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5/182)

41화

“……8 대 2.”

목표한 숫자였다.

황태자를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훌륭한 설득의 대가로 ‘중급 협상가’ 칭호가 ‘베테랑 협상가’로 승급합니다.

칭호의 효과: 지력 +70, 화술 +70, 매력 +50. 사람들이 당신의 설득에 귀를 기울입니다.

나는 씩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황태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럼 계약서부터 작성하실까요?”

마음 변하기 전에, 도장부터 찍자!

황태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내 손을 맞잡았다.

“공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난 정말 공녀가 마음에 듭니다.”

“저런. 일국의 황태자께서 결혼 적령기의 아가씨에게 하시기에는 다소 위험 부담이 있는 말씀인데요.”

나름 황태자를 웃길 요량으로 받아친 말이었는데, 황태자는 웃음을 터트리지 않았다.

그는 그저, 눈빛에 가느스름한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때론 어떤 위험은 기꺼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법이죠.”

“…….”

아, 이런 대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내가 눈만 깜빡거리고 있자, 황태자는 그제야 푸스스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점도 포함해서 공녀를 좋아합니다.”

“제 생각엔 전하께서 지금 너무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

문제적인 발언이었다. 내용만 들으면 고백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행이라면 말하는 사람의 태도가 워낙 깔끔하고 담백해서 그런 부적절한 착각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싱글싱글한 황태자의 낯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쩐지 내 시선이 그렇게 머물수록 즐거워 보이는 낯짝을 말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 이제 그만 제가 생각한 방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시기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황태자가 시원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사실 마동식 전층 이동기는 개발한 지 얼마 안 된 물건이긴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에야 이 건물에 시제품을 설치했으니까요.”

“그러셨군요.”

“그리고 제 예상보다 반발이 대단했다……라는,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마르타라는 이름의 안내원은 근 일주일이나 탑승하기를 거부하다가, 추가 근무 수당을 약속받고서야 겨우 마음을 돌렸다고 황태자가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니까 전하께서도 슬슬 방책을 모색하려고 하셨던 참이군요.”

“예. 공녀께서 참으로 시기적절하게 찾아오신 셈이지요.”

“이상하다, 아까는 분명 연락하는 방법을 모르냐고 돌려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부디 잊어 주시겠습니까? 그때는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황태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난처한 시늉을 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올 만큼 천연덕스러웠다.

나는 느긋하게 소파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사람들의 거부감을 사는 데 이동기의 외관이 한몫한다는 사실은 눈치채셨고요?”

황태자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가 미간을 문지르며 고백했다.

“철창으로 만든 문을 달도록 내버려 둔 건 대대적인 실수였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랬다. 엘리베이터의 존재에 익숙하지 않은 이곳 사람들 대부분은 보이지 않는 마력으로 이동하는 장치에 탑승해 자신의 발밑이 지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광경을 별로 목격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게다가 꼭 감옥에 갇힌 것 같은 모양새로 말이야.’

하지만 대단하신 마법사님들께 대단치 못한 민중의 소박한 공포쯤이야.

이런 반응을 아예 예상치도 않았다는 쪽에 전 재산이라도 걸 수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톡, 톡, 탁자를 두드렸다.

“제 생각에는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해요, 전하.”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아주 충격적으로, 완전히 극적으로 사고가 뒤집혀 버리게끔.”

자신만만한 미소를 씩 지어 보이며 나는 말했다.

“그리고 제 생각엔, 그걸 전하와 제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 * *

엘리베이터 사업권의 지분을 따냈다.

‘성공, 성공했어!’

나는 너무 좋아서 침대 위를 데굴데굴 왕복으로 굴러다녔다.

‘홍보만 제대로 성공하면, 돈이 저절로 굴러들어 올 거야.’

나는 베개를 껴안고 음흉한 미소를 푹 파묻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돈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자립할 거니까.’

이대로 배드 엔딩 공략에 성공하면, 난 중립국인 페르가나로 떠날 거다.

여태까지 살아온 터전을 떠나는 일이다. 말처럼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돈이라도 많아야 해.’

로제타 의상실의 지분과 엘리베이터 사업권 지분은 내게 지속적으로 황금알을 낳아 주는 거위가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이번 건을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내가 그런저런 생각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공녀님.”

밖에서 시녀가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라메르라는 제과점에서 공녀님이 예약하신 디저트를 보냈습니다.”

“!”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던 소식에, 나는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갈게.”

나는 서둘러 내 방에 딸린 응접실로 나갔다.

시녀들의 말대로 라메르의 디저트 상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 한 잔 가져다줄래? 그리고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 다들 자리를 비켜 줬으면 좋겠어.”

“예, 알겠습니다. 공녀님.”

이윽고 나는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홀로 방에 남았다.

‘일단…….’

시녀들이 남겨 두고 간 디저트 상자의 바닥을 들추고, 몰타에서 산 정보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먼저 적혀 있는 건…… 아, 용의 피의 소재지인가.’

이제는 쓸모없게 된 정보였다.

대강 읽어 보니, 용의 피는 과거 용제를 봉인할 당시 황가가 거의 독식하다시피 했고, 아직도 황가에는 꽤 많은 양의 용의 피가 남아 있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그 외에는 구할 방도가 현재로선 없다고…….’

원한다면 암흑 경매에서 용의 피를 낙찰해 간 사람의 신원을 조사해 보겠다는 게 보고서의 마지막 말이었다.

‘큰일 날 소릴.’

어쨌든 용의 피 문제는 해결했으니까, 이건 패스.

나는 다음 장으로 보고서를 팔랑 넘겼다. 이제 로엔 대공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시간이었다.

보고서의 내용은…….

‘……별거 없잖아.’

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몰타에서 보낸 보고서에는 대공이 어렸을 적에 황궁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느니, 조실부모했다는 표면적인 정보뿐이었다.

‘물론, 이것도 내가 모르던 거긴 한데…….’

대공이 의외로 단 음식을 좋아한다는 정보 따윈 몰라도 된단 말이다.

“……쯧.”

혀가 절로 차졌다.

다행인 점은 몰타 측에서도 정보의 빈약함을 인정하는지, 이번 의뢰비는 3분의 1만 받겠다는 말로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아니었으면 화날 뻔했어.’

후우. 나는 마음을 다스리며 보고서를 덮었다.

그리고 타오르고 있는 벽난로에 보고서를 던져 넣었다.

‘잘 탄다.’

활활 타는 불이 보고서를 잘 태우도록, 나는 벽난로 안쪽을 부지깽이로 몇 번 뒤적거렸다.

순식간에 보고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재로 화했다.

‘자, 그럼.’

다음 할 일을 하러 가 볼까?

* * *

그날 저녁, 나는 오랜만에 공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유리.”

공작은 평소처럼 무표정으로 나를 맞이했지만…….

‘눈빛이 좀 떨린 것 같은데.’

잘못 본 걸까?

뭐, 어쨌든 중요한 건 아니니까. 나는 공작이 권한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무슨 일로 나를 먼저 찾아왔느냐?”

“그렇게 말씀하시니 꼭 제가 평소에는 아버지를 먼저 찾지 않는다는 말로 들리네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셨겠죠. 농담이었어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라메르의 디저트 상자를 가져오게 했다.

“식사도 거르셨다길래, 간식을 좀 가져와 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제과점에서 만든 애플파이예요.”

“……큼, 고맙구나.”

마침내 공작이 집무실 책상에서 벗어나 내 앞에 앉았다.

“드세요, 아버지. 맛있어요.”

“그래, 너도 먹거라.”

간식이 적당히 입속으로 사라지고 나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즈음 봄이 한창 무르익은 것 같아요.”

“날씨가 좋긴 하더구나.”

“그래서 말인데요, 아버지.”

“?”

“저, 무도회를 열고 싶어요.”

제국의 고위 귀족 여성들은 데뷔한 지 1년이 지나면 시즌에 한 번 정도 자기 이름으로 무도회를 여는 관례가 있었다.

그것으로 자신이 안주인의 역할에 얼마나 재능이 있는가를 피로하게 된다.

공작이 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벌써 그럴 때가 되긴 했지…….”

나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이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웨스트 윙의 그레이트 홀을 내주마.”

“정말이신가요!”

놀란 나머지 목소리가 커지고 말았다.

“그래, 정말이다. 네 역량을 시험받는 자리이니, 그 정도 무대는 마련해야지.”

“가, 감사합니다.”

나는 얼떨떨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공작저의 메인 홀인 그레이트 홀은 1년에 단 몇 차례만 개방하는 장소였다.

‘매번 개방하기에는 규모도 커서 비용도 많이 들고…….’

그래서 그레이트 홀에서 여는 로잔헤이어 공작가의 무도회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참석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 하지만 아버지, 제가 이번 무도회를 위해 실내 장식을 좀 하려고 하는데……”

“꾸미는 거야 원상 복구가 가능한 선에서 얼마든지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흠, 그러고 보니…….”

공작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서 책상 쪽으로 갔다.

그리고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저건…….’

“수표책이다.”

“……네?”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그게 무슨 찻잔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미는 통에, 나도 모르게 받아 들고 말았다.

“수표책이라면……?”

“내 이름으로 미리 서명을 해 두었다.”

공작이 여상하게 애플파이를 한 입 더 먹어 치우며 대답했다.

“무도회를 열려면 이것저것 돈 들 곳이 많겠지. 원하는 만큼 사용하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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