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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공비의 드레스 (6) (148/181)

148. 공비의 드레스 (6)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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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렐이 보안국장을 쳐다보았다. 어쩐지 보안국장은 무척 신나 보였다.

16606125354131.jpg“국장은 지금 웃음이 나오나?”

외무장관이 질책했으나, 보안국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16606125354131.jpg“예. 나옵니다. 리페르게라를 상대로 너희 첩보국은 남의 나라 공비 드레스 망가트리기나 하냐고 놀릴 생각을 하니 아주 즐거워 죽겠습니다.”

보안국장은 이 와중에도 몹시 행복하다는 듯 히죽히죽 웃었다.

16606125354131.jpg“……오, 그건 그렇지…….”

외무장관도 그 말에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오므렸다. 어차피 우방이라도 해도 이 바닥에서는 나라 사이의 신경전이 대단하다. 외무장관과 보안국장은 행복한 상상을 하며 슬그머니 웃었다. 리페르게라 관료들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지면 아주 볼 만하겠다. 이걸로 큰소리를 땅땅 쳐가며 협상에서 더 좋은 조건을 내걸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이득이긴 했다.

16606125354152.jpg“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침묵하고 있던 오블리앙 공이 물었다.

16606125354131.jpg“어떻게 하긴요, 지침대로 해야지요. 보안국에서 이 일을 조사하겠습니다. 바쁘시지 않다면 공비전하께서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첩보원들은 무조건 증거를 인멸할 텐데, 마법으로 다시 되살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할 겁니다. 우리 목표는 그들을 잡아다 우리 법정에 세우는 거니까요.”

보안국장이 매끄럽게 말했다. 피로에 절어보여도 어쨌든 할 일은 제대로 해서 오블리앙 공에게 인정받은 인재다. 오블리앙 공의 시선이 외무장관에게로 넘어갔다.

16606125354131.jpg“공께서 국왕폐하를 알현하시는 시간에 저도 불러주시지요. 이 일은 폐하께서도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당장 사절단이 올센에 오늘 도착하니, 신속히 움직여야 할 겁니다.”

외무장관 다음에는 아들에게로 시선이 날아갔다.

16606125354165.jpg“……실종된 첩보원들을 추적하는 중입니다.”

벌써? 보안국장은 의자에 몸을 푹 파묻었다.

16606125354131.jpg“우리가 할 일을 먼저 해주시고 계시다니 아주 고맙고 반갑군요, 공 전하. 개인적으로 감사는 표하는데 그 공은 보안국에게 주시면 안 됩니까?”

16606125354165.jpg“아주 멀쩡한 얼굴로 뻔뻔한 말을 하는 걸 보니 국장도 엔버네스 관료가 다 되었습니다.”

라이킨도 멀쩡한 얼굴로 노골적인 비난을 했다. 그래봤자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다 잔뼈가 굵은 관료들이라 그런 말에는 눈 하나 깜짝도 하지 않았다.

16606125354131.jpg“별 새삼스러운 말씀을. 보안국 일손이 워낙 모자라서 말입니다.”

일은 남이 해줬으면 좋겠고, 공은 내 거가 되어야만 하고, 어디든 직장이 다 그렇지 뭐. 보안국장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16606125354152.jpg“라이킨.”

본론 이야기를 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라이킨이 고개를 돌렸다.

16606125354165.jpg“……리페르게라 첩보원들은 분명히 물 밑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조용히 은거하면서 상황이 잠잠해지길 바라겠지요. 아마 사절단이 왔다가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야 다시 모습을 바꿔 나타날 것 같긴 합니다만.”

그게 모든 첩보원들의 정석이었다. 보안국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5354165.jpg“바로 엔버네스를 떠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럴 시간이 충분하지요. 문제는 말입니다.”

라이킨은 신중하게 지적했다.

16606125354165.jpg“도대체 왜 내가 의뢰를 맡긴 의상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냐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게 문제였다. 리페르게라의 첩보원들이 꼴랑 남의 나라 공비의 드레스를 망치는 일이나 한단 말인가. 사람들이 각자 생각에 빠진 사이, 소렐은 보안국에서 해독한 암호문을 다시 읽어 보았다. 전부 이 일과는 관련이 없지만, 리페르게라 첩보원들이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지침사항이었다. 또한 그들이 첩보원이라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했다.

16606125365786.jpg“저기, 리페르게라의 권력 순위가 어떻게 되나요? 지금 오는 공주가 국왕이 아주 예뻐하는 자식이라던데.”

소렐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외무장관과 보안국장은 딱히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로렌스가 다정하게 대답했다.

16606125354152.jpg“그렇지. 게다가 왕세자인 오빠에게도 귀여움을 받고 있단다.”

16606125365786.jpg“성격은 어때요?”

칼리에르 공비의 소소한 질문에 외무장관은 딱히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블리앙 공은 대마법사의 질문에 충실히 대답했다.

16606125354152.jpg“글쎄다. 그건 우리 보안국장이 잘 알겠지?”

보안국장 네가 대답하라는 말에 보안국장은 커피를 들이켜며 대답했다.

16606125354131.jpg“그냥 말 그대로 귀한 공주님입니다. 활달하고, 또 자신감 넘치는 성격으로 알고 있고요. 어디서나 돋보이는 성격이라는군요. 공주님이라 늘 귀한 대접을, 예, 받으시지요. 그렇지요.”

16606125365786.jpg“……이번에 개인 짐을 얼마나 가지고 온다고 하지요? 트렁크 개수를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요.”

보안국장의 시선이 외무장관에게로 넘어갔다.

16606125354131.jpg“그런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만, 국경을 넘으면서 사절단은 특별열차를 타고 엔버네스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중 일등석 다섯 개 칸을 공주 혼자서 사용한다고 합니다.”

소렐은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5365786.jpg“지금 좀 말도 안 되는 가설이 생각나기는 했는데 좀 더 확인한 후에 말씀드릴게요, 아버님.”

16606125354152.jpg“그러려무나. 뭘 도와줄까?”

16606125365786.jpg“일단은 첩보원들을 다 찾아야죠.”

그녀의 시선이 성실한 남편에게로 건너갔다.

16606125354165.jpg“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 말은 오블리앙 공에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보안국장은 생각하다가 오블리앙 공도 가만히 있는 걸 보니 자신이 나설 일이 아니다 싶어 그냥 관뒀다. 어느 쪽이든, 첩보원들을 찾아내면 그만이다. 이번 사절단 수장이 누구더라? 가물가물해서 기억도 안 나는데, 아무튼 참 불쌍한 양반이다. 저기 있는 외무장관이 이 일을 핑계로 아주 갖가지 항목을 다 뜯어낼 예정이니까.

16606125354131.jpg‘……그럼 왕세자전하와의 국혼은 어떻게 되는 건가?’

아, 물론 그건 오블리앙 공과의 면담 후에 국왕폐하께서 결정하실 일이다. * 칼리에르 공비는 여러모로 바쁘다. 아침에는 가만히 남편의 품에 누워 사랑도 받아야 했고, 오전부터 멍하니 앉아 머릿속에 들어온 고대마법에 관한 지식들을 뒤적여야 했다. 게다가 틈틈이 글래스턴 영지에 관한 일도 배우는 중이었다. 그녀가 작은 어깨를 휴, 하고 들썩이는 걸 보곤 참지 못한 남편이 휙 안아다가 키스부터 시작해 온갖 애정과 고백을 퍼붓는 걸 들어주기도 해야 했다.

16606125354165.jpg“너무 힘드시면 하지 마시고 저와 함께 노시지요, 공주님.”

16606125365786.jpg“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라이킨이야말로 바쁘지 않아요?”

글래스턴 공작이 머물고 있는 공작저는 물 샐 틈 없이 방비가 되는 중이었다. 최근 소렐은 그 방비에 조금씩 자신의 마력을 더해보았다. 라이킨은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늘 주의를 주고 그녀를 걱정했지만, 그녀가 고열에 시달리던 밤, 그가 잘 버텨준 덕분에 이제는 가뿐하다.

16606125354165.jpg“……공주님께서 방어를 너무 탄탄히 하셔서.”

안 그래도 뭔가 바뀌었다는 걸 예민하게 알아차린 그가 고개를 모로 까딱였다.

16606125354165.jpg“덕분에 제가 한가하던 참입니다.”

공격이 현저히 줄었다. 소렐이 방어에 나섰으니 아예 뚫지도 못한다는 걸 알았겠지. 게다가 여태까지 성공한 공격이 거의 없기도 하니 그쪽도 출혈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16606125354165.jpg“하지만, 공주님.”

16606125365786.jpg“너무 무리하지는 말라고요. 안다니까요. 게다가 내가 정말로 무리하는 것 같으면 라이킨이 바로 알아차릴 거잖아요.”

아직까지 무리하는 건 아니니까 그가 그저 말만 해두는 것이다. 소렐은 그의 무릎 위에 앉아 그를 꼭 안았다.

16606125365786.jpg“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어요.”

그냥 하는 게 아니라 그를 위해 해주고 싶었다.

16606125365786.jpg“라이킨도 언제나 날 위해서……, 정말 목숨을 걸어줬으니까, 나도 꼭.”

16606125354165.jpg“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는 자신의 선택이 아주 지독하게 이기적인 면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저 소렐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서 절박하게 나 좀 살려달라고 붙잡은 것뿐이다.

16606125365786.jpg“라이킨이 날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살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소렐은 약간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16606125365786.jpg“나도 조금 유치한 구석이 있어서, 안 잡아주면 화나고 섭섭했을 거라서……. 부끄럽지만……. 근데 이제는 안 그래요!”

귀가 빨개져서 웅얼거리다가 고개를 팍 쳐들고 안 그러겠단다.

16606125365786.jpg“다시는 안 그럴 거고 내가 더 열심히…….”

16606125354165.jpg“열심히 하실 필요도 없고, 그리 힘을 내실 것도 없습니다. 공주님, 저와 몇 년을 사실 텐데 벌써부터 힘을 내서 애쓰시면 조만간 지치실 겁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16606125365786.jpg“그런가?”

16606125354165.jpg“예. 굳이 노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16606125365786.jpg“아니에요. 부부 사이에도 노력은 필요하댔어. 라이킨도 항상 노력하잖아요. 오늘도 잘생겼다.”

다른 건 몰라도 소렐 앞에서 멋지게 보이려고 항상 옷차림이며 머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건 알았다.

16606125354165.jpg“그거야……, 공주님이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잘나야 공주님 곁에 있을 자격이 있으니까요.”

16606125365786.jpg“아닌데. 나는 라이킨이라서 좋은 건데. 그리고 뭐, 하긴 라이킨이 제일 잘난 사람이긴 하죠. 제일 잘생겼고.”

가만 생각하던 소렐이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5354165.jpg“그렇지요?”

16606125365786.jpg“맞아요.”

우리 남편 말이 다 맞다. 소렐은 그와 코를 맞대고 웃었다.

16606125365786.jpg“라이킨.”

16606125354165.jpg“예, 공주님.”

부르면 늘 ‘예, 공주님’이라고 성실하고 예의를 갖춰 대답해주는 것도 좋았다.

16606125365786.jpg“내가 라이킨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죠?”

16606125354165.jpg“예.”

안다니 다행이다. 소렐은 만족했다는 듯 그에게 기대앉았다.

16606125365786.jpg“나도 라이킨이 별말은 하지 않아도 나를 무척 사랑한다는 거 알아요.”

그가 웃었다.

16606125354165.jpg“예. 항상 사모하고 있습니다. 자주 말씀드리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16606125365786.jpg“거봐요, 노력이 필요하다니까. 나도 노력하잖아요.”

칼리에르 공비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다! 그리고 라이킨의 어깨가 무거운 만큼 그 짐을 덜어주고도 싶었다.

16606125354165.jpg“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이 남편에게는 말씀해주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라이킨은 소렐의 정수리 위에 턱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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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06125365786.jpg“아뇨, 아직이에요. 모든 증거가 다 나와야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까요. 함부로 사람을 잡으면 안 되니까.”

16606125354165.jpg“부부 사이에도 안 되는 겁니까? 섭섭하군요.”

16606125365786.jpg“라이킨도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있잖아요. 나한테 말해주지 않고선 나부터 말하라는 거예요?”

16606125354165.jpg“저는 공주님을 노린 범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이, 너무 뻔한 이야기다.

16606125365786.jpg“나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16606125354165.jpg“하지만 설마 유치하게 드레스를 망치는 게 목적이었으려고요.”

정치를 한 관료들은 설마 그러겠냐며 믿지 않으려고 할 거다. 사람은 최소한의 상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은 거다.

16606125365786.jpg“음, 가끔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유치할 때가 많아요.”

소렐은 자신이 여태까지 올센 전역의 신문에 얼마나 많이 오르내렸나 생각해보았다. 그녀가 움직이기만 해도 기사가 나올 정도다. 그녀가 숨기고 있는 힘, 가지고 있는 재산은 물론이고 쓰고 나온 모자의 장식, 끼고 있는 장갑 레이스, 쥐고 있는 양산까지 화제가 된다. 그러니 드레스가 어찌 표적이 되지 않겠는가.

16606125354165.jpg“저런.”

뱀파이어의 입꼬리가 삐딱하게 올라갔다.

16606125354165.jpg“리페르게라 첩보원들이 단단히 망신을 당하겠군요.”

16606125365786.jpg“아직까지는 추정할 뿐이에요.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소렐은 그의 어깨에 기댔다.

16606125365786.jpg“난 좀 피곤할 것 같아요.”

16606125354165.jpg“어째서요?”

16606125365786.jpg“내 ‘드레스’마저 표적이 될 정도라는 이야기니까요.”

16606125354165.jpg“저런, 이미 올센의 화제이십니다. 걸어다니는 상징이기도 하시고요.”

16606125365786.jpg“굳이 올센의 화제까지는 바라지 않고, 라이킨에게만 가장 뜨거운 화제였으면 하는데.”

자신의 말투를 고스란히 닮아버린 아내의 말에 라이킨은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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