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6화 (176/182)

164화

“쳐! 마법을 완성하지 못하게 해!”

황제가 비명처럼 외쳤다.

그와 동시에 황제의 수하들이 이쪽을 향해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온갖 마법과 오러의 현란한 색채가 눈앞을 물들였다. 전투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꾹 감고 말았다.

“……!”

엄청난 충돌과 충돌의 여파로 거센 바람이 불었다.

한차례 충돌이 지나간 후,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세드릭! 이안!”

세드릭이 평소처럼 무덤덤한 어투로 대답했다.

“좀 늦었습니다.”

“에이드리언 카시스! 이 배은망덕한! 너도 결국 이 자리를 노리고 있었던 거지!”

황제가 펄펄 뛰며 외쳤다. 이안은 복잡하면서도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에 엘리야는 마법진 역산을 전부 끝냈다.

한낱 인간 마법사 따위가! 이 나를……!

여기서부터는 내 몫이었다.

나는 엘리야가 세운 정교한 건축물이나 다름없는 마법진에 본격적으로 정화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용제는 부활을 위해 마법진 안에 온전히 자기 자신을 불어넣었다.

그것이 패착이 되어, 우리가 역산한 마법진에 온전히 갇히고 말았다.

“로잔헤이어의 계집을 죽여! 저 계집을 죽여야 해!”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카미엘이 붉은 눈을 빛내며 내 앞에 섰다.

“내가 있는 한은 아무도 그렇게 못 해.”

그 말을 시작으로, 난전이 벌어졌다.

황제의 수하들이 일제히 이쪽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미엘, 칼릭스, 이안, 세드릭, 엘리야까지. 다섯 사람은 절대로 한 점의 공격도 내게 닿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로잔헤이어……! 어떻게든 너를 죽였어야 하는 건데!

용제가 깊은 원한과 증오가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나는 정화력을 불어넣으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소멸 마법진인데, 소멸에 이르는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고 있어.’

정화력은 시시각각 소모되고 있는데, 마법진은 용제를 가두어 두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혹시 용제가 봉인된 영체라서 공격이 닿지 않고 있는 걸까?’

나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직은 용제가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대치 상황이 길어지면 내가 자신에게 유효타를 먹이지 못한다는 걸 분명 눈치챌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아.’

그런 내 눈에, 분노로 길길이 날뛰는 황제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여전히 한 손에 검게 물든 천 번째 심장을 들고 있었다.

판단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나는 마치 실수인 양 황제 쪽을 향해 마법진을 허물어뜨렸다.

모자란 것! 모자라구나! 로잔의 아이야, 너는 첫 번째 로잔헤이어보다 부족하기 짝이 없구나!

용제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영체를 빼냈다.

나는 힘이 모자란 척, 가슴을 잡고 쓰러지는 척을 했다.

“누님!”

“이, 이게 왜……?”

자신이 쥐고 있는 천 번째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하자, 황제가 당혹한 듯 중얼거렸다.

인간의 황제여.

마물의 왕이 입맛을 다셨다.

그대의 소원이 나의 부활이었지.

“예? 커, 커헉……!”

황제가 갑자기 밀려드는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요, 용제 폐하! 어째서!”

계획대로는 아니지만, 나는 부활할 것이다.

용제의 영체가 낮게 웃으며 황제의 몸을 침습하기 시작했다.

너를 통해서.

“이건, 말도, 폐하! 제 소원은 영생 불사하는 인간의 왕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 소원 역시 이루어질 것이다. 네 몸을 통해서 내가 이룰 테니까.

“아, 안, 안 돼……!”

준비된 그릇은 아니었지만, 용제는 지금 그런 걸 따질 겨를이 못 됐다.

황제의 몸을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만들기 위해 힘을 쓸 뿐.

“컥, 크억, 꺼어어억……!”

황제의 얼굴에 혈관이 불뚝불뚝 튀어나오더니, 검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황제는 괴로운 듯 제 몸을 긁어 댔으나 누구 하나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카미엘이 3년에 걸쳐 나누어 받은 고통을, 그는 단시간 안에 압축해서 겪어야 했다.

모르겠다. 영혼이 찢어지지나 않으면 다행 아닐까?

나는 냉정하게 그 상황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자업자득이지.’

아주 오래전부터 황제가 타인에게 잔혹하게 선사했던 고통이, 그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컥……!”

황제의 눈이 흰자까지 시꺼멓게 물들었다!

나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실체를 얻은 용제가 마법진을 빠져나가기 전에, 재빨리 정화력을 둘러 그를 가두려 했다.

“될까 보냐……!”

황제의 입에서 검은 피와 함께 용제의 목소리가 기묘하게 혼합되어 흘러나왔다.

“윽……!”

실체를 얻은 용제의 반격은 도저히 무시할 수 있을 수준이 아니었다.

‘마법진을 봉하기만 하면 돼.’

그다음은 존재 사멸을 목적으로 하는 마법진이 알아서 해 줄 것이다.

그런데…….

‘가능할까?’

이래저래 정화력을 소모한 탓에, 필요한 정화력이 아주 아슬아슬하게 딱 맞거나 조금 모자라거나 할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카미엘이 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내가 잊고 있던 사실을 알려 주었다.

“힘은 여기에도 있어.”

아. 그랬다.

여기 오기 전에 카미엘에게 담아 두었던 정화력.

넘치도록 돌아오는 힘이 느껴졌다. 이거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직감이 왔다.

직감이 오자마자, 나는 폭발적인 양의 정화력을 터트렸다.

“말도 안 돼, 이런 힘은……!”

나는 용제가 적응하거나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않고, 막대한 양의 정화력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이윽고…….

“닫았다!”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쿠오오오오오!

부활의 마법진을 전부 역산한 존재 사멸의 마법진이 정화력을 동력 삼아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럴 수는, 이건, 이건 안 돼!”

용제가 검은 기운을 터트리며 마법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럴 때마다 마법진의 파동이 불안정하게 들썩여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저러다가 탈출에 성공하기라도 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까?”

엘리야가 코웃음을 쳤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설계한 마법진인데.”

“경 진짜…….”

이런 상황에서까지 저 정도 자부심이라니. 진짜 존경한다.

하지만 덕분에 긴장이 좀 풀린 것도 사실이었다.

엘리야가 장담한 대로, 용제가 아무리 기를 써 봐도 정화력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의 주박은 한 톨도 풀리지 않았다.

“으윽, 아아아아악!”

마침내 마법진 안에서 용제가 분해되기 시작했다.

손, 발 같은 말단부에서부터 가루처럼 부서져 가는 제 몸을 바라보면서, 용제는 원한에 찬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렇게까지 외쳤다.

“이안! 이안! 나는 네 아버지가 아니냐! 이 꼴을 두고 보기만 할 테냐?”

말도 안 되는 호소에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쓴웃음만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 아아, 안 돼, 안 돼, 내가 이렇게 죽을 수는, 이럴 수는……!”

정화력의 바람이 한 바퀴 휘감을 때마다 황제의 껍데기를 쓴 용제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팔다리가 사라지고, 가슴팍이 사라지고, 마침내 비명을 지를 성대마저 사라지고.

증…… 오스러운…… 인간들…….

마침내 머리끝까지 분해되어, 사멸해 버렸다.

“아아아, 폐하……!”

용제 부활을 획책하던 수하들이 망연하게 무릎을 꿇었다.

‘끝…….’

끝났다.

용제 부활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퀘스트: 용제 부활을 저지하라’ 달성률이 100%를 기록합니다!

‘히든 에피소드: 성녀의 길’ 목표 달성률이 100%를 달성합니다!

제국의 멸망을 저지하여 전설적인 칭호, ‘용제를 처단한’을 얻습니다. 전 스탯이 100 오릅니다.

용제를 정화하여 전설적인 칭호, ‘성녀’를 얻습니다. 전 스탯이 100 오릅니다.

탈진해서 털썩 쓰러지려는 나를 카미엘이 “엇차.” 하며 부축했다. 그러는 중에도 내 앞에는 끊임없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당신은 당신의 세상을 구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대가로 거주 이전 시스템 설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을 설치할 시 당신의 영혼은 이 세계에 항구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설치를 진행하지 않을 시 자동적으로 귀환 프로토콜을 활성화합니다.

설치 이후에는 현재 실행 중인 게이밍 시스템이 종료됩니다. 신중하게 선택해 주세요.

진행하시겠습니까? Yes or No.

어?

* * *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황궁을 진압 완료한 병력이 도착함과 동시에 이안은 황제를 좇아 용제의 부활을 꾀하던 사도들을 모조리 잡아 지하 감옥에 처넣었다.

대외적으로 그들의 죄는 내란죄였다. 용제를 부활시켜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는 죄명이었다.

황제는 안타깝게도 그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처리되었다. 여기에는 카미엘의 입김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그는 이안을 손가락질하며 이렇게 말했다.

“향후 네 승계에 문제가 생기는 건 나도 원하는 바가 아냐.”

“놀랍군그래.”

이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네가 황제의 관까지도 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귀찮은 건 줘도 싫어.”

카미엘은 코웃음을 치며 단칼에 거부했다. 100% 진심이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는 반응 속도였다.

카미엘의 말마따나 ‘그런 귀찮은 거’나 떠맡게 된 이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황제가 싸지르고 간 것들을 치우는 한편으로 국정을 동시에 처리해야 했으니, 보지 않아도 고생길이라는 게 훤했다.

그나마 세실리아가 의연히 정신을 차리고 새 황제의 하나뿐인 혈육으로서 내궁의 살림을 전적으로 책임져 주어서 다행이었다.

아무튼 외부적인 상황은 그럭저럭 안정되어 가고 있었지만…….

“…….”

나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있었다.

삿된 무리의 용제 부활을 저지하는 데 큰 활약을 한 게 나라는 사실이 은연중에 알려지면서, 새 황제인 이안보다도 내가 ‘성녀’로서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 부담스러운 탓도 있었지만…….

진행하시겠습니까? Yes or No.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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