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10/48)

“늦은 시간에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다가왔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복도는 평소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 곳이다. 그렇기에 다른 곳이라면 밤새 걸어 놓았을 불도 없어 빛이라고는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전부인 곳. 그런 곳에 왜 그가 있는지 지금은 물어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설마 이런 곳까지 신의 종들을 살펴보시기 위해 온… 것은 아닌 것 같군요.”

가까이 다가와 장난을 걸듯 말을 하던 그가 잠시의 침묵 뒤에 표정을 굳혔다. 당황스러울 것이다. 잠옷 하나를 걸친 채 맨발로 뛰어나와 인기척이 드문 곳에 있는 성녀가 울기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잠시 고민한 다음 다시 말을 꺼냈다.

“괜찮으시다면 지난번에 함께하지 못한 후식을 지금 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 처소가 무척 조용해 대화를 나누기에는 괜찮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공손히 팔을 내밀었다. 만약 함께 가겠다면 에스코트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지난 며칠간 그가 보냈던 편지들이 생각났다.

‘이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밤을 함께 보내자고 해도 절대로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가 내민 팔을 붙잡았다. 지금, 이 남자가 필요했다.

“그럼 제 처소로 모시겠….”

“아니요.”

“…네?”

나는 그의 팔을 붙잡은 채 재빨리 복도를 걸었다. 곧 복도가 꺾어지고 그곳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었다. 그중 가까운 곳에 있는 문을 열자 단출한 가구만이 놓여 있는 빈방이 보였다. 이 건물은 원래 외부에서 대신전을 찾아오는 손님을 위한 건물이다. 지금은 기도회가 끝나고 대부분의 사절단들이 돌아간 탓에 빈 곳이 많았다.

그를 방 안으로 끌고 들어온 다음 문을 닫았다. 황태자는 그런 나를 당황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닫은 문을 등 뒤로 한 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말했다.

“…나와 자요.”

“네? 지금 뭐라고….”

“나와 자자고 했어요. 싫은가요?”

말을 내뱉은 것인지 불을 내뱉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살면서 겨우 대화 몇 번을 나눈 것이 전부인 남자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마치 내가 조르듯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수치스러워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싫다면 말하세요. 그래야….”

“그러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갑자기 다가온 그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그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갑작스러운 힘에 내 몸은 균형을 잃고 휘청이다가 그의 품 안으로 쓰러졌다. 짙은 체향과 함께 옷 너머로 단단한 몸이 느껴졌다.

“제가 싫다고 하면, 다시 밖으로 나가 누군가를 찾으실 생각입니까?”

“…….”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자 다시 황태자가 말했다.

“소문을 듣긴 했었습니다만, 이 정도로 대담하게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말이 많군요.”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지금 한가로이 이야기할 여유 따위는 없다. 나는 그를 밀어내고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대화가 아니었다.

탁!

거친 소리와 함께 몸이 빙글 돌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다시 황태자의 품에 안긴 후였다.

“급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렇게 원하신다면.”

그렇게 말한 황태자는 허리를 숙였다. 곧바로 내 입술을 그의 입술이 덮었다. 부딪히는 입술 사이로 빠르게 그의 혀가 안으로 침범했다.

“읍!”

입 안을 거칠게 휘젓는 혀가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굶주린 맹수처럼 그의 혀가 여린 살을 구석구석을 찌르며 더듬어 나갔다. 거대한 것이 혀를 누르고 확인이라도 하듯 치열을 쓸었다. 그러고는 이내 목 안을 찔렀다.

“흐읍! 읍!”

순식간에 숨을 쉬지 못하게 된 나는 그의 품에서 버둥거리며 그를 밀어내었다. 하지만 황태자의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내 신음 소리가 재미있다는 듯, 손으로 내 뒷머리를 감싸 안고는 더욱 바싹 입을 붙여 왔다. 순식간에 숨이 가빠 왔다. 그저 계속해서 범해지는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끌려갔다.

빠르게 몸에서 힘이 빠졌다. 입을 맞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책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무척이나 아름답고 애틋하며 두 사람의 감정의 교류처럼 적혀 있던 행동이었는데. 실제로 겪은 것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덮치고 밀어 넣고 찔러 댄다. 감정은 없다. 지금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욕망뿐이다.

“아읏!”

그렇게 그에게 매달려 헐떡이고 있을 때, 가슴에서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느새 내 가슴 위로 황태자의 손이 올라와 있었다. 그의 손이 가슴 전체를 덮은 채 강하게 움켜쥔 것이다.

“그, 그만….”

그 말에 황태자의 손이 멀어졌다. 쥐었다 풀리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옅은 통증에 나도 모르게 아랫배가 저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곧 다시 그의 손이 가슴 아래를 감쌌다. 그러더니 조금 전과는 다르게 느릿하고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으, 으읏!”

저릿함이 남아 있는 가슴을 다시 살살 건드리는 손길에 머릿속까지 찌르르한 감각이 타고 올랐다. 점점 버티고 있는 다리에 힘이 빠졌다. 결국 그의 혀가 입 안 깊숙한 점막을 찌르는 순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런.”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와 함께 그가 쓰러지는 내 허리를 붙잡았다. 그의 손바닥이 느릿하게 허리를 쓸어내리더니 납작한 배 위를 문질렀다. 마치 지금부터 이곳에 들어갈 것이라 말하는 듯한 그의 움직임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무척이나 경험이 많은 분이라 들었는데….”

의외라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내 몸이 움찔 떨렸다. 그런 내 움직임을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걸까. 그는 황급히 말했다.

“이런, 실례를 범했군요. 그저 생각보다 더욱 예민하신 것 같아 놀랐을 뿐입니다.”

“아. 알았으니까 빨리….”

머릿속에는 그가 주는 충격과 함께 어서 빨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정도로 떨고 있으면서 재촉을 하시다니. 정말이지.”

그렇게 말한 그는 내 허리를 두 손으로 잡더니 가볍게 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옆에 있던 침대 위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가 내 위로 올라왔다. 양팔을 벌려 나를 품 안에 가둔 그가 몸을 가까이 가져왔다. 그의 입이 벌어졌다. 그러더니 망설이지 않고 가슴을 크게 물었다.

“하읏!”

습하고 더운 기운이 얇은 천 너머로 느껴진다. 가슴 끝을 그가 몇 번이고 핥아 올리자 젖은 천 너머로 유두가 솟아올랐다. 그러자 황태자는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입술로 그것을 물었다. 그의 입술 사이에서 말캉한 살점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는 장난스럽게 살짝 잡아당기기도 했다.

“으, 으응! 읏! 그, 그만!”

그럴 때마다 내 입에서는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맙소사. 머릿속이 그대로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각에 점점 모든 것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한참이나 가슴을 희롱하던 그가 얼굴을 들었다. 이 방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점잖아 보이던 표정은 이제 그의 얼굴에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잔뜩 흥분한 채, 눈앞의 사냥감을 먹을 생각인 짐승이 내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맛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그렇게 말한 그가 손가락으로 유두를 꾹 눌렀다.

“기대한 것보다 더 맛있군요.”

“아, 흑!”

순간 정수리에 번쩍하고 번개가 내려치는 느낌이었다.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그의 몸 아래에서 내 몸이 파닥거렸다. 그런 움직임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웃음을 머금은 채 그가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긴 손가락이 얇은 잠옷을 거침없이 벗겨 냈다. 곧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뽀얀 가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황홀하다는 듯, 조심스레 양 가슴을 부드럽게 쥐었다. 다시 그의 손가락 끝이 정점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아, 아앗! 가, 가슴은 그만!”

애원은 매정하게 무시당했다. 오히려 그 말이 시작이라도 된 듯 그는 두 손가락으로 끝을 잡아 빠르게 문질렀다. 그 순간 울컥하며 다리 사이로 뭔가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찔한 쾌감과 통증이 번갈아 내 몸을 두드렸다. 그의 입술이 내려와 목을 쓸어내렸다. 가슴을 주무르던 한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하긴, 성녀님께서는 지금 가슴보다는 이쪽이 급하신 것 같군요.”

배꼽을 지나 미끄러지듯 들어온 그의 손이 아래의 속옷을 파고들었다. 잠시 숲 위를 더듬던 손은 거침없이 아래를 덮었다. 손바닥 전체가 밀부를 천천히 문질렀다. 순간 몰려오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느릿하지만 힘을 주어 아래를 누르던 손이 곧 움직임을 멈췄다. 겨우 숨을 쉬는 순간.

“으읏!”

그의 손가락 하나가 안을 찔러 들어왔다.

“아, 아!”

난생처음 느껴 보는 안쪽의 감각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모든 감각이 아래에서 터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맙소사. 두려움이 왈칵 몰려왔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뭐가 내 몸 안에 들어온 거지?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며 내벽을 쓸었다. 그럴 때마다 움찔거리며 허리가 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멈춰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내 입은 그저 신음만 내뱉을 뿐 다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빨리해 달라고 하셨습니까?”

“으, 응!”

아래를 채우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그가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거친 숨소리도 함께, 옷이 거의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짧은 욕설도 들려왔다. 그것만으로도 황태자가 얼마나 지금 발정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일단 아래부터 가득 만족시켜 드리지요.”

그가 그렇게 말한 순간 으응, 하는 신음과 함께 무언가가 내 허벅지 아래로 흘러내렸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눌러 왔던 욕정으로 빛나고 있었다. 진득한 시선이 내 몸을 훑었다.

시선만으로도 이미 그에게 먹히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몸이 내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러고는 그가 두 손으로 내 허리를 잡아 그의 몸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벌어진 아래에 크고 뭉툭한 것이 닿아 왔다.

“흣!”

갑작스러운 거대한 질량에 숨이 막혔다. 맞닿은 예민한 부분이 바르르 떨렸다. 그러자 아래에 닿아 있는 그의 성기가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아래를 꾹 누르며 쓸어올렸다.

“……!”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는 지금, 남자와 몸을 섞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

레온은 말 그대로 미칠 것만 같았다.

색색대는 숨을 몰아쉬며 두려운 듯 제 아래를 바라보는 여자 때문이다. 제 음부에 닿아 있는 성기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 얼굴에 레온은 더욱 아래가 뻐근해졌다.

‘시발.’

새어 나오려는 욕설을 입술로 짓눌렀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욱신거리는 아래가 제가 들어갈 곳의 입구에서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겨우 끄트머리가 닿았을 뿐인데 성녀의 아래가 부드럽게 그의 끝을 감싸 품었다. 질척하고 부드러운 살점이 그의 끝을 물자 레온은 오랜만에 아찔함을 느꼈다.

그의 성기가 갈급함으로 액을 뚝뚝 흘려 대었다. 번들거리는 꼴이 영락없이 침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닿은 것만으로 이 정도다. 그렇다면 안은 얼마나 좋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 안에 이대로 거칠게 찔러 넣고 싶었다. 인정사정없이 쑤셔 박은 다음 정신없이 흔들어 범하고 싶다. 그래도 될 것이다. 어서 빨리 박아 달라 조른 것은 성녀가 아니었던가.

제 몸을 밀어 넣으려던 레온은 필사적으로 그 욕구를 참아 내며 다시 성녀를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이게 정말 그 소문의 성녀라고?’

입을 맞출 때부터 어딘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수십 명의 남자를 밤마다 방으로 불러들여 관계를 가진 성녀다. 그러니 분명 능숙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능숙하긴커녕 혀가 얽히는 순간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는 것이 보였다. 그 후에도 그의 키스에 응하기는커녕 돌이 되어 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헐떡대기만 했다.

레온은 그런 반응이 언제 나타나는지 알고 있었다. 성녀는 한 번도 경험이 없는 여성처럼 굴고 있었다.

당장 몸을 섞자고 잡아끌었던 여자다. 심지어 말이 많으니 귀찮다고 바로 다른 자를 찾겠다고 나가려고도 했고. 그런 성녀의 모습은남자를 안으려고 안달이 나 있는 사람 같았다. 아니, 안달이라기보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기도회 전후로 어지간히도 몸이 달았나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요구에 맞춰 주기 위해 행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제 손이 부드러운 가슴을 쥐는 순간, 레온은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가 재촉함에도 일부러 느릿하게 애무를 시작했다. 입 안 가득 성녀의 가슴을 물며 혀끝에 느껴지는 유두를 괴롭히자 들썩거리는 몸이 더욱 그에게 붙어 왔다. 들이밀어 주는 것을 마다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더욱 입을 크게 벌려 하얀 가슴을 입에 가득 담았다. 힘을 주어 거칠게 빨아들이자 아름다운 몸이 그의 아래에서 몸부림쳤다.

잡티 하나 없는 흰 피부는 마치 설탕이라도 뿌린 양, 단맛이 느껴졌다. 하루 종일 핥고 있으라고 해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순간 다른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흘러나오는 것은 얼마나 더 맛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제 아래가 통증을 호소했다. 레온은 아래로 손을 내렸다. 이미 잔뜩 젖어 있는 습한 계곡이 느껴지자 그는 조금 긴장을 풀었다. 이 정도의 자극에 이렇게나 쉽게 젖다니.

‘속을 뻔했어.’

마치 처음인 것처럼 서투른 모습에 그대로 넘어갈 뻔했다. 하지만 연기를 하는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몸은 착실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바로 넣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거칠게 바지를 벗는 손이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레온은 그런 제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 처음으로 하는 소년도 아니고 이렇게 흥분으로 들떠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라니.

“이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헐떡거리는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은 채 물었다.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던 성녀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서… 빨리….”

승낙도 받았겠다 레온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잔뜩 부풀어 올라 핏줄이 툭 튀어나온 성기가 배꼽에 닿을 듯이 성이 나 있었다. 레온은 제 것을 한 손으로 붙잡고 성녀의 아래에 맞췄다. 질꺽, 하는 젖은 소리가 그를 더욱 안달 나게 만들었다. 살짝 힘을 주어 밀어 넣자 그녀의 아래가 그의 것을 삼키기 시작했다.

“아흑!”

그러자 성녀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파….”

그 말에 레온은 잠시 망설였다. 이것도 연기인가? 하지만 침대의 시트를 그러쥔 손의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이 들어간 것이 보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달래듯이 속삭였다.

“아직 머리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힘을 조금만 풀어 주세요.”

그러자 성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히, 힘을 어떻게….”

“…….”

도대체 뭐라고 제가 설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망설이던 레온은 몸을 빼지 않은 채 제 상체를 숙였다. 그러고는 벌벌 떨고 있는 성녀의 입술을 덮었다. 조금 전과는 달리 느릿하게 혀가 그녀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맞닿아 있는 아랫입술을 살짝 아프지 않게 깨물기도 하고 장난스럽게 혀로 입 안쪽을 톡톡 두드리기도 했다.

그러자 곧 성녀의 혀가 조심스럽게 그의 혀를 감아 오기 시작했다. 레온은 손을 들어 성녀의 어깨를 잡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를 부드럽게 문지르던 그의 손이 점차 다시 아래를 향했다. 그러고는 그의 가슴 아래 깔려 부드럽게 문질러지고 있던 성녀의 가슴을 붙잡았다.

역시나 느릿한 동작이었다. 터질 듯이 세게 잡았다가 다시 부드럽게 풀었다. 그다음에는 손바닥 전체로 뭉근히 눌러 둥그렇게 원을 그렸다. 그렇게 레온이 반복되는 동작을 하는 사이 성녀의 몸이 천천히 긴장을 풀었다. 그러다 완전히 익숙해진 듯, 그녀의 몸이 축 늘어진 순간.

퍽!

그는 자비 없이 한 번에 제 것을 끝까지 안으로 거세게 밀어 넣었다.

“아아악!”

큰 비명이 그의 아래에서 터졌다. 순식간에 들어온 충격 탓인지 성녀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눈이 커졌다. 레온은 웃으며 그 입술을 덮었다.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두 사람의 아래에서 울리며 물이 튀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침대가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한 소리를 내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이성은 성녀의 아래를 파고든 순간 이미 사라지고 말았다.

미치도록 좁았다. 그리고 뜨거웠다. 뻑뻑하게 죄어 오는 그녀의 안쪽에 레온은 제가 먹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이 감각을 계속해서 느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먹혀 줄 수 있었다.

“아! 읏! 흐응!”

거세게 부딪히는 몸 아래에서 비명은 점점 교성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깊은 곳을 찔러 나가자 점점 더 그 교성은 커져 갔다. 레온은 곧바로 그곳을 집중적으로 찔러 나갔다. 점점 커지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평생 듣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것일까. 힘없이 올라온 손이 그의 어깨를 잡아 밀어내려 했다. 레온은 웃으며 그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바닥을 혀끝으로 간지럽혔다. 다시 그의 아래에 있는 몸이 발버둥 쳤다.

“하읏, 읏! 으응!”

그 소리가 그의 움직임을 더욱 채찍질했다. 한참이나 미친 듯이 움직이던 몸이 크게 뒤로 빠지더니 귀두가 빠져나오려는 순간, 레온은 다시 있는 힘껏 성녀의 몸을 쳐올렸다.

“흐읏…!”

가장 깊숙한 곳까지 찔러 오는 감각에 성녀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레온은 그런 성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종이 한 장도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두 사람의 몸이 딱 달라붙었다. 레온의 몸이 잘게 떨렸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제 것을 아래에서 빼내었다.

도대체 얼마나 싸지른 것일까. 희뿌연 정액이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시트로 떨어졌다. 잔뜩 벌어져 뻐끔거리는 성녀의 아래는 미처 삼키지 못한 정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레온은 눈이 돌아간다는 것이 어떨 때 쓰는 말인지를 느끼고 있었다.

잔뜩 구겨진 시트 위에 황금색의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눈물에 젖은 푸른 눈이 조금 전 정사의 여운을 담은 채, 초점을 잃고 풀어져 있었다. 풍만한 가슴은 그가 희롱한 붉은 흔적을 고스란히 가진 채 숨을 쉴 때마다 천천히 흔들렸다. 제 몸 아래에서 그를 받아들이느라 힘없이 벌려진 여체. 그리고 그 안에서 흘러내리는 제 흔적.

“미친….”

레온은 제가 무엇을 했는지 깨닫고는 거친 소리를 내뱉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해 왔다. 그러면서 그는 단 한 번도 여성의 안에 제 씨물을 내지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몸을 섞어도 그는 언제나 자신만의 규칙을 지켜 왔다.

참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다. 숨소리조차 모두 삼키고 싶었다. 지금 제가 안고 있는 이 여자에게 제 것을 아낌없이 쏟아 넣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제 냄새만을 묻히길 바랐다.

***

죽을 것 같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조금 전만 해도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정확히는 황태자가 내 몸 안을 파고든 순간부터. 한 번에 거세게 들어오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가 다시 하얗게 변했다. 몸 전체가 찢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불로 달구어진 기둥이 아래를 파고든다면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통증이었다.

거칠게 위아래로 흔들리는 몸을 느끼며 나는 입술을 물었다.

‘도대체 왜 이런 걸?’

내가 본 이벨리나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매일같이 남자들과 관계를 가졌다. 도대체 이런 고통이 뭐가 좋다고 매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레온의 것이 안쪽 깊은 곳을 찔렀다.

“으응!”

그 순간 나는 낯선 감각을 느꼈다. 몸 전체에 전기라도 흐른 듯 저릿한 느낌과 함께 나도 모르게 발가락 끝이 오므라들었다.

‘안 돼.’

본능이 그렇게 소리쳤다.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마치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황태자는 단단하게 나를 끌어안았다. 딱 달라붙은 그의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천천히 몸을 빼냈다. 조금 전까지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이 빠져나가는 순간 저절로 신음 소리가 나왔다. 미지근한 것이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끝났어…?’

이걸로 된 걸까? 이것으로 나는 좀 더 이 몸을 갖고 있을 수 있게 된 걸까?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안도의 눈물이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황태자가 손을 뻗어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

왜 그러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다리 사이로 다시 잔뜩 부풀어 오른 그의 성기가 자리 잡았다. 놀라 그를 바라보자 그는 내 뺨에 입을 맞추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설마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그렇게 말한 황태자는 여전히 허리를 단단히 잡은 채, 한 손을 올려 내 턱을 잡았다. 뭐라 대꾸할 틈도 없이 다시 그의 입술이 맞붙었다. 처음 했던 키스를 떠올리며 거침없이 파고들어 올 그를 각오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으응….”

처음에는 마치 쑤셔 넣는 것 같은 거친 혀의 움직임이었다면 이번에는 느릿한 애무에 가까웠다. 천천히 혀를 얽어 와 장난을 치듯 안쪽의 여린 살점을 혀끝으로 톡톡 건드렸다. 그 느낌이 간지러워 몸을 비틀자 재미있다는 듯 그의 입에서 짧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긴 입맞춤이 끝나자 그의 손이 아래를 향했다. 목을 쓸어내린 손은 가슴 아래 여린 살을 살살 문질렀다. 야릇한 감각이 다시 아래에서부터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것이 이상해 몸을 들썩이자 그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한 번 하고 나면 갈급함이 좀 풀릴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한 순간 그의 손가락이 유두를 살짝 잡아당겼다.

“으응!”

나도 모르게 두 다리 사이를 꽉 조였다. 그러자 가운데 자리 잡았던 그의 성기가 꿈틀거렸다.

“왜 이렇게 더 갈증이 나는지.”

그렇게 말한 그가 천천히 제 아래를 움직였다. 허벅지 사이에 낀 성기가 내 다리 사이를 들어왔다 나가며 다시 젖은 소리를 내었다. 서로가 흘린 액이 잔뜩 묻어 있는 거대한 것이 빠르게 밑을 비벼 오는 순간 몸이 굳었다. 당장이라도 다시 아래를 파고들어 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은 채 내 목에 입을 맞췄다. 그러더니 목덜미를 핥았다. 그의 손이 등의 가운데를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곧, 그가 살짝 힘을 주어 내 골반을 눌렀다. 힘없이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내 몸이 털썩, 하는 소리를 내며 휙 돌아갔다.

까슬하고 차가운 침대의 시트가 얼굴에 닿았다. 그 서늘한 감각에 잠시 정신이 들었다.

“아….”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사이 그의 손이 무너지려는 내 허리를 잡아끌어 올렸다. 뒤에서 다가온 그의 다리가 겨우 무릎을 꿇은 채 버티고 있던 내 다리를 벌렸다.

후드득.

그러자 시트 위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몸이 벌어지면서 내 안에 잔뜩 고여 있던 것이 흘러내린 것이다.

“아….”

“다 흘리셨군요.”

그는 액이 타고 흘러내린 허벅지 안쪽을 아쉽다는 듯 손바닥으로 쓸었다. 그러더니 내 뒤로 몸을 붙여 왔다.

“괜찮습니다. 다시 가득 넣어 드리면 될 터이니.”

다시 그의 것이 내 안을 파고들려 하는 순간이었다.

댕!

멀리 대신전의 종탑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열두 번의 종소리가 끝나고 나는 내 손을 바라보았다. 그대로다. 바뀐 것이 없다. 의식을 잃으며 쓰러지지도 않았고, 이벨리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다.

‘몸을 빼앗기지 않았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내 아래를 가르고 들어오려던 그의 몸을 밀어내었다. 내가 갑자기 움직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성녀님?”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그를 무시한 채, 나는 잠옷을 여몄다. 거의 벗겨져 몸에 걸려 있던 잠옷은 단추 몇 개가 사라지긴 했지만 다행히 몸을 가릴 정도는 되었다. 떨리는 손으로 옷을 추슬러 입으며 여전히 침대 위에 있는 황태자를 보았다. 그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트러진 복장 아래 흉흉하게 서 있는 그의 분신이 보인 순간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잔뜩 성이 나 핏줄이 불거진 검붉은 것은 흉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것이 조금 전까지 나를 꿰뚫었다. 몇 번이고, 계속.

그것이 내가, 아니 이벨리나가 원한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진심이었다.

“네?”

황태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런 그에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나는 그를 이용했다. 어차피 그도 대단히 좋아서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침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 하자고 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했겠지. 그를 골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늦지 않게 이벨리나가 말한 조건을 이행할 수 있었고, 그는 노리던 여자와 한 번 잤으니 이제 적당히 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힘이 빠진 다리를 움직여 문을 향해 다가갔다.

“젠장, 이게 무슨…! 기다리십시오!”

뒤에서 황급히 그가 옷을 여미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잠근 문을 열었다. 어서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정확히는 이벨리나의 조건을 받아들인 증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밖에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에 정신이 들었다. 동시에 배 아래쪽에서 아릿한 둔통이 올라왔다. 조금 전까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려 주듯이.

그 통증이 반가웠다.

아직 내 몸이다. 통증을 느끼고 있는, 내 몸.

“이벨리나!”

옷을 입은 것일까. 뒤에서 황태자가 나를 부르며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벨리나라고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그래, 이벨리나. 지금 그게 내 이름이지.

맨발에 딱딱한 돌바닥의 냉기가 타고 올랐다. 어서, 여기서 나가야 했다.

“읏….”

하지만 한 걸음 내딛는 순간 통증과 함께 안에 아직 남아 있던 것이 다리를 타고 흘렀다. 섬찟한 그 느낌에 나도 모르게 몸이 휘청였다. 넘어지겠구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턱!

무엇인가가 나를 붙잡았다. 놀라 고개를 들자 나를 붙잡은 사람이 보였다. 그 순간 눈을 의심해야 했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은 라트반이 서 있었다.

***

레온은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성녀가 먼저 그에게 제안했다. 물론, 자신은 기쁘게 그 제안에 응했다. 제 처소로 가는 시간까지도 못 참겠다는 듯 비어 있는 방으로 끌고 가기에 새벽이 될 때까지 뒹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단 한 번뿐이었다. 사막에 떨어진 자가 물로 겨우 입술을 축인 정도에 불과했다. 이제부터 그는 더욱 깊은 샘에 제 몸을 처박을 생각이었다. 아침이 될 때까지 탐하고 탐하면 이 갈증도 어느 정도는 풀리리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멀리서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자 성녀는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그에게 감사하다, 미안하다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여성과 관계를 가져 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차라리 두려워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가겠건만, 성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마치 그와 밤을 보내는 것이 오늘의 해야 할 일 중에 하나였다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에는 후련함마저 보였다. 그러면서도 왜 울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일단은 그녀를 진정시키고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문을 나서는 성녀를 잡기 위해 급히 벗어 둔 바지를 찾았다. 이게 앞인지 뒤인지, 다리가 제대로 들어가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이러는 게 어디 있어?’

당장이라도 성녀를 붙잡고 따지고 싶었다. 그는 성녀의 유희를 위해 아주 잠시 이용당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먹고 버린다’는 것이 이럴 때 쓰는 말일까. 레온은 성녀를 뒤쫓아 복도로 나왔다.

휘청거리던 그녀가 쓰러지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를 붙잡는 손이 있었다.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레온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라트반 경….”

쓰러지는 성녀를 붙잡은 사람은 라트반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레온은 저도 모르게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찢어 죽일 것 같은 시선이었다. 그제야 레온은 지금 이 상황이 남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생각했다.

흐트러진 잠옷 차림의 성녀가 울며 뛰쳐나가고, 그 뒤에서 옷도 제대로 못 챙겨 입은 제가 그녀를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때 라트반이 성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자의 처분을 원하십니까?”

그 말에 레온은 급히 제 검을 찾았다. 하지만 호신용으로 가져왔던 중간 길이의 검은 조금 전 성녀와 몸을 섞었던 그 방의 침대 아래에 뒹굴고 있을 것이었다.

‘젠장.’

설마 이게 다 계획된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지금 이 자리에서 라트반이 검을 빼내어 그를 두 동강 낸다 하더라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갑자기 성녀가 유혹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울며 뛰쳐나갔다고? 그 소리를 누가 믿겠는가.

“아, 아니요!”

그때 성녀가 급히 라트반에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저를 잡아 준 라트반의 팔을 밀어내고 다시 복도를 걸으려 했다. 그러나 곧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 라트반이 그녀를 일으켜 세운 순간, 검은색 돌로 된 복도 위에 흰 액체가 주륵 흘렀다.

세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이없게도 레온은 제 것을 줄줄 흘려 대며 걸어가는 성녀의 모습에 다시 욕정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다시 저 몸을 끌어안고 달래며 제 것을 밀어 넣고 싶다.

“갈래요… 일단 여기서 나가야….”

성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리자 레온을 씹어 먹을 듯이 노려보던 라트반은 제 예복의 상의를 벗어 성녀에게 걸쳐 주었다.

“모시겠습니다.”

그 말에 성녀는 고개를 더욱 숙이며 힘겹게 걸었다. 그런 성녀가 답답하기라도 한 것일까. 라트반은 잠시 망설이더니 그대로 성녀를 두 팔로 안아 들고는 빠르게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기 직전, 레온에게 말했다.

“자세한 것은 아침에 뵙고 듣도록 하겠습니다.”

형형한 노기가 묻어나는 라트반의 목소리에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라트반의 옷에 감싸여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성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곧 라트반과 성녀가 사라지고 레온은 홀로 복도에 남았다.

“이게 무슨….”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그녀가 짜 둔 함정 따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성녀와 라트반이 사라진 복도를 보다 방으로 돌아왔다. 엉망이 된 침대의 시트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제 검을 찾은 레온은 옷을 추스르고 방을 나오려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웠다.

“이런….”

그것은 성녀의 잠옷에 붙어 있던 단추였다. 그가 급히 벗겨 내느라 떨어져 나간 것이기도 했다. 레온은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 제 주머니에 넣었다.

‘알아봐야겠어.’

전에 잠시 생각했던 것이 기억났다. 성녀가 결혼할 수 있었던가?

처음으로 제 씨를 쏟아 넣은 여자다.

레온은 손등으로 입술을 쓸었다. 이제 이 갈증은 완전히 성녀를 손에 넣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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