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읽었던 책 속으로 들어왔다. 여주인공 이리스를 괴롭히던 책 속의 악역, 타락한 성녀인 이벨리나의 몸으로. 2년 후에 화형당해 죽을 운명인 이벨리나. 그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지금이라도 노력해서 잘못을 수습하고 이벨리나를 죽음으로 내모는 남자주인공들과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일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몸의 주인인 이벨리나는 계속해서 이 몸에 남고 싶으면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라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건다. 타의에 의해서, 때로는 자의에 의해서 책 속의 남자주인공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데…. *** 잘 알고 있다. 모두가 내가 ‘성녀’이기에 잘 대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제 곧 내가 성녀가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오면 이 모든 관계가 끝난다는 사실도. 일러스트: SUK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