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152/182)

141화

* * *

페르가나 아카데미로 간다고 해서 막연히 교문이나 뭐 그런 장소를 생각했는데, 엘리야가 나를 데리고 텔레포트로 이동해 온 곳은 중후한 느낌을 주는 텅 빈 집무실이었다.

“여긴……?”

“내 연구실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책상에 놓인 명패에 교수 엘리야 마라케시라고 적혀 있었다.

그제야 나는 새삼스럽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엘리야에게 마법을 배우면서 본의 아니게 자주 출입했던 마탑의 연구실과 달리, 페르가나의 연구실은 값비싸 보이는 집기들이 정갈하게 있을 자리에 놓여 있는 데다 한없이 깨끗하기만 했다.

“경, 여기 자주 안 오시죠?”

“올 일이 그다지 없긴 합니다만…… 어떻게 안 겁니까?”

“그야 경이 자주 오는 곳이면 이렇게 깨끗할 리가 없으니까.”

“하?”

엘리야가 아주 시건방진 것을 내려다보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봤자 별로 무섭지는 않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내 연구실만 보고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겠죠?”

“역시 경의 연구실답게 중후한 멋이 있어요. 이렇게 깨끗한 연구실이라니 멋져요.”

“흥. 입에 발린 말 하기는.”

저도 양심은 있어서 그게 입에 발린 말인 줄은 아나 보다.

‘베에.’

나는 속으로만 혀를 내밀었다. 엘리야가 시답잖다는 투로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속으로 내 욕 했죠?”

“어머, 그럴 리가요. 저희 이제 나가는 거죠?”

시치미를 딱 떼고, 나는 앞서서 연구실의 문을 열었다.

물론, 문을 연다고 해서 바로 색색깔의 축제 현장이 펼쳐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복도로 나가니, 연구실에 있을 때와 다르게 왁자지껄한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자 나도 모르게 발이 동동거려졌다.

“빨리 가요, 경!”

“나 참. 이게 그렇게까지 신이 날 일입니까?”

“말했잖아요!”

나는 참지 못하고 엘리야에게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

“페르가나에 오는 게 꿈이었다니까요!”

“……알겠습니다.”

그 순간, 엘리야가 내 손을 꾹 맞잡았다. 그의 입가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가 번졌다.

“가죠. 갑시다. 그러려고 온 거니까.”

“아, 네.”

“먼저 가려고는 하지 말고. 길을 알긴 하고 이러는 겁니까?”

“어디든 계단에 도착해서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런 학교 건물쯤이야, 다 비슷한 거 아냐?

엘리야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다가 길 잃습니다. 여긴 이래 봬도 대륙 최고의 마법 교육 기관입니다.”

“복잡한가요?”

“마법이 걸려 있는 곳도 있습니다.”

“마법……!”

여태까지 배워 온 게 마법이었지만, 마법 학교에 걸려 있는 마법이라고 하니까 좀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경은 길을 잘 알아요? 여기 그렇게 자주 오는 편은 아니라고 했잖아요.”

“이래 봬도 페르가나에서 수학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요?”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경은 태어날 적부터 대마법사였을 것 같았는데.”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엘리야가 피식 웃으면서 대수롭잖게 말했다.

“평범한 제국 빈민가의 거렁뱅이 꼬마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었다. 게임을 플레이해 봤기 때문에 엘리야의 출신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놀랐어.’

루트를 어느 정도 진행해 깊은 사이가 되어서야 털어놓는 이야기를, 이렇게 가볍게 본인 입으로 먼저 해 줄 줄은 몰랐다.

‘그래도 이 이상은 파고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슬쩍 말을 돌리기로 마음먹고 입을 열었다.

“페르가나는 얼마나 다녔는데요? 졸업도 했어요?”

“했습니다. 조기 졸업이었지만.”

“하긴, 경이라면 월반을 안 했을 리가 없네요. 그래서 얼마나 다닌 거예요?”

“궁금합니까?”

엘리야가 물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엘리야의 입가에 심술궂은 미소가 번졌다.

“말하기 싫군요.”

“경!”

“정 알고 싶거든 맞혀 보시죠. 참고로 페르가나의 정규 교육 과정은 5년짜리입니다.”

“그럼 2년?”

엘리야는 피식 웃고 앞서 걷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그의 보폭을 따라가며 다시 한번 물었다.

“1년?”

“땡.”

“1년도 아니라고요? 그럼 혹시 3년?”

엘리야가 몹시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면서 되물었다.

“내가 그렇게 머저리같이 보입니까?”

“아니, 그럼 대체 얼마나……?”

“6개월 다녔습니다.”

“예에?”

5년짜리 교육 과정을 6개월에?

아무리 천재라지만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헤벌리고 말았다.

그런 내 표정을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느꼈는지, 엘리야가 차근히 설명을 해 주었다.

“다닌 지 3개월 만에 5서클까지 마나를 쌓는 바람에, 여러 가지 사고를 유발하게 되어서…….”

“3개월에 5서클이요?”

“여러 가지 얘기가 오가긴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아카데미가 아니라 마탑에서 남은 수련을 이어 가는 걸로 결론이 났습니다.”

“남은 3개월 동안은 뭘 했어요?”

“……을 받았습니다.”

“뭘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잘 안 들렸다.

엘리야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외면하면서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성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아?”

뭐, 무슨 교육?

“큰 힘을 가진 자는 이유 없이 남을 핍박하지 않을 만한 최소한의 인성을 함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시절이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는지, 엘리야가 작게 이를 갈았다.

“교, 교육을 잘 받으셨네요…….”

“뭐.”

엘리야가 나를 중앙 계단으로 추정되는 층고가 높은 곳으로 이끌며 말했다.

“당시 저는 그야말로 빈민가의 약삭빠른 꼬맹이 그 자체였으니 그 결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만.”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는 거죠…….”

“정확합니다.”

엘리야가 쳇,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중얼거렸다.

“덕분에 남의 물건을 슬쩍하면 처벌을 받기 이전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한다는 걸 배우긴 했죠.”

“…….”

그걸 다시 배워야 하는 환경이란 건 대체 어떤 걸까?

‘그러고 보니 궁금해.’

엘리야에겐 가족도 없는 걸까?

“……뭐 합니까? 안 따라옵니까?”

“아.”

넋을 놓고 엘리야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다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가, 가요.”

“구경은 나가면 더 할 게 많습니다.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면 아까워질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좀 더 가깝게 들렸다.

그리고 밖에 나가자마자.

“와.”

오늘 제국의 날씨는 좀 흐린 편이었는데, 페르가나의 날씨는 거짓말처럼 맑았다.

‘게다가 제국보다 날씨가 건조하고 선선해.’

아무래도 페르가나가 제국보다 위도상으로 좀 더 위쪽에 위치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건 하늘뿐만이 아니었다.

운동장으로 추정되는 곳을 알록달록한 부스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컨퍼런스장이나 페어 같지는 않았다.

어떤 천막에서는 분홍색 반짝거리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냄비가 줄지어 서 있었고, 어딘가에서는 작은 폭죽이 계속해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무리 지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있어서 무슨 새 떼인가 하고 봤더니, 팅커 벨 같은 작은 요정들이 까르륵거리며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와…….”

입을 헤벌린 내게 엘리야가 설명해 주었다.

“방금 우리가 나온 곳이 본관 행정동입니다.”

그래서 축제였는데도 조용하고 엄숙하기만 했나 보다.

“좌측 건물에 있는 강당 쪽으로 가면 학술 발표회가 한창일 겁니다만, 그런 쪽에는 흥미가 없겠죠.”

“정확해요.”

그런 행사에 참석하는 건 페르가나에 정식으로 발을 들이고 나서로도 충분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은 흥미 없어요?”

“별로. 학생들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발표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인지라.”

마법 교육에서는 최고의 명문인 페르가나 아카데미의 학생들이라 할지라도 엘리야의 눈에 차기는 힘든 모양이었다.

“봐서 나쁠 정도까지는 아닙니다만, 뭐.”

“?”

엘리야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을 생략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가 “그래서, 구경 안 할 겁니까?”라고 묻는 게 더 빨랐다.

“할 거예요.”

막상 둘러보니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투와르 축제처럼 발 디딜 곳도 없어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때보다 여러모로 정신을 산란하게 하는 장치들이며 볼거리가 많아서 비슷하게 정신이 없기는 했다.

“잘못하면 길을 잃어버리겠네요.”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앗, 왜요? 길 잃어버리면 저 안 찾아 줄 거예요?”

“찾기야 하겠지만, 페르가나에는 고대 보호 마법이 걸려 있어서…… 탐색 마법을 사용하려면 특별한 허가가 필요합니다.”

“아.”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길 봐. 저기…….”

“어머, 그러네…….”

주변에서 작지 않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탑주인 엘리야를 알아본 눈치였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길을 비켜 준 사이로, 엘리야는 조금도 눈길을 주지 않고 나를 매달고 걸어가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레둘레 둘러보았다. 마탑주인 그와 함께 있어서인지 다들 우리에게는 쉽사리 호객 행위를 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뭐가 뭔지 알아볼 수 없어 구경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흥미를 끄는 게 없습니까?”

“뭐가 많긴 한데…….”

나는 그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미약하게 풍기는 연기 냄새, 뒤섞여 있는 달콤한 향기를 맡을 뿐이었다.

이상하게 그것만으로도 빙그레 미소가 나왔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뭐, 그렇다면야…….”

“축제를 안내해 주는 리플릿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마 이 행렬의 입구 쪽으로 가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경은 축제 참여해 본 적 없어요?”

“말했지 않습니까.”

엘리야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우는 중이었다고.”

“아쉽지는 않았어요?”

“당시에는 시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생각이 변한 건 아니지만.”

하긴, 대단하신 마탑주인 데다가 이런 요란스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 아쉽고 말고 할 것도 없었던 모양이다.

‘어라?’

그렇게 생각하며 엘리야를 뒤따라가던 중, 어떤 부스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저건…….’

마나석을 가공해서 간단한 펜던트로 만든 것을 장식해 놓은 상점이었다.

앞에 서 있는 로브를 입은 학생이 소리쳤다.

“들렀다 가세요! 원하는 장신구에 원하는 마법을 새겨 드립니다!”

‘생각 잘했는데!’

현재 나는 마나량으로는 3서클을 달성할락 말락 한 상태였고, 한창 2서클 마나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들을 배우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페르가나 학생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한데.’

과연 내가 내년 봄이 될 때까지 여기서 교수직을 맡을 만한 실력을 쌓을 수 있을까?

‘어쩌면 교수가 아니라 학생으로 입학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엘리야를 향해 ‘저 여기 입학해 보면 어떨까요?’ 하고 농담으로 묻고 싶어졌다.

“저기, 경…….”

하지만 주위를 둘러봤을 땐, 아무도 없었다.

“엥?”

엘리야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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