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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공개 구혼-11화 (12/201)

11화

“죄송합니다, 백작님. 제가 요즘 신경이 예민해져서…….”

“괜찮다, 벨루가 자작.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니까.”

“네?”

“그게 정말 이십니까?”

두 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동시에 루빈 쪽으로 고갤 돌렸다.

그러나 정작 루빈은 태연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나한테 한 번도 해를 끼치지도 않은 상대에게 적대감을 가질 필욘 없을 것 같은데?”

그제야 두 사람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루빈이 록스버그 괴물 공작에게 마음이 있다는 말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저는 또, 백작님이 공작님과 결혼이라도 하려는 줄 알았지 뭡니까.”

홈볼트 백작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 듯 농담을 했다.

또다시 묘한 침묵이 흘렀다. 당연히 아니라고 반박해야 할 루빈이 잠자코 있어서였다.

마치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이.

갑작스러운 침묵에 세 사람의 분위기가 다시 어색해졌다.

다행히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에 세 사람의 시선이 로엔에게 닿았다.

“이 상점의 주인인 시모네타입니다.”

익숙한 듯 인사를 건네는 루빈 제라르와 홈볼트와는 달리 벨루가 자작은 얼굴을 붉힌 채 서 있었다.

“두 분이셨군요. 오늘은 친구분도 함께 오신 모양이네요. 혹시 이번에도 책을 구하러 오신 건가요?”

로엔이 두 사람을 알아보곤 말을 건넸다.

“유감스럽지만 이번에는 명단을 구할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답니다.”

“명단이라면 무슨……?”

“아, 제가 설명이 부족했군요. 사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소문에 떠도는 록스버그 공작의 남편감 명단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순간 로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록스버그 공작의 남편감 명단이라니. 내가 모르는 그런 게 존재했던가?’

의아함을 감추며 로엔은 세 사람을 향해 더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처음 듣는 말이군요. 정말 그런 게 존재하는 게 확실한 건가요?”

그때까지 로엔의 외모에 홀린 듯 서 있던 벨루가 자작이 헛기침을 하더니 슬쩍 끼어들었다.

“사실 그 명단의 존재 여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귀족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우리도 확인하고 싶어 이곳에 찾아온 것이고요. 솔직히 록스버그 공작이 남자한테 미쳐 날뛰는 마당에 없다고 단언하는 것도 어렵고. 무엇보다 로이슈덴 공작에게 한 공개 구혼이 거절이라도 당한다면 다음 희생자를 물색할 게 뻔해서.”

벨루가 자작이 노골적으로 로엔의 얼굴을 눈을 훑었다.

‘웬 수작질? 눈 뜨고는 못 봐 주겠네.’

로엔은 불쾌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벨루가 자작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애써 그를 무시하느라 뺨에 경련이 일 정도였다.

“아 참, 시모네타 님도 신문에 실린 록스버그 공작님의 황당한 기사는 보셨겠지요?”

“네. 오늘 아침에도 그 기사를 보았답니다.”

로엔의 긍정에 벨루가 자작이 한숨을 깊이 내쉬며, 이젠 대놓고 불쾌감을 표했다.

“정말 미친 것 아닙니까? 록스버그 공작가에서 그런 황당한 공개 구혼을 신문에 싣다니. 가문의 명예나 평판 따위 던져 버린 게 분명합니다. 레이디로서 창피함도 들지 않는 모양이더라고요. 결혼을 구걸하다니 말이 되는 소립니까?”

“벨루가 자작, 그만하는 게 좋겠군.”

홈볼트 백작이 민망한지 로엔의 표정을 살피며 벨루가 자작을 나무랐다.

그러나 불행히도 벨루가 자작은 눈치가 빠른 자는 아니었다.

“그만하긴요.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가 뭔데요. 그 황당한 희생자 명단을 구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저는 싫습니다. 괴물 공작의 남편이 되다니. 만약 결혼해 첫날밤을 보내기 위해 침대에 들었다간 평생 중심을 세우지도 못하고 벌벌 떨다, 그 트라우마로 불구가 될 것 같거든요.”

망상은 병이다. 그리고 눈앞의 벨루가 자작은 중증이었다.

로엔은 그의 황당한 발언에 어이가 없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록스버그의 남편감 명단에 이렇게까지 펄펄 뛰는 그를 보자, 사교계에서 제 존재가 어떤지 짐작이 됐다.

“그것 참 안됐네요. 불구가 되었다니.”

로엔이 짐짓 안타깝다는 듯 슬쩍 벨루가 자작의 다리 사이를 곁눈질했다.

그러자 벨루가 자작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더니 재빨리 부정한다.

“아니요. 그게 제가 지금 불구라는 게 아니라, 그럴 것 같다고…….”

벨루가 자작은 당장에라도 제 바지춤을 내려 증명해 보일 기세였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조심하셔야겠네요. 그 정도로 불구가 될 정도면 미래에 신부 될 분이 불쌍할 것 같거든요.”

로엔이 다 알고 있다는 듯 동정 어린 눈빛을 하자, 벨루가 자작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새빨갛게 변했다.

그리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갤 숙였다.

“흠흠, 그런 말은 그만하고 이제 본론부터 꺼내는 게 좋겠군요.”

홈볼트 백작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듯 서둘러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그럼 제가 록스버그의 희생자 명단을 구해 드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로엔은 일부러 희생자라는 말을 넣어 강조했다.

그녀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갤 숙이고 있던 벨루가 자작이 고갤 들었지만, 로엔은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뭐,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모네타 님?”

“존재만 한다면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홈볼트 백작님. 하지만 그 전에 소문의 출처를 알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그게, 저희도 정확히는……. 사교클럽에서 떠도는 말들이라.”

홈볼트 백작이 머릴 긁적이며 대답했다.

귀족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에 지레 겁을 먹고 찾아온 모양이다.

겁쟁이들이 따로 없었다.

“그럼 제가 그 희생자 명단의 존재 여부를 확인한 다음, 그 명단에 올라간 귀족들이 누군지 알려 드리면 되겠군요. 의뢰 내용을 이렇게 정리하면 될까요?”

로엔이 명확하게 정리하자, 홈볼트 백작과 벨루가 자작이 고갤 끄덕였다.

“제라르 백작님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신 모양이군요.”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루빈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루빈 제라르의 시선이 로엔에게 향했다.

6척이 조금 넘을 것 같은 키에 금발의 푸른 눈동자를 가진 루빈은 잘생긴 미남이었다.

만물상점을 찾아오는 레이디들 중 상당수가 루빈 제라르 백작에게 반해 연서를 부탁하는 이들이었다.

거기다 제가 그에게 구해 준 책들 대부분이 높은 수준을 요하는 서적들이었다.

잘생긴 외모만큼이나 지적이기까지 하니 인기가 좋을 수밖에.

“그게…….”

루빈이 쉽게 입을 떼지 못하자, 로엔이 의외인 듯 그를 보았다.

지금까지 보았던 거침없던 행동들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제라르 백작님.”

“우리의 의뢰가 너무 무례한 건 아닌가 해서…….”

“아아, 그 말씀이시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보다 더 황당한 의뢰도…….”

“그게 아니라, 록스버그 공작님에게 그렇다는 말이었습니다. 소문이 거짓이고 그 황당한 명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건 공작님에겐 치명적인 부분이 될 것 같아서.”

로엔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리곤 루빈 제라르 백작을 보는 그녀의 눈빛이 처음으로 진지해졌다.

처음이다. 누군가에게서 록스버그 공작을 걱정하는 말을 들은 건.

“백작님은 또 그 말씀이십니까? 정말 그 공작에게 마음이 있는 건 아니시죠?”

벨루가 자작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벨루가 자작, 제발 그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것 역시 공작에겐 폐가 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루빈의 지적에 벨루가 자작이 이젠 포기했다는 듯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 다신 공작님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을 테니, 그 희생자 명단이 나오면 백작님이 손이라도 들어서 공작님과 결혼하시길 빌겠습니다. 공개 구혼에 거절당한 공작도 위로가 필요할 테니까요.”

끝까지 빈정대는 벨루가 자작을 보며 루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라르 백작님의 마음은 잘 알았습니다. 만약 공작님을 뵙게 되면 잘 전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요, 그럴 필요까진 없습니다.”

루빈이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손을 내저었다.

그 모습에 로엔은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루빈 제라르 백작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와의 첫 만남은 책을 구해 달라고 상점을 찾아왔던 2년 전이었다.

“그럼 저희는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루빈이 난처한 듯 돌아가려 했다.

서둘러 일어서는 그를 로엔이 불러 세웠다.

“제라르 백작님, 한 가지만 여쭈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아, 네.”

“제 생각으론 백작님은 록스버그 공작님을 걱정하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개인적 친분이라든가……?”

로엔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루빈이 조심스럽게 고갤 끄덕였다.

“사실 공작님과 조금 친분이 있습니다.”

“록스버그 공작님과요?”

“아니요, 로이슈덴 공작님과요. 4년 전이긴 했지만 저 역시 황실 기사단 소속으로 전쟁터에 있었거든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전쟁터에 머문 시간이 6개월이 다라 말하기도 창피하지만.”

“아, 로이슈덴 공작님 말씀이셨군요. 그분은 어떤가요? 소문처럼 그렇게 미쳤나요?”

로엔이 가벼운 투로 말했다.

그러나 루빈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사실입니다. 제가 본 바론. 평소엔 냉혹하리만치 이성적인 분이지만 검을 들면 같은 편이란 게 다행일 정도로 두려운 존재로 변했거든요. 표현을 하자면…….”

“살인에 미친 맹수였던 거군요. 피에 굶주린.”

로엔의 거침없는 표현에 루빈이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고갤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록스버그 공작님이 걱정이 된다는 뜻이었군요.”

“제가 고귀하신 그분을 걱정할 주제라도 되나요. 그저 마음이 쓰일 뿐입니다. 저 역시 사고로 몸을 다친 동생이 있어서……. 그럼 가 보겠습니다.”

루빈이 자릴 뜨자 홈볼트와 벨루가 역시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겨진 로엔은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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