둘러싼 소문에 비하면 가십 축에도 끼지 못하거든요.”

“유감이지만 이번엔 레이디 캐서린이 틀린 것 같군요.”

“내가 틀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캐서린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정말 있을 수 없다고 믿는 눈치였다.

로엔은 조금 씁쓸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날 둘러싼 세계가 견고해서 절대 무너지거나 날 배신할 리 없다고.’

하지만 10년 전 일어난 사고로 인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다, 사라진 것이다.

“레이디 캐서린도 ‘기사의 도’에 대해 아실 테죠?”

“그게 지금 이 문제와 무슨 상관이란 거죠?”

캐서린의 물음에 로엔이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

“로이슈덴 공작께서 제게 ‘기사의 도’를 갖추셨거든요. 충성을 맹세한 레이디에게 하듯이.”

순식간에 캐서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거짓말. 이제 보니 공작님은 거짓말이나 협박에 능하신 분이었군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러다 캐서린이 뭔가 떠오른 듯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 그레이트 홀을 빠져나오기 전, 귀족들의 수군거리는 말 속에 기사의 도에 대한 얘기가 섞여 있었다.

“말도 안 돼. 로이슈덴 공작님이 왜…….”

얼어붙은 듯 멍하니 서 있던 캐서린이 정신이 든 듯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이번엔 어떤 술수를 쓴 거죠? 혹시 불쌍한 척해서 동정심을 유발한 건가요? 아니면 제게 했던 것처럼 협박이라도 했나요?”

“…….”

로엔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침묵했다.

하지만 문제는 캐서린이 침묵의 의미를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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