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182)

9화

3. 비밀스러운 첫 만남

다음 날.

나는 수업을 받을 방을 꾸려 놓고, 엘리야 마라케시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시계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3시에 첫 수업을 시작한다고 했으면서.’

시계는 어느새 오후 2시 5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약속을 어기려는 건가?’

한 번쯤 약속을 어기는 거야 그럴 수도 있다고 쳐주고 싶지만…….

이대로 그가 약속을 어기면 새어머니 쪽에서 얼마나 즐거워할지 눈에 선했다.

‘이놈의 히든 에피소드, 어째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내가 두 번째로 한숨을 내쉰 순간.

사락, 하고 무언가 공기 중에서 내려앉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수업을 앞두고 한숨이나 푹푹 내쉬고 있다니.”

“!”

“나와의 수업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나 보죠?”

빈정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마탑주가 나타났다.

“여길 어떻게……?”

“정확히는 여길 어떻게, 가 아니라 나를 어떻게, 라고 물어야 합니다만.”

엘리야가 당황한 나를 바라보며 수려한 얼굴로 씩 미소를 지었다.

“둘러보시지요.”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

주변을 둘러보니, 낯익은 내 공부방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층고가 높은 걸로 봐서 원래는 상당히 좋은 방이었을 테지만, 창문까지 가릴 정도로 온 벽을 책장으로 둘러놓은 방이었다.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책들, 무언가 복잡한 내용을 필기한 종이 뭉치, 플라스크와 시험관 같은 게 엉망으로 널려 있었다.

‘누가 봐도 이건…….’

미치광이 마법사의 실험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표정이 좀 이상하군요. 제 방에 대해 무슨 무례한 감상이라도 있는 건 아니겠죠?”

정확히 정답이었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었다.

나는 애써 표정을 수습하며 대답했다.

“……설마요. 마탑주님의 방이란 것도 지금 알았는걸요.”

보자마자 알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뒤이어 말했다.

“제가 생각한 건, 로잔헤이어 공작가의 공녀를 납치하면 아무리 마탑주님이시라고 해도 꽤 곤란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뿐이랍니다.”

“납치라니! 그건…….”

이 사람이 발을 빼려고 하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저를 마탑주님의 방으로 데려오셨잖아요?”

“하, 그렇게 말하니 내가 상당히 이상한 짓을 한 느낌입니다만.”

“이상한 행동을 하신 거 맞는데요.”

“끄응…….”

엘리야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이마를 짚었다.

“……오해의 여지가 좀 있긴 하지만, 이상한 행동을 한 건 아닙니다.”

그가 이마를 짚으면서 설명했다.

“흐음.”

“마탑이 위치한 곳은 지리적으로 마류가 강하게 흘러 마법 수련을 하기에 적합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왔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편지에 관련 내용을 적어 주셨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요.”

“그건…….”

나는 씨익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실수하셨지요?”

“실수가 아니라…….”

하, 하고 한숨을 쉰 엘리야가 말을 말지, 하고 대꾸를 멈췄다.

“실수가 아니었더라도 실수인 걸로 해 두시는 게 좋을 거예요.”

원래 로잔헤이어 공작가는 대(對)마법사용 마나 결계를 설치한 곳이라 허가받지 않은 텔레포트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원작에서도 그랬듯이 그 결계가 마탑주를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건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공녀인 절 이런 식으로 데려오시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에요. 아무리 당신이 마탑주여도 말이에요.”

공작이나 칼릭스가 지금 이 상황을 알면 한바탕 또 난리가 날 수도 있었다. 물론, 나를 걱정한다기보다 보안상의 이유로 말이다.

“지금…….”

엘리야가 망설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걱정하는 겁니까, 나를?”

“……네?”

아니, 왜 이야기가 그렇게 돼?

그렇게 생각한 순간, 맑고 고운 삐로롱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호감도가 올랐어!’

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아니 뭐……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그래서 안 했다?”

앗, 기껏 오른 호감도 도로 내려가겠다!

“해, 했죠! 당연히…….”

당연히, 라고 덧붙이고 보니, 이유가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엘리야는 그 부분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당연히?”

“그…… 선생님이시니까요. 경과 제 가문 사이에 무슨 트러블이 생기기라도 하면, 제 수업에 차질이 생기거든요.”

화술 능력치가 개방되어 있었더라면, 최소 10 정도는 올라 주었을 훌륭한 핑계 대기였다.

“……뭐, 그런 이유일 거라고 짐작은 했습니다.”

엘리야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기분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본론을 덧붙였다.

“다음부터는 정식으로 공작가를 방문해서 저를 데리고 오시는 게 좋을 거예요.”

엘리야가 말도 없이 이렇게 날 데려온 덕분에 오늘 수업은 비밀에 부쳐야 했다.

‘수업이 취소되었다고 말하면, 새어머니께서 꽤나 좋아하시겠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지. 나는 포록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공녀의 말, 새겨듣도록 하죠.”

“감사해요.”

“그럼, 이만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죠.”

바라는 바였다.

엘리야와의 첫 수업이 시작됩니다.

집중도와 수업 이행률에 따라 성과를 얻습니다.

엘리야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중앙에 있던 테이블에서 짐들이 알아서 옮겨지기 시작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우리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공간 안에서는 절대적으로 제 말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엘리야는 어느새 척 하고 안경을 걸쳐 쓰고 있었다.

“마법으로 인한 사고는 파괴적이고, 그 결과는 영구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상흔을 남길 가능성이 큽니다. 제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수업에서 당신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참고할게요.”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겁을 내진 않을 거예요. 무엇보다 저는 초보고, 옆에 마탑주께서 계실 테니까요.”

호감도가 올라 주진 않으려나? 하는 기대 섞인 시선을 반짝반짝 보내자, 엘리야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 요행은 없었다.

‘쳇, 어려운 사람 같으니.’

어쨌든 살벌한 경고로 시작한 것 치고, 수업은 생각보다 별것 없었다.

내가 아직 마나 회로를 자각하지 못한 초보였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먼저 바닥에 분필로 끄적끄적, 마법진을 그렸다.

언뜻 보기에도 굉장히 복잡한 형태를 가진 마법진을 그는 한 번도 무언가를 보거나, 주춤거리지 않고 일필휘지로 완성해 버렸다.

“이 원 안에 서세요.”

“아, 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마법진 위에 섰다.

내가 마법진의 중앙에 서자, 그는 내 앞에 깃털 하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당신이 마나 회로를 자각하면, 이 마법진이 발동해서 깃털이 움직일 겁니다.”

“……마나 회로는 어떻게 자각해야 하는데요?”

“음…….”

놀랍게도 엘리야는 거기서 말문이 살짝 막힌 눈치였다.

‘이거 설마?’

너무 천재라서 마나 회로의 마 자도 모르는 초보 가르치는 법은 모르는 거 아닐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데, 잠시 고민하던 엘리야가 갑자기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

“지금 이 방 안의 마류를 제 마력으로 활성화했습니다. 느껴지십니까?”

“아, 네…….”

소름이 쭈뼛 돋았다. 머리카락도 일렁이지 않았는데 거센 바람이 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마류입니다. 처음엔 이 마류를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

엘리야가 마치 무도회에서 하듯 척, 하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에게 손을 내밀어 보았다.

“!”

하지만 엘리야가 잡은 건 내 손이 아니라 손목이었다.

“……느껴지십니까?”

붙잡힌 손목으로부터 따뜻한 기운이 밀려들어 오는 게 느껴졌다.

“……네.”

“집중하십시오. 이 마나가 따라가는 길이 바로 당신의 마나 회로입니다.”

“내 마나 회로…….”

간질간질하면서도 시원한 것 같고, 시원한 것 같으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몸 안을 한 바퀴 휙 돌아 심장 주변을 고리처럼 감싸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느낌은 엘리야가 내 손목을 놓자마자 곧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뚝, 하고 단절된 느낌에 나는 괜스레 손목을 문질렀다.

그런 내 행동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엘리야가 헛기침을 했다.

“그…… 수업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알아요.”

“흠, 흠. 안다니 다행이로군요.”

그는 주변을 감도는 마류로부터 마나를 받아들여, 심장까지 이어진 회로에 쌓는 게 마법사로서의 첫걸음이라고 알려 주었다.

‘좋았어.’

공략 대상인 남주인공과 함께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마법이었다.

어릴 적 읽었던 소설 속에서 동경해 왔던 마법, 그 마법을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해 볼게요.”

그렇게 다짐하고,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마나 회로 탐색에 실패합니다.

마나 회로 탐색에 실패합니다.

마나 회로 탐색에…….

“……너무 그렇게 상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몇 번이고 실패 메시지만 확인한 다음에야, 내 첫 수업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첫날에 마나 회로를 바로 자각하는 케이스는 드뭅니다.”

“……드물다는 건 있긴 있다는 거죠?”

“뭐…….”

어물쩍 말을 흐리는 엘리야의 모습을 보며 나는 대번에 확신했다.

“당신이 바로 그 드문 케이스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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