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유리야, 어서 오렴.”
새어머니가 아까 식당에서처럼 다정하게 나를 맞아들였다.
“아까 만찬장에서 그렇게 나가 버려서 걱정을 했는데…… 지금 보니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어쩜 좋아!”
“그런가요?”
조금 전 확인한 바로는 상했다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나는 진행을 빠르게 하기 위해 대충 맞장구를 쳤다.
새어머니는 다정스럽게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내 걱정을 줄줄 늘어놓았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니.”
“뭘, 우리 사이에 이런 걸 가지고 그러니. 그래, 나를 무슨 일로 찾아왔니?”
“다른 게 아니라…….”
나는 평온하게, 이제까지처럼 희미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제 초대장을 받으러 왔어요, 어머니.”
“네 초대장 말이니……?”
새어머니의 녹색 눈이 오묘하게 깊어졌다. 동시에 은근하게 내 손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오. 나는 속으로만 휘파람을 불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여기부터가 본론인 모양이군.’
“하지만 유리야, 너 몸이 안 좋다고 하지 않았니? 이 어미가 생각하기에는 네가 아픈 몸을 이끌고 그곳에 참석하는 게 마땅치 않다 여겨지는구나.”
‘뭐?’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람?
“하지만 모처럼 받은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그것도 상대방 입장에선 참으로 섭섭할 노릇이고…… 그래서 내가 생각을 좀 해 보았단다.”
……일단 무슨 소리를 하나 좀 들어 볼까?
“……네.”
내 손을 잡은 새어머니의 손에 꾹, 하고 힘이 들어갔다.
아프지는 않지만, 은근한 압박이 느껴지는 손아귀 힘이었다.
새어머니가 녹색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네가 엘레니에게 초대장을 양보하는 게 어떨까?”
“……엘레니에게요?”
“그래, 네가 가지 않는 대신 엘레니가 참석한다고 하면, 이 어미 생각에는 주최자인 시안티크 후작 부인도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은데.”
시안티크 후작 부인은 제국에서 가장 명망 높은 살롱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새어머니는 이번 기회에 엘레니를 후작 부인에게 선보이기 위해 초대장을 내주지 않을 작정인 것 같았다.
“엘레니는 몸이 약해서 사교 경험이 적잖니. 이번 일은 엘레니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구나.”
‘흐음.’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게임 내에서 엘레니는 몸이 약한 대신 천사 같은 사랑스러움을 가진 소녀로 묘사된다.
다만 엘레니의 편을 드는 새어머니가 악역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엘레니도 악역 쪽으로 분류하곤 했다.
하지만 어쨌든, 착한 여주인공과 유순한 엘레니의 사이에는 특별히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 여주인공이야 착하니 초대장을 순순히 내줬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나는 아니다. 내게는 그 초대장이 꼭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새어머니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는 답답한 전개는 절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어머니.”
“그래, 유리야. 이 어미의 말대로……”
“절 걱정해 주신 건 정말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초대해 주신 후작 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응?”
“제 몸은 제가 알아요.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을 뿐이지,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는 절대 아니에요.”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힘이 빠진 새어머니의 손을 슥 밀쳐 냈다.
“잘하고 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니…….”
차마 거절을 당할 줄은 몰랐는지, 새어머니는 잠시 헛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리야, 나는……”
“정 엘레니에게 경험이 필요하다면, 제가 엘레니를 데리고 참석하면 어떨까요?”
“그건…….”
안 되겠지. 초대장을 받지도 않은 행사에 얼굴을 내미는 건 상당히 뻔뻔한 행동으로 간주되니까.
나는 새어머니의 당황을 모른 척하면서 상냥한 낯으로 이렇게 말했다.
“엘레니가 정 가고 싶어 한다면 제가 후작 부인께 잘 설명을 드려 볼게요.”
“……그건, 네가 애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구나.”
하지만 새어머니는 곧 신색을 회복했다.
“네 몸이 괜찮고, 또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엘레니는 어쩔 수 없지. 다른 기회가 있을 테니까.”
끝까지 죄책감을 자극하려는 말투였지만, 나는 밝게 웃으며 “네.”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엘레니는 착하고 사랑스러우니, 곧 온 사교계가 그 사실을 알 더 좋은 기회가 오겠죠.”
“……그래. 그렇겠지.”
새어머니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좋은 말로 오늘의 나를 설득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드디어 인정하려는 모양이었다.
“오늘 내 말을 오해하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구나. 나는……”
“그럼요, 다 저를 걱정해서 하신 말씀인데요.”
“……그래, 네가 알아주니 고맙구나, 유리야.”
‘미니 이벤트: 새어머니와의 언쟁’이 종료됩니다.
‘시안티크 후작 부인의 피크닉 초대장’을 손에 넣습니다.
나는 새어머니가 건네주는 미색 봉투를 끝까지 웃는 얼굴로 받아 냈다.
“그럼, 어머니. 전 이만 물러갈게요.”
당연한 일이지만, 내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