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기밀이기는 해.”
카미엘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당연히 기밀이겠죠! 이제까지 아무도 몰랐는데!”
“이건 진짜 기밀이야. 여태까지는 나밖에 몰랐어.”
“네?”
나는 당황했다.
‘아무리 비장의 한 수라고 하지만.’
마법사라는 사실을 그렇게 꽁꽁 비밀에 부쳐야 할 정도인……
‘……아, 설마?’
“다, 당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카미엘의 멱살을 부여잡고 말았다.
“당신 설마 카미엘 시 로엔이 진명인 건……?”
“하하, 응. 맞아.”
“끼아아아아악!”
경악한 나머지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지금 이 남자가 온 세상에 자기 목을 내놓고 다닌다고 실토한 거란 말인가!
“어, 어, 어떻게 그런, 그런 일이!”
덜덜 떨려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나와 달리, 카미엘은 깔끔하게 웃는 얼굴로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황궁에서 탈출한 다음에 개화했거든. 이후로 나 혼자 마법을 독학했고. 그래서 아무도 몰라.”
“진명은 어떡하려고 그랬어요, 진명은!”
“마법사라는 걸 나만 알면 되는 거잖아.”
“이 양반이 진짜!”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올려 카미엘의 어깨를 찰싹, 때리고 말았다.
“이젠 나도 알게 됐잖아요! 이 사태를 어쩔 거냐고요!”
“괜찮아, 유리. 네가 진명으로 날 어떻게 하려고 해도 신경 안 써. 괜찮아.”
“혀, 혈압이 오른다.”
상식 밖의 행태에 머리가 따라가 주질 않는 느낌이었다.
“나는 당연히 안 그래요!”
“그럼 고맙고.”
“하지만 누군가 나를 고문해서 당신의 약점을 알아낼 수도 있잖아요!”
“하하, 상상력이 풍부하네, 유리는.”
카미엘이 여전히 멱살이 잡힌 채로 내 뺨에 쪽 입을 맞췄다.
“귀여워.”
“…….”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참자. 참자. 대화를, 대화를 이어 나가야만 한다.
“아니 대체…… 어떻게 혼자 마법사가 된 거예요?”
나도 나름 진도가 느리지는 않다고 엘리야한테 칭찬받은 — 엘리야 입장에서 진도가 느리지 않은 거면 나도 수재가 맞았다 — 몸이었는데, 혼자 마법사가 되는 건 상상조차 가질 않았다.
“방법이 달리 없었으니까. 하다 보니까 어떻게든 되더라고.”
“지금 그래서 몇 서클……?”
“7서클?”
“…….”
내가 잠시나마 마법학 교수가 될 생각을 했다는 게 수치스러워질 지경이었다.
‘이런 사람도 교수가 아닌데 내가?’
말도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카미엘이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마나량으로는 9서클도 가능할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7서클 후반부터는 독학이 좀 어렵더라고…… 응? 유리, 왜 그래?”
“당분간 저한테 말 시키지 마세요…….”
“왜?”
카미엘은 진심으로 의아한 눈치였다. 이런 사람한테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분위기가 안 좋은 것 같군요.”
정말로 그렇다기보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말투였다.
“칼릭스.”
“누님.”
칼릭스가 순식간에 착 하고 양순한 표정을 지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왜 이쪽에 앉아 계신 겁니까? 부정한 게 옮을까 봐 걱정이 되는군요.”
날 선 말투였지만 문제는 이 정도 공격에 기가 죽을 카미엘이 아니었다.
카미엘이 피식 웃고는 어깨를 움츠리는 척을 하며 말했다.
“말이 심하네, 예비 처남.”
칼릭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 뭐라고……”
“와아! 이안!”
왈왈왈왈 난장판이 벌어지기 전에, 나는 때마침 방으로 들어오는 이안을 반기며 벌떡 일어섰다.
“?”
이안이 의아한 얼굴을 하다가, 이쪽의 구성을 발견하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하필이면 이렇게 계셨군요.”
“뭔데 시비질이지?”
카미엘이 무표정하게 중얼거렸으나 이안은 완벽하게 그를 무시했다.
“보아하니 제가 세 번째인 것 같군요.”
“네, 맞아요.”
30여 분 만에 낡고 지친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음은……”
“여기.”
엘리야가 공간 이동 마법진을 통해 건너옴과 동시에 무뚝뚝하게 대답을 던졌다.
우리는 현재 카미엘이 준비한 안가에 모여 있었다.
각자의 집을 비롯한 각종 거처를 제외하고 굳이 안가에 모인 이유는 오늘 나눌 주제가 상당히 위험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카미엘이 휘 하고 휘파람을 한 번 불었다.
“그럼, 제국의 역적들이 다 모였으니 시작해 볼까?”
오프닝 멘트로 아주 시기적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팔짱을 낀 칼릭스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에스테반 후작이 안 오지 않았습니까?”
“아, 그 사람.”
카미엘이 씩 하고 웃었다.
“안 그래도 그 얘기부터 하려고 했는데. 내 마음을 아주 잘 아는군, 예비 처남.”
“카미엘…….”
이를 악문 내 나지막한 경고에 카미엘이 잠깐 입을 다무는 척했다.
“그래서 에스테반 후작이 어쨌다는 겁니까?”
칼릭스가 한숨을 쉬며 끼어들었다. 카미엘도 두 번 장난을 칠 생각은 없는지 쉽게 입을 열었다.
“그 사람, 아무래도 실종된 것 같아서 말이야.”
“……네?”
물론, 쉽게 입을 열었다고 해서 내용까지 쉬운 건 아니었다.
“아니, 분명 집사는 집안일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하지 않았어요?”
설마 거짓말을 한 건가?
“거짓말은 아닐 거야.”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카미엘이 대답을 해 주었다.
“실제로 세드릭 에스테반이 자리를 비우기 전에 ‘집안일로 알아볼 것이 있다’고 말한 건 사실이거든.”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
카미엘은 그렇게만 말하며 빙글 웃었다. 나는 이 부분은 나중에 추궁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세드릭 경이 집안일로 자리를 비운다고 했으면 분명 그 동생 일 때문일 거예요.”
“동생?”
나는 슬쩍 눈치를 보며, 죽은 세드릭의 동생을 목격한 일을 엘리야와 칼릭스에게도 털어놓았다.
“누님…….”
칼릭스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잔뜩 나무라고 싶은 눈치였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그 일에 대해 개인적으로 알아보았다면, 황제 측에 발각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은 즉, 에스테반 후작의 실종에는 황제 폐하께서 관련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로군요.”
“가능성이 높다기보다 확정적이라고 봐야지.”
카미엘이 대수롭잖게 대답했다.
“그도 황가의 피를 이었으니 용제를 담을 그릇으로서의 자질은 있는 셈이니까.”
“오러 마스터인 데다가 황도에서 알려진 인물을 납치하는 데는 그만큼 큰 리스크가 동반할 겁니다.”
엘리야가 말했다.
“그 리스크를 감수할 정도였다면, 황제의 계획이 거의 무르익었다고 봐도 무방할 거고요.”
이안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시간을 끌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랬다.
“로엔 대공이야 애초에 이 일을 준비 중이었고.”
준비된 반역자로 지목된 카미엘이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했다.
“나 역시 자금력과 사병을 끌어모으는 데 이틀 정도면 충분한 상황입니다.”
아들인 그까지도 이렇게 말하는데야 망설일 건 없었다.
칼릭스가 결론을 내렸다.
“그럼 그대로 결행하시죠.”
“아까 이틀이라고 했나? 그럼 결행 날짜는 바로 이틀 뒤로 잡지.”
카미엘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히 모두의 시선이 엘리야를 향했다.
그러나 엘리야는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 우리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내가 총대를 메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저기, 엘리야 경?”
“잠깐 짚이는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엘리야의 시선이 카미엘을 향했다.
“?”
“용제를 담기 위한 그릇으로 개조당했다고 하셨죠?”
적나라한 어휘 선택이었으나 카미엘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주를 흡수하셨고요.”
로잔헤이어의 보주.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칼릭스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로잔헤이어의 보물을 채어 간 게 처음이 아니었군요.”
이런 말에 대응하기 좋아하는 카미엘과 칼릭스의 조합은 최악이었다. 나는 이야기가 옆길로 새기 전에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로잔헤이어의 보주는 갑자기 왜요?”
“제 생각에는…….”
엘리야가 골치가 아프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그게 드래곤 하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
내 머릿속에 언젠가 엘리야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마물을 잡으면 아주 드물게 얻을 수 있는 마나석은 모두 붉은빛을 띱니다.”
로잔헤이어의 보주 역시 피처럼 붉은빛을 띤 물건이었다.
엘리야가 설명을 이었다.
“보주는 초대 로잔헤이어의 가주인 용봉공으로부터 내려온 보물입니다. 위대한 마법사였던 용봉공이 용제를 봉인하면서 그의 심장을 빼 봉인해 두었다고 하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그리고 하필 곤란하게도 우리 시대에 와서 나와 엘리야를 만나 봉인이 풀려 버리게 됐고 말이다.
‘잠깐.’
그러고 보니…….
“보주를 시연해 달라고 부탁한 건 황제 폐하였어요.”
엘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용제를 통해 그게 드래곤 하트라는 사실을 전달받았을 겁니다.”
“…….”
“용제를 위한 그릇인 당신이 곁에 있다면, 봉인이 풀린 보주는 당연히 그릇에 담기려고 할 거고요.”
카미엘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군.”
이안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아버지는 내게 카미엘을 데려오라고 시켰지.”
“아마 용제를 부활시킬 준비를 거의 마무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난 아버지의 명령에 불복종한 셈인데…… 아직 반역자인 태자를 주살하라는 황명은 떨어지지 않았어.”
우리는 제각기 생각에 잠겼다.
만약 용제 부활을 위한 준비를 다 마무리했고 카미엘만 오면 해결되는 문제라면…….
굳이 명령을 위반하고 이탈한 황태자를 잡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명령 불복종 정도야 용제가 부활한 다음에 해결하면 되는 사소한 문제에 불과할 테니까.
사람들의 면면을 보아하니 다들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카미엘이 흐음, 하고 중얼거렸다.
“이번 황궁행이 어쩌면 황제가 계획한 함정에 내 발로 들어가는 게 될 수도 있겠다는 말이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럴 가능성이 높죠.”
“…….”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이번 황궁행이 황제가 준비한 함정이고, 용제를 위해 카미엘이라는 준비된 그릇을 바치러 가는 거나 다름없다면…….
“그렇다고 상황을 좌시할 수는 없는데. 카미엘.”
“?”
이안의 부름에 카미엘이 슥 눈썹을 올렸다.
“네가 빠질 생각은?”
카미엘이 코웃음을 쳤다.
“장난하는 거지?”
카미엘은 이 중에서 반역을 준비한 지 가장 오래된 사람이고, 가장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손만 놓고 바라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잠자코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와중에 카미엘과 이안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나, 결론은 나지 않는 듯했다.
“저기.”
나는 생각을 마친 다음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아무래도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