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82)

13화

“초대장을…… 언니가 직접 받으셨다고요?”

“너야 갓 데뷔한 아가씨지만, 나는 벌써 1년 전에 데뷔했잖아. 언제까지고 어머니께 초대장 관리를 떠넘길 순 없잖니?”

“그런…… 그러셨군요, 언니.”

엘레니의 얼굴에 겨우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 밤엔 어딜 가시나요?”

그걸 물어봐 주길 기다렸다.

“시안티크 후작 부인의 살롱에 간단다.”

“!”

엘레니의 얼굴에 겨우 떠올랐던 미소가 반쯤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빠르게 평정을 회복했다.

“시…… 안티크 후작 부인의 살롱이라니, 멋져요 언니!”

“고마워. 아,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 다녀와서 얼마나 멋진 곳이었는지 말해 줄게. 어머니께는 기다리지 말고 주무시라고 전해 줄래?”

엘레니가 간신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니. 그렇게 할게요.”

* * *

우리 집 저택을 빠져나가는 데만도 한참이었는데, 다행히 시안티크 후작가는 우리 집보다 규모가 좀 작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로잔헤이어 공작가의 문장을 본 다른 마차들이 길을 비켜 주기까지 했다.

‘VVIP라는 건가…….’

현실 세계에서는 못 누려 본 권력의 맛을 누리면서, 나는 시안티크 후작가에 무사히 입성했다.

시안티크 후작 부인의 살롱에 참석했습니다.

명성이 30 오릅니다.

역시 유명한 살롱은 달랐다. 참석만으로도 명성이 오르다니.

“확인했습니다.”

초대장을 확인한 다음, 시안티크 후작가의 시종이 내게 눈언저리를 가리는 작은 가면을 내밀었다.

“이건?”

“오늘 저희 살롱의 테마는 ‘가면 속 진심’입니다. 참석자분들께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실 수 있도록 준비한 물건이니, 모쪼록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하. 그런 건가. 나는 순순히 가면을 썼다.

‘이런 작은 가면으로 참석자의 신분을 다 감출 순 없겠지만.’

그래도 놀이 삼아, 평소보다 좀 더 진심을 드러내는 건 가능할 것 같았다.

후작 부인이 노리는 것도 딱 그 정도의 효과인 듯했다.

“어머! 기다리고 있던 아가씨께서 도착하셨군요.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나를 보자마자 확신에 차서 자기 옆으로 끌어당기는 걸 보면, 확실히 그랬다.

그녀가 내게 샴페인 한 잔을 쥐여 주고, 단상 쪽을 가리키며 소곤거렸다.

“지금 저쪽에서 말씀하고 계신 분은 저명한 문인이시랍니다.”

그러자 옆에서 누군가 이렇게 도발적으로 끼어들었다.

“저분이 누구신지, 새로 오신 아가씨께서 과연 맞히실 수 있을까요?”

응. 당연히 못 맞혀.

나는 여유 있게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글쎄요. 가면을 쓰신 분의 신분을 밝히는 게 과연 현명한 행동인지 잘 모르겠네요.”

“……!”

내가 나 잘났다고 정답을 맞혀 버리면, 참석자로서 매너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할 생각이었겠지.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못 했어도 ‘이 살롱에 참석하기엔 부족한 소양’이라며 비웃었을 테고.

지력이 10 오릅니다!

명성이 10 오릅니다!

그런 함정을 멋지게 피해 갔기 때문일까?

지력 수치가 꽤나 많이 올랐다.

“흐, 흐흥.”

괜히 말을 걸어서 본전도 못 찾고 내 지력 수치나 올려 준 귀부인이 부채를 살랑이며 뒤로 물러났다.

‘방패 문장…….’

나는 그 귀부인의 부채에 새겨진 가문 문장을 눈여겨 봐 두었다.

뭐, 무슨 나쁜 짓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봐 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시안티크 후작 부인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잘하셨어요. 역시 오늘의 주역 중 한 명답게 멋진 대처 솜씨였어요.”

“오늘의 주역이라 함은……?”

“별건 아니에요. 긴장하지 마세요. 주역이라는 건 그냥, 제가 오늘 살롱을 열면서 가장 기대한 손님을 말하는 거니까요.”

아하, 그런 거였어?

“한데 그중의 한 분은 내내 안 보이시네요. 안 오실 리는 없는데…….”

시안티크 후작 부인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퀘스트 발생!

시안티크 후작 부인이 행방을 궁금해하는 그 손님. 그 손님은 과연 누구일까?

30분 안에 ‘그 손님’을 발견할 시 성공.

‘왔구나.’

나는 속으로만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처음 이 퀘스트를 받았을 땐 무척 황당했다.

무작정 이름도 성도 얼굴도 아무것도 모르는 손님을 찾아내라니. 게다가 보상에 대한 언급도 없다.

처음 이 이야기를 봤을 땐 이런 근본 없는 퀘스트가 어디 있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한 번 가 본 맛집을 다시 한번 찾아가는 정도의 일이었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 사람이 어디 숨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

사흘 내내 고민해 봤지만, 이 구간을 좀 성의 없게 넘겨서인지 결정적인 장소가 기억이 잘 안 났다.

‘배경 일러스트가 좀 어두운 실내였다는 정도밖에는…….’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남의 속도 모르는 시안티크 후작 부인이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혹시 아가씨라면 그 분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요?”

“네, 사실 그 손님을 오늘 아가씨께 소개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좋아요.”

별수 없었다. 제한 시간 내에 실내 공간을 뒤져 보는 수밖에는.

“재미있을 것 같네요.”

“도전 정신이 있군요. 좋아요. 그럼 제가 그분을 찾는 마법의 말을 한 가지 알려 드릴게요.”

“……?”

“그분으로 추정되는 신사분을 만나시면, 이렇게 말해 보세요.”

소곤소곤. 귓가에 속삭여진 말을 듣고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대부인께서 이렇게 농땡이를 치면 안 된다고 하셨을 텐데요.’라고요?”

“네에. 자, 벌써 제가 여러 가지 힌트를 드렸죠?”

“……신사분이시고, 십중팔구 높은 확률로 농땡이를 피우고 있을 거다?”

“호호, 정답이에요.”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그 손님’에게 접근 시 시스템이 알림 벨로 알려 드립니다.

……그래, 괜찮아. 아주 근본 없는 이벤트는 아니니까.

‘찾을 수 있겠지.’

“좋아요, 어디 한번 다녀와 볼게요.”

“응원하고 있을게요.”

시안티크 후작 부인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떠났다.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신사, 라…….’

시야 한구석에서 제한 시간을 표시하는 숫자가 착실히 줄어들고 있었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딱 마주치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홀의 중앙을 피해, 아치형 입구가 연달아 있는 회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

“아앗!”

회랑 한쪽 커튼 사이에서 정신없이 얽혀 있던 한 남녀와 공교롭게도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죄송…….”

허겁지겁 옷차림을 추스르는 남녀를 피해 주다 보니, 나는 어느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중앙 홀을 떠나 시안티크 후작가의 회랑 복도에 서 있게 되었다.

“에구. 너무 멀리 왔나?”

돌아가야겠다 싶어서 등을 돌리려는 순간…….

딩동.

“……!”

익숙한 시스템의 알림 벨 소리가 내 발을 붙잡았다.

한 번이 아니었다. 잘못 들은 것도 아니었다.

알림 벨 소리는 느린 간격으로 천천히 딩동…… 딩동…… 하며 울렸다.

‘그러니까 이건…… 아직은 멀리 있다 이거지?’

또각, 또각.

아무도 없는 회랑에 내 발걸음 소리만이 이어졌다.

나는 살짝 회랑 이편과 저편을 넘겨다보았다.

‘이쪽으로 가면 정원으로 이어지는 것 같고, 저쪽으로 가면 저택 내부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향해야 할 곳은 명확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집 안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그러자 딩동, 딩동 하는 알림 벨 소리의 간격이 조금 짧아졌다.

‘좋았어……!’

무작정 발걸음 속도를 높이다 보니, 딩동 소리의 간격도 점점 짧아졌다. 그게 재미있어서 더 걷다 보니…….

‘어, 도로 간격이 길어졌다.’

설마 목표물이 움직이나? 싶어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보니 소리가 정상적으로(?) 다시 짧아졌다.

‘농땡이를 피운다더니, 아주 한자리에서 눌러앉아 작정하고 피우시는 듯…….’

어쨌든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움직이는 목표물보다는 움직이지 않는 목표물이 찾기 쉬운 건 당연한 이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 보니, 조금 전에 신나게 걸을 때 발견하지 못한 문이 하나 보였다.

‘좋아. 이 정도면 거의 독 안에 든 쥐지.’

그렇게 쉽게 생각하며 문을 딱 열었는데.

‘어?’

응접실이려나 했더니 의외로 작은 도서관이었다.

그것도 인기척 없이 휑하기만 한.

‘……여기…… 맞나?’

아까까지 딩동, 딩동, 딩동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던 소리는 내가 도서관에 들어온 순간부터 멈춰 버렸다.

안타깝게도 시스템은 이 이상으로 더 힌트를 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스읍. 이쯤 되면 나올 때도 됐는데.’

나는 이 순간에도 착실히 줄어들고 있는 숫자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발을 놀렸다.

정정, 발을 놀렸다가, 무언가 튀어나온 것에 거세게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으앗……!”

다행히 비틀거리며 넘어지려는 몸을 간신히 지탱해서, 소파 등받이를 붙잡고 소파 위로 넘어질 수 있었다.

풀썩.

“으, 다행…… 아니, 잠깐.”

소파에 지팡이라도 올려놓은 건가? 뭐가 이렇게 딱딱…….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기는 합니다만…….”

바로 그때.

소파 머리맡에서 웬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어, 어……?”

풀썩, 엉망으로 구겨져 있던 담요가 내려가고, 그 안에서 웬 남자가 상반신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퀘스트 완료: ‘그 손님’을 발견합니다!

‘에피소드 3: 황태자와의 비밀스러운 첫 만남’으로 진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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