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4/182)

104화

* * *

“그나저나 경은 어떻게 여기 와 계신 거예요?”

“어떻게라면 텔레포트 마법으로 와 있습니다만.”

나는 기가 막혀 엘리야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 말이 그런 뜻 아닌 거 알면서 그러시는 거죠?”

“글쎄요.”

엘리야가 어깨를 으쓱하며 내 눈빛을 모른 척했다.

“경이 휴양을 오셨을 리는 없고.”

“저도 기계가 아닌 이상 휴식은 필요합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코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 반응은 뭐죠?”

“말도 안 되는 소릴 들은 사람의 일반적인 반응이죠, 뭐.”

“근래 들어서 제법 건방져진 것 같습니다만…….”

“설마요. 착각이시겠죠…… 아얏.”

엘리야가 내 이마를 아프지 않게 손가락으로 튕겼다. 나는 괜히 억울한 척 표정을 구겼다. 그러자 엘리야가 웃었다.

“웃긴 얼굴.”

“지금 절 보고 웃기다고 하신 거예요?”

“설마요. 착각이겠죠.”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매번 생각하지만 정말 멋진 성격이다.

나는 색색깔의 알록달록한 시약병을 내용물도 모르면서 진지하게 바라보는 척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말씀하시기 곤란할 정도의 일이에요?”

“아니요.”

엘리야가 시약병을 내 어깨 너머로 건너다보면서 대답했다.

“최근 이쪽의 균열 양상에 대해 조사를 하려고 내려와 있는 겁니다.”

“아.”

그거라면야 엘리야가 늘 하고 있는 일이었다. 나는 납득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의 균열은 수도의 균열과 다른 점이 있나요?”

“아직 흔적을 조사하는 중입니다만…….”

엘리야가 시약병을 하나 들어 흔들어 보더니, “괜찮군.” 하고 중얼거렸다.

매대 안쪽에 서서 긴장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던 마법사의 얼굴에 화악 화색이 돌았다.

나는 물었다.

“괜찮으면 사 드릴까요?”

“하?”

“저 돈 많아요.”

엘리야가 됐다는 투로 웃었다.

“아무도 로잔헤이어의 공녀가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딱히 로잔헤이어의 공녀라서 돈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에게 내가 이안과 벌이고 있는 사업에 대해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기에 어깨만 으쓱하고 말았다.

“아무튼, 흔적을 조사하는 중이신데요.”

“……조사 중이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닙니다만, 이곳의 균열이 그 호숫가에서의 균열과 상당히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물뱀이 나타났던 호수의 균열은 방향이 역방향, 즉 저쪽 세계에서 마물이 건너온 게 아니라 이쪽 세계에서 균열을 연 것처럼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엘리야가 말했었다.

“물론, 그 균열만큼 대규모는 아니고…… 그런 만큼 흔적도 옅게 남아 있어서 조사가 쉽지 않은 편이기는 합니다.”

발길 닿는 대로 시장을 누비는 나를 따라오면서 엘리야가 말했다.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그렇게 조사가 어렵나요?”

걱정스러운 내 물음에 이 시대 최고의 대마법사, 마탑의 주인이 보란 듯이 코웃음을 쳤다.

“쉽지 않은 편이라고 했지 어렵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

마법의 길에 막 발을 디딘 햇병아리의 눈으로 봐도 참 잘났고 꼭 그만큼 재수 없는 대답이었다.

“지금 뭔가 불쾌한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만.”

“에이, 아니에요.”

“흠.”

엘리야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하하 웃으며 그의 로브 자락을 잡고 가판대로 이끌었다.

“여기 좀 보세요. 이거 마나석이죠? 제 눈으로 보기에도 꽤 등급이 높은 것 같은데.”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손님.”

“아직 그 정도 가지고 자랑하기엔 이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엘리야의 눈빛엔 뿌듯함이 깃들어 있었다. 아주 약간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 정도 등급의 마나석이라면 몇 서클 마법까지 새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이게 웬 돌발 질문이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일단 순순히 대답해 보았다.

“3서클?”

지력이 10 오릅니다.

정답인가 보다.

슬쩍 눈치를 보는 나를 엘리야가 약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충 찍은 것 같긴 하지만…… 일단 맞았습니다.”

“하하.”

들켰나? 나는 얼른 말을 돌리기로 했다.

“해주의 진을 새길 때는 이보다 한참 더 큰 마나석을 사용했는데. 숫자도 훨씬 많았고요.”

“해주의 진은 정확히 서클로 분류할 순 없지만, 일단 적어도 9서클 이상의 수련을 이룬 사람만이 진을 새길 수 있습니다.”

“9서클의 경지를 이룬 사람은……”

“현존하는 인간 중에서는 내가 유일합니다.”

자랑하는 투도 아니고 그냥 사실이 그렇다고 알려 주는 투였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얼핏 엿들은 상인이 하하 웃으며 매대 아래쪽에 손을 넣었다.

“손님들은 이 정도의 상품으로 만족시켜 드릴 수 없을 것 같군요. 마탑주님을 만난 기념으로 저희 가게에서 가장 특별한 상품을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흠.”

엘리야가 팔짱을 끼며 한번 해 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상인이 매대 아래쪽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건…….

“호.”

엘리야마저도 드물게 감탄을 토할 정도였다.

“원래는 이런 곳에서 꺼내 보여 드리는 물건이 아닙니다만, 특별히 마탑주께서 오셨으니…….”

과장 약간 보태 아기 머리통만 한 크기의 붉은 마나석이 찬란한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 마나석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엘리야가 돌연 이렇게 물었다.

“붉은 마나석은 어디서 채굴합니까?”

“어? 글쎄요……?”

“마물을 잡으면 아주 드물게 얻을 수 있는 마나석은 모두 붉은빛을 띱니다.”

“아하…….”

“마물의 마나석 자체가 흔한 것은 아니기에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요.”

상인이 슬쩍 끼어들어 덧붙였다.

“게다가 붉은색이라는 것 이외에는 딱히 구분할 특징이 없기도 하고요.”

엘리야가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잘 기억해 두도록 하십시오.”

“알았어요.”

“그나저나…… 정말 보기 드문 물건이긴 하군.”

“예에. 붉은색 마나석인 데다 이 정도 크기니까요. 저도 경매에 부치려고 했습니다만…….”

상인이 슬쩍 우리에게 눈짓을 했다. 혹시 우리가 구매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엘리야 경, 이 정도 크기라면 몇 서클 마법까지 새길 수 있나요?”

“한 번에 7서클 이상의 마법을 품을 수 있을 겁니다.”

해주의 진을 새길 때 필요했던 수많은 마석들 — 그것도 하나같이 알이 굵었다 — 을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인도 손을 비비며 맞장구를 쳤다.

“역시 마탑주님. 한 번 보기만 하셔도 척, 하고 알아내시는군요. 혹시 이 마석을 마탑주님께서 구매하신다면, 특별히…….”

상인이 주판을 이리저리 두드리더니, 우리를 향해 손짓을 했다.

우리가 나란히 귀를 기울이자, 그가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로뎀 금화로 100닢만 받겠습니다.”

“!”

로뎀 금화로 100개면 현대의 금액으로 환산하면 대략 1억 원 정도의 가치를 가졌다.

“흠.”

“나쁘지 않은 가격일 겁니다. 경매에 부치면 당연히 경쟁이 붙어 가격대가 이보다 더 올라갈 거고요.”

나는 상인이 더 큰돈을 받을 수 있음에도 경매에 부치지 않으려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경매장에 넘기면 적지 않은 수수료를 물어야 할 테니까.’

할 수 있다면 여기서 우리에게 넘기는 게 복잡한 절차도 생략할 수 있고, 그에게도 여러모로 이득일 것이다.

‘그래도 이 가격 그대로 구입하기보다는, 이왕 살 거라면 흥정을 좀 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순간.

“좋아. 이대로 주게.”

“!”

엘리야가 단박에 구매를 결정했다.

“잠깐, 경.”

내가 말리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아이고, 탁월한 결정이십니다! 제가 당장 포장해서 가져가실 수 있게 준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장 로뎀 금화 100개는 없군.”

“마탑주님이신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신용으로 거래하지요.”

“음.”

잽싼 반응을 보아하니 적어도 로뎀 금화 다섯 닢은 깎을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경, 이거……”

“쉿.”

엘리야가 내 말을 막았다.

상인은 연신 “잘하신 거다”라는 말을 연발하며 케이스를 꺼내 마나석을 담고, 경량화 마법이 걸린 작고 고급스러운 주머니를 꺼내더니 그 안에 케이스를 담았다.

역시 하이 마켓, 담아 주는 봉투마저도 범상치 않았다.

엘리야는 물건을 챙기고, 즉석에서 어음을 써서 상인에게 건네주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상인은 매대 밖으로 나와 허리를 90도 이상으로 꺾어 가며 우리를 배웅했다.

‘아까워.’

나는 그가 흥정 한 번 않고 물건을 산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잘하면 적잖이 가격을 깎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럴 수도 있었겠죠.”

“아깝지도 않으세요?”

“별로.”

엘리야가 어깨를 으쓱했다.

“마탑에서 구매해서 사용하는 실험 재료 중에서는 이보다 값비싼 것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네에?”

나도 기본 경제 단위가 만만치 않은 공작가에서 왔는데, 마탑의 스케일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 걸 살 돈은 다 어디서 충당하시는 거예요?”

엘리야가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마탑에서 제작하는 포션이 얼마인지도 모릅니까?”

“……제가 모른다고 어떻게 확신하시는데요?”

“알면 그런 소리는 못 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경의 말씀인즉…….”

나는 약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탑에서 비싼 값으로 포션을 팔아 치워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다는 뜻인가요?”

“비단 포션뿐만이 아닙니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그랬다. 마법 물품은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품질이 보장된 마탑 생산품이면 가격도 섭섭지 않게 받을 터였다.

잠시 포션만 가지고 마탑의 경제 규모를 어림해 본 나는 약간 질린 표정이 되어 말했다.

“엘리야 경, 당신 제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부자일 수도 있겠는데요……?”

“별로 그 정도는.”

엘리야가 대수롭잖게 어깨를 으쓱했다.

“버는 만큼 쓰는 것도 많습니다.”

“많이 쓰는 걸 충당할 정도로 버신다는 말씀이시죠, 그거……?”

“틀린 말은 아니로군요.”

이제까지 마법사라고 하면 연구비에 천문학적인 지출을 하는, 그래서 자기 생활은 정작 소박하고 단출하게 꾸려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엘리야야말로 그런 마법사들의 대표 격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틀렸군.’

그냥 이 사람은 연구와 수련에 너무 미친 나머지 자기 생활의 편의를 도모하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을 뿐이었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단지 쓸 줄 모르는 거였군요, 경…….”

“제가 방금 쓴 건 돈이 아닙니까?”

“연구에 투자하는 돈은 인간적으로 우리 예외로 칩시다.”

“방금 전 건 연구를 위한 지출이 아니었습니다만.”

“네? 그게 연구용이 아니면 뭔데요?”

“…….”

엘리야가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이걸 내가 꼭 말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선물용입니다.”

“네? 잘 안 들렸어요.”

“선물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큼, 하고 아주 못마땅하다는 투로 헛기침을 하면서 내게 아까 산 주머니를 내밀었다.

“?”

“당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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