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4화 (154/182)

143화

* * *

“에단!”

“……해서,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은…… 아, 유리?”

에단이 약간 곤란한 듯한 얼굴로 머리를 헤집다가 고개를 들었다.

“음, 내가 좀 곤란한 타이밍에 왔나?”

“아니, 그건 아니긴 한데…….”

에단이 난감한 표정으로 으음, 소리를 내다가 말했다.

“사실 그래. 좀 난감한 일이 있어서 말이야.”

“어, 뭔데?”

“불꽃놀이 키트에 문제가 생겼어. 생각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 같네.”

“정말?”

불꽃놀이 키트 쪽에는 이미 몇 명의 학생들이 모여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완전히 갔어. 습기 방지 마법이 제대로 작동하질 않았나 봐.”

“마법으로 말려 보면 어때?”

“한 끗 차이로 불이 붙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 이 폭죽이 한 번에 다 터진다고 생각해 봐. 전쟁이라도 난 줄 알걸.”

“보호 마법이 가동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럼 이걸 어쩌지?”

“자, 자.”

에단이 박수 두 번을 치며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지금 여기서 토론해 봤자 소용없잖아. 일단 폭죽을 언덕으로 옮겨 놓자.”

“에단,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없지만, 무슨 수가 생길 수도 있잖아?”

에단이 넉살 좋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하자, 다른 학생들이 “대책 없기는…….”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의견을 모았다.

“에단 말이 맞긴 해. 여기서 이야기만 계속하다간 무슨 수가 생각나더라도 너무 늦은 뒤가 될 거야.”

“그래, 일단 해 보자고. 어떻게든 되겠지.”

착잡한 표정으로도 힘을 내려는 학생들을 보니, 문득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나도 도와줄까?”

“어?”

“누구……?”

“아, 내 친구야.”

에단이 설명하자, 학생들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단의 붙임성에 말려들었구나.”

“이 녀석, 매번 이런 식이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학생들은 내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다.”

“나도 반가워. 도와준다니까 더 고맙고.”

“난 한나야. 마법 사용할 줄 아는 거지?”

“응, 대충은.”

“잘됐다. 이 폭죽은 손으로는 옮길 수 없거든. 무겁기도 하고, 이것저것 마법이 걸린 섬세한 물건이라서…….”

한나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짐을 배분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생각했다.

‘엘리야라면 어렵지 않게 한 번에 짐을 옮겨 버릴 텐데.’

“자, 다들 조심해야 해. 평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마법이 손상될 수도 있으니까. 지금 옮기는 게 화약이라는 걸 잊으면 안 돼.”

“예, 예.”

다들 맡은 짐을 하나씩 공중 부양 마법으로 들어 올리기 시작했고, 나 역시 마법을 사용했다.

“컨트롤 잘하는데.”

내 짐이 엘리베이터로 올린 것처럼 정확하게 공중으로 떠오르는 걸 보고, 에단이 약간 놀란 눈을 했다.

“혹시 졸업생이야?”

모든 마법적인 면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마탑주의 제자야, 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아니야, 그런 거.”

잠시 후, 우리는 불꽃놀이를 쏘아 올릴 언덕에 짐을 모두 옮기는 데 성공했다.

“다들 고생했어.”

“유리라고 했나? 쟤 되게 잘하던데. 에단, 대체 어디서 저런 친구를 사귄 거야?”

“비밀이야.”

에단이 씩 웃으면서 친구의 가슴을 툭 쳤다. 친구가 이게, 하며 에단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했다.

“그만 좀 해. 이걸 옮겼다고 끝이 아니란 말이야.”

한나가 짜증을 내자 모두가 장난을 멈췄다.

“그러게.”

“이제 이걸 어쩐다?”

부려 놓은 짐들을 보며 모두가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는 사이에 날은 속절없이 저물고 있었다.

파랗게 어두워져 가는 하늘, 낮과는 다른 분위기로 북적거리는 행사장을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엘리야가 있었더라면…….’

바로 그때였다.

‘어?’

대기가 이상한 방식으로 일렁였다.

여기 온 뒤로 계속 느끼고 있던, 마치 시계의 시침이 움직이는 것처럼 정확하게 움직이던 마류가 뚝 하고 멈춘 것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마법적인 정적 속에서 놀랄 새도 없이,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찾았다.”

“엘리야?”

상당히 원통해 보이는 표정을 한 대마법사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어디 있었어요?”

엘리야가 으득 하고 이를 갈았다.

“그거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일 거란 생각은 안 듭니까?”

“아하하, 그러게요.”

“웃어?”

엘리야가 아프지 않게 내 볼을 꼬집었다. 뒤에서 “뭐야, 저 사람?” “인상착의가…… 설마 마탑주?”라고 중얼거리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마뜩잖았는지, 엘리야가 쯧 하고 혀를 차며 내 뺨을 놓아주었다.

“뭐, 일단 찾았으니 됐습니다. 이만 돌아가도록 하죠.”

“아, 저기. 엘리야.”

나도 모르게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말았다.

“엘리야라고 불렀어!”

“진짜 마탑주님인가 봐!”

엘리야가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뭡니까?”

“그게요, 사실은…… 여기 학생들이 다 같이 축제의 피날레로 불꽃놀이를 준비했는데 말이죠.”

“준비했는데?”

“폭죽에 문제가 생겼대요.”

“…….”

나는 엘리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엘리야가 윽, 하고 질색하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날 보고 뭘 어쩌라는 겁니까?”

“헤헤헤.”

“그렇게 웃지 말고!”

웃음으로 때우는 전략은 안 되려나 보다.

“도와주시면 안 되나요?”

“도대체가…….”

엘리야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내게 물었다.

“내가 그래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제 부탁이니까요?”

“…….”

말도 안 된다고 일축해 버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엘리야는 입을 다물었다.

“엘리야 경?”

“그렇게…….”

“네?”

“내가 당신 부탁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막 들어줄 것처럼 보였습니까?”

나무라는 투는 아니었다. 뭔가 그 자신도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뭔가 엄청 부끄러운 사실을 남에게 들킨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어, 그게, 저. 그렇게까진 생각 안 했는데…….”

상대방이 그러니까 괜히 나까지도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환장하겠군. 얼굴은 왜 붉히는 겁니까?”

“그, 그건…….”

그걸 나한테 뭐라고 하면 어떡해?

“경이 먼저 부끄러워하니까 그렇잖아요!”

“제가 언제 부끄러워했다는 겁니까!”

“오늘! 페르가나에서! 조금 전! 분명히 그랬잖아요!”

거기까지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나는 아차 했다.

“…….”

“…….”

페르가나 학생들이 망연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중하죠.”

“동감입니다…….”

우리는 동시에 헛기침을 했다. 엘리야가 물었다.

“……몇 분짜리 불꽃놀이입니까?”

“그, 시, 십 분 정도요.”

한나가 대답했다. 엘리야가 얕게 한숨을 쉬더니 으르렁거렸다.

“이런 일은 딱 질색입니다.”

“알아요.”

나는 불안해하는 학생들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엘리야가 이렇게 투덜대기 시작한다는 거야말로 부탁을 들어준다는 신호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축제의 피날레는 불꽃놀이잖아요. 여기까지 온 김에 보고 싶었는걸요.”

“그렇겠죠.”

빈정거리듯이 대답한 엘리야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와 동시에…….

피유우우웅…… 펑!

연달아 소리를 내며 마른하늘에서 불꽃이 터졌다.

“와!”

“저기 봐!”

축제의 인파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끝이 분홍빛으로 물든 보라색 하늘 위에, 엘리야는 여러 가지 다양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

“저건 텔레포트 마법진…….”

“…….”

“그리고 저건 해독 마법진…….”

정정, 여러 가지 다양한 ‘마법진’ 모양 불꽃이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묻고 말았다.

“……경, 정말 마법밖에 몰라요?”

“시끄럽습니다.”

툴툴거리는 엘리야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아까 낮에 엘리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평범한 제국 빈민가의 거렁뱅이 꼬마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져 본 적 없던 빈민가의 어린아이에게는 그야말로 마법이 자신의 전부 아니었을까?

‘그게 이 사람이 살아온 삶이고, 삶의 방식이었구나.’

“……뭘 그렇게 쳐다봅니까?”

엘리야가 하늘을 쏘아보며 물었다.

“혹시 마법진 모양 불꽃이라 별로 구경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거든요!”

나는 재빨리 부정했다.

“지극히 경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뭐, 여긴 페르가나니까. 화려하고 복잡한 선을 그리는 마법진이 예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뒤에 서 있던 학생들에게는 좀 다른 식으로 감명을 준 것 같았다.

“해독 마법진을 저런 식으로도 그릴 수 있다니…….”

“종이! 종이 없어? 베껴 그려야 해!”

“여기 펜 있어.”

“고맙…… 앗, 이건 에단의 멍청한 잉크잖아!”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을 들으며,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여태까지 페르가나는 내게 도피할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살기 위해 꼭 와야만 하는 곳이었지, 호나 불호를 따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 겪어 본 결과,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인생 2막도 꽤 괜찮을 것 같아.’

나는 불꽃에서 시선을 돌려 엘리야를 바라보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서였다.

“저기, 경……”

그러나 입을 연 순간.

“……!”

폐부 깊숙한 곳을 찔리는 듯한 섬뜩함이 나를 꿰뚫었다.

고통인 듯하면서 고통이 아닌 것도 같은 불쾌한 감각에 놀라, 나도 모르게 쿨럭 기침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유리? 갑자기 왜……?”

놀란 엘리야가 황급히 내게 다가와 앞으로 쓰러지려는 나를 부축했다. 나는 잘게 떨리는 눈으로 갑작스럽게 닥쳐온 고통을 견디기 위해 애썼다.

“경…….”

“제기랄, 갑자기 왜…… 어디가 아픈 겁니까?”

“그러지 않아도 돼요…… 이건…….”

이건 아픈 게 아니었다.

엘리야의 마석이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였다.

“저, 당장 집으로 돌아가야만 해요.”

누군가 내 진명(眞名)을 훔치려 하고 있다는, 그런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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