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Epilog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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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Epilog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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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Epilogue (2)
2022.04.20.
밤늦게까지 먹고 마시던 손님들은 기분 좋게 취한 채 마차에 실려 떠났다. 공작저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손님들을 배웅하던 현관 불도 완전히 꺼졌다. 마무리를 한 하녀들과 시종들도 내일은 휴가다.
사실 진정한 공주님의 결혼식이라면 닷새 정도 여유를 두고 계속해서 행사가 있어야만 했다. 시민 예식, 결혼 전야, 본식, 피로연, 뭐 이런 거대하고 성대한 행사들의 연속 말이다.
하지만 공주님은 이미 결혼을 한 마당에 식은 최대한 가까운 사람들과 즐겁게 치르길 바랐고, 라이킨은 저도 모르게 왕창 키우고 있던 결혼식 계획을 축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주님, 주무셔야…….”
욕실에서 나와 머리에 수건을 얹고, 대충 가운을 걸쳐 입던 라이킨은 말을 하다 말았다. 소렐이 침대 위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대 이불 안에 들어가지 않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알겠지만, 무거운 드레스를 입었다 벗었다 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그녀에겐 피곤할 만도 했다.
라이킨은 소렐을 곧장 눕히지는 않고 그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긴 속눈썹, 뽀얀 뺨, 물기가 살짝 남은 머리카락, 연한 홍조, 겉으로 보기엔 마냥 사랑스러운 아가씨지만, 라이킨은 그 안에 들어 있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선한 마음을 잘 알았다.
“으응……, 응?”
그가 천천히 소렐의 늘어진 손을 잡자 감겨 있던 눈이 열렸다.
“주무셔야지요, 공주님.”
자라고? 소렐은 조금 우물쭈물했지만, 라이킨은 웃으면서 그녀를 아예 들어다가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주무세요. 오늘 참 피곤했습니다.”
피곤했다니까 자긴 하겠지만, 정말 괜찮은데. 소렐은 생각하다가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라이킨은 잠들지 않았다. 아내를 오래도록 바라보며, 뺨을 쓰다듬어 주다가, 그러다가…….
‘언제부터 이렇게 건전해졌지……?’
또 참았다. 그냥 열심히 참았다.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내를 상대로 뭘 하겠나. 그냥 참아야지.
*
어쨌든 결혼식을 치렀으니 신혼이다. 내내 신혼이었지만 소렐의 기분이 더 새로웠으니 지금이 신혼이 맞다. 칼리에르 공작저에서는 공비전하가 법이다.
부지런히 아침부터 여기저기 쏘다니며 책도 들여다보고, 편지도 읽고, 외출도 하던 소렐은 뜬눈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정확하게는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 뱀파이어답지 않게 깊게 잠들었다. 결혼식을 치르고서 닷새째. 소렐은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눈을 떴다.
‘참 이상하단 말이야.’
온몸이 저릿저릿할 지경이다. 바실리스크를 삼킨 남편이 그녀를 얼마나 원하는지 대마법사는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얌전히 ‘나도 좋아요!’라고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아니, 어제는 먼저 입도 맞춰줬는데 라이킨은 몹시 곤란하다는 표정을 숨기지도 못하면서 결국 그녀를 재웠다. 그래놓고 이렇게 태평하게 자고 있다니.
‘신사라서 그런 거지, 신사라서.’
공주님은 소중한 헬레인 왕국의 적통. 귀하신 분. 뭐 그런 개념이 이 고지식한 뱀파이어의 머릿속에 빼곡하게 들어찬 게 분명했다. 몇 번이나 잃을 뻔해서 그런가. 하긴 소렐도 그가 소중해서 굳이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뱀파이어를 깨우지 않고 있으니, 둘 다 똑같았다.
‘툭 치기만 해도 깨겠지?’
그러니까 손도 못 대고, 소렐은 그를 뚫어져라 보기만 했다.
“왜요, 공주님. 필요한 게 있으면 분부하시지.”
“악!”
갑자기 입만 열어 말을 하는 라이킨 때문에 토끼가 깜짝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라이킨은 한쪽 눈을 슬쩍 뜨곤 팔을 뻗어 소렐을 안았다. 자동적으로 그의 커다란 손이 어깨며 등을 문질러주었다.
“어, 언제부터 깼어요?”
“방금. 얼굴이 뚫릴 것 같던데.”
아주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목덜미를 파고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깊게 심호흡한다. 꼭 참는 것처럼.
“그렇게 잘생겨 보입니까?”
“응.”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라이킨은 조금 멈칫거리다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이 귀를 긁는 느낌에 소렐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더 주무시지 않고.”
“그냥 깼어요.”
“그냥?”
“그냥.”
슬쩍 올라온 라이킨의 눈이 완전히 열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뱀파이어 앞에서 토끼는 무섭다고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현명한 대마법사가 그저 홀린 듯이 그를 보다가 웃었다. 환하게 웃는 걸 보던 라이킨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거 아십니까, 공주님께서는 항상 허락하면서 웃어주시는데……. 그렇게 웃어주시면 제가 괜히 죄책감이 들어요.”
소렐은 자신이 어느덧 라이킨의 품 안에, 손안에 완전히 들어갔다는 사실을 약간 늦게 깨달았다. 오싹한 소름이 척추를 타고 기어오른다. 가슴이 들썩거렸다. 위험한 긴장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대로 그 안으로 뛰어들고 싶은 긴장감이었다.
“그건 라이킨이 신사라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거의 숨도 쉬지 못하고 소렐이 종알거리자 그가 느긋하게 웃었다. 아니, 저건 느긋한 게 아니다. 라이킨도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짓과 태도는 아주 부드럽고 다정했다. 라이킨은 서두르지 않았다. 소렐이 입고 있는 잠옷의 리본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조금 속도를 늦췄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으니까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건데. 소렐이 얼굴이 빨개져서 조금 자신 없이 말했다.
“내가 너무 어려요?”
“한 번 더 허락을 받고 싶을 뿐입니다. 공주님의 나이를 따지기엔 이미 제가 너무 멀리 왔지요.”
이미 결혼까지 한 마당에 나이를 따져가며 주저하는 건 말도 안 되고. 라이킨은 웃었다.
“나는……, 나는 좋아요…….”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이젠 목까지 빨개진 소렐이 중얼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푹 숙였지만, 다시 뒤로 한껏 젖혀야 했다. 순식간에 달려든 라이킨이 입술을 닿고, 숨을 삼키고,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나긋나긋하게 말하던 것과는 달리 역시나, 그는 이미 반쯤 정신 나간 채로 기다렸던 거다. 소렐은 되는 대로 단단하고 커다란 남자의 몸을 가득 끌어안았다. 커다란 손가락이 긴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공주님.”
그의 목소리가 한결 가라앉았다. 하지만 동시에 더 지독하게 낮아졌다.
“불편하시거나.”
따뜻하고 맥이 내달리고 있는 희디흰 목에 이를 세우자 소렐은 어깨를 움츠렸다.
“겁이 나시거나.”
그는 아주 소중하게 입을 맞췄다. 하나뿐인 아내의 신체를 숭배하듯 했다.
“혹은……, 아프시면.”
마지막 말에는 진심으로 걱정이 가득해서 소렐은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
“겁먹었네요, 라이킨.”
그야 그는 소렐을 완전히 가려버릴 만큼 커다랗고, 소렐은……, 맙소사, 너무나 작고 여렸다. 튼튼한 헬레인 토끼들에겐 무례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라이킨은 제 공주님을 지나치게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
라이킨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겁납니다.”
전장에서 적장의 목을 베어버리는 건 겁나지도 않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이건 몹시 겁이 났다. 겁나서 며칠간 침대 위에서 손가락도 함부로 놀리지 못하고 반듯하게 눈만 감고 있었다.
“라이킨은 또 나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는 소렐과 마찬가지로 숨을 약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라이킨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강렬한 공포를 위로하고 사라지게 했다. 소렐이 하는 말은 마법 주문이나 다름없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라이킨이 했듯, 소렐 역시 그의 뺨이며 곧은 코끝에 입을 맞췄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조금 더 미뤄도 된다. 상관없었다.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한 침대에서 함께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조금 겁나기는 하는데…….”
겁이 난다는 말에 라이킨의 커다란 손이 스스로 자제하듯 주먹을 꽉 움켜쥐고 아래로 힘 있게 내려갔다.
“그것보다 훨씬 많이 기대돼요.”
공주님은 아무래도 공작전하보다 더 용감하신 모양이다. 소렐의 눈은 그를 향해 휘어졌다. 그는 그 와중에도 웃는 소렐이 예뻐서, 너무 예뻐서 눈가에 키스를 퍼부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더 버티지 못하겠습니다.”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다 못해 숨이 넘어가서 돌기 직전인 걸 여태까지 살아온 세월과 예의 하나로 찍어 누르고 있었는데 공주님은 너무 예쁘게 웃는다.
“공주님.”
“응. 좋아요.”
소렐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잠옷을 찢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처럼 마음에 든다고요.”
슬슬 목에 핏줄이 선 채 숨을 몰아쉬며 으르렁대던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피식피식 웃다가, 나중엔 소리 내어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댔다. 소렐은 뒤늦게 아차 싶어 얼굴이 또 붉어졌다.
“아……, 내가 너무 분위기 깨는 소리를 했죠오……. 미안해요…….”
그녀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려다가 대번에 라이킨에게 잡혀서 작게 비명을 질렀다.
“또 어딜 가시려고.”
“분위기 깨서 부끄러워서…….”
“뭐, 한두 번입니까. 공주님은 언제나 씩씩하시지요. 잠옷은 망치지 않을 테니, 살살 풀면 되겠습니까?”
“관두는 거 아니었어요?”
“누구 좋으라고?”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렐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그 와중에도 잠옷의 헐거운 리본을 착실히 풀어 내리는 손이 바빴다. 사소한 상념마저 절절 끓기 시작하는 뇌에서는 빠르게 스쳐지나가 마침내 사라졌다. 최대한 부드럽게. 그는 웃었다.
“잠깐만, 간지럽……!”
침대 위에서 소렐의 웃음이 터졌다. 그래, 그러면 된다. 라이킨이 정성을 쏟을 대상은 오직 제 앞에 있는 유일한 연인밖에 없었다.
“아, 나도 할 거야!”
발끈한 토끼가 그에게 달려들면, 그의 웃음이 터진다. 그러다가도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아프거나 싫으시면 주저하지 마시고.”
라이킨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꾸역꾸역 말했다.
“아프지 않아요.”
귀에 달콤한 말만 하고, 뽀얀 얼굴로 해사하게 웃으면 숨이 턱턱 막힌다. 더 삼키고 싶고, 더 파고들고 싶었다.
“라이킨이 아프게 한 적은 한 번도 없…….”
종알대던 소렐의 말이 툭 끊겼다. 아,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야. 소렐은 더 이상 정상적인 문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녀는 뺨을 발갛게 물들이며 끙끙대기 시작했고, 그에 비례해서 라이킨은 무척 즐거워졌다.
“숨……, 숨 못 쉬겠…….”
입술이 살짝 떼어지는 사이, 소렐이 그의 팔뚝을 간신히 붙잡으며 애원했다. 팔뚝을 붙잡기보다는 그 위에 손을 얹는 정도였다.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굵기인 데다, 잔뜩 흥분한 남자는 원래도 거대한 체구의 소유자였으니까.
“쉬어요.”
그게 가능한 걸까? 소렐은 척추 위를 슬쩍 문지르는 손길에 저도 모르게 가쁜 숨을 토해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설레고, 긴장되고, 미지의 세계로 가는 느낌이다. 숨 쉬는 것마저 잊은 소렐의 뺨에 라이킨이 입술을 묻었다.
그들은 눈을 감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간신히 호흡을 골랐다. 남자는 제 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은 여자를 낚아채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고, 여자는 제정신을 챙기기도 바빴다.
“공주님.”
말을 하기도 힘들었지만 뭐라고 말해야 했다. 입을 꾹 다물고 행위에 매진하다가 소렐이 겁을 먹을 수도 있으니까. 그녀가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욕망보다 큰가 보다. 라이킨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예쁘니까…….”
하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눈이 붉어진 남자는 그녀를 꽉 안고서 드러난 모든 살결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아, 잠깐, 간지러운, 저기, 라이킨……?”
소렐이 바르작거리면, 그는 그녀의 팔을 잡고 그 살결에도 입을 맞췄다. 평소보다는 거친 입맞춤이었지만, 그는 마치 그녀의 모든 것을 소유하겠다는 듯 제 흔적을 잔뜩 새겼다. 새하얀 피부 위에 붉은 자국이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대로 선명하게 남았다.
“나 조금 추워요.”
어쩌면 추운 게 아니라 약간 부끄러운지도 모르겠다.
“따뜻해질 겁니다.”
따뜻한 게 아니라 뜨겁게 달궈지겠지. 그는 그러면서도 다급히 이불을 잡아챘다.
*
헬레인 토끼는 아주 튼튼하다. 라이킨은 그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뱀파이어들을 상대로 튼튼한 앞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기어이 달려들어 두들겨 패던 그 헬레인 토끼의 피가 어디로 가겠나.
그는 손을 들어 소렐의 등을 쓸어내렸다. 두터운 커튼이 쳐진 공작 부부의 침실에는 햇볕조차 침범하지 못했지만, 그의 시간 감각으로 볼 때 분명히 정오가 한참 지나고도 남았다.
“……공주님.”
부르는 말에 점점 의식이 돌아오던 소렐이 간신히 눈을 떴다. 그의 맨가슴에 뺨을 묻고 자고 있던 그녀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눈을 다시 꼭 감고 얼굴을 감췄다. 이럴 줄 알았다. 라이킨은 소리 내어 웃었다.
“우으으으으…….”
“괜찮으십니까?”
“으응…….”
간신히 그녀의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라이킨은……?”
그가 괜찮지 않을 일이 뭐가 있겠냐만.
“글쎄요…….”
그도 만만치 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한 세 번 정도 더 하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
헬레인 토끼의 앞발은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단히 재빠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찰싹 소리가 났고, 라이킨은 느리게 맞은 부분을 문질렀다.
“아.”
하나도 아프지 않다는 티가 역력한, 성의 없는 신음을 대충 한 그는 느긋하게 웃었다. 하지만 소렐은 그 웃음 뒤에 얼마나 집요하고 거친 애정이 있는지 지난 밤 똑똑히 알았다.
모든 뱀파이어들의 수호자는 부부침실에서는 자신의 모든 권위를 다 벗어던지고 아내를 기쁘게 하는 데만 힘썼다. 뭐, 소렐이 기쁘다면 그는 더 행복했다. 뱀파이어의 입은 이미 귀에 걸려 있었다.
“나 물…….”
그는 당연하게 손을 뻗어 물을 가져와 제 입에 머금은 뒤 입을 맞췄다. 다디단 물이 목을 적셨다. 눈이 마주치자 소렐은 웃었다.
“이 층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예. 다 비웠습니다.”
사주식 침대의 내려진 커튼 사이로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다가 사라졌다. 계절이 깊고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