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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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정찬회가 마무리됐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한 가지만은 분명하지.’
오늘 정찬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애당초 새어머니가 기획했던 것보다 더 큰 이야기보따리를 안고 돌아가게 됐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확인해 봐야 할 게 있었다.
‘관계창!’
세드릭이 왜 갑자기 내게 청혼을 한 건지, 그 속마음을 좀 알아봐야 했다.
관계창의 한마디는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세드릭: “……내가 당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어.”
“…….”
이게 대체 무슨 뜻이지?
‘날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청혼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세드릭은…….
‘내가 이 집에서 대단히 큰 곤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어쩌면 자신과 결혼하는 게 내가 이 집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다.
그 생각을 하자 맥이 탁 풀렸다.
‘그럼 그렇지.’
갑자기 왜 청혼을 하나 했더니, 비슷한 처지에 처해 있는 나를 향한 동질감, 동정, 그리고 우정 같은 게 이상한 쪽으로 발동한 모양이었다.
‘파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뭘 잘못해서 세드릭하고 연애 루트로 빠져 버린 줄 알았잖아.’
게다가 ‘후작의 청혼’이 히든 에피소드라고 했지…….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이 히든 에피소드라는 게 우정의 발로, 혹은 우정이 깊어졌다는 뜻으로 발생하는 것 같아.’
벌써 세 명째 히든 에피소드가 발생했다. 단독 연애 루트라기보다 배드 엔딩으로 가는 길목에 포함된 우정 이벤트라고 보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합리적인 추측인 것 같았다. 나는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드릭이 청혼까지 불사할 정도로 그와 우정을 쌓은 내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럼 이제 히든 에피소드는 칼릭스만 남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관계창을 닫으려고 했다.
닫으려고 했는데…….
카미엘: “……다 죽여 버릴까?”
으엥?
‘……대체 이게 뭔 말이야?’
죽여? 설마 나를?
‘아니겠지 설마!’
앞에 ‘다’라는 수식어가 붙은 걸로 봐서는 내가 아닐 거다.
……아니겠지?
소름이 오소소 끼쳤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람!’
절벽 아래에서는 그렇게 치근치근 달라붙어서 사람을 곤란하게 하더니, 설마 죽일 정도로 날 싫어하고 있었던 거야?
‘최종 보스 정신머리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아연했지만,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일인지 내게 설명해 줄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