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182)

132화

“크윽……!”

실험실의 개구리 같은 모습을 세드릭에게 들킨 게 치욕적이긴 한지, 테오도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말해 두겠는데 정당방위예요.”

나는 얼른 덧붙였다.

“경의 동생이 저를 먼저 이곳으로 불러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거든요.”

“대충 알 것 같습니다.”

세드릭의 표정이 냉해졌다.

“잘하셨습니다.”

“칭찬까지 받을 만한 짓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아닙니다. 공녀가 가만히 계셨더라면 이 녀석은 어떻게든 공녀를 해코지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충분히 잘하신 일이 맞습니다.”

역시 형은 형인지, 세드릭은 이쪽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세드릭 에스테반-!”

“닥쳐.”

세드릭이 사납게 일갈했다. 그 목소리의 기저에 섞인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테오도어가 힉, 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저런 주제에 어떻게 세드릭을 몰아내고 에스테반 후작이 되겠다는 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코웃음을 치는 나를 뒤로 숨기듯이 하면서, 세드릭이 말했다.

“에스테반 후작을 사칭한 죄는 결코 가볍지 않지만, 네가 오늘 헛소리를 지껄이려고 공녀를 불러낸 건 더 큰 죄가 될 줄 알고 있어라.”

“너 따위가 나를…… 커헉!”

이런. 결국 참지 못한 세드릭의 주먹이 제 동생의 얼굴을 후려치고 말았다.

나한테 얻어맞을 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것과 달리, 숨이 끊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낸 테오도어는 완전히 두려움에 질려 더 이상 입을 놀리지 못했다.

“거친 꼴을 보여 드려 죄송합니다.”

세드릭은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채 내게 사과했다.

나는 “아뇨, 아닙니다.” 하고 얼른 손을 내저었다.

“경의 동생이 충분히 맞을 만한 짓을 했는걸요. 사실 저도 경의 동생을 좀 걷어차 주긴 한 데다가.”

“잘하셨습니다.”

가타부타 사정을 묻지 않고, 세드릭은 무조건 나를 칭찬했다.

그에 테오도어가 씨근거리며 거칠게 숨을 쉬었지만, 세드릭이 두려웠기 때문인지 차마 뭐라고 입을 열진 못했다.

“그나저나 너무 소란을 피운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

“이 방은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특별한 방으로, 마법이 걸려 있어서 밖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고 드나드는 것도 혈족이 가진 열쇠만으로 가능합니다.”

“아하.”

“어렸을 적 사용하던 비밀통로를 통해 여기로 들어온 것 같은데…….”

세드릭이 밖을 향해 “기사를 불러오라”고 명했다. 잠시 후 기사 두 명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에스테반 후작의 권한으로 주거 침입과 사칭에 대한 죄를 물을 테니, 지하 감옥에 가둬 둬라.”

“예, 각하!”

나는 눈치껏 마법을 풀어 주었다. 갑자기 마법이 풀리자 대비하지 못한 테오도어가 악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머 실수.”

“이, 이익……!”

“끌어내.”

세드릭이 눈썹을 문지르며 명령했다. 기사들이 양쪽에서 테오도어를 붙잡고 방 밖으로 끌어냈다.

겨우 방 안이 조용해지자, 나는 입을 열었다.

“저어.”

“……말씀하십시오.”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여기가 세드릭의 집이기는 하지만, 문밖을 지나가는 인기척도 없었는데 어떻게 나와 테오도어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냈는지 궁금했다.

“테오도어가 로잔헤이어 공작가에 제 이름으로 편지를 보냈다는 걸 론이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그걸 듣자마자……?”

“예.”

세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라면 제가 당신에게 그 열쇠를 선물했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었을 거고, 그 열쇠가 이 방에 연결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우선 여기부터 찾아봐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군요…….”

어쨌든 타이밍 좋게 세드릭이 나타나 준 점은 고마웠다. 그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여기 나타났는지부터 시작해서, 어째서 세드릭의 동생을 벽에 매달아 놓았는지까지 설명해야 할 게 많았을 거다.

하지만 세드릭은…….

“죄송합니다.”

먼저 내게 고개부터 숙였다.

“……네?”

“제가 저택의 방비를 단단히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공녀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하고 말았습니다.”

세드릭이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얼른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별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별일이 없었던 건 공녀가 현명하게 대처했기 때문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제가 감사해야 할 일일 뿐입니다.”

“으음…….”

그렇게 말하자면 할 말이 없을 만큼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세드릭.”

“……제가.”

세드릭이 마른세수를 했다.

“제가 공녀를 안전하게 지켜 드리려고 그 열쇠를 드렸는데…… 오히려 일이 이렇게 되어서.”

“경이 의도한 일은 아니잖아요.”

세드릭이 그럴 필요가 없는 일까지 자책하려고 했다. 나는 단호하게 세드릭의 말을 잘랐다.

“열쇠를 준 경의 의도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잖아요. 괘씸한 건 경의 동생이지 경이 아니라고요.”

“…….”

“자책하시면 이 열쇠 그냥 오늘부로 돌려드릴 거예요.”

“!”

세드릭의 눈이 커졌다.

“그것만은…….”

“안 된다고 말하려는 건가요?”

“…….”

잠깐 멈칫한 세드릭이 곧이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녀가 이 일로 이 집과 저에 대한 신뢰를 잃어도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저는 세드릭이 자책하지만 않는다면 이 열쇠를 기한 전에 돌려드릴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반성은 좋아요. 하지만 자책은 하지 말란 말이에요. 나쁜 건 경의 동생이지 경이 아니잖아요?”

“……공녀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좋아요.”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경의 동생은 정말 엄벌에 처해 주셔야 해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드릭이 이렇게까지 말해 준다면, 더 이상 이 주제를 언급하는 건 불필요했다.

“그럼 저는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볼게요.”

나라고 해서 전혀 놀라지 않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세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래 주신다면 고맙겠어요.”

* * *

세드릭과 함께 에스테반 후작가의 마차를 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에나는 대체 내가 언제 집에서 나간 건지 혼란스러운 눈치였지만, 나는 그녀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밖에서 에스테반 후작을 마주쳤을 뿐이라고 둘러대었다.

‘그나저나…….’

오늘의 불쾌한 만남이 아무 수확도 거두지 못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한 가지, 새롭게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정화할 수 없는 비틀린 마류.’

세실리아에게서 느꼈던 비틀린 마류가 세드릭의 동생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졌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펜을 들어 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그릇, 비틀린 마류, 황실의 혈통

황제 폐하를 위한 충성스러운 그릇.

‘그렇다면…….’

앞으로 알아봐야 할 방향은 분명했다.

‘황실을 조사해야 하는 건가?’

정보 조사의 시간이 돌아왔다.

* * *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빠르게 외출 준비를 마친 다음, 거리로 나섰다. 일차적인 목적지는 물론 로제타 부인의 의상실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의상실을 경유해 평범한 소녀로 위장한 다음 거리로 나섰다.

‘여길 방문하는 건 꽤 오랜만인 것 같은데.’

“어서 오세요, 라메르입니다!”

익숙한 인사를 받으며 나는 과자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쇼 케이스 앞에서 입을 열었다.

“몰타의……”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채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점원이 대답했다.

나는 곧바로 위층으로 안내되었다.

곧바로 나온 차를 마시며 조금 기다렸다. 잠시 후, 붉은 머리를 굽이굽이 늘어뜨린 화려한 미인이 등장했다.

“미안해요, 오늘은 좀 기다리게 했네요. 먼저 치를 손님이 있어서.”

“성업 중이시군요.”

“좀 그런 편이죠. 자,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당연히 정보가 필요해서 왔어요.”

“으흠.”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에 앉았다.

“무슨 정보가 필요하실까요? 말씀해 보시겠어요?”

“…….”

여기까지 와 놓고서, 우습게도 나는 잠깐 망설였다.

‘왜냐면…….’

최근 들어 라메르가 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라메르는 최고의 정보상이다. 그런 정보상이 카미엘의 정보를 안 파느니만 못하게 제출했을 때부터, 은연중에 의심은 시작되었다.

‘게다가.’

카미엘이 라메르의 과자를 보낸 사건도 의미심장하긴 마찬가지였다.

‘딱 그 남자가 할 법한 짓이잖아.’

그래서 라메르를 계속 이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됐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정보가 필요했다.

그 정보상이 카미엘과 연관이 있다는 심증이 있더라도, 이용하지 않을 수가 없을 만큼 말이다.

“황실의 정보를 얻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

레이첼의 입가에 걸렸던 미소가 반쯤 사라졌다.

“황실이라…….”

그녀가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이 콘스탄스에게도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 말은 즉……?”

“어렵겠어요, 그 의뢰는.”

레이첼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물었다.

“몰타의 능력으로도 불가능한 의뢰라는 뜻인가요?”

“……능력이라……. 확실히 그게 부족한 건 아니죠. 복잡한 일에 얽히고 싶지 않을 뿐이지.”

“…….”

“도리어 제가 묻고 싶군요. 대체 무슨 정보가 얻고 싶길래 황실까지 건드리려는 생각을 하신 걸까요?”

나는 고심했지만, 정보를 구하려는 입장에선 어느 정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도 필요한 법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이번에 새로이 트란토 자작위를 수여한 배경에 대해 알고 싶어서요.”

“그런 거라면…….”

레이첼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중얼거렸다. 나는 기민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런 거라면?’

설마 의뢰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레이첼은 복잡한 일에 얽히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어.’

그렇다면 혹시……?

“……그럼 혹시 황실이 아니라, 새로이 임명된 트란토 자작에 대한 조사를 의뢰한다면 어때요?”

레이첼의 붉은 입술에 미소가 번졌다. 정답이라는 투였다.

“그거라면 당연히,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릴 수 있지요, 어렵지 않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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