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7화 (177/182)

165화

‘거주 이전 시스템…….’

시스템 메시지는 분명 내가 ‘내 세상’을 구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스템을 설치할 시 내 영혼은 온전히 지금 이 세계에 ‘돌아오게 된다’고 말했다.

‘영혼이 돌아온다고 표현한 건…… 설마 혹시 원래 내 세상이 여기라는 말인 걸까?’

영 허무맹랑한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게이밍 시스템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와서 놀라울 정도의 적응력을 보였다.

원래 살던 세상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게 다 혹시 여기가 본래 내가 살아야 할 세상이기 때문인 거라면?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여기에 정착하는 게 올바른 선택인 걸까?’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영혼의 소속이라는 문제 이전에, 내가 나로서 살아온 삶의 대부분은 이전 세계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에서 나는 안정된 직장, 누구든 부러워할 만한 집까지 가진 사람이었다.

‘혼자라는 점이 좀 외롭기는 했지만.’

다 지나고 나서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 세계에서 치열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사리 저버릴 수가 없을 만큼.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게임이라는 시스템에 휘말려 당장 순간순간의 목표에 집중했던 탓일까?

나는 지금까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이런 선택지를 주다니.’

솔직히 말해서 뒤통수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나 돌아갈 수도 있는 거였어? ……하고 말이다.

잘 모르겠다.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이런 선택지가 주어졌다면 당연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가는 쪽을 선택했겠지만…….

지금은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들을 겪어 버렸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그렇게 옷도 못 갈아입고 잠옷 바람으로 고민에 잠겨 있는데…….

똑똑!

거의 ‘쿵쿵’에 가까운 다급한 노크였다.

“공녀님!”

집사였다.

나는 재빨리 숄을 걸치고 문을 열어 주었다. 집사가 창백한 얼굴로 고했다.

“각하께서 쓰러지셨습니다!”

“뭐?”

나는 집사를 따라 황급히 아버지의 방으로 향했다.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말을 안 한 거지?”

거기엔 미리 도착한 칼릭스가 의사를 추궁하고 있었다.

“칼릭스, 무슨 일이야?”

일련의 사건 이후로 가족들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는 것에 민감해진 칼릭스였다. 나는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그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누님.”

칼릭스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설명했다.

칼릭스의 설명에 따르자면 최근 아버지는 원인 불명의 두통을 앓고 있었으며, 그 사실을 우리에겐 알리지 말라고 주치의에게 명령을 하셨다고 했다.

“일단 칼릭스, 주치의를 추궁할 문제는 아닌 것 같구나.”

나는 원인 불명의 두통을 진단한 주치의를 돌려보내고, 정신을 잃고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생각엔 아무래도 이게 엘레니가 전에 걸었던 마법의 후유증 중 하나가 아닐까 해.”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엘리야를 부르는 게 좋겠어.”

바쁠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게 미안하긴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엘리야는 내 부름에 만사를 제치고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진찰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요?”

“당신이 추측한 이유가 맞습니다. 정신을 뒤흔드는 세뇌 마법이 너무 강력했던 탓에 이런 부작용을 낳은 것 같군요.”

예상했던 결과를 듣자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그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런 종류의 영구적인 마법 상해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아버지의 신체가 아니라 정신, 즉 영혼에 손상이 갔을 가능성이 있다며, 섣불리 치료를 시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방법이요?”

“페르가나 마법 아카데미에서 보관하고 있는 고대 아티팩트 중에, ‘올가의 바이올린’이라는 물건이 있습니다.”

“올가의…… 바이올린이요?”

“예.”

엘리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올가의 바이올린은 이런 종류의 마법 상해, 그러니까 정신과 영혼의 손상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바이올린의 반출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점인데…….”

엘리야의 설명을 듣다 보니 떠오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황궁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내게는 수많은 편지가 쏟아지다시피 했다. 주로 내 업적을 칭찬하거나, 호기심에 나를 초대하거나 하는 편지였는데, 그중에 페르가나에서 보낸 초청장이 있었다.

다른 편지는 거의 읽어 보지도 않았지만, 페르가나에서 보낸 건 발신인이 마음에 걸려 한번 읽어 보았다.

‘용제 부활을 저지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정화력의 활용에 대해 고견을 듣고 싶다고 했지…….’

“저기, 엘리야.”

“예?”

나는 엘리야에게 이런 편지가 왔노라고 조심스럽게 알렸다. 그러자 엘리야가 머리를 짚었다.

“결국 당신에게도 편지를 보냈군요.”

“그러니까 말인데요.”

나는 살짝 눈치를 보며 말했다.

“초청을 받아들이고, 관련한 내용으로 특별 강의를 준비할 의향이 있다고 하면 어떨까 해서요.”

“아, 과연.”

엘리야는 이해가 빨랐다.

“그걸 대가로 바이올린의 반출을 요구할 생각이로군요.”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를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정화력에 관한 연구에도 최대한 협력하겠다는 구두 약속을 덧붙이면…… 어떻게 가능하지 않을까요?”

“음…… 그 마법에 미친 자들이라면 제안을 수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도 같군요.”

“그럼 최대한 빨리 답장을 보내야겠네요.”

“예?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엘리야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있는데?”

“아.”

나는 그제야 엘리야에게 페르가나 시민권이 있고, 그가 페르가나의 명예 교수이며 당장 텔레포트로 아카데미를 방문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기억해 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런 일을 미룰 필요는 없겠죠.”

나는 거의 정신을 잃고 앓아누운 아버지와, 아버지의 일을 떠맡아 고생하고 있는 칼릭스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야의 말이 맞았다. 괜히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에나를 불러 일주일 정도 페르가나 아카데미에 머물 짐을 챙기라고 당부한 다음, 곧장 엘리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곧장 명예 교수 프리 패스로 학장실까지 단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싶은데요.”

“음.”

내 제안을 들은 학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올가의 바이올린’을 반출하는 데 그만한 대가를 치르시겠다면야, 저희 페르가나 아카데미 측에서도 거절할 이유는 없을 것 같군요.”

학장은 단, 올가의 바이올린은 확실히 치유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며, 엘리야에게 관리 감독의 책임을 묻겠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더한 대가도 생각했는데, 이 정도라면 조건이라고 할 것도 없는 수준이었다.

나는 당장에 고개를 끄덕였고, 학장은 잽싸게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하하 비즈니스 미소를 주고받으며 손을 몇 번 흔들었다.

계약 성립이었다.

* * *

올가의 바이올린은 연주할 필요가 없는 바이올린이었다.

필요한 만큼의 마력을 불어넣으면, 알아서 연주를 해 주는 바이올린이라고 했다.

“그 음률에 깃든 치유의 힘이 로잔헤이어 공작 각하의 병세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나와 엘리야는 초고속으로 반출 허가를 받아 다시 로잔헤이어 저택으로 되돌아왔다.

“내가 바이올린을 책임지기로 했으니, 당신 아버지의 치료도 내가 전담하는 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주신다면야 제가 감사하죠.”

“시간을 아낄 필요가 있으니, 당신은 그동안 페르가나로 가서 미리 강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정화력의 기전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한 번도 이 내용으로 대중 앞에서 ‘강의’라는 걸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일단 하기로 한 이상 대충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페르가나에 다녀오는 동안 에나가 준비해 준 짐과 함께 다시 페르가나로 돌아갔다.

여기까지 이루어지는 데 세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급박하게 진행한 일이니만큼 누구한테 알리고 어쩌고 할 정신도 없었다는 뜻이다.

다시 페르가나에 도착해서야 한 사람의 얼굴이 어렴풋 떠올랐다.

‘카미엘.’

안 그래도 요 며칠 연락이 안 돼서 걱정을 하고 있을 텐데, 소식 정도는 남겨야 했던 걸까?

아니, 아니다. 카미엘에게 연락을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엘리야에게 다시 한번 신세를 지긴 좀 그랬다.

‘어차피 집안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내가 페르가나로 갔다고 알려 줄 테고.’

그럼 돌아가서 정황을 설명해도 늦지 않을 거다.

나는 페르가나 아카데미에서 내준 귀빈용 숙소에 짐을 풀었다.

휴식을 취할 시간 같은 건 물론 없었다. 그 꿈의 마법 명문 페르가나 아카데미에서 무려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나는 당분간 학내를 불편함 없이 돌아다닐 수 있게 해 주는 귀빈용 패스를 발급받자마자,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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