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182)

23화

합리적 의심을 하며 집 안으로 걸어 들어오던 나는…….

“……어딜 갔다 이제 들어오시는 겁니까?”

“!”

익숙한 날 선 말투에 고개를 들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칼릭스가 계단 위쪽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칼릭스. 안녕.”

“…….”

칼릭스는 대답 없이 계단을 내려올 뿐이었다.

푸른 눈동자가 오늘따라 더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아무리 축제 기간이라지만, 너무 자주 늦게까지 돌아다니시는군요.”

“축제? 아냐. 나 지금 수업 다녀온 건데.”

앗. 수업이라는 말에 칼릭스의 눈빛이 조금 더 차가워졌다.

“……비단 오늘 일만을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으음…….”

내가 뭐 딱히 지은 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게 방심한 내게, 칼릭스가 예리하게 찌르듯 물었다.

“얼마 전, 축제 개막일에 분명 불꽃놀이가 다 끝나고 나서야 들어오셨죠.”

“아……하. 그거.”

‘이크. 그게 있었구나.’

변명할 수 없는 사건이 등장했다.

“그때는 뭐랄까, 약간 사정이 있었다고나 할까……. 야시장에서 길을 잃어서.”

“예? 야시장이요?”

칼릭스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애초에 로잔헤이어의 공녀께서 왜 평민들과 가까이서 부대껴야 하는 야시장에까지 가신 겁니까?”

“…….”

뭐라고 하지?

‘그거야 내 취향인데 어쩔 거냐고 하면 호감도가 많이 깎이려나?’

고민하고 있는데, 칼릭스가 내 눈빛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전혀 귀담아듣고 계시지 않는군요.”

“그러니?”

‘들켰네.’

내가 살짝 머쓱한 표정을 짓자, 칼릭스가 나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는데…….

삐로롱.

‘……내 귀가 잘못됐나?’

왜 지금 호감도가 올라?

‘이 정도면 호감도 버튼, 그냥 아무 뜬금없는 데에 지뢰처럼 널려 있는 거 아냐?’

어처구니없어하는 내게, 칼릭스가 헛기침을 하곤 말했다.

“……아무튼, 눈감아 드리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눈감아 줬다고?”

칼릭스의 눈빛이 뾰족해졌다.

“없어진 공녀님을 찾던 호위 기사들을 함구시킨 게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

나는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신경을 안 썼는데도 조용하다 싶더니. 칼릭스 얘가 뒤에서 손을 썼구나.

‘그러고 보니 로잔 회의에서 보주 소유권 문제로 논쟁이 오갔을 때도 내 편을 들어 줬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워……?”

“고맙다고 하실 게 아니라…….”

하, 하며 칼릭스가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부디 조심을 해 달라는 말입니다. 제가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할 필요가 없도록 말이죠.”

“…….”

“그럼, 이만.”

언제 호감도가 올랐냐 싶게, 야멸치게 돌아선 칼릭스는 다시 제 갈 길을 가 버렸다.

‘거참, 정말.’

내 주변엔 왜 이렇게 다들 성격이 멋진 사람들만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뒤돌아서 방으로 가려던 바로 그때.

“공녀님, 공녀님!”

“집사?”

늘 나이에 걸맞게 품위 있는 걸음을 선보이던 집사가 무언가에 혼비백산한 사람처럼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예의 편지 배달용 은쟁반이 들려 있었다.

“무슨 일이야, 집사?”

“공녀님, 헉, 휴우.”

숨을 몰아쉰 그가 매무새를 단정히 고치며 “죄송합니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라고 사과했다.

“괜찮아. 그보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여기 이 초대장을 좀 보십시오.”

“초대장? 어…….”

은쟁반에는 다른 우편물들 몇 가지 위에 눈에 띄는 황금색 봉투가 놓여 있었다.

‘황금색 봉투라면…….’

“황실에서 공녀님께 보낸 초청장입니다.”

“!”

황실에서 초청장이 왔다고?

‘아, 이건 그거다.’

엊그제 로잔 회의에서 나는 보주의 봉인을 푸는 대 업적을 일구어 냈다.

그 대가로 명성이 5000이나 오르지 않았는가?

‘내가 기억하기론 황궁 출입 조건이 최소 명성 1000 이상이었지.’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황실 무도회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을 달성해 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초청장이 온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닐 거야.’

로잔 회의에서 의결한 사항에 대해서는 황제 폐하조차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

‘그 말인즉.’

엊그제 내가 보주의 봉인을 푼 일대 사건쯤이야 이미 황제의 귀에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말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겨만 있자, 집사가 마음이 급해졌는지 내게 이렇게 권했다.

“공녀님, 어서 이 초청장을 방으로……”

“……아냐, 집사.”

황궁에서 뒤늦게 이례적으로 초대장이 왔다는 건, 저 초대장을 발송한 배후에 황제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했다.

‘황제가 직접 보낸 초대장, 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거지.’

그렇다면…….

“집사, 아무래도 이 우편물들은 예정대로 어머니께 가져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하지만 공녀님…….”

“나도 알아. 하지만 이번에는 그래서 가져다드리라는 거야.”

황제 폐하께서 직접 주신 초대장을 내게 전달하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아…….”

집사도 늦지 않게 내 말이 뜻하는 바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노구의 소견이 짧았습니다, 공녀님.”

“아냐, 집사는 나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 초대장을 포함한 우편물들은 제가 마님께 잘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항상 수고가 많아, 집사.”

“…….”

집사는 말없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내 앞에서 물러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황실 무도회는 엘레니가 참석하게 되었다고 새어머니가 그렇게나 자랑스러워하던 행사였다.

거기에 나도 초청장을, 그것도 황제로부터 직접 받은 거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과연 새어머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벌써부터 궁금해지는걸.’

그렇게 방으로 돌아오자, 함께 바느질을 하고 있던 시녀들과 로제타 부인이 “오셨어요?” 하고 나를 맞이했다.

“응, 다녀왔어. 아 참, 로제타 부인.”

“네?”

“준비하고 있었겠지만 내 새 드레스,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것 같아.”

황궁 무도회라면, 우리 로제타 의상실의 첫 작품을 내보이기에 더없이 좋은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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