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182)

82화

어제, 새어머니는 저택에서 일하는 하급 고용인인 말단 하녀를 이용해서 나를 함정에 빠트리려고 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칼릭스의 도움도 있었고, 하녀와 나 사이에 평소 연관점이 없어서 함정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만약 새어머니가 내 옆에 있는 시녀 중 한 사람을 이용했다면, 그렇게 쉽게 빠져나올 수는 없었을 거야.’

이제까지는 원작에서 딱히 유리 주변에 첩자가 있다는 묘사는 없었기에 안심하고 있었지만…….

‘원작하고 점점 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안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아.’

그게 내가 오늘 몰타에 시녀들의 뒷조사를 의뢰한 이유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뭘까요? 말씀해 보세요.”

나는 서류 한 장을 따로 내밀었다.

“샐리 브라운?”

“네.”

내게 누명을 씌웠던 하녀의 이름이었다.

“이 아이에 대해서든 뭐든 알아내 주세요. 협박거리가 될 만한 거라면 더욱 좋고요.”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 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네요. 통상적으로 이런 의뢰의 비용은 150골드지만, 단골…… 아니, 저희 단골이셨던 분과 얼굴이 닮으셨으니, 100골드로 깎아 드릴게요.”

이번에도 거절할까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호의를 사양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레이첼의 장단에 맞춰 말했다.

“그 단골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더블 요금을 치르셨을 것 같네요. 저도 오늘 그렇게 할게요.”

레이첼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아요, 의뢰받았습니다, 손님.”

거래 성립이었다.

* * *

그날, 늦은 저녁.

“죽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소공작님.”

“말도 안 돼…… 어떻게?”

하녀의 뒷조사를 해 보라고 시킨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그사이에 벌써 죽어 버렸다니?

칼릭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사인은 무엇인가?”

“불명이라고 합니다.”

“뭐?”

“정확히는 돌연사입니다. 밤사이에 심장이 멈췄다고 하는데…… 심장이 멈춘 이유를 딱히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의사가 확실하게 사인을 조사한 건가?”

“부모가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사망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장의사를 불렀으니, 지금쯤이면 장례식을 마치고 매장을 진행했을 겁니다.”

“…….”

칼릭스는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사건이 공교롭게도 돌아갈 수 있는 건가?’

석연치 않은 느낌, 일말의 의심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원래는 무슨 일을 하던 하녀였나?”

“세탁 일을 하는 아이입니다. 아마 그래서 엘레니 공녀님의 드레스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평판은?”

“딱히 평판이랄 것도 없는 평범한 하녀였습니다. 세탁실에서 말하길 일을 썩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누님하고 엮일 만한 접점은 있나?”

“없습니다. 공녀님을 모시는 시녀들과는 접점이 있긴 합니다만 그조차도 세탁실 하녀로서 일감을 전달받는 수준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원한 관계도 없는 건가……?”

원한 관계도 없는 일개 하녀가 공녀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하다니.

‘갑자기 미치지 않고서야.’

게다가 저택에서 쫓겨난 지 하루 만에 죽어 버렸다.

“그럴 수가, 그럴 수는, 제게 이러시면 안 돼요. 저는, 저는 그저 마님이 시키신 대로 했을 뿐이에요!”

“…….”

칼릭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지금 그의 마음을 스치고 간 의혹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어머니께서 그러실 리가 없어.’

무엇보다도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다.

‘어머니께서 오랜 세월 누님을 아끼셨다는 걸 제외하더라도, 굳이 이런 일을 꾸미실 이유가 없어…….’

명실상부한 로잔헤이어 가문의 후계자, 소공작을 아들로 둔 공작 부인이 계승 서열에서도 밀리는 공녀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설사 미워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집안에서 평판을 망치는 것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수단이 많이 있었다.

‘굳이…….’

굳이 이런 일을 꾸밀 이유가 없다. 손에 피를 묻혀 가면서까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칼릭스는 가슴 한쪽의 서늘함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

약간의 침묵 끝에, 칼릭스는 냉철하게 머릿속을 가다듬었다. 이번에는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을 지워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해 보기로 했다.

‘만약에 어머님이 누님을 미워하고 계신다면.’

만약에 그의 어머니가 하녀를 시켜 유리에게 누명을 씌운 거라면?

목적은 하나뿐이었다.

‘누군가가 누님께 실망하고 돌아서기를 바란 거겠지.’

돌덩어리가 꽉 막고 있었던 것 같은 아까와 달리, 생각은 날개를 단 것처럼 거침없이 쭉쭉 뻗어 나갔다.

‘고용인들? 아냐. 고용인들이 누님한테 실망해 봤자 그들은 아랫사람일 뿐이야.’

그 자리에서 유리에게 호의적인, 단순한 고용인이 아니었던 사람은…….

‘엘레니.’

그리고…….

‘……나.’

내가 누님께 실망하기를 원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유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미워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누님이 약간 변했고…….’

그와 동시에, 미움으로 덮여 있었던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렸을 적 유리에 대한 순수한 호의와 동경이 되살아났다.

‘아마 어머니가 누님을 미워하신다면, 내 마음의 변화를 달갑게 여기시진 않았을 거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칼릭스는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전제를 하나 바꿨을 뿐인데, 모든 퍼즐이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딱딱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칼릭스는 두려웠다. 자신이 내린 파괴적인 결론이.

‘설마…….’

아닐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헛된 망상일 뿐이어야 한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

맞춘 퍼즐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

“어머니와 엘레니도 처음부터 저를 믿어 주셨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에요.”

모든 것을 체념한 것 같았던 유리의 목소리를 떠올린 순간.

칼릭스는 자신이 도저히 그 결론을 외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조사를 진행해 보도록 해라, 로윈. 아무래도 이 일을 이렇게 끝낼 순 없을 것 같다.”

“예, 알겠습니다. 소공작님.”

칼릭스는 잠시 망설인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하녀 쪽보다, 므와쟁 남작 부인의 뒤를 캐 보도록 해.”

“…….”

로윈은 칼릭스의 충실한 심복이었다. 그는 므와쟁 남작 부인을 조사하라는 칼릭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단박에 이해했지만, 그 점을 지적하는 대신 깊숙이 고개를 숙여 보일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 * *

칼릭스의 태도가 이상했다.

내가 몰타에 다녀와 귀가했을 때부터 오늘 이때까지 쭉, 칼릭스는 이상하게 굴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나를 피하고 있었다.

시작은 어제 저녁 식사 시간부터였다.

그날 식사 자리에서 칼릭스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돌리기 일쑤였고, 오늘 아침엔 복도를 지나가다 마주쳤는데도 어색한 인사 외에는 아무것도 주고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에 내가 먼저 한두 마디 말을 걸어 보았지만, 그에도 단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혹시나 해서 관계창도 들여다보았지만, 그곳에는…….

칼릭스: “만약에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도저히 내심을 짐작할 수 없는 말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왤까?’

새어머니의 이간질이 통한 걸까?

그렇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녀의 자작극 사건이 있고 나서 바로 다음 날, 황제를 알현하러 함께했을 때 칼릭스의 태도는 지극히 평소와 같았다.

‘이제 와서 마음이라도 바뀌었나? 아님 내가 뭘 실수라도 했나……?’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공녀님.”

“응?”

“소공작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응? 지금?”

한나절 동안 사람을 피하더니, 갑자기 방에 찾아온다고?

‘대체 무슨 일이람?’

의아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들어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칼릭스가 등장했다.

“칼릭스, 어서 와.”

“……누님.”

칼릭스가 딱딱한 태도로 인사를 했다.

“무슨 일이야?”

“그게…….”

칼릭스가 주변을 흘긋 돌아보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아차 했다.

‘습관대로 용건부터 묻고 말았네.’

“미안, 자리에 앉으라고 먼저 권했어야 했는데. 여기 앉을래? 차를 내오라고 할게.”

나는 시녀들을 향해 눈짓을 하며, 나가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칼릭스의 태도가 왠지 평소 같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을 물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에나만 들어와서 말없이 앉아 있는 우리 둘 사이에 차와 과자를 차려 놓고 다시 나갔다.

하지만 칼릭스는 차에 손도 대지 않았다.

‘음…… 아무래도 이건.’

물어봐 달라는 것 같지?

“……저기, 칼릭스.”

“네, 누님.”

“무슨 일로 이러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

칼릭스는 내 질문에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나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그러자 잠시 후.

“……이걸 누님에게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그가 내게 길쭉하고 납작한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작은 선물입니다.”

“그래?”

뭐야, 깜짝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재느라 그렇게 어색하게 군 거였나?

나는 일단 상자를 받아 리본을 풀었다. 열어 보니 그 안에는…….

“티스푼?”

은으로 만든 예쁜 티스푼이 놓여 있었다.

일반적인 형태의 티스푼과 달리 꽃이 핀 나뭇가지를 꺾은 듯한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꽃잎과 잎사귀는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다.

예뻤다.

“예쁘네……. 그런데 갑자기 웬 티스푼이야?”

“그냥…… 누님께서 사용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그냥 티스푼이라기엔……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는데?”

“……그, 광택을 유지하는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아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는 선물이지만…….’

안 그래도 이런 티스푼을 하나쯤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새어머니가 예전과 달리 내게 누명을 씌울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까.’

다른 방식의 공격에도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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