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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공작부인은 사라졌다 (109)화 (109/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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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혼란

클린트는 나날이 미쳐 가고 있었다.

어느 날은 황제고 레이첼이고 모두 죽이겠다고 난리를 피우다가도, 어느 날은 프시케를 부르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굴었다.

그 모든 행동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은 알렉산드로였기에, 가장 죽을 것 같은 매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클린트의 그 행동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아내를 잃는다면, 심지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아내를 잃는다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클린트는 프시케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지만, 알렉산드로는 아니었다.

그는 레이첼을 만났던 날을 상기해 냈다.

클린트가 거의 완벽하게 그녀를 죽일 뻔했던 날.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한참 뒤에 현장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알렉산드로가 돌아갔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였다.

당연히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레이첼이 죽은 것을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하나 그것을 걱정했다. 그 당시에는 프시케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 상황을 잘 풀 수 있는 방도를 생각했다.

하지만 늦은 밤. 마치 유령처럼 앉아 있는 레이첼의 모습에 알렉산드로는 기절할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왜, 내가 살아 있어서 놀랐어?”

“…….”

머리를 산발한 여자는 마치 생과 사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서 있는 것 같았다.

새까만 밤을 등진 레이첼은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었다.

“클린트 발렌타인에게 전해……. 그런 것으로는 날 죽일 수 없다고.”

“…….”

“하하하하!”

레이첼은 알렉산드로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미친 여자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그 광기가 밤의 달빛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음산한 회색 초승달만이 하늘에서 희미한 색을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웃어젖힌 레이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돌연 뚝 웃음을 멈추었다. 갑자기 흐른 정적과 함께 레이첼의 기괴한 모습에 알렉산드로는 쭈뼛 소름이 돋았다.

분명 더 끔찍한 광경과 상황을 훨씬 많이 목격한 그였다. 하지만 레이첼의 모습은 마치 사람 같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끔찍한 고요가 찾아왔다. 허공을 바라보던 레이첼이 천천히 알렉산드로 쪽으로 고갤 돌렸다. 그 움직임이 몹시도 기이했다. 뭐랄까. 누군가 그녀의 몸을 조종하는 것처럼, 그래. 꼭두각시 인형 같았다. 하늘에서 실을 위로 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레이첼의 목이 끼긱거리며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에 입꼬리를 관자놀이까지 끌어올려 미소 지은 레이첼이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

“프시케는 죽었어.”

알렉산드로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그녀와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저 생사만 확인하기 위한 것이니.

클린트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되었다. 그는 레이첼의 말에 더 반응하지 않고 그대로 뒤돌아섰다. 새까만 밤이었다.

그래……. 그날까지는 프시케가 살이 있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 알렉산드로는 레이첼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알렉산드로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건넸다.

‘피 묻은 목걸이.’

그냥 피 묻은 목걸이가 아니었다.

레이첼은 그날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긴 했다. 죽음은 가시고 완전히 산 사람의 모습이어서 위화감이 들었다.

하지만 훤한 대낮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으니 알렉산드로는 레이첼이 건네는 것을 받아 들었다.

“이게 뭔지 알지?”

“…….”

“그날은 몰랐는데, 내 몸에서 이런 게 발견되었어. 그러니까.”

레이첼이 알렉산드로에게로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그의 귓가에 대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프시케는 죽었다고. 이게 공작의 목걸이라는 건 네가 제일 잘 알지?”

“…….”

숨소리, 그리고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너무 선연하게 전신으로 전해졌다.

“그러니까 가서 공작에게 확실히 전해.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던 공작부인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그 말에 알렉산드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처음으로 레이첼을 제 손으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레이첼에 대한 생각은 늘 우울함과 절망을 가져오는 것 같았다. 알렉산드로는 고갤 저으며 제 앞에 앉은 클린트를 바라보았다.

“전하…….”

그 말에 클린트가 아주 천천히 고갤 들었다.

꺼칠한 얼굴이 예전과 달랐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꼭 술 취한 사람처럼 구는 그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러다 정말 그가 죽게 될까 그것이 알렉산드로는 걱정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셔야 합니다.”

매번 식사도 하지 않았다.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사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입술은 다 부르텄고, 근심에 찬 얼굴은 꼭 산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알렉산드로의 등장에 클린트는 천천히 고갤 들었다.

“프시케는?”

그는 아침 식사를 해야 한다는 앞의 말은 듣지도 않았다는 듯이 제 할 말만 툭 뱉었다. 죄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가 그의 상태를 대변하고 있었다.

“……찾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로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사람을 풀어 프시케의 흔적을 쫓고 있긴 했지만, 죽은 사람이 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 말에 클린트는 책상을 쾅 쳤다.

“왜! 왜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는 거야. 왜…….”

클린트는 아주 절망스러운 얼굴로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자신 앞에서 무너지는 클린트를 보며 알렉산드로는 다시금 마음이 복잡해졌다.

프시케는 이제 없다.

알렉산드로는 아직도 클린트에게 건네지 못한 목걸이를 생각하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했다.

아직은 그녀의 죽음을 클린트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말을 돌렸다.

“황제의 동향이 이상합니다.”

“…….”

황제와 레이첼을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던 어제의 모습과 달리 클린트의 얼굴은 다 죽은 사람 같았다.

듣지도 않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프시케의 이야기를 더 할 수 없었던 알렉산드로는 다시 입을 열었다.

“벌써 며칠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

클린트는 여전히 이야기에 관심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알렉산드로는 계속 말을 이었다.

“병이 난 것 같다는 소문이 도는데……. 이상한 것은 레이첼, 그 여자가 지속적으로 알현 요청을 하고 있는데 거절되었다고 하는군요.”

“미친 것들.”

클린트가 신경질적으로 뇌까렸다.

“그리고 황제 대행으로 황후가 나섰다고 하는데……. 이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그 말에 그제야 알렉산드로를 바라본 클린트가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황후가 나섰다고?”

클린트가 반응하자 알렉산드로는 얼른 반색하며 대답했다.

“예, 내일 정무 회의 후에도 황후가 오찬을 주관한다고 합니다. 이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까?”

“……뭔가 이상하긴 하군.”

클린트는 제 턱을 어루만졌다.

“전하께도 참석해 주십사 초대장이 왔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큰 안건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일 오찬에는 후작이 초대받았기에, 후작부인인 레이첼, 그 여자도 참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황제가 참석할지 안 할지는 아직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여자는 어떻게서든 황제를 만나려고 하고 있으니…….”

클린트는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갤 끄덕였다.

“이상한 데 힘 빼지 마. 넌 프시케를 찾는 데에만 집중해.”

“……알겠습니다.”

“내가 기사단을 황도 근처에 주둔시켰는데도 황제가 가만히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이상하기는 하군.”

클린트는 여차하면 황궁으로 기사단을 밀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황제가 아무 반응이 없자 그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제 지위를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여 지키길 원하는 황제가 이리 조용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기사단을 움직인 시점부터 난리가 나도 단단히 났어야 했는데, 확실히 황궁에 뭔가 다른 기류가 생겼음은 분명했다.

황제가 반응하지 않으니 흥이 나지 않았다.

그의 죄는 분명 값을 치러야 할 터다.

‘그러려면 이렇게 싱겁게 반응해서는 안 되겠지.’

클린트는 그리 생각하고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제의 동향도 살펴. 적당한 때에 움직일 테니.”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턱에 양손을 괜 클린트가 알렉산드로를 향해 시선을 슬며시 올렸다.

“클로드와 알렉사의 흔적도 찾고 있겠지?”

“예, 그리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알렉사와 클로드는 굉장히 노련한 기사와 용병이어서 웬만해서는 흔적을 남기고 다니는 법이 없었다.

물론 공작의 정보력이라면 그들의 거취가 곧 밝혀지겠지만,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자 알렉산드로는 더 착잡해졌다.

알렉사는 자신의 동생이었다. 그녀가 그리 쉽게 누군가에게 당할 리가 없었지만 모든 증거와 상황이 알렉사 또한 죽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프시케를 유독 잘 따랐던 그녀였으니, 그 죽음 앞에 큰 절망을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거냐. 알렉사.’

알렉산드로가 속으로 제 동생을 찾았다.

그녀라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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