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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116/182)

106화

“어, 나?”

갑자기 지목당해 놀란 내가 반문하자, 칼릭스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설마 저희와 함께 레비아탄을 수색하실 생각이었던 겁니까?”

정확히 그럴 생각이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단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님!”

그런 내 기색을 귀신같이 읽어 낸 칼릭스가 외쳤다.

“레비아탄은 솔레아 호수에 나타났던 물뱀보다 훨씬 더 위험한 마물입니다. 그런 마물을 상대하다가 누님께서 무슨 일을 당하신다면…….”

“하지만 이 중에서 마물을 제대로 추적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은……”

“효율이 좀 떨어질 뿐이지 대부분의 마법사는 균열의 기척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대마법사이자 마탑주이신 마라케시 경께서 계시니 누님이 굳이……”

“로잔헤이어 소공작.”

대공이 칼릭스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 같아서 해 주는 말인데, 지금 여기에는 코랄 제도에서 모일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병력이 집결해 있어.”

“그건…….”

“그대 누님이 집으로 피신했다가, 혹여 우리가 마물을 제시간에 잡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

“…….”

칼릭스가 말을 잃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될 경우 습격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헤린 숲에 인접한 귀족들의 별장 지대가 될 터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거기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 이들 곁에서 마물 추적에 협조하는 게 훨씬 더 안전할 수도 있었다.

대공은 지금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거였다.

칼릭스가 침묵하자, 엘리야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정리가 된 것 같으니 움직이도록 하죠.”

대공이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에 한 팀으로 움직이는 건 효율이 떨어져. 헤린 숲의 절반을 뒤지는 데만 반나절이 걸릴 거야.”

“팀을 나누자는 겁니까?”

“그게 가장 효율적이지.”

“팀을 나누는 기준은……?”

“당연히 마법사와 검사로 나눠야지. 공녀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마법사라면 마물의 위치를 추적하는 데 우리보다 조금 더 유리하니까.”

“…….”

칼릭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 팀에서 검사로서 수준이 높은 쪽은 대공이고, 마법사는 엘리야였다.

상대적으로 약체인 나와 칼릭스가 한 팀을 맺을 수는 없었다. 전력의 형평이 맞질 않는다.

대공이 내 쪽을 향해 고개를 까딱하며 먼저 말했다.

“내가 공녀와 가도록 하지.”

“…….”

칼릭스는 물론 엘리야도 그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공 쪽으로 한 발자국을 옮겼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요.”

지금은 누구와 함께 있어서 껄끄럽고 아니고를 따지고 있을 계제가 아니었다.

칼릭스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아예 내가 같이 가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지금 나는 마물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파티원이었다. 빠질 수는 없었다.

팀 결성: 카미엘과 한 팀을 결성합니다!

친밀도에 따른 팀 버프가 발생합니다.

유리 엘로즈의 정화력이 일시적으로 500 증가합니다.

카미엘의 컨디션이 호조를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아니, 같은 팀 버프인데 왜 나는 정화력 한정이고 대공은 전 능력치 상승인가?

속으로 투덜거려 봤자 시스템의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럼 갈까?”

대공이 내 쪽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지금 내린 결정이 과연 현명한 것인지 조금 회의감을 느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누님.”

칼릭스의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품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 너도.”

* * *

엘리야는 나와 대공을 헤린 숲 초입에 내려 주었다.

“저희는 반대쪽에서 포위망을 좁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엘리야는 바로 떠나는 대신 내 이마 위에 잠시 손을 얹었다. 그의 손에서 따뜻한 흰 빛이 터져 나왔다.

“뭐, 뭔가요?”

“……보호 마법을 걸어 두었습니다. 위급 시에 작동할 겁니다.”

“아…… 감사해요.”

내 감사 인사에 엘리야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칼릭스와 함께 다시 한번 텔레포트를 이용해 사라졌다.

둘만 남자, 대공이 나를 향해 곱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타당한 결정이라서 따르긴 했는데, 당분간 이 사람과 단둘이서 다녀야 하는 거잖아?

‘괘, 괜찮을까?’

아까까진 급박한 상황이라 별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단둘이 되니 불가항력적으로 건국제 날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대공은 그런 내 생각을 읽고 있는 것 같았지만, 감사하게도 지적 대신 이렇게 권유해 주었다.

“출발하도록 할까, 공녀?”

“네,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

대공과 나는 깊어 보이는 숲 안으로 발을 디뎠다.

헤린 숲은 평지가 아니라 산지에 조성된 숲이었다. 게다가 산세는 조금 험한 편이었다.

“잡아.”

먼저 급경사를 오른 대공이 내 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망설일 처지가 아니라 손을 잡았다.

‘!’

손을 잡고 발에 힘을 주기도 전에, 그가 휙 하고 팔심만으로 내 몸을 이끌어 올렸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대공이 주변을 휘 둘러보며 물었다.

“뭔가 느껴지나?”

“엄청요…….”

완전히 현신하지 못한 마물이 분노하고 있는 탓일까, 근방의 마류가 굉장히 거칠어져 있었다. 살갗이 따끔따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방향은?”

나는 정신을 집중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접근해 버린 탓인지, 그도 아니면 레비아탄의 힘이 너무 막강한 탓인지 오히려 정확한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숲 안쪽으로 가야 한다는 정도밖에 모르겠어요.”

“그 정도면 충분해.”

카미엘이 고개를 끄덕이고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도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숲속에는 그 흔한 벌레 소리,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마물이 나타난 걸 아는 걸까?’

쥐 죽은 듯 적막한 숲속은 마음 놓고 걷기에 편한 곳은 아니었다. 게다가 마물이 휘저어 놓은 거친 마류가 계속 소용돌이치고 있어서 굉장히…….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공기 자체가 꾸덕꾸덕했다. 마치 점액질 속을 걷고 있는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걸을 만은 해?”

그때, 대공이 내게 물었다.

“걷는 건 괜찮아요.”

“걷는 거 빼고는 괜찮지 않다는 말이군.”

확실히 그는 눈치가 빨랐다.

“견딜 만해요.”

“그건 불편하긴 하단 말이고.”

카미엘이 눈앞에 드리운 나뭇가지를 걷어 내고, 먼저 나를 통과하게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특별히 신경 쓰실 정도는 아니에요.”

“신경 쓴다고 해도 어떻게 해 줄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

“굳이 길게 말하자면 그렇긴 하네요.”

내 말에 대공이 짧게 웃었다. 웃음소리는 마치 적막한 숲속에 삼켜지듯 잦아들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내 발은 완전히 진창에 빠진 것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는 게 힘들 정도였다.

“안 좋은가?”

“걷기가 좀…….”

“아무래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이군.”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바로 그때.

툭, 나뭇잎을 무언가가 작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

주변을 얼른 돌아보았지만 움직이는 생명체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대공이 중얼거렸다.

“비로군.”

“네?”

그와 동시에, 툭, 투툭 소리를 내며 물방울이 본격적으로 나뭇잎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비?’

물방울의 존재를 자각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쏴아아아 하고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콜처럼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순식간에 옷이 젖어 들어갔다. 카미엘이 다급하게 나를 나무 그늘로 이끌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바닥을 허공으로 내밀어 보았다. 빗물이 우다다닥 손바닥을 때렸다. 그런데…….

‘검은색?’

“전하, 이거…….”

“그래.”

카미엘이 나와 마찬가지로 손바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평범한 비가 아니야.”

“아, 역시.”

“아무래도 레비아탄의 영향권 안에 들어온 모양이야.”

우리는 잠깐 사이에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젖어 버렸다.

“아무래도 비를 피해야 할 것 같은데요!”

빗소리 때문에 자연 목소리가 커졌다.

“공녀는 그러는 편이 좋겠어.”

“대공 전하께서는요?”

“나야 도망친 반쪽짜리 레비아탄을 찾아야지.”

“이 비를 맞으면서요?”

“다른 방법이 있나?”

없지만…… 무슨 영향을 줄지 모르는 액체에 계속 노출되는 건 바람직하지 못했다.

‘게다가 평소에도 정화력이 통할 정도로 오염되어 있는 이 사람이라면.’

어쩌면 나보다 더 심하게 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아까 엘리야가 걸어 준 것처럼, 보호 마법이라든가…… 결계 같은 걸 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니, 잠깐만.

‘결계?’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나는 아직 결계를 칠 만큼 마법 실력이 좋진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정화력으로 결계를 쳐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치 우산처럼 이 비를 막아 주며, 우리를 따라 이동하는 결계를.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대로 비를 맞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전하, 잠시만요.”

“?”

카미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나?”

“장담할 순 없지만…… 뭐라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는 해요.”

나는 눈을 감고, 집중해서 정화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일정한 밀도로…….’

그리고 돔 같은 게 머리 위를 둘러싸는 장면을 그려 보았다.

“공녀, 지금……”

대공이 뭐라 말하려는 순간.

정화력을 사용하여 결계(小)를 칩니다.

레비아탄이 내리는 비의 영향권에서 벗어납니다.

부웅, 하면서 내 몸으로부터 금빛 기운이 퍼져 나와 작은 돔 형태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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