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무도회를 열겠습니다
사냥제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나는 혼자만의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로제타 의상실의 실내 장식 시안을 살펴보고 있던 중이었다.
여러 가지 구상안 중에서 특히 내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똑똑똑.
노크 소리가 이어지려던 생각을 방해했다.
“누구지?”
“공녀님, 집사입니다.”
집사가 갑자기 왜?
의아해하면서도 나는 시녀에게 신호를 보내 문을 열게 했다.
“집사, 무슨 일이야?”
“로엔 대공 전하께서 공녀님께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뭐!
“그런데 그것이…….”
집사가 당혹한 표정으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대체 뭘 보냈길래?’
“빨리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안 그래도 요 며칠 뇌리 한구석에서 최종 보스에 대한 생각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던 나는, 즉각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둘러 집사를 따라 메인 로비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집사, 대체 저게 뭔가?”
현관문 앞에 놓인 선물 상자를 보자, 나는 할 말을 잃는 느낌이었다.
솜사탕 같은 분홍빛에, 연한 하늘색 리본을 묶은 상자였다. 거기까지는 여느 선물 상자와 별로 다를 바가 없긴 했다.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크기를 제외하면 말이다.
“일단 내려가 보시는 게…….”
다가가기도 전에 그 위용에 질려 버린 나를 집사가 조심스럽게 재촉했다.
“하…….”
최종 보스가 보낸 선물이라니, 정말이지 손끝 하나 대지 않고 고대로 돌려보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겨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
내 짐작이 맞는다면, 저 선물의 정체는…….
내가 선물의 정체를 어림짐작한 바로 그때.
“……유리야, 이게 웬 소란이니?”
이스트 윙 쪽에서 새어머니와 엘레니가 등장했다.
“그 상자는 대체……?”
웬만한 일에는 태연한 새어머니도 내 앞에 놓인 상자의 크기에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로엔 대공 전하께서 공녀님께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내 대신 집사가 대답했다. 새어머니의 눈썹이 의혹과 놀람으로 휙 치켜 올라갔다.
“로엔 대공 전하께서? 대체 왜……?”
“글쎄요.”
나는 흘러내려 온 리본 끄트머리를 잡으며 씩 웃어 보였다.
“일단 뭘 보내셨는지 봐야 왜 보내셨는지 이유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누군가 말릴 새도 없이 리본을 확 잡아당겼다.
과연, 리본을 당기자마자 네모난 상자의 사면이 스르륵 펼쳐지며 열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난 건…….
“!”
“어머니……!”
창백해진 얼굴로 숨을 헉 집어삼키는 새어머니와 엘레니를 보며, 나는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어머나, 저도 생각지 못한 물건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건, 예의 사냥제의 균열에서 등장했던 마물의 머리였다.
절단면이 거칠게 잘려 있는, 파충류의 눈을 한 거대한 늑대 머리.
다행히 보내기 전에 무슨 처리를 했는지 끔찍한 피 냄새를 풍기거나, 바닥을 피로 적시지는 않고 있었다.
‘최소한의 상식은 있는 사람이었나…….’
마물 머리를 곱게 포장해서 보낸 시점에서 상식은 애저녁에 팔아 치운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상대는 로엔 대공이었다.
‘이만하면 썩 신사답게 굴었다고 볼 수 있지.’
게다가 그 외에도 보존 처리를 제대로 했는지 수분기가 제일 많은 눈알이 하나도 썩지 않은 상태였다.
썩기는커녕 아직까지도 세로 동공이 선명하고, 노란 눈동자가 형형하게 안광을 발하고 있었다.
“그, 그 흉물은 대체……!”
“글쎄요.”
사냥제에서 균열이 발생했던 일은 비밀에 부친 상태였다.
“제가 용의 피에 관심이 있으니까, 마물의 머리에도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거 아닐까요?”
“대체 어떻게 그런……”
“그리고 어머니.”
나는 미소와 함께 충고했다.
“아무리 보기 흉해도 로엔 대공 전하께서 주신 선물인데, 흉물이라는 말은 삼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
새어머니는 보기 드물게 말을 잃은 것 같았다.
마물 대가리를 선물로 보낸 로엔 대공을 비난해야 할지, 이런 선물을 받은 나를 나무라야 할지 종체 감을 잡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뿐만 아니라 언제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늘 생글생글 웃던 엘레니도 이번만큼은 웃음을 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얼이 빠져 있는 사이에, 나는 하인들에게 명령해서 선물 상자를 도로 닫게 했다.
“유리, 설마 그걸 집에 들일 생각은……”
“당연히 그래야죠. 성의를 담은 선물인걸요.”
내 말에 새어머니가 경악 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한 순간.
나는 맑은 웃음소리를 터트리며 말했다.
“농담이었어요. 이 마물 머리는 이대로 포장해서 스승님이신 마라케시 경에게 보내 드릴 생각이랍니다.”
놀림당했다는 걸 깨달은 새어머니의 표정이 언뜻 굳었지만, 그녀는 곧 신색을 회복해 냈다.
“……그래, 네 뜻대로 하는 게 좋겠구나.”
“네, 어머니. 염려하지 마세요.”
“…….”
새어머니와 엘레니가 황급히 물러간 뒤에야, 나는 착잡하게 분홍색 거대한 상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인간은 미쳐도 정말 제대로 미친 인간임이 틀림없었다.
* * *
“……뭘 어쩌다가 이런 미친 작자에게 걸린 겁니까?”
취향 나쁜 분홍색 상자에 담긴 마물 대가리와 함께, 내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은 엘리야 마라케시의 반응이었다.
“말씀을 삼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경?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대공 전하이신데.”
엘리야가 코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사전에 합의하지 않은 사항은 아니었어요. 제가 이 머리의 소유권을 넘겨 달라고 요청했거든요.”
엘리야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이런 취미가 있었습니까?”
“저 말고 경이요.”
엘리야가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서 제가 왜 나옵니까?”
“마물의 사체는 좋은 연구 재료가 된다고 들었거든요.”
“……당신의 말은, 즉……?”
“경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서 달라고 했어요.”
“…….”
엘리야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잃었다.
“균열에 대한 연구를 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가 목을 졸린 듯한 말투로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걸…… 내 연구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받아 왔다는 말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마물을 눈앞에서 때려잡는 걸 본 상황에서?”
“천만다행으로 살아난 김에 좋은 생각이 나서요.”
“…….”
웬일인지 엘리야는 손으로 입술을 가리더니, 홱 뒤돌아섰다.
‘?’
장미색 눈동자의 잔상인지,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붉은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
뒤돌아선 그가 중얼거렸다.
“미쳤군, 미쳤어…….”
“일껏 챙겨 왔더니만 하시는 말씀이 고작 그거예요?”
그보다는 좀 더 일반적인 인사가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
그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리자, 나는 붉은 잔상이 눈동자가 아니라 그의 붉어진 귀 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하.’
뭔가 했더니. 고맙다는 말을 하기엔 저 성질머리가 용납을 안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관대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그 나이 먹도록 고맙다는 인사가 부끄럽다는 건 어른스럽지 못한 일이지만, 이해해 드릴 수 있어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릴…….”
그가 지친다는 듯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갑자기 이렇게 화제를 돌렸다.
“사냥제에서 균열이 나타난 건에 대해서나 보다 자세히 말해 보십시오.”
화제 전환이 매끄러운 편은 아니었지만, 나는 너그럽게 넘어가 주었다.
“말씀드릴 수는 있는데, 일단 이 이야기는 공식적으로 함구령이 내린 상태라는 걸 알아 두세요.”
“함구령을 내렸단 말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 앞마당에서 균열이 벌어지고 마수가 출몰한 대사건이에요.”
물론 우리의 최종 보스 덕분에 내 목숨도 건지고,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수습도 했지만…….
“이 일이 혹시나 퍼졌다가는 황실의 체면이 말이 아닐 테니까요.”
“나도 그 정도는 유추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내 말은, 함구령이 내린 사건에 대해 내게 털어놓아도 되겠느냐는 말이었습니다.”
“괜찮지 않을까요? 경께서 저 곤란해지라고 어디 가서 떠드실 분도 아니시고…….”
“……나도 사람입니다만.”
“알아요.”
“사람의 입을 두고 사고를 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치만 안 하실 거잖아요?”
“…….”
엘리야가 눈살을 찌푸린 채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덧붙였다.
“혹시나 어디 가서 말해야 할 일이 생기면, 그냥 경의 뛰어난 마법적 능력으로 알아냈다고 둘러대시면 되지 않을까요?”
“…….”
엘리야는 잠시 침묵하더니, 내 기발한 제안에 대답하는 대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으니 이만 본론으로 돌아가죠.”
‘참 성격 멋진 사람이야.’
나는 속으로만 툴툴거리면서 그날 균열이 벌어졌던 상황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