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182)

105화

“네……?”

이게 대체 왜 내 거야?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엘리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인상을 쓰며 성질을 냈다.

“안 받을 겁니까?”

“아, 아뇨.”

나도 모르게 성질을 부리는 엘리야에게서 작고 고급스러운 경량화 마법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주머니만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뜬금없이 웬 선물이람?

내가 약간 의문 섞인 시선을 던지자, 엘리야가 또다시 헛기침을 하고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더욱더 수련에 정진하라는 의미로 주는 선물입니다.”

“그런 것치곤 너무 값어치가 나가는데요……?”

“말했다시피 마탑주는 당신 생각보다 훨씬 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입니다.”

부럽다.

엘리야가 내 속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부러우면 당신도 마법의 길에 정진하면 됩니다.”

“제가 그런다고 해서 마탑주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버는 마법사가 될 순 있을 겁니다.”

조금 이상했다.

‘평소에도 나를 가르치는 데 적극적인 편이기는 했지만.’

오늘 엘리야는 마치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이유라면…….’

짚이는 건 하나뿐이었다.

‘……나하고 꼬인 회로 때문인 걸까?’

나야 회로가 꼬여 있어도 아무 느낌이 없지만, 그는 나와 달리 내 상태를 감지하는 등 여러모로 예민한 것 같았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불편하겠지.’

나는 약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경의 뜻은 잘 알았어요.”

“……왠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입니다.”

“아니에요. 잘 알아들었어요. 열심히 수련에 정진해서 근시일 안에 우리의 꼬인 회로를 해결하자는 뜻이잖아요?”

“……예?”

엘리야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에요?”

나는 도리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럼 이거 무슨 뜻인 건데요?”

“그야 당연히…….”

무어라고 말하려던 엘리야의 말이 멈췄다.

“엘리야 경?”

“……아니, 아닙니다.”

엘리야가 마른세수를 하면서 내뱉었다.

“생각해 보니 당신의 추측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 역시.”

나는 조금 뿌듯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선물에 담긴 그의 함의를 읽어 내는 데 성공했다는 게 기분 좋았다.

‘이쯤 되면 좋은 눈썰미를 발휘했다고 칭호 하나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시스템은 조용할 뿐, 전혀 반응이 없었다.

“후우…….”

엘리야가 옆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뭐, 그럴 만한 일이 있나 보지.’

나는 선물을 받아 챙기며 — 그 속에 담긴 뜻이야 어찌 됐건 1억이나 하는 물건이었다 — 말했다.

“좋은 선물을 주셔서 감사해요. 감사의 뜻으로 오늘 저녁은 제가 대접할게요.”

“……뭐, 그건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군요.”

“해산물 요리 좋아하세요? 여기 잘하는 데가 있다고 해서 가 볼 생각이었는데.”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세상 까다롭게 생긴 주제에 음식만은 어떻게 되든 별 불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그럼 가요 저희.”

그렇게 대답하고 돌아선 순간.

‘어?’

끼기기긱, 하고 무언가가 섬뜩하게 비틀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 것 같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녹슨 알루미늄 창문을 여닫는 것 같은 끔찍한 소리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퍼뜩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엘리야가 물었다. 나는 “아니…….” 하고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잘못 들었나?’

그렇게 생각하며 뒤돌아서려고 했지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내 발목을 붙잡는 것만 같았다.

“경, 지금 무언가 좀…….”

설명하기 어려운 불쾌한 느낌이었다. 마치 옷 밑에서 작은 개미 한 마리가 슬금슬금 기어 다니는 걸 뒤늦게 자각한 것만 같았다.

뚜렷하게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해 뒷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엘리야가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닌데요…….”

느낌은 확실히 있었지만 주변엔 아무 일도 없었다.

‘착각이겠거니 하는 수밖에…….’

나는 이쪽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한 엘리야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가요.”

우리는 타고 온 마차가 기다리고 있는 시장 입구 쪽으로 향했다.

“마탑주님!”

우리가 시장 입구 쪽에서 마차에 오르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눈앞에서 공간이 갈라지며, 한 사람이 나타났다.

얼굴을 보니 아까 엘리야가 심부름을 시켰던 마법사 중 한 사람이었다.

“마침 여기 계셨군요!”

그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엘리야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입니까?”

“균열이 열렸습니다.”

엘리야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당신들 선에서 처리하지 못할 수준입니까?”

“레비아탄이 나타났습니다.”

엘리야의 표정이 대번 심각해졌다. 내가 슬쩍 눈치를 살피자, 엘리야가 빠르게 설명했다.

“솔레아 호수에서 나타났던 물뱀의 상위종입니다.”

“네?”

나는 깜짝 놀라 되묻고 말았다.

“그 물뱀의 상위종이라면 당연히 재앙급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마법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엘리야가 물었다.

“현신 정도는?”

“천만다행으로 완전히 현신하지는 못했습니다. 문제는…… 그래서인지 맞서 싸우는 대신 어디론가 숨어들어 버렸다는 겁니다.”

“골치 아프게 됐군요.”

엘리야가 쯧 혀를 찼다.

“마물이 숨으면 찾기가 힘든가요?”

“레비아탄 정도 되는 마물이 작정하고 숨으면 기척을 잡아내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이 지역엔 거대한 균열이 열렸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기까지 해서…….”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한 가지를 떠올렸다.

‘혹시……?’

내가 조금 전 느꼈던, 그리고 지금도 느끼고 있는 이 이상한 감각이…… 균열이 열린 것과 마물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는 거 아닐까?

“저기요, 엘리야 경.”

나는 엘리야에게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각, 그리고 그에 대한 내 추측을 털어놓았다.

“놀랍게도 일리가…… 있군요.”

“역시 그렇죠?”

“완전히 장담할 순 없지만, 당신은 정화 계열의 신성력 발현자입니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죠.”

으음, 역시.

“위치가 정확하게 느껴집니까?”

“어…… 그게 사실, 그걸 잘 모르겠어요. 아마 그 마물과 좀 더 가까워지거나 해야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을 듯해요.”

“흠.”

엘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추적을 한번 해 봐야겠군요.”

“네.”

“일단 균열이 열렸던 곳, 마물이 최초로 나타났던 곳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나 흔적 같은 걸 발견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야가 마법사에게 장소를 물었다.

“카닐 해변 동남쪽 무인도 방향 상공에서 나타났습니다.”

“좋습니다. 유리.”

“아, 네.”

나는 엘리야가 내민 손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잠시 시야와 발밑이 일렁이는 듯한 느낌이 나더니, 우리는 어느새 해변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해변 근처에는 사람들이 일차적으로 대피한 듯 여러 가지 물건들 — 피크닉 소품들, 돗자리, 양산, 가지고 놀던 공 등등 — 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공녀?”

햇살을 받아 평소보다 더욱 휘황하게 빛나는 금발에 붉은 눈동자를 한 대단한 미남자가 서 있었다.

대공이었다.

“대공 전하? 여길 어떻게……?”

“마침 해변을 산책 중이었거든.”

그러고 보니 옷차림이 가벼웠다.

‘이 사람도 수도에 마물이 나타났다는 이유로 피난을 온 걸까?’

그럴 리가 없었다. 재앙급 마물을 반으로 쪼개는 신위를 보여 준 남자가 뭐가 무서워서 제국 남부까지 피난을 온단 말인가?

하지만 캐물을 틈은 없었다. 엘리야가 이렇게 말하는 게 더 빨랐기 때문이었다.

“마침 잘됐군요. 레비아탄을 보셨습니까?”

“그래서 달려오긴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사라지긴 하더군.”

바람이 불어 대공의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가벼운 차림의 셔츠가 펄럭였다. 아무리 봐도 휴양객 그 이상으로도 그 이하로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손에 든 검만큼은 진짜였다.

바로 그때였다.

“누님!”

“!”

칼릭스의 목소리였다.

“칼릭스! 네가 어떻게 여길?”

“마물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누님을 찾아 나섰는데, 마침 시장에서 이 마법사를 마주쳤습니다.”

칼릭스가 가리킨 건 아까 우리에게 소식을 전해 주었던 마법사였다. 그가 말했다.

“근방의 마법사들에게 전령을 보내던 차에 소공작께서 오셔서…….”

그 뒤는 안 들어도 알 만했다. 칼릭스에게 쥐 잡듯이 잡혀 얼결에 이곳으로 텔레포트를 하게 됐겠지.

“……뭐, 전력은 하나라도 늘어나는 게 좋겠죠.”

“전력?”

칼릭스가 설핏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엘리야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물을 뿐이었다.

“어떻습니까, 여기서는?”

“여기서는…….”

나는 숨을 살짝 들이쉬고,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에 신경을 집중했다.

균열이 발생한 근처라서 그런지 거대한 여운이 상공 전체를 휘감고 있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 덕분에 어딜 지목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조금 더 집중해 보자.’

나는 시험 삼아 정화력을 조금 퍼트려 보았다. 대공이 흘긋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집중력을 흐트러트릴 수 없었다.

‘……저기다!’

희미하게 역한 기운이 꼬리를 남기고 간 방향이 느껴졌다.

나는 해안가 절벽 쪽을 가리켰다.

“저기예요. 저쪽으로 기운이 이어지고 있어요.”

“……헤린 숲이로군.”

대공이 혀를 찼다.

“저쪽은 범위가 넓은데.”

“민가 쪽으로 직행한 게 아니라 다행이로군요.”

칼릭스의 말에 엘리야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렇지만 조금 상태가 괜찮아지면 사람들이 있는 곳을 노리기 시작할 겁니다.”

“하긴 그렇겠지. 잃어버린 신체를 복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언가를 잡아먹는 거니까.”

그 말인즉, 시간이 지나 마물이 사람을 잡아먹으러 숲을 벗어나기 전에 찾아서 해치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지체할 수 없습니다. 수색을 시작하도록 하죠.”

“잠깐.”

칼릭스가 나섰다.

“누님은 이만 집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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