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50/182)

139화

“아니, 누가 그렇게 이상하게 나타나래요?”

항의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카미엘은 들은 척도 않고 팔을 뻗어 나를 덥석 껴안을 뿐이었다.

“!”

그걸로 그치지 않고 내 뺨에 자기 뺨을 대고 마구 부벼 댔다. 자기가 무슨 아양 떠는 짐승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달래 줘.”

“이상한 요구 하지 마세요!”

대경해서 밀어내 봤지만 굵은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카미엘이 “밀어내지 마. 밀어내면 슬퍼.” 하고 말하는 통에 팔에서 힘이 빠지기도 한 탓이었다.

“밀어내면 슬프다고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어디 제국의 대공 전하께서 하실 말씀이란 말인가?

“응. 그럴 것 같은데.”

하지만 말한 사람인 카미엘은 수치심 따위 조금도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붉은 눈동자를 나른하게 반짝이기만 할 뿐이다.

‘어휴.’

그래, 뭐. 저 성격을 어찌하랴? 나는 포기하고 얌전히 카미엘의 품에 잠깐 안겨 있어 주었다. 그러자 카미엘이 속삭였다.

“착하군.”

어쩐지 귓가에 소르르 소름이 돋게 하는 그런 목소리였다.

‘왜 이 남자는 칭찬도 평범하게 못 하는 걸까?’

어쨌든 가만히 있어 준 덕분에 만족한 건지, 카미엘이 겨우 떨어져서 나를 마주했다.

그런데 한껏 꾹꾹이를 한 고양이처럼 만족스러웠던 얼굴이, 어딘가에 이르자 갑자기 묘하게 부루퉁해지는 게 아닌가?

‘뭐지?’

“반지를 안 꼈군.”

“네?”

반지라면 끼고 있는데.

그런 표정을 읽어 낸 건지, 카미엘이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준 걸 안 꼈잖아.”

아, 그 반지.

“이것도 전하께서 주신 건데요.”

나는 폴리모프 반지를 낀 손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그건 낄 수 없어요.”

“어째서?”

어째서냐니. 누가 봐도 그렇게 결혼반지 같은 걸 보내 놓고서.

그렇게 어처구니없어하는 기색을 눈치챘는지, 카미엘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좁히며 웃어 보였다.

“그저 반지일 뿐이잖아.”

“…….”

그랬다. 그건 그저 아무 의미도 담기지 않은 반지일 뿐이었다.

입으로 손가락 둘레를 재서 선물했다는 기상천외한 이력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그저 그뿐.

아무리 결혼반지처럼 생겼어도 그저 그뿐이다. 카미엘은 결혼은커녕 청혼의 청 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건 정말로 그냥 반지였다.

……왜일까, 그 사실이 손톱에 일어난 거스러미처럼 거슬리는 것은?

‘아니야. 이건 다 이 남자가 나를 헷갈리게 해서 짜증이 났을 뿐이야.’

나는 마음을 단단히 추슬렀다. 그리고 말했다.

“그저 반지일 뿐이니까, 그걸 끼지 않는 것도 그저 제 마음일 뿐이에요.”

“……그렇군.”

짤막한 한마디 대답이었지만, 붉은 눈동자를 마주한 나는 눈치챘다.

‘나 방금.’

처음으로 이 남자의 심기를 거슬렀다.

깨달음이 묘한 감상을 주었다. 어쩐지 좀 속이 시원한 것 같다고나 할까?

매번 생글생글 웃으면서 제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고양이처럼 쏙 빠져나가는 남자의 심기를 기어코 거슬렀다는 사실이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

카미엘이 흐음, 소리를 냈다.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 게 전해졌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나는 속으로만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아무튼,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기다려, 공녀.”

“…….”

멈추고 싶지 않았지만, 카미엘의 말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그의 말대로 따라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느낌이다.

카미엘이 물었다.

“우리 집에 가지 않을래?”

‘지금? 뜬금없이 이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어처구니가 없어 그를 돌아보고 말았다. 싱글싱글 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카미엘은 의외로 평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가 왜……”

“겁이 나?”

내가 말을 마치는 것보다 카미엘이 푹, 찌르고 들어오는 게 더 빨랐다.

“그게 무슨……”

“나는 우리 집에 오는 게 겁이 나느냐고 물었어, 공녀.”

“……겁나지 않아요.”

“그래?”

카미엘이 샐쭉하게 웃었다. 그럼 문제 될 거 없잖아? 라고 말하는 듯한 도전적인 미소였다.

‘정말이지…….’

나는 입속으로만 꼭 이를 앙다물었다. 순 제멋대로인데, 그걸 가능하게 해서 더 얄미운 남자였다.

한여름이 가까워져 가고 있는데도, 대공저는 이상할 정도로 서늘했다.

‘아니, 그냥 내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

바깥에서는 매미가 울고 있는데, 물속처럼 서늘한 저택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자니, 꼭…….

‘여기는 늪 같아.’

잘못하면 다시 나가지 못할 곳으로 발을 들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러면 진짜 겁이라도 먹은 것 같잖아.’

정신 차리자. 나는 고개를 젓는 대신 눈을 한 번 꾹 감았다가 뜨며 머릿속을 명료하게 하려고 애썼다.

앞서가는 카미엘의 등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으로 나를 초대한 걸까? 어떤 얼굴을 하면서 걷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곧 응접실에 도착했다.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집사의 말에, 카미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응접실에 놓여 있는 소파를 향해 눈짓을 했다.

“앉아.”

“네.”

묘하게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이어 집사가 차를 준비해 준 다음 물러났다. 딱히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나는 마음을 가라앉힐 겸, 찻잔을 들었다.

“그래서.”

“…….”

“무슨 일로 저를 집까지 부르신 건가요, 전하?”

“……공녀는.”

카미엘이 소파에 길게 등을 기대며 말했다.

“원래 그렇게 용건부터 묻고 보는 스타일인가?”

“상황에 따라서는요.”

간결하게 대답하고, 나는 차를 한 모금 호록 마셨다. 그러는 동안에도 카미엘의 붉은 시선은 내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내색하면 진 것 같으니까.

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카미엘과 의도적으로 눈을 마주했다.

“별다른 용건이 없으시다면, 이 저택에 길게 머물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

“대접해 주신 차 한 잔만큼은 비우고 돌아가도록 하지요.”

나는 한 모금 마신 찻잔을 내려놓으며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로 용건이 없으신가요?”

“없어도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카미엘이 엷게 웃으면서 자기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공녀를 여기로 부른 건…….”

“…….”

“공녀가 내게 묻고 싶은 게 있지 않은가 해서야.”

“제가요?”

예상하지 못한 말에 나도 모르게 반문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내가 카미엘에게 묻고 싶은 게 뭐가……?’

……있었다.

‘그릇.’

언젠가 정원에서 엿듣고 말았던 그 단어를, 단 한 번도 카미엘에게는 물어보지 못했다.

‘그야.’

그릇이라는 단어를 들은 카미엘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으니까.

자칫 잘못하면 정말로 엘레니를 죽여 버릴 것만 같았던 그 살기를, 자신을 향한 게 아니었는데도 목을 옥죄는 듯했던 그 어마어마한 기운을 도무지 잊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카미엘에게 그에 관해 물어볼 용기가 생기지 않을 만큼, 말이다.

“…….”

카미엘의 붉은 시선이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대답을 잘해야 해.’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는데, 카미엘은 어떻게 내가 그릇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걸까?

‘하긴, 그런 장면을 보면 누구라도 궁금하긴 하겠지만…….’

아, 잠깐만.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카미엘이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해 대답해 주겠다고 말한 건 아니잖아.’

등에 찬물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제가 궁금하다고 말씀드리면, 대답해 주실 건가요?”

카미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가 대답했다.

“아니.”

“…….”

역시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공녀가 무엇을 궁금해하고 있든지 간에…….”

“…….”

“그 답을 찾지 말라는 것뿐이야.”

미니 이벤트 발생!

당신은 비밀을 알아내던 중에 카미엘에게 그 사실을 들키게 되었습니다.

카미엘을 설득할 시 그의 비밀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됩니다.

설득에 실패할 시 카미엘의 호감도를 얻게 됩니다.

‘호감도라고?’

그런 게 대체 의미가 있기는 한가?

냉소적인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내가 카미엘에게 그릇에 대해 묻지 않은 건 그에게 물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나는 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여태까지 카미엘과 내가 꽤 사이가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제멋대로고, 신뢰하기엔 많은 것을 베일에 감추고 있는 남자지만…….

“한 가지만 명심해 둬. 이 세상에서 딱 한 사람, 절대로 공녀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면, 공녀는 날 골라야 해.”

그렇게 말했으니까. 나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하기까지 했으니까.

그래서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될까 봐 차마 용기가 나지 않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카미엘은 선을 그을 생각뿐이었다.

제멋대로 나를 휘둘러, 이 집에 데려올 때부터.

“전하, 제 생각은 그래요.”

“…….”

“제가 궁금한 것에 대해 말해 주지 않는 건 전하의 자유예요.”

그랬다. 그건 카미엘이 결정할 영역이었다. 나는 그가 ‘말해 주지 않겠다’라고 결정한 것에 대해 화가 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을 가까이 불러들인 다음, 내쫓다시피 선을 그을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 문제엔 공녀가 끼어들 필요가……”

“미안하지만 그걸 결정하는 건 제 자유예요. 전하가 아니라.”

카미엘이 말해 주고 싶어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나는 이미 이 비밀 한가운데 들어와 있었다.

“그게 공녀의 자유니까, 내가 공녀를 그냥 내버려 뒀어야 한다는 건가?”

“아니요.”

나는 활활 불타는 것 같은 마음을 담아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못 알아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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