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하며 카를은 이벨리나의 얼굴에 튀어 있는 잉크 자국을 닦아 주었다. 마치 도자기 인형을 다루는 것 같은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대신관도, 방 안에 있는 다른 신관들도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아….”
기억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갑작스레 다시 찾아온 어둠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이게 이벨리나가 보여 주지 않았던 기억이라고?’
이벨리나는 카를에 대한 기억을 한 조각도 나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그랬기에 카를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에 얼마나 긴장을 하면서 기억을 보았던가. 하지만 내가 본 기억은 그야말로 훈훈한 어린 시절의 한 조각이었다. 보고 있으면 부러워질 정도로 모두의 사랑과 애정을 받고았던 시절. 기억 속에서의 이벨리나 역시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가.
어딜 보아도 감출 이유가 없는 기억이었다.
“…….”
나는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지만 역시나 이벨리나가 이런 기억을 숨긴 이유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어쨌든 여기가 이벨리나의 의식 속은 맞는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움직이고 기억까지 훔쳐 보았지만 여전히 이벨리나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녀가 날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면 다른 기억을 좀 더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분명 더 많은 기억들이 이곳에 있을 것이다.
‘이건 기회야.’
나는 조금 전 빛나던 곳을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하지만 손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저었다. 다른 곳을 더듬어 보아도 특별히 만져지는 것은 없었으며 반응하는 것도 없었다.
‘내가 어떻게 했더라?’
처음 빛이 나타났을 때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분명 자국에 대한 기억을 조금이라도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그다음에 빛을 보았어.’
그렇다면 다시 똑같이 하면 되지 않을까.
나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무엇이든 좋다. 이 자국에 대한 것, 이벨리나가 숨기고 있는 기억을 다시 조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순간, 내 머릿속에 조금 전의 기억에서 본 카를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감은 눈꺼풀 너머로 빛이 어른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재빨리 눈을 떠 보자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빛나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이 빛나고 있었다. 마치 기억을 덮고 있던 어둠이라는 껍질을 하나둘 벗겨 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 어둠을 전부 걷어 내면 그 너머에는 이벨리나의 완전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조금 익숙해진 걸음으로 제일 가까이에 있는 빛에 다가갔다.
역시나, 빛 너머에 또 다른 광경이 보였다. 재빨리 그것에 손을 뻗었다.
‘서둘러야 해.’
이벨리나가 당장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불안함이 들었다. 그러면 이 기억들을 보는 것은 더 이상 무리일 것이다. 그러니 그 전에 하나라도 더 봐야 했다. 손에 잡힌 빛이 일렁였다. 그 너머에 있는 광경이 마치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처럼 생생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자, 잘할 수 있을 거야….”
이벨리나는 거울 앞에 서서 덜덜 떨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본 기억보다 더 큰, 아이에서 소녀로 넘어가는 모습을 한 이벨리나가 거울에 보였다. 이벨리나는 흰색의 예복을 입은 채였다.
‘기도회구나.’
이벨리나는 얼마 전, 내가 기도회에서 입었던 그 예복과 똑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곧 문이 열리고 신관들과 기사들이 들어왔다. 나는 본 기억이 없는, 기사단장의 예복을 입은 나이 지긋한 남자가 이벨리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긴, 이때는 아직 라트반도 어렸을 때이니 그가 기사단장일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옆을 돌아본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방 한편에 서 있는 기사들의 제일 끝에, 아직 신전 기사단의 문장을 붙이지 못한 예복을 입은 라트반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생각하지 못했던 그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되다니. 정말로 이것이 과거의 기억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며 마저 이어지는 기억을 바라보았다.
덜덜 떨리는 이벨리나의 작은 손을 기사단장이 조심스레 잡으며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 하, 하지만…저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서, 성력을 쓰는 건 처음이라….”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이벨리나의 모습에 주변에 서 있는 자들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이제 첫 기도회를 치르는 어린 성녀를 향한 자랑스러운 눈빛도 함께 했다.
“몰려든 사람들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힘들어지시면 언제든지….”
“안 돼요!”
이벨리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떨림은 멈췄다. 조금 전 잔뜩 긴장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자부심에 가득 찬, 당당한 얼굴을 한 이벨리나가 서 있었다.
“나는 모두에게 축복을 베풀 거예요.”
그렇게 말한 이벨리나는 가슴을 쭉 펴며 말했다.
“카를이 그랬어요, 나는 신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니까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가 가진 힘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이벨리나의 모습에 모두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이 피어났다.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조금 전까지 내가 보았던 것들을 다시 떠올려 보았지만 역시나 자국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점점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것 말고! 뭐라도 좋으니까 제발!’
나는 다시 제일 가까이에 있는 빛으로 다가갔다. 점점 더 초조함이 커져 갔다. 빛에 손을 뻗으며 진심으로 빌었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제발 자국에 대한 정보가 있기를.
빛에 손이 닿은 순간 다시 어둠에 휩싸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천천히 익숙한 공간의 모습이 보였다.
“여긴….”
내 눈에도 익숙한 침실의 모습이었다. 구석에 있는 거울에 이벨리나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의 모습과 거의 비슷하지만 조금은 더 앳된 모습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겨우 성년이 되는 나이로 보였다. 아무래도 몇 년 전의 모습인 듯했다.
어두운 방에서 침대의 끝에 걸터앉아 있던 이벨리나는 천천히 제 잠옷을 끌어 올렸다.
“……!”
그것을 보던 나는 비명이 터져 나오려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허벅지에 자국이 있었다. 하지만 세 개가 아닌 한 개였다. 그때 이벨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하지…?”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울음이 배어 있었다. 끅끅거리는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리면서 무릎 위로 눈물이 투두둑 떨어져 내렸다.
나는 처음 보는 이벨리나의 모습에 놀라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곧 이벨리나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 낸 다음 두 손을 모았다.
“신이시여, 저는… 당신의 가르침대로… 제 힘을… 필요한 자에게…”
이벨리나가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본 기억 그 어디에서도 이벨리나는 신에게 기도하지 않았다. 성녀였음에도 말이다.
똑똑똑똑.
마치 약속이라도 하고 온 것 같은 네 번의 노크 소리.
“흡….”
그 소리에 이벨리나는 입술을 깨물며 숨을 죽였다. 소리가 들린 문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때였다.
너!
머릿속에서 이벨리나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들렸다. 그 순간 알아차렸다.
‘들켰어!’
어떻게! 여기에! 감히!
정리되지 않은 단어들이 감정을 가득 담아 쏟아지고 있었다. 이벨리나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기억은 그대로 멈추더니 곧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안 돼!”
나는 소리를 질렀다. 겨우 보게 된 기억인데 이렇게 사라지게 놔둘 수 없었다. 적어도 이 기억만이라도 더 봐야 했다. 도대체 왜 이벨리나는 이 자국을 보고 기도를 한 거지? 누가 찾아온 거지? 그리고 왜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이 대신전에서 그녀를 해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때 희미해지던 주변의 모습이 다시 조금씩 선명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멈췄던 기억 속 장면이 느리지만 천천히 다시 움직이는 것도.
어떻게 네가 기억에 손을 댈 수 있는 거지!
이벨리나의 비명에 나야말로 소리치고 싶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벨리나가 멈추었던 기억을 분명히 내가 다시 흘러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 속의 이벨리나는 느릿한 걸음으로 문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문 너머에 누가 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놔둘 줄 알아?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이벨리나가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앞의 모든 것이 마치 깨진 유리 위에 비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먼 곳의 광경에서부터 조각들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
기억 속의 이벨리나는 이제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그녀가 열려고 하는 문의 일부분이 바스러지고 있었다. 황급히 손을 뻗자 부스러지던 것이 느려졌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완전히 금이 가고 있는 조각의 위로 천천히 문이 열리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사라져!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벨리나의 외침과 동시에 지금까지 버틴 것이 무색하게 모든 기억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암흑이 가득한 공간이 다시 보였다. 아니, 이제는 암흑이 아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얼굴의 이벨리나가 내 앞에 있었으니까.
감히… 네가….
분노로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벨리나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 그 몸에서 너를 쫓아내 주지. 다시 숨도 제대로 못 쉬던 그 버러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게 해 주겠어!
그런 그녀의 외침에 나는 대답했다.
“아니, 넌 그럴 수 없어.”
……!
조금 전 상황에서 나는 확신을 얻었다. 나에게 보여 주느니 차라리 지워 버릴 정도의 기억을 내가 건드렸다. 하지만 이벨리나는 그저 소리를 질렀을 뿐, 나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못했다.
동시에 이상함을 느꼈던 것들이 다시 생각났다.
처음과 달리 나는 이제 완전히 이 공간에서 이벨리나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던 공간에서 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고, 내가 그녀의 의식으로 들어왔음에도 이벨리나는 내가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모든 상황들이 한 가지 답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이제 이 몸은 완전히 내 것이 되었어. 그렇지,이벨리나?”
…….
내 말에 이벨리나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졌다. 그것이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다. 내가 생각한 가설이 맞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처음에는 허탈함을 느꼈다. 가슴속 깊은 곳에 뭉쳐 있던 감정이 썰물처럼 손가락 끝까지 밀려 나가 몸 안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았다.
‘날 속였어.’
그것을 깨달은 순간 잠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었던 걸까. 왜 이벨리나가 하는 말이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스스로의 멍청함을 욕하며 이벨리나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무감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순간 비었던 내 몸을 해일처럼 거세게 밀려온 분노가 가득 채웠다.
손이 떨려 왔다. 목을 넘어오는 억한 감정에 숨을 쉬는 것도 어려웠다.
“…재미있었어?”
이벨리나는 이 몸을 무기로 나를 협박했다. 제 말을 듣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네가 잠시 맛본 그 모든 것들을 다시 가져갈 것이라고. 한 번 죽었던 나에게 그보다 무서운 말은 없었다. 그렇기에 결국은 이벨리나의 말에 머리를 숙이지 않았던가.
매일 아침,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 울렸던 이벨리나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떠올랐다. 꼴사납고 웃긴 것을 보고 있는 듯한 그 웃음소리가.
이대로 소리를 지를까, 아니면 이벨리나에게 달려들어 뺨이라도 한 대 올려붙일까. 내 속을 가득 채운 채 끓고 있는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돌려주고 싶어.’
하루하루 몸을 갉아먹었던 불안감과 결국은 이벨리나의 말대로 하룻밤을 구걸할 상대를 찾아 울며 걸었던 자괴감이 생각났다. 나를 나락으로 떠밀던 순간들을 이벨리나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조금 전에 알아차리지 않았던가.
나는 이벨리나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조금 전이라면 그대로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했을 몸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곧바로 서 있을 수 있었다.
확신을 얻으니 누가 설명해 준 것도 아닌데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이벨리나의 의식 안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것이 된 몸 안에 있기에 내가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자 여기저기서 빛의 조각들이 생겨났다. 어둠을 찢고 튀어나오는 빛에 이벨리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너… 무슨 짓을!
조금 전, 내가 그녀의 기억을 보고 있을 때 미친 듯이 분노했던 이벨리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유 따위는 전혀 없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망설임 없이 제일 가까이에 있던 빛에 손을 뻗어 강하게 움켜쥐었다. 곧 거대한 빛무리가 몸을 뒤덮었다.
잠시 후 눈을 깜빡이자 기억 속의 풍경이 보였다.
‘대신전의 중앙 건물인가?’
주변이 온통 하얀 벽으로 만들어진, 아무것도 없는 넓은 공간의 모습이었다. 뺨을 스치고 가는 바람이 서늘하고 습한 것이 느껴졌다.
‘…지하?’
그 순간 눈앞에서 시퍼런 불길이 솟아올랐다. 집채만 한 크기의 푸른 불꽃 덩어리는 보는 순간 성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크기도 크기였지만 그 위압적인 기세에 나는 그저 입을 벌린 채 바라보기만 했다.
일렁이는 성력의 불길은 그 크기보다 더한 압도감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한 번의 일렁거림에 세상 어느 곳의 강의 흐름이, 산의 모양이, 바다의 깊이가 변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거대하고 강대한 힘의 덩어리였다.
이벨리나는 그런 거대한 덩어리를 익숙하다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곧, 타오르던 성력의 불길이 갑자기 거세게 흔들리더니 세찬 바람과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그 불길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조금 전에 비하면 겨우 절반이나 될까? 그래도 여전히 거대하긴 했지만 그 전의 모습을 보았기에 남아 있는 불길은 무척이나 약해 보였다.
“윽…!”
그 순간 이벨리나의 몸이 털썩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또… 줄어들었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시야의 모든 광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벨리나가 이 기억도 지우고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순식간에 기억은 사라졌다. 다시 보이는 것은 어두운 공간과 더없이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벨리나뿐이었다.
다시 기억들을 끌어낼까 했다. 그러면 이벨리나는 더욱더 분노하겠지. 나는 이벨리나의 손을 보았다. 그녀의 손에서 빛의 조각들이 바스러져 모래처럼 떨어지더니 곧 사라졌다. 아마 나는 저 기억들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벨리나의 분노를 끌어냈다는 즐거움도 잠시,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벨리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보려 하면 그것들을 전부 바스러트릴 생각인 것이다.
‘그러면 곤란해.’
다리에 있는 자국. 그것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기에 쉽사리 이벨리나를 향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해서 이 안에 있는 기억들을 억지로 끌어내 그녀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나에게 불리한 일이 될 것이다.
결국 한참 후에야 나는 이벨리나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기억을 놔둬.”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너도 자국을 지우고 싶어 했잖아. 그래서 아슬란을 불러들여 그와 계약을 했겠지.”
나는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최대한 이벨리나를 자극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다시 말했다.
“이 자국 지우는 것… 도와줄 테니까….”
하지만 내 말은 끝나지 못했다. 이벨리나의 입에서 풋, 하고 웃음이 새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곧 배를 움켜잡더니 세상에서 제일 웃긴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큰 웃음소리가 암흑 멀리 울려 퍼졌다. 허리를 숙인 채 몸을 들썩이는 이벨리나의 모습은 어찌 보면 오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참 후 그녀가 허리를 들었다. 그러면서 너무 웃은 탓에 눈가에 맺힌 눈물을 툭 털어 내더니 말했다.
몸 좀 얻었다고 어디까지 건방을 떨 생각인 건지 모르겠네. 도와준다고? 네가? 나를?
그렇게 말한 이벨리나는 다시 소리 높여 웃었다. 계속 이어질 것 같았던 그녀의 웃음소리가 한순간에 멈췄다.
꺼져. 네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
이벨리나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조금 전 내가 했던 것처럼 여기저기에서 빛의 조각들이 나타났다. 이벨리나는 그것을 손에 쥐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들을 손안에서 으스러트렸다.
‘이벨리나가 통제권을 다 잃은 건 아니었구나.’
아무리 내가 이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기는 어디까지나 이벨리나의 의식 속이다. 원래의 주인인 그녀의 의지가 아무래도 내 힘보다는 더욱 크게 작용하는 것이 분명했다. 예전 그녀의 의식 속에서 나올 때와 비슷하게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입술을 물었다. 따끔한 통증에 잠시 정신이 들었다. 그 순간 내 주변에 몇 개의 빛의 조각이 떠올랐다.
너!
이벨리나가 외치는 소리를 무시한 채 나는 비틀거리며 다가가 빛의 조각을 잡았다. 한 손에 한 개씩. 그 기억이 무엇인가 살펴볼 새도 없이 빠르게 의식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곧,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모든 것이 박살 난 성녀의 침실이었다. 부서진 의자, 찢긴 커튼, 깨진 거울과 꽃병. 방 안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성한 것이 없었다. 성한 것이라면 오직 하나. 이벨리나뿐이었다. 이벨리나는 처참한 방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왜 죽을 수 없는 거지?”
그렇게 말한 이벨리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손에는 날카로운 꽃병의 파편이 들려 있었다.
“왜 다시 영혼이 돌아오는 건데? 성녀라서 그런 거야?”
천천히 그녀의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곧 엎드린 그녀의 몸이 들썩이며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흐느낌은 곧 절규가 되었다.
의식이 빠르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곧 현실에서 깨어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나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이벨리나의 울음소리에서 귀를 뗄 수가 없었다.
내가 본 그녀의 기억은 모두 행복한 것들뿐이었다. 모두가 그녀를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스스로는 강대한 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의 마지막에는 스스로 죽으려 하고 있었다.
그녀의 인생은 나와 정반대였다. 나는 추억이라고 부를 만한 것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주변에 아무도 없었으며 무엇 하나 대단한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니 이벨리나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할 텐데,
이상하게 자꾸만 들려오는 이벨리나의 울음소리에 나도 함께 슬퍼졌다. 이유 모를 절망과 끔찍한 기분이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나를 덮었다. 고개를 돌리자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빛 조각이 깜빡거리는 것이 보였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나는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것은 내 손바닥 안에서 스며들듯 사라졌다.
주변의 풍경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지만 감기는 눈에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아직 닫히지 않은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츱, 하고 젖은 것을 빨아들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가끔씩 숨이 걸리는 듯한 컥컥거리는 소리였다.
‘이벨리나?’
역겨운 것을 뱉어 내는 것 같은 기침 소리가 들린 순간, 그 소리가 이벨리나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고 있을 때,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됩니다, 이벨리나. 좀 더 참고 노력하십시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른 기억에서 본 것과 똑같은, 다정하고 부드러운 카를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소름이 끼쳤다. 다시 젖은 소리가 들려왔고 간간이 이벨리나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런 그녀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다시 카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잊지 마세요, 이벨리나. 당신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으읏!”
카를의 목소리에 헐떡임이 섞였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베풀어야 하는… 사람임을.”
그의 말이 끝난 순간, 우욱거리는 이벨리나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이 기억의 끝이었다. 찾아오는 어둠을 보며 눈을 감으려 할 때 멀리서 이벨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널 데려온 게 실수였어. 마지막까지 내가 버텼어야 했는데.
소리를 지르던 기세는 다 어디로 갔는지 허탈함만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 그저 그녀의 생각을 정리하듯 내뱉는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아직 힘이 다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석판이 있으니까.
그것이 내가 의식 속에서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성녀님!”
“성녀, 정신이 드나?”
나는 내 옆에서 들려오는 라트반과 아슬란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정신을 잃고 싶어졌다.
***
똑딱똑딱.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넓은 방 안에 시곗바늘의 소리만 들렸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지만 지금 이곳에는 세 사람이 있다. 나와 라트반 그리고 아슬란.
라트반과 아슬란은 계속해서 서로를 노려보며 서 있었고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끔찍할 정도의 적막 속에서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라트반이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명령을 내려 달라는 것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허리춤에 있는 검을 잡은 그의 손마디가 하얗게 변해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얼마나 지금 힘을 주어 아슬란을 베려는 것을 참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대신해 입을 연 것은 아슬란이었다.
“신전의 개새끼에게는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할 것 같군. 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짖어 대는 것도 한심한데 제 주인을 탐하고자 하는 욕망도 숨기지 못하고 침을 뚝뚝 흘려 대는 것을 보니 말이야.”
신랄한 말이었고 상대의 아픈 곳을 사정없이 찔러 대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겨우 평정을 유지하고 있던 라트반이 몸을 움직였다.
“라트반, 참아요!”
나는 곧바로 아슬란을 향해 달려들려던 라트반의 앞을 막아섰다. 물론 아슬란을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내 시선에 아슬란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나에게 말했다.
“성녀, 저것에게 제대로 말해 두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대가 저놈을 탐했던 것은 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고 말이야.”
“……!”
아슬란의 말에 라트반의 얼굴이 굳었다. 계속해서 아슬란을 노려보던 시선이 처음으로 나를 향했다.
“…무슨 말입니까?”
딱딱한 라트반의 목소리에 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싶었다. 동시에 아슬란을 걷어차 버리고 싶기도 했고.
‘…어떻게든 잘 말해서 라트반을 먼저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예전에 내가 레온과 자고 났을 때도, 아슬란과의 흔적을 다 들켰을 때도 라트반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렇게 물러나 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는 처음으로 나에게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절대로 예전처럼 조용히 물러서 주지 않을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그리고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새 일어난 아슬란의 팔이 내 허리를 감아 끌었다. 어, 하는 소리를 낼 틈도 없이 내 몸이 소파에 앉은 그의 몸 위로 쓰러졌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소리치기도 전에 아슬란의 손이 새로 입은 내 잠옷을 끌어 올렸다.
서늘해진 피부 위를 뜨거운 손가락이 쓸어 올린다. 그 행동에 지난밤이 떠올라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그런 나와 아슬란을 바라보는 라트반의 얼굴은 나보다 더욱 붉어졌다.
“아슬란!”
“네놈, 무슨 짓을…!”
놀라는 나와 정말로 이제는 죽여 버리려 드는 라트반을 무시한 채 그의 손가락이 내 허벅지를 눌렀다.
“이것.”
짧지만 진지한 목소리였다. 아슬란의 얼굴에는 옅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이대로 두면 이게 그대를 잡아먹을 거야.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성력만 사라지는 게 아니지. 그대를 제멋대로 통제하려 들지. 이번처럼.”
아슬란이 자국을 누르는 손가락에 힘을 주자 나도 모르게 허리가 움찔거렸다. 다시 녹진해질 것 같은 기분에 나는 황급히 아슬란을 밀어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신음 소리를 내고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허리를 단단히 감은 손은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슬란은 여전히 나를 끌어안은 채 라트반에게 말했다.
“알겠나, 신전의 개여. 너의 주인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없애기 위해 나를 불렀지.”
그렇게 말한 아슬란은 내 귓가에 라트반이 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계약에 관한 건 비밀로 해 주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맙다고 말할 뻔했다. 지금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한 표정이 된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라트반이다. 만약 아슬란과 이벨리나의 계약 내용에 대해서 알게 되면 그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한참 후, 라트반은 검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러더니 나에게 물었다.
“…정말입니까?”
조금은 힘이 빠진 듯한 라트반의 목소리에 나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신전의 지식과 내 성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 아슬란의 도움을 빌렸습니다. 그러니….”
빠르게 말하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라트반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빛에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이 다른 문제에 대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가 정말이냐고 묻는 것에는 아슬란의 말이 사실이냐는 의미도 있었겠지만 지난밤, 내가 그를 안으려 했던 것이 이 자국이 불러일으킨 충동 때문이냐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아….”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답해야 했다. 알 수 없는 사술에 홀려 당신을 억지로 끌어들였다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 말이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어쩐지 그렇게 말하면, 두 번 다시 라트반이 나를 찾아오는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싫어.’
나는 라트반을 보았다. 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이리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녀를 따랐던 성기사. 그렇기에 그와의 관계가 조금씩 변해 갈 때마다 안도했었다. 기도회 때 말없이 내 옆에 서 있던 그의 모습이 얼마나 고마웠던가.
시델에게 위협을 당했을 때뿐 아니라, 레온과 잔 다음 혼란스러움에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도 그는 나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검을 가르쳐 달라는 내 부탁에 나를 찾아오더니, 그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나오자 신나서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하던 그의 모습도 생각이 났다.
그런 라트반의 모습은 책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원래의 흐름과 달리 바꾼 인연. 끔찍했던 관계에서 이제는 적어도 상대를 경계하지 않고, 남들보다 가까운 호감을 가질 수 있게 된 사람.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손가락 끝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라트반, 나는….”
그때 내 몸이 뒤로 휙 끌어당겨졌다. 놀라 돌아보니 아슬란이 다시 허리를 감아 그의 쪽으로 끌어당긴 것이었다.
“뭘 그렇게 머뭇거리는 거지? 어서 저걸 내치라고.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저놈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으니.”
그렇게 말하는 아슬란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초조해져 있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난 대신전에 머물 거야. 그러니 혹시라도 이 자국이 다시 그대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바로 나를 찾으면 돼. 물론 그냥 불러도 언제나 환영이지만.”
잠시 가라앉았던 날카로운 기세가 두 사람 사이에 다시 피어올랐다. 거기까지 말한 아슬란이 비웃음을 담아 라트반에게 말했다.
“게다가 성녀를 수호하는 의무를 가진 놈이, 당신의 몸에 이런 게 생겼을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부터가 무능함의 증거야. 적이 들어오는지도 모르는 개새끼를 키울 필요가 있을까?”
으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라트반은 그런 아슬란의 말에 뭐라 반박하지는 못했다.
‘…라트반 잘못이 아니긴 하지만.’
이건 이벨리나가 동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절대로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떻게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전부 말할 수도 없고.’
라트반의 죄책감을 덜어 주고 싶긴 했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말할 자신이 없었다.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사실 나는 이벨리나가 아니다, 나는 다른 세계에서 병들어 죽은 아무것도 아닌 영혼이고 몇 개월 전부터 이 몸에 들어와 살고 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나는 성력조차 모두 잃어버릴 것이다.’라고 말하면 이 두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순간, 흠칫 몸이 떨리며 소름이 돋았다.
라트반은 신전 기사단의 단장이다. 그는 어릴 적 신과 대신전 그리고 성녀를 위해 그의 인생을 바치겠다는 서약을 한 사람. 그는 제 목숨을 버려도 서약을 버리지는 못하는 사람이다. 책에서 이리스가 나타나 그녀가 가진 성력이 진짜임을 확인받았을 때, 라트반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었다.
‘그런데 내가 성녀가 아니라고 말하면….’
책에서 이벨리나는 성력을 잃은 후 가짜 성녀로 불리었다. 그런 이벨리나조차도 아닌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가짜조차도 되지 못하는 가짜.
이제 책에서처럼 라트반의 검 끝이 곧바로 나를 향하지는 않을 거라는 작은 믿음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리스의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성녀를 섬기게 되어 있는 사람이니까.
‘아슬란도….’
그와 몸을 섞던 도중, 조금이라도 숨을 돌리기 위해서 그에게 지금도 이미 죽을 것 같은데 과연 내가 당신의 아이를 가지면 살아남을 수 있겠냐고 지나가는 말처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아슬란은 망설임 없이 알려 주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