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5/48)

서서히 하늘 끝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샛별들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밤새 울어 대던 새들의 울음소리도 잦아드는, 모두가 가장 깊은 잠에 빠져드는 시간, 이벨리나는 눈을 떴다.

그녀는 시선을 내려 제 허리를 감고 있는 팔을 바라보았다. 잠들기 전의 격렬한 행위에 라트반이 단단히 제 손에 감아 두었던 붕대가 조금 풀린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눌러놓고 있을 뿐인 큰 상처와 퍼진 독의 흔적에 그녀의 시선이 닿았다.

그 손바닥을 보던 이벨리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슬쩍 제 허리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내렸다. 평소라면 이런 움직임을 귀신같이 눈치채고 눈을 떴을 그였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라트반이 정말로 깊게 잠든 것을 확인한 그녀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낡은 창틀의 더러운 유리 너머 환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한참이나 밤하늘을 바라보던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에 초연해져 버린 것 같은 무심함이 그녀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한참이나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던 이벨리나의 입이 열렸다.

“…이리스라고.”

흘러 나간 성력이 어딘가에 모여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몸에 들어가 있을 줄이야. 이벨리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참 후에 그녀의 입에서 그녀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내가 성녀야.”

이벨리나의 눈에 차가운 불꽃이 반짝였다.

“그건 나여야 해.”

***

아침이 되고 오두막을 벗어난 우리들은 밖에 묶어 놓은 말을 챙기고 다시 산길을 나섰다. 하지만 점점 험해지는 산길에 말을 타는 것은 더 이상 무리라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말 역시 계속해서 달린 여독이 쌓인 상태라 피곤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계속 데려갔다가는 말도 우리도 힘들 뿐이었다.

결국, 산길을 걷다 찾은 마을에 들러 말을 팔았다. 말을 팔러 간 것은 라트반 혼자였다. 그는 여관에 들렀을 때처럼 나를 조금 떨어진 곳에 숨기듯 놔두더니 혹시라도 제가 늦거나 안쪽이 소란스러워지면 곧바로 몸을 피하라 단단히 일러두고는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이 든 작은 주머니를 들고 마을을 나왔다.

“라트반.”

내가 숲에서 나와 그를 부르자 그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별일 없었나요?”

“네, 역시나 아직 이런 곳까지는 대신전의 전령들이 오지 않았더군요. 어제 신전 기사단이 달려간 방향과 급해 보이던 모습으로 보아… 그는 아마 트리온으로 곧바로 향할 것 같습니다.”

“…하긴, 대신전에는 성녀가 필요하겠지요.”

그는 곧바로 이리스를 대신전으로 데려갈 것이다. 이벨리나에게 그랬듯이. 우리는 다시 산길을 걸었다. 카를이 서두르는 만큼 우리도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으읏….”

라트반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순간 크게 흔들린 탓에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그러자 그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많이 힘드십니까?”

나는 그에게 업힌 채, 힘없이 대답했다.

“…괜찮아요.”

누가 들어도 괜찮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힘들다 하면 그는 다시 나를 품에 안아 귀한 도자기 옮기듯이 이 산길을 걸어갈 테니까. 마치 영화에서 공주님을 안아 들듯 하는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그건 정말 사양하고 싶은 일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마을 사람들이 알려 주었던 다음 마을에서 머물다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푹 쉬시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이제 그는 아예 나에게 괜찮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괜찮은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 그에게 괜찮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누가 봐도 그는 멀쩡했으니까!

아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기력이 넘치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러니 아침에 또 했겠지….’

그가 아닌 나를 걱정하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밤에도 그랬지만 오늘 아침에도 나는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는 아무리 가져도 부족하다는 듯이 나를 안고 또 안았다. 그렇게 셀 수 없이 했음에도 그의 것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니, 사그라들긴커녕 어쩐지 더욱 흉흉해졌던 것 같은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다시 커진 그의 것을 보고 정말로 기절하고 싶은 마음이 되었었다.

‘그러고 보니 난 왜 그렇게 자고 있었던 거지….’

눈을 뜨면 당연히 라트반의 품 안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방의 구석에서 쪼그려 앉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밤사이에 옷을 새로 입기라도 했었는지 허리 쪽의 매듭이 새로 묶여 있었다. 잠결에 묶은 탓인지는 몰라도 항상 내가 묶는 것과 반대 방향에 매듭이 있었다.

잠에서 깬 내가 소리를 내자 라트반 역시 눈을 떴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떨어져 있는 나를 보더니 곧바로 나를 다시 안아 제 품에 안았다. 한참 후에 다시 기진맥진해진 나를 붙들고 그는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당신께서 품을 빠져나가는 것도 모르고 잠이 들다니….”

“그거야 라트반도 피곤… 아, 아니에요!”

하지만 이미 늦었었다. 그는 또 했었다.

‘진짜 엄청나게 참고 있었던 거였어….’

지금이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예 나를 품에서 놓지 않을 것 같았다. 아쉬워하며 내 옷을 입혀 주는 그를 보면서 나는 잠시 그와 함께 멀리 떠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그와 함께 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름답고 신기한 것들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자고.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나올 것 같은 미래였다. 하지만 곧 나는 어젯밤 나를 붙잡던 그의 손을 기억했다.

내가 볼 때마다 미안해하는 것이 싫은지 붕대로 감아 버린 그의 손. 그 아래에 있을 상처와 독의 흔적.

‘이리스에게 가야 해.’

그녀가 가진 성력 전부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라트반을 치료할 수 있을 정도만 되찾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저기, 마을이 보이는군요. 크기를 보아하니 여관 정도는 있을 듯합니다.”

나를 업은 채 쉴 새 없이 걷던 그가 반가운 듯이 말했다.

“오늘은 저기에서….”

라트반은 갑자기 말을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의 어깨 너머로 얼굴을 쭉 내밀어 본 순간 나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멀리서 그가 찾은 마을의 입구에 대신전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

“아직도 가짜 성녀와 라트반을 찾지 못했단 말입니까.”

차가운 카를의 목소리에 신전 기사단장은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보통 기사단장이 공석이 되면 부기사단장이 자동적으로 그 자리를 이어받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기사단장이 된 자는 부기사단장이 아니었다. 새로운 기사단장은 누가 보아도 기사단에서는 어린 축에 속할 정도로 앳된 인상이 남아 있는 자였다.

‘쯧.’

카를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는 라트반이 성녀와 도주하고 나서 곧바로 신전 기사단을 새로 구성했다.

신전 기사들은 기사단장이 전 동료를 살해하고 도주했다는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라트반은 여전히 믿고 따르는 단장이었으며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매번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마수와의 전투에서 그에게 목숨을 빚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라트반을 붙잡으라는 명령을 내리자 신전 기사단을 그만두고 대신전을 나가버린 이들도 있었다. 그들 역시 수배령을 내렸으나 크게 떠들 수는 없었다. 그래 봤자 라트반을 따르는 이가 많다고 광고 하는 꼴이 될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충성심은 카를에게는 방해가 될 뿐이었다. 그렇기에 라트반과 함께 보낸 시간이 적은 기사들을 추려 내어 새로이 신전 기사단의 부대 하나를 만들었다.

카를은 그들을 하나씩 불러들여 이제부터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도주한 자들이 얼마나 흉악스러우며 끔찍한 짓을 했는지 설명했다. 어린 자들이었기에 설득은 쉬웠다. 넘치는 정의감은 카를이 의도한 방향으로 폭발했다. 하지만 의욕만 넘칠 뿐, 실력은 그에 달하지 못했다.

카를이 실력 있는 기사들이 떠나 버린 상황을 저주하며 이를 갈고 있을 때였다.

“카를 대신관님, 대신관님을 뵙고자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곤란하다 이르십시오.”

“하지만 대신전을 떠났던 기사들이….”

“그들이?”

그들이 돌아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서 나가보아야 했다. 서둘러 일어서자 그러잖아도 불편한 다리가 욱신거렸다. 새로운 성녀를 만나면 이벨리나 이상으로 제대로 가르칠 생각이다. 이 다리를 위해 제가 가진 성력을 죄다 바치도록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천막의 입구에 내려진 천을 걷어 올린 순간, 카를은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천막의 앞에는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밧줄로 묶여 뒹굴고 있었다.

“이게 무슨….”

갑자기 어디서 이런 사람들이 나타났으며 누가 이런 꼴을 만들어 이곳에 두었단 말인가. 카를은 바닥에 있는 자들을 살펴보았다. 피와 먼지로 엉망이 되어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분명 신전 기사단의 예복이었다. 황급히 얼굴을 살피자 낯이 익은 자들이 몇몇 있었다. 모두 마지막까지 라트반이 그럴 리 없다며, 그를 수배자로 올리지 말라고 카를에게 항의하던 기사단원들이었다.

결국 그들은 라트반에 대한 수배령이 떨어지자 그 명령에는 따를 수 없다며 무단으로 기사단을 이탈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카를은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뒤에 서 있던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신전이 아닌 제국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는 자들. 그들은 제국 기사단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 서 있는 금발의 남자는 카를을 보더니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군, 카를 신관. 아니, 이제는 대신관이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네.”

그런 레온의 모습에 카를은 저도 모르게 말했다.

“레온 황태자…? 지금 분명 페르벤의 기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그제 다 쓸어 버렸네.”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 레온은 별다른 감정 없는 얼굴로 툭 내뱉었다. 카를은 그런 레온의 모습을 재빨리 살폈다. 여전히 깔끔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과 주먹 그리고 옷에 있는 핏자국을 카를은 놓치지 않았다.

‘설마 이들을 직접 잡아 온 건가?’

그런 카를의 의문을 읽은 듯 레온이 말했다.

“내가 잠시 대신전의 가호에서 벗어난 사이에 대신관에 취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네.”

레온의 말에 카를은 힘을 주어 미소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제가 이제 대신관임에도 불구하고 하대하는 레온의 말투는 여전했다.

“축하의 선물을 해야 했는데, 그대도 알다시피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땅한 것을 구하지 못했어. 제국에서 가져오려면 시간도 걸릴 것 같고 해서….”

레온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엎드려 있는 기사의 허리를 걷어찼다.

“크윽!”

그 기사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자 레온은 그의 어깨를 자근자근 밟으며 카를을 향해 웃었다.

“그쪽에서 튀어나온 쥐새끼들을 좀 잡아 왔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군.”

이 정도면 괜찮은 선물이 아니냐는 듯한 레온의 당당한 웃음에 카를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대신전의 탈주 기사들을 붙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 그렇다고 한들 그들은 한때 영광된 신의 이름 아래 검을 들었던 자들이니 부디 험한 대접은 그만두시지요.”

“이런, 이런. 이런 것들의 명예도 살펴 주시다니. 대신관이라는 자리란 무척이나 힘들겠어.”

레온은 어깨를 으쓱하며 발을 내렸다. 그에게 밟혔던 신전 기사가 눈을 부라리며 레온을 노려보는 것을 카를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라트반을 따랐던 자들 중에서도 무척이나 그 능력과 실력이 출중한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신전에 남은 기사들이 추적을 해도 잡을 수 없는 자들이기도 했다. 그런 기사들을 모조리 이렇게 잡아 끌고 오다니. 카를이 레온의 능력을 다시 평가하고 있을 때, 그가 카를의 곁으로 다가왔다. 주변에 서 있던 신전 기사단이 경계하자 카를은 손을 들어 그들을 말렸다.

“제국의 황태자께 예의를.”

레온은 그런 카를의 행동을 마음에 든다는 듯 보더니 입을 열었다.

“오는 길에 들었네. 새롭게 나타나신 성녀님을 찾아 트리온으로 가고 있다지.”

“…그렇습니다.”

“괜찮다면 우리와 동행하는 것이 어떠한가? 그대도 잘 알다시피 나는….”

어느새 카를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레온이 허리를 숙여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전 성녀님께 무척이나 관심이 많거든. 그리고 그 옆에 붙어 있을 전 기사단장에게는 유감이 많고.”

그 말에 카를은 한 걸음 물러서서 레온을 살폈다. 금빛 여우라 불리는 인간이다. 대신전 안에서도 어리숙해 보이면서도 무엇 하나 틈을 남기지 않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런 카를의 망설임을 알아차렸는지 레온이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녀를 원해. 그러니 협조하지. 물론 내 기사들도.”

카를은 웃고 있는 얼굴 너머에서 번뜩이는 날것의 진실을 보았다.

‘이벨리나를 원한다라….’

찾아와 데려오면 어차피 이리스의 눈앞에서 죽이려고 했던 이벨리나다. 물론 젊고 아름다운 그 육체가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성력이 없는 그녀는 예전만큼 그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차피 그녀에게 대단히 육욕을 느끼기보다는 그저 짓밟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결국 버릴 것을 원하다니. 나쁜 거래는 아니다. 게다가 지금 레온와 그의 기사단의 능력은 제대로 된 기사단이 없는 카를에게 절실한 것이기도 했다. 손을 잡으면 레온은 분명 이벨리나와 라트반을 찾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카를은 여느 때와 같은 웃음을 지으며 레온에게 대답했다.

“황태자 전하의 협력에 대신전은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

레온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제국군이 곧바로 설치한 천막 안에서 그는 부관들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한참이나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간 다음 그는 이제 되었으니 잠시들 나가 있으라며 부관들을 내보냈다.

이럴 때는 재빨리 자리를 비켜 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부관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라며 잽싸게 천막을 나갔다. 혼자 남은 천막에서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듣던 그는 의자에 앉아 몸을 젖히며 위태롭게 의자를 흔들었다.

‘트리온으로 곧바로 가고 있었군.’

그의 부관들은 대신전의 일행들에게서 그들이 알게 된 정보를 물어 왔다. 성녀와 라트반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여관의 위치와 그동안 그들이 이동한 속도를 보아하니 그들 역시 카를처럼 트리온으로 곧바로 향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왜 그곳으로 향하는 거지?’

레온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제가 라트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성녀는 대신전 바깥의 세상을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그렇기에 그는 언제나 그녀를 찾아갈 때마다, 세상의 신기하고 아름다운 곳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녀는 그가 들고 간 화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언젠가 그녀는 제 본심을 무심코 중얼거렸다.

“여기서 나가면 꼭….”

대신전 안에서 살아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녀가 평생을 갇혀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가 타락했다는 소리를 듣기 전에는 대륙의 변방으로 직접 가서 성력을 사용해 사람들을 구한 적도 있었는데 그녀는 마치 평생 아무것도 보지도 못하고 아무 데도 가지도 못했던 사람처럼 말을 했었다.

그런 그녀가 왜 곧바로 트리온으로 가는 걸까.

레온은 그녀의 옆에 있을 라트반을 떠올렸다. 신전 기사단장의 자리를 버리고 성력이 사라진 그녀와 함께하고 있다. 라트반은 그녀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위험이 가득한 트리온으로 가는 것보다 차라리 대륙 반대편의 깊은 곳으로 가는 것이 나을 텐데. 물론 평생 수배령이 따라다니겠지만 지금 당장 트리온으로 가는 것보다는 덜 위험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천막 밖에서 부관 하나가 그를 불렀다.

“전하.”

“…들어와.”

자리를 비우라고 말했는데도 찾아오는 것을 보면 꽤나 중요한 사실을 알아 온 것 같았다.

“무슨 일이야?”

“신전 기사들을 넘기고 오다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전 기사단장이 다친 것 같다 합니다.”

“무슨 소리야?”

“죽음의 집에서 맹독이 발려 있던 칼도 같이 발견이 되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시체를 수습할 때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고 하더군요.”

“맹독이라면 어느 정도?”

“시체의 피부도 썩어 들어갈 정도의 맹독이었다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레온은 왜 성녀와 라트반이 트리온으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라트반이 당했군.’

그런 것은 대부분 마수의 독이다. 라트반도 성력이 있으니 어느 정도 상처와 독을 다스렸을 테고, 죽었다는 알릭도 도와주었겠지만 그것을 완전히 억누르지는 못했으리라. 지금 대륙 대부분의 신전은 대신전의 연락을 받고 두 사람에게 수배령을 내린 상태다.

이제는 그 정도의 독을 치료할 수 있는 신관들 중 그 어느 누구도 라트반을 치료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성녀의 성력뿐.

‘되찾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이리스라는 여자에게 부탁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레온은 부관에게 나가 보라는 손짓을 했다. 다시 혼자 남게 된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라트반을 살리기 위해 트리온으로 가고 있는 거였군.’

성녀는 그렇게 바라던 제 소망을 뒤로한 채로, 그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레온은 마음속으로 라트반을 향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욕설을 질시를 담아 던졌다. 부러운 새끼.

그도 그녀를 원했다. 아니, 자신은 라트반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었다. 이렇게 대신전에 쫓길 필요 없이 그녀가 원하는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를 줄 수 있는데.

한참이나 손에 얼굴을 묻고 있던 레온은 고개를 들었다. 라트반에 대한 것은 지금 생각해 봤자 배만 더 아플 뿐이다. 그는 미래를 생각해야 했다. 마지막에 제가 이기는 방법을.

그러다 문득 조금 전 그의 발아래 밟혔던 기사가 생각났다.

“…기사보다 배우에 소질이 있는 거 아니야?”

자신을 향해 눈을 부라리던 그의 모습에는 진심 어린 증오가 담겨 있었다.

‘너무 세게 밟았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설픈 연기로는 카를을 속일 수가 없으니까.

제 천막으로 돌아오기 전, 레온은 카를에게 이 신전 기사들은 살려서 라트반에게 끌고 가자고 했다. 그의 앞에서 하나씩 목을 베면 그도 기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다.

레온은 아픈 손을 흔들었다. 신전 기사단이 아니랄까 봐 제 단장만큼이나 단단한 기사들이었다.

‘카를 놈은 인질을 잡았다 생각하겠지.’

인질은 무슨. 신전 기사들은 가장 빠르고 편하게 제 단장에게 가는 길을 선택한 것뿐이다. 그는 좀 거들었을 뿐이고.

***

솨아아.

산 전체에 나뭇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가득했다. 라트반은 커다란 바위 아래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쉬이 그칠 비는 아니었다. 어차피 날이 저물고 있었으니 오늘은 이곳에서 자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옆에 누운 성녀를 바라보았다. 모포 위에 눕자마자 죽은 듯 까무룩 잠에 빠져든 그녀는 아무래도 산의 공기가 차가운지 몸을 움츠리며 떨었다. 그 모습에 라트반은 빠르게 제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그러자 떨림이 멈추고 옅은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피어올랐다.

제 옷의 끝자락을 꼭 쥐고 자는 성녀를 보던 라트반은 시선을 돌려 제 손을 보았다. 그는 천천히 장갑을 벗었다. 그러자 단단히 묶은 흰 붕대가 드러났다. 그는 조심스럽게 붕대를 풀었다.

“후….”

긴 한숨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퍼졌군.’

어젯밤 보았던 것보다 검은색으로 변한 피부의 면적이 더 늘어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성력으로는 독기를 눌러두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어느 정도 더 커졌는지 가늠한 그는 다시 붕대를 매었다.

‘시간이 없어.’

빠르게 산을 넘어가고 있다지만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게다가 이 독은 퍼지면 퍼질수록 그의 체력을 잡아먹을 것이다.

‘트리온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아마도 죽겠지.

물론 죽을 생각은 없다.

‘이리스라고.’

라트반은 그 이름을 중얼거리다 팔을 쓸었다. 독이 퍼지고 있는 것일까. 그는 처음으로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너, 이년! 일부러 이러는 거지!”

촌장은 그렇게 외치며 이리스의 멱살을 잡았다. 그의 손에 붙들린 이리스는 겁에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얼굴을 때릴 것처럼 손을 올리며 촌장은 소리쳤다.

“사람들의 독도 네가 치료해 줬다며! 모른 척해도 소용없어! 분명 너라고 말한 사람이 있어. 그리고 대신전의 신관도 너를 찾고 있다지?”

거칠게 흔들리는 탓에 머리가 어질거렸다. 이리스는 히끅거리는 소리를 내며 팔로 머리를 감쌌다. 촌장이 당장이라도 그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보, 일단 손 좀 놓아요!”

촌장에게 잡힌 이리스를 구해 준 것은 촌장의 부인이었다. 그는 강하게 제 남편을 밀쳐 내더니 목을 감싸고 겨우 숨을 돌리는 이리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이리스의 치맛자락을 붙잡더니 울며 빌기 시작했다.

“우리 애가 너에게 좀 짓궂게 군 거 알고 있단다. 혹시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면 내가 사과할게. 그러니 제발 우리 애 좀 살려 다오, 응? 너도 우리 애가 너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랬던 것 잘 알고 있잖니. 그냥 좀 짓궂은 장난이었을 뿐이란다.”

“짓궂은 장난이라구요…?”

그 말에 이리스는 입술을 물었다.

그들이 살려 달라 비는 그 귀한 아들이 제게 무슨 짓을 했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이 마을의 망나니였다. 촌장의 아들이랍시고 여기저기 건들거리며 시비를 걸어 대는 것은 물론 마을의 젊은 여자들에게 툭하면 성적인 욕설을 농담이랍시고 던지는 자였다. 그중에서도 부모가 없는 이리스는 그에게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걸핏하면 시비를 걸고 몸을 만지려 들었다. 기겁하며 도망을 가면 이리스가 산에서 캐어 와 말리고 있던 약초를 발로 밟고 침을 뱉어 못 쓰게 화풀이를 했다. 술에 취한 날에는 밤에 그녀의 집으로 들어오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 탓에 이리스는 문이 잠겨진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해야 겨우 잠들 수 있었고, 작은 소리만 나도 놀라 일어나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을 그저 짓궂은 장난이라고?

“그래. 저 나이 또래 애들이 다 그러지 않니. 그냥 제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서 그런 것뿐이야. 우리 애가 말과 행동이 좀 험했을지는 몰라도 속은 착한 아이란다. 이번에 다친 것도 다 마을을 위해 나서다가 그런 것 아니었겠니.”

이리스는 촌장의 아들이 어쩌다 다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최근 이쪽 지역에 마수가 나타나면서 마을이 뒤숭숭했다. 불안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촌장의 아들은 제대로 뭔가를 베어 본 적도 없으면서 검을 들고 제 실력이 어지간한 기사들보다 나을 거라며 큰소리를 쳐 댔다.

그리고 다음 날 마수를 잡겠다고 나간 촌장의 아들은 밤이 되기도 전에 시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을을 위해 제 몸을 바친 아이야. 그런데 불쌍하지도 않니? 우리를 위해 저렇게나 희생했는데?”

강하게 깨문 입술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이리스는 마치 도와주지 않는 네가 나쁘다는 듯 말하는 촌장 부인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불쌍하다니? 그가 거의 죽어서 돌아왔던 날, 왜 바로 죽지 않았는지 아쉬워했던 자신이 기억났다.

이리스는 촌장의 아들이 조금도 불쌍하지 않았다.

그때 문가가 소란스러워지며 누군가 들어왔다.

“상태가 위독해져 가고 있어요!”

마을 사람 누군가가 촌장의 아들을 업고 찾아온 것이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촌장의 아들은 숨이 얼마 남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촌장의 부인은 비명을 지르며 아들에게 다가갔고 촌장은 다시 이리스를 붙잡았다.

“어서! 어서 치료하란 말이야! 네가 마물에게 다친 사람들을 다 구했다고 했다고! 왜 내 아들은 못 구해 주겠다는 거야! 어서 치료해! 못 하면 죽여 버리겠어!”

촌장은 이리스를 제 아들 쪽으로 잡아끌면서 그녀의 집 안 구석에 있던 약초를 다듬는 칼을 집어 들었다.

“어서! 어서 살려 내란 말이야!”

눈앞에서 칼을 흔들어 대자 이리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만약 지금 그의 아들을 치료하지 못하면 정말로 그녀를 죽일 기세였다. 마을 사람들이 흥분해 날뛰는 촌장을 말리지 않았다면 상처 몇 개는 이미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리스는 겁에 질린 채로 촌장의 아들의 등 위에 손을 올렸다.

‘싫어.’

이 사람이 싫었다.

‘구해 주고 싶지 않아.’

살아나면 또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그런데 왜 제가 이 사람을 도와주어야 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리스는 정신을 집중했다.

“…어?”

하지만 그녀의 손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 그럴 리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집 안에서 성력이 생기는 것을 확인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리스가 당황하는 얼굴이 되자 촌장과 부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 가기 시작했다. 이리스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아무 일도 없는데?”

“못 하는 거 아니야?”

“하긴, 애초에 이런 산골 구석에 성력은 무슨. 내가 아닐 거라고 말했잖아.”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촌장의 부인이 이리스의 팔을 붙잡았다.

“너,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성력이 있는데 없는 것처럼 장난치는 거지? 이러면 안 돼. 어서 네 성력으로 우리 애를 치료해 주어야지. 성력이 있는 자는 없는 자들을 도와야 하는 게 당연한 거야.”

네가 갖고 있는 것은 당연히 모두에게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는 촌장 부인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아니면… 설마 거짓말을 한 거니? 네가 성녀라고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거야?”

촌장 부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리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한 번도 자신이 성녀라 말한 적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가기에 누구라도 좋으니 도와 달라 울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력이 제 몸에 머물기 시작했을 뿐이다.

“성력이 있다는 게 거짓말이라고?”

부인의 외침에 촌장은 이리스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작은 몸이 허공에서 발버둥을 쳤지만 촌장은 손을 놓지 않았다.

“너를 믿고 있었는데 거짓말로 내 아들을 죽게 만들겠다 이거냐? 내 아들이 죽으면 내가 널 가만히 둘 것 같아?”

“사, 살려 주세요!”

이리스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이리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촌장의 말에 마을 사람 모두는 그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애초에 이리스가 자신이 살릴 수 있다 한 것도 아니었고 성력이 있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촌장 부부가 멋대로 다른 자들의 말을 믿고 찾아와 매달린 것 아니었는가.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 사실을 말해 줄 용감한 자는 없었다. 이리스가 없어지면 그 화는 자신에게 올 테니까.

이리스는 그런 마을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런 인간들 따위, 다 죽어버리면 좋겠어.

그때였다.

캬아아아악!

하늘이 찢어지는 것 같은 거대하고 불길한 소리가 모두를 덮쳤다.

“마수다!”

집 밖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피해! 마수의 습격이야!”

그 소리에 사람들이 미친 듯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촌장의 아들을 업고 있던 남자는 촌장 부부의 눈치를 보더니 등에 있던 촌장의 아들을 그대로 바닥에 던지고서 황급히 도망쳤다. 촌장은 이리스를 잡았던 손을 놓고는 재빨리 제 아들에게 다가갔다. 이리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거기 서지 못해!”

그런다고 설 리가 있나. 이리스는 저를 붙잡으려 하는 손을 피해 미친 듯이 밖으로 내달렸다.

“……!”

하지만 집 밖으로 나온 순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나타난 마수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강아지만 한 크기의 벌들이 하늘을 새카맣게 메우고 있었고 그중 몇 마리는 벌써 사람들에게 들러붙어 날카로운 턱으로 살을 잡아 뜯었다.

“으아아악!”

“사람 살려!”

갑작스럽게 눈앞에 펼쳐진 지옥의 풍경에 이리스는 몸을 돌렸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숨어야….

콰지직!

이리스가 몸을 돌린 순간 거대한 새의 발이 그녀의 집을 짓밟았다.

“아….”

몸을 떨며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작은 언덕만 한 거대한 마수가 이리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아주 멀리 날아가는 것을 숨죽이며 봤던 마수, 헥사였다.

“아, 아….”

도망가야 하는데 발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부서진 집의 파편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집 안에 있었던 촌장 가족의 피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저 피에 제 피도 더해질 것이고.

“사, 살려….”

이리스는 손을 올렸다. 성력을 써야 한다. 마수는 성력을 싫어한다고 했으니까… 성력을 쓰면 분명히 도망을….

하지만 그녀의 손끝에는 아주 희미한 성력만이 맴돌 뿐이었다.

죽는다.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이리스는 눈을 감았다. 그런 이리스를 비웃는 것 같은 헥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헥사는 발을 들어 올렸다. 그대로 짓밟을 생각인 것이다.

그 순간, 갑자기 이리스의 허리를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

이리스는 놀라 저를 붙잡은 것을 바라보았다. 타오를 것 같은 짙은 붉은색의 털. 분명 짐승의 손이었다.

“누, 누구….”

이리스는 떨며 고개를 돌렸다.

“……!”

또 다른 마수가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그곳에는 저를 붙잡은 털과 같은 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 그는 더욱더 짙은 붉은색의 눈동자로 이리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이리스는 확신했다.

이 남자는 마수다. 그것도 헥사보다 더욱 위험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