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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공개 구혼-30화 (31/201)

30화

“믿을 수가 없군, 로이슈덴 공작. 설마 지금 웃는 건가? 랑케의 그 페이라스모스를 떠올리고?”

진이 놀라 고갤 들었다.

에드윈은 신기한 광경이라도 본 듯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꼬리에 냉소를 매단 채.

“그런 게 아닙니다. 며칠 전 방문했던 상점의 고양이가 생각나서. 굉장히 도도했거든요.”

“고양이라고? 그대가 동물에게 관심이 있는 줄 몰랐군.”

의외라는 듯 에드윈이 진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심중을 읽으려는 의도 같았다.

“지금까지 관심 없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 눈길을 끌어서. 한번 길들여 볼까 생각 중입니다.”

“너무 빠지지 말라고. 뭐든 한 번 정을 주면 헤어 나오기 힘든 법이거든. 하지만 흥미롭긴 하군. 고양이를 키우는 로이슈덴 공작이라니.”

흥미롭다는 말과는 달리 에드윈의 표정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랑케의 페이라스모스와 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눈치여서다. 고양이라니.

“로이슈덴 공작, 그러지 말고 오늘 밤에 있을 파티에 참석하는 건 어떻겠나?”

“죄송합니다, 폐하.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번잡스러운 걸 싫어해서.”

“동물에게 정을 붙일 정도로 외로운 것 아니었나? 무엇보다 사교계엔 그대의 추문이 벌써 두 개나 퍼져 있지. 수습을 해야 하지 않겠어?”

“모두 진실이 아닙니다.”

“로이슈덴 공작. 그대가 전쟁터에 너무 오래 있었던 모양이야. 귀족에게 가문의 명예와 평판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잊은 걸 보면.”

에드윈의 비난에 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니 앞으로 내가 지정한 파티에 얼굴을 내밀도록 해. 고급 창부와의 더러운 스캔들을 덮어야 하지 않겠나?”

의도는 뻔하다.

랑케의 페이라스모스와의 스캔들을 잠재우기 위해 록스버그 공작을 만나라는 뜻인 모양이다.

‘의외군. 록스버그 공작과 황제가 같은 편이라니.’

진은 아무런 감정도 없던 록스버그 공작에게 경계심이 일었다.

“하지만 폐하. 저는 파티에 참석할 생각이 없습니다.”

“내 명령을 거부할 셈인가, 로이슈덴 공작?”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폐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제가 워낙에 사교에 재능이 없어서. 오히려 제가 참석한다면 그들을 불쾌하게 만들 겁니다.”

신경에 거슬리면 그게 누구든 죽일지도 모르고.

“그건 내가 잘 알지. 하지만 재능이 없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는 걸 그대도 잘 알 거야. 무엇보다 그대는 로이슈덴 공작가의 적통이지 않나. 후계자를 위해 혼약은 피할 수 없는 법이다.”

에드윈의 눈초리가 날카롭다.

사교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면 없는 죄라도 만들겠다는 협박 같았다.

더는 거부할 수 없을 것 같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의문이 끝없이 일었다.

“참석하겠습니다.”

그제야 못 마땅한 듯 찌푸려져 있던 에드윈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잘 생각했다, 로이슈덴 공작. 그댄 인생을 너무 재미없게 사는 경향이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즐기도록 하라고. 은밀하게 열린다는 가면 파티에도 참석하고 말이야.”

가면 파티라면 사교가 목적이 아니라, 쾌락을 위해 신분을 숨긴 채 참석하는 파티였다.

그러고 보니 황태자 시절 에드윈은 가면 파티에 빠져 있었다.

아마 지금도 그 은밀한 재미에서 벗어나진 못했을 터다.

“관심 없습니다.”

“혈기 왕성한 그대가 여인에게 관심이 없다니. 걱정이군.”

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에드윈을 응시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폐하.”

진의 은청색의 눈동자가 이른 새벽빛에 차가웠다.

“이런, 내 말에 사내로서의 그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모양이군. 노여워 말라, 로이슈덴 공작. 소문처럼 그대가 파렐 수도원의 수도사라 생각지 않는다.”

진은 대답 대신 침묵했다.

“그럼 오늘 밤, 캠벨 후작가의 파티에 참석하는 걸로 알지.”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었다.

그리고 에드윈은 밤 사냥의 목적을 이뤄 만족스러웠다.

‘지금쯤 록스버그 공작가에도 똑같은 초대장이 도착했겠군.’

3주 후가 건국기념일이다.

록스버그 공작은 건국기념일 파티에서 로이슈덴 공작과의 결혼을 허락한다는 공식적인 발표를 원했다.

거래니 당연히 들어줄 생각이었다.

썩 내키지 않은 거래였지만, 최근 들어 진 로이슈덴이 랑케의 고급 창부에게 빠졌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록스버그 공작가와 로이슈덴 공작가의 결혼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진이 괴물 공작과 결혼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귀족들에게 결혼은 가문을 위한 거래였다.

목적에 부합한다면 결혼할 신부가 괴물이라고 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이제 그럴 염려도 없겠어.’

에드윈은 진을 응시했다.

날카로운 푸른 새벽빛 아래 서 있는 그는 황제인 저보다도 더 황제처럼 보인다.

그 모습에 마음 밑바닥, 어둡게 가라앉아 있던 더럽고 익숙한 감정이 일렁인다.

떨쳐 내려 했지만 결국은 족쇄처럼 그의 발목을 잡는 지독한 열등감이었다.

“폐하의 명대로 캠벨 후작가의 파티에 참석하겠습니다.”

원했던 대답이 진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왔다.

에드윈은 2백 년 동안 계속된 정복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했다는 승전보를 들었을 때보다, 더 강렬한 희열을 느꼈다.

“잘 생각했다, 로이슈덴 공작. 파티에서 너에게 걸맞은 레이디를 찾았으면 좋겠군.”

밤 사냥은 끝났다.

하지만 지금껏 잠들어 있던 열등감이란 짐승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 짐승과 형제처럼 닮아 있는 의심 역시도.

그리고 그 사실을, 에드윈은 물론 진 역시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 * *

평소보다 이른 시각.

어스름한 새벽 사이로 만물상점을 밝히는 불이 켜졌다.

칼라일의 유리엘라 광장은 아직 어둠에 잠겨 고요했고, 번화가인 상점가 역시 아침을 깨우기엔 빠른 시간이었다.

로엔은 테이블 위에 놓인 초대장을 쏘아보았다.

캠벨 가문의 문장의 인장이 찍힌 초대장이었다.

이른 새벽, 록스버그 공작가의 문을 두드리던 자는 황제의 명을 받고 왔다며 초대장을 놓고 떠났다.

‘황제가 보낸 캠벨 후작가의 초대장.’

의도는 명백했다. 캠벨 후작가의 파티에 로이슈덴 공작이 참석할 예정인 것이다.

집사인 스미스에게 초대장을 건네받은 후, 로엔은 서둘러 로이슈덴 공작저로 향했다.

다행히 그레이트 모먼트를 저택에 배달하기 위해 들어가던 신문 배달원을 늦지 않게 매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문 배달원을 통해 로이슈덴 공작저에 배달된 초대장에 캠벨 후작가의 초대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을 확인한 로엔은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만물상점으로 향했다.

만물상점에 도착한 그녀는 창가에 놓인 등을 켜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캠벨 후작가의 초대장을 내려다보며 황제의 의중을 파악하려 애썼다.

문득 밖에서 들려오는 낯선 인기척에 로엔은 상념에서 깨어나 만물상점을 찾은 이른 방문객을 확인하기 위해 고갤 들었다.

문을 밀고 들어오는 진을 발견하곤, 한순간 멍해졌다.

‘생각이 만들어 낸 환영인 건가?’

믿기지 않아 로엔은 눈을 깜박였다.

그러다 뺨에 닿는 서늘한 공기의 움직임에 로엔은 그가 환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왜?’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너무 이른 시간이다. 그가 이곳을 방문하기엔.

무엇보다 새벽부터 승마를 했는지 그에게선 청량한 숲의 바람 냄새가 났다.

“다행히 나와 있었군. 없으면 돌아가려 했는데.”

그 역시 이른 시각에 만물상점에 나와 있는 로엔을 발견하곤 놀란 듯했다.

아니, 마치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듯 그의 은청색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날 보러…… 온 거야.’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차갑던 손끝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평소보다 눈이 빨리 떠져……. 잠을 통 이루지 못했거든요.”

“불면증인가? 아님 또 아팠던 건가?”

문 앞에 서 있던 진이 로엔이 앉아 있는 창가로 걸어왔다.

그가 다가오는 소리에 그제야 로엔은 테이블에 놓인 캠벨 후작가의 초대장의 존재를 인식하고 재빨리 초대장을 주머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니요. 그게 아니…….”

하지만 곧 이마에 닿는 서늘한 감촉에 로엔은 입을 다물었다.

놀란 눈동자가 당혹감을 담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찌푸려진 미간과 짙어진 은청색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걱정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언제나 이랬나? 나는 비늘이 돋아나 자릴 잡는 동안뿐이었는데. 넌 다르겠군. 네 몸속의 독은 피처럼 돌고 돌았을 테니까.”

그제야 로엔은 그가 뭘 말하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뭘 걱정하는지도.

로엔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곤 서둘러 이마에 닿은 손을 밀어냈다.

차갑다고 느꼈던 손이 멀어지자, 아쉬웠다. 이마에 닿았던 부분이 뜨겁다.

“지금까진 버틸 만합니다. 참기 힘들 때면 공작새의 눈물을 삼키면 되니까요.”

“공작새의 눈물이 몸속의 맹독을 정화해 주는 모양이군.”

“완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최근에야 공작새의 눈물보다 더 좋은 약을 찾았고요.”

말을 끝낸 순간 로엔은 후회했다. 마지막에 덧붙이지 말 걸 그랬다. 그와의 키스를 연상케 하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의 시선이 제 입술에 닿았다.

“너에게라면 내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생각해 보니 그리 인색한 성격도 아닌 것 같고.”

내어 주겠다고? 인색하지 않다니.

대체 뭘 내어 준다는 뜻이지?

로엔이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그가 고갤 숙여 왔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서야 그가 뭘 하려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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