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182)

6. 사냥 놀이

다음 날이 되어, 점심 식사를 마친 후에야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나는 일단 이제까지 이룩한 성과를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성명: 유리 엘로즈>

<진명: 유스티엔 리시르 엘라하 로잔헤이어>

<칭호: 어린 마법사, 마탑주의 임시 제자, 초보 협상가, 다재다능>

명성: 5910

마나: 215/1000

지력: 193/1000

화술: 110/1000

매력: 105/1000

기품: 70/1000

정신력: 50/1000

확실히 나중에 개화한 기품과 정신력 능력치가 낮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모든 능력치가 고르게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상태창 하단부에 전에 없던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진행 중인 퀘스트>

로엔 대공과 용의 피

퀘스트 달성률: 0%

“…….”

막막한 심정으로 퀘스트 항목을 바라보던 나는, 일단 화살표를 눌러 관계창으로 넘어갔다.

세드릭: “……잘 모르겠다만.”

로잔헤이어 공작: “이제까지와는 다른 면모를 여럿 보게 되는군.”

칼릭스: “조심성 없는 사람이라 신경이 쓰일 뿐이야.”

엘리야: “골치 아프지만은 않은 임시 사제 관계.”

에이드리언: “공녀는 재미있는 친구야.”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카미엘: 상세 불명

잘 자고 일어났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악몽 같은 이름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물론, 노려본다고 해서 그 이름이 저절로 사라져 주는 반가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보류. 보류하자.’

손을 홰홰 내젓자, 관계창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어쨌든, 이로써 명백해진 셈이야.’

최종 보스는 나타나 버렸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긴 했지만…….

‘끄응.’

골치가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나라고 해서 최종 보스가 용의 피를 구하고 있을 줄을 어떻게 알았겠냐고!’

그렇다고 해서 이미 써 버린 용의 피를 뱉어 낼 수도 없으니.

최종 보스가 그걸로 납득해 준다면 참 좋겠지만…….

‘분명히 그랬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퀘스트까지 생긴 걸 보면, 그가 그냥 물러나 줄 리는 없을 것 같았다.

땅이 꺼져라 한숨이 나왔지만, 별수 없었다.

이미 내 경로에 진입해 버린 존재를 치워 낼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좋아, 결정했어.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설렁줄을 당겼다.

“부르셨습니까, 공녀님?”

“외출 준비를 해야겠어. 로제타 부인의 의상실에 다녀올 거야.”

“네, 알겠습니다.”

* * *

로제타 부인의 임시 의상실이 생긴 이후, 내 잠행은 전보다 더 쉬워졌다.

일단, 평범하게 외출하는 공작 영애처럼 차려입고 길을 나선다.

그리고 의상실 앞에 마차와 호위 기사를 머물게 한 다음…….

“공녀님, 여기 있습니다.”

“응, 고마워.”

나는 로제타 부인이 내미는 평범한 ― 중산층 집안의 자제로 보일 수 있는 ―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며 물었다.

“어때? 손님은 좀 와?”

내 질문에 로제타 부인이 상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에만도 벌써 심부름꾼이 세 명이나 다녀갔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카민스키 의상실처럼 가게로 직접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던 건, 어제 내가 참석한 파티가 황궁 무도회로 지체 높으신 분들만 참석하는 파티였기 때문일 것이다.

홍보가 좀 더 되면, 가게로 직접 찾아오는 손님도 늘어날 것이다.

이게 내가 임시 의상실이 되어 줄 건물을 비싼 돈 주고 칼라일 거리에 구한 이유이기도 했다.

‘귀족들의 눈높이에 맞춰 구색을 갖추어야 하니까.’

다행히 로제타 부인은 센스는 넘쳤고 돈만 없었던 사람이라, 내가 자금을 대어 주자 을씨년스럽던 임시 건물을 훌륭한 의상실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이제 시작일 거야. 고용한 점원들과 재단사들을 잘 활용하도록 해.”

“네, 공녀님.”

“좋아. 그럼 난 다녀올게.”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로제타 부인이 뒷문에 서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배웅했다.

나는 안심하라는 뜻을 담아 손을 흔들어 준 뒤, 거리의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었다.

칼라일 1가에서 라메르까지는 길을 잘 찾아가면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나는 익숙하게 길을 찾아 라메르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라메르입니다!”

쇼 케이스 쪽으로 다가가자, 인상 좋은 점원이 날 알아보고 말했다.

“두 번째 내점이시로군요. 저번에 추천해 드렸던 디저트는 만족하셨습니까?”

“아주.”

“오늘은 시나몬을 넣은 사과 파이가 맛있게 잘 구워졌습니다.”

“그럼 그거랑, 저번처럼 몰타의 노을을 한 잔.”

“알겠습니다, 손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나는 점원의 안내를 따라, 그때처럼 2층으로 향했다.

예의 그 방에서 기다린 지 얼마 안 되어, 전에 보았던 붉은 머리카락의 미인이 등장했다.

“두 번째로 저를 찾아 주셨네요. 첫 번째 서비스가 마음에 드셨나 보죠?”

“응, 아주 만족스러웠어.”

“후후, 손님께서 만족하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쉽게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사실 몰타는, 그중에서도 레이첼은 만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만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몰타의 지부는 겹겹이 비밀에 싸여 있었고, 단계별로 나뉘어 있었다.

‘1단계 지부에 접촉하면 1단계 수준의 정보만 얻을 수 있는 식이지.’

거기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힌트를 얻어 마침내 몰타의 수장, 레이첼 콘스탄스를 부르는 암호와 장소를 알게 되는 식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거추장스러운 절차 없이 한 번에 돌파했지만.’

이윽고 차가 도착하자, 찻잔을 앞에 두고 레이첼이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당연히 정보를 사러 왔지.”

“흐음.”

말해 보라는 듯, 레이첼이 자기 앞에 놓인 찻잔을 살짝 휘젓기 시작했다.

나는 후우, 하고 숨을 고르며 말했다.

“……로엔 대공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

찻잔 속을 휘젓던 레이첼의 손놀림이 잠시 멎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로엔 대공이라……. 쉽지 않은 상대로군요.”

“!”

의외에 말에 나는 차를 마시려다 말고 되물었다.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다만, 하고 레이첼이 자기 턱을 매만졌다.

“의뢰비가 조금 비쌀 거예요. 시간도 좀 걸릴 거고요.”

“어떤 금액을 부르든 간에 그 두 배를 지급하겠어.”

레이첼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것 참, 달콤한 제안이 아닐 수가 없네요.”

의뢰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내 용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

나는 조금 망설인 끝에 입을 열었다.

“……용의 피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까?”

내가 이 정보를 사려는 건 히든 퀘스트를 완수해서 보상을 받는 받겠다는 게 아니었다.

‘……용의 피를 구해다 주면 최종 보스가 내게서 그만 관심을 거둬 주지 않을까?’

일단 시도는 해 볼 필요가 있었다.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암흑 경매에 용의 피가 나온 적이 있었어요. 낙찰자의 신원을 원하시나요?”

“아니.”

내 신원을 밝혀서 무엇 하리? 나는 손을 홰홰 내저었다.

“그 경로는 제외하고, 다른 경로로 용의 피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

“다른 경로…… 흠. 오늘따라 쉽지 않은 의뢰만 맡기시는군요.”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레이첼의 입술이 매력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알이 깨어나기 전에 병아리의 머릿수를 셀 수는 없죠.”

* * *

몰타에 의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외출 목적을 달성한 나는 라메르의 애플파이 상자를 들고, 발걸음도 가볍게 칼라일 1가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상점가 유리창에 비친 나는 완벽하게 고위 귀족의 심부름을 하는 하녀 정도로 보였다.

‘완벽해, 완벽해.’

이대로 의상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기만 하면, 누구도 내 비밀스러운 일탈에 대해 눈치채지 못할……

“……유리 엘로즈 공녀?”

……것이어야 했는데…….

갑작스러운 부름에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걸음이 느려지려 했다.

‘……안 돼!’

지금 유리 엘로즈 공녀는 나와 연관 없는 사람이다. 이름을 불렀다고 해서 당황해서는 안 된다.

‘침착하게…….’

걸음을 다시 재촉하려는 순간.

“멈추십시오, 공녀.”

“…….”

‘잠깐, 이 목소리는…….’

……에스테반 후작이잖아?

잡아뗄 수 없음을 직감한 나는 한숨을 쉬며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저인 걸 아셨어요?”

거기에는 평소와 똑같이 무표정한 에스테반 후작이 서 있었다.

그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내 질문에 대답했다.

“걸음걸이나 자세를 보면 대강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 정도면 거의 초능력 아니야?

말문이 막힌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으나, 에스테반 후작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는 그저 이렇게 물을 따름이었다.

“호위는 어디에 있습니까?”

“후작님의 경지라면 알 수 있지 않나요?”

나는 자포자기하고 대답했다.

“지금 제 곁에 호위가 없다는 걸 말이에요.”

“오늘은 축제 기간이 아닙니다만.”

기분 탓인가? 에스테반 후작의 미간에 약간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

“어째서 호위 없이 돌아다니고 계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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