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
칼릭스가 끝까지 이상하게 구는 엘레니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았지만, 엘레니는 그에 답변해 줄 경황이 없었다.
엘레니의 머릿속은 온통 방금 본 것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타인의 마나를 몸에 받아들인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정화력도 같은 식으로 타인에게 이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어지는 맥컬린 경의 말이 엘레니의 희망적인 관측을 깨 놓았다.
‘타인의 마나는 결코 자신의 소유가 되지 않는다고 했지…….’
엘레니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했다.
수천 년 마법의 역사는 깊었다. 과연 마법의 계보가 이어지는 동안 엘레니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정말로 한 명도 없을까?
엘레니는 최소한 한 명 정도는 타인의 마나를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런 쉬운 길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혹시나 마나를 빼앗는 연구가 가능하다면…….
‘정화력도…… 빼앗을 수 있지 않을까?’
엘레니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스스로가 떠올린 생각에 기분 좋게 소름이 끼쳐서였다.
한순간 떠올린 발상이었지만, 그보다 더 완벽한 계획은 없을 것 같았다.
정화력을 빼앗는다면, 일차적으로 유리의 정화력에 홀린 카미엘도 엘레니를 바라보게 될 터였다.
그리고 유리 엘로즈를 죽이는 걸 보류하라고 명령하신 그분도 다시 뜻을 돌이킬 가능성이 컸다.
‘유리 엘로즈의 가치는 정화력뿐이니까.’
……라고, 엘레니는 생각했다.
반면 엘레니는 그분이 직접 만든 그릇이었다. 그분께선 그릇으로 선택받는 것은 특별한 혈통을 타고나야만 할 수 있는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엘레니는 비협조적으로 구는 카미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릇이 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뒤따르긴 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데.’
대체 카미엘은 왜 같은 그릇인 그녀에게 적대감을 보이기까지 하는 걸까?
엘레니는 지금 자신이 그분에게 협력하고 있는 것처럼 카미엘도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 생각엔 그게 카미엘에게도 장기적으로 득이 되는 일이었다.
엘레니가 보기에 지금 카미엘은 유리의 정화력에 홀려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유리의 정화력이 자신의 것이 되는 게 오히려 타당하고 옳은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시는 사용할 수 없도록 망쳐 놓기라도 해야 해.’
그렇게 하는 것만이 유리 엘로즈에게 발목이 붙잡혀 있는 카미엘을 구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엘레니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