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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The golden wave (5) (115/181)

115. The golden wave (5)202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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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렐은 침대에 걸터앉아서 습관처럼 발을 동당거리려다가 아빠에게 제지당했다.

16606122704325.jpg“움직이지 마라. 다쳤잖아.”

아차. 소렐은 얼른 다리를 멈췄다.

16606122704325.jpg“어쨌든 고난을 잘 이겨냈구나. 잘 넘겼어.”

16606122704334.jpg“나 혼자 한 건 아니죠. 라이킨이 필사적이었으니까…….”

그가 끝까지 소렐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소렐이 나약해졌지만 어쨌든 고대마법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녀는 순순히 라이킨의 공로를 인정했다.

16606122704325.jpg“네가 결합점을 끊으려다가 타격을 입은 걸 그놈이 다 돌봐줬다고 해서 마음을 풀면 안 돼. 그건 당연한 거야.”

펠릭스는 그러나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16606122704325.jpg“마땅한 가디언의 의무라고. 그걸 이행했다고 해서 봐주면 안 된다.”

16606122704334.jpg“알아요.”

16606122704325.jpg“충분히 싸웠니?”

그 질문에 소렐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16606122704334.jpg“싸웠다기보단 내가 일방적으로 퍼부었죠.”

16606122704325.jpg“네가?”

펠릭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6606122704325.jpg“어이구, 한 번도 안 그러던 애가 어떻게?”

16606122704334.jpg“내가 방금 전까지 물벼락 끼얹었는데요, 뭐. 나 혼자 소리 다 지르고 라이킨은 소리 한 번 안 질렀어. 진짜야. 무릎 꿇고 싹싹 빌었는걸.”

소렐은 불과 한 시간 전을 떠올리다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16606122704334.jpg“어이가 없어.”

16606122704325.jpg“너 화내면서 안 울었니? 운 것 같은데?”

16606122704334.jpg“울긴 라이킨이 울었죠. 나는 그냥 뭐……, 따라서 울었어…….”

그 뱀파이어가 울었다고? 펠릭스는 영 상상이 안 간다는 듯 재차 물었다.

16606122704325.jpg“그놈이 울어? 울었다고?”

16606122704334.jpg“응. 엄청 명화같이 울던데. 예쁘게.”

아빠는 딸의 말에 오만상을 찌푸렸다.

16606122704325.jpg“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구나.”

16606122704334.jpg“나만 봤으니까 됐어요. 일종의……, 부부의 문제인 거죠.”

16606122704325.jpg“부부라니…….”

아직 한참 어린 애로 보이는 딸이 부부라니. 펠릭스는 또 한숨이 나왔지만,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었다.

16606122704325.jpg“너는 그래서 이번 일로 뭘 배웠니?”

16606122704334.jpg“많이 배웠지, 뭐……. 일단 결합점을 끊는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16606122704325.jpg“불가능하지. 그건 죽었다 깨나도 안 돼.”

16606122704334.jpg“엘펜하임에서 찾아낸 방법이었거든요……. 그때는 그것밖에 없었어요. ……내가 잘못했지요. 많이 잘못했어요.”

소렐은 진심으로 반성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려고 난리를 치다가, 하마터면 두 사람 다 죽을 뻔했다.

16606122704325.jpg“대마법사라면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인데…….”

가디언이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존재하지만, 바로 ‘그 가디언’에게 크게 상처를 받았기에 대마법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소렐은 파리한 얼굴을 침대 기둥에 기댔다.

16606122704334.jpg“다시는 그런 짓 안 할 거예요.”

16606122704325.jpg“……너는 어릴 때부터 혼자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고 자주 풀이 죽었지. 그게 네게 상처로 남았다는 건 아빠가 잘 알고 있단다.”

한참 기다려야 한다고,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누누이 말해줬지만 해보고 싶은 것 많은 어린아이가 그걸 납득하기는 힘들었을 거다. 더구나 납치되었다가 마법을 쓸 줄 모른다고 구타까지 당한 끔찍한 기억이 있으니, 더더욱 그게 상처였겠지.

16606122704325.jpg“대마법사가 행해야 할 의무란 게 쉬운 게 아니지.”

16606122704334.jpg“응, 그래서 말인데 아빠, 내가 엘펜하임 기사단장부터 한…….”

소렐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16606122704334.jpg“스무 명을 죽였어요.”

16606122704325.jpg“그랬어?”

펠릭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16606122704334.jpg“강제각성 중에……. 저리 가라고 떼어냈는데 그게……, 그래서 엘펜하임이 거의 다 무너졌어요.”

16606122704325.jpg“그랬구나. 네가 강제각성 하는 자리에 엘펜하임 수뇌부 놈들이 있었다면……, 잘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겠다.

16606122704325.jpg“소렐, 내 말 잘 들어라. 넌 네 한 몸을 잘 지킨 거야. 전혀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그럴 필요 없어. 절대 그러지 말아요. 엄마도 분명히 그렇게 말할걸? 게다가, 너도 이젠 알잖니.”

라이킨이 그랬듯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소렐을 깎아내리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듯이.

16606122704325.jpg“대마법사는 때론 손에 피를 묻혀야 해.”

소렐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녀도 때때로, 라이킨이 했던 것과 같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16606122704325.jpg“물론 살생은 되도록 가디언이 할 일이지만, 가끔은 가디언이 다 처리할 수 없는 일이 있어. 그땐 네가 직접 해야 하지.”

펠릭스는 무릎 위에 팔꿈치를 대고, 손을 포개 그 위에 턱을 괴었다.

16606122704325.jpg“그나저나 엘펜하임 놈들이 그리되었다면 또 다른 놈들이 나타나겠구나. 이게 끝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지?”

뼈가 있는 말에 소렐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2704334.jpg“알아요.”

16606122704325.jpg“엘펜하임은 자신들의 편이 아닌 다른 마법사와 마녀들은 무조건 박해했지. 그러다 사라졌으니, 이젠 엘펜하임과 궤를 같이하지 않는 마법사들이 나타나서 널 노릴 거다.”

잘못된 사술을 사용하고, 인간을 마법의 재료로 삼는 사약한 이들이 나타날 거다.

16606122704325.jpg“그들은 힘을 갈구하지. 우리가 항상 옳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적어도 엘펜하임이나, 그런 마법사들처럼 고대마법을 다루지는 않잖니.”

거대한 힘을 받는 대가로 무거운 책무 또한 이어받았다.

16606122704325.jpg“네 세대에는 조금 더 쉬웠으면 좋겠다만,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구나. 아쉬워. 더 많은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쉽고도 또 아쉬웠다. 펠릭스는 허공을 바라보며 한탄했다.

16606122704325.jpg“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마저 힘든데, 하나를 잡으면 또 다른 하나가 고개를 내미는구나.”

일평생 엘펜하임과 피 터지는 전쟁을 해왔던 대마법사는, 이제 사악한 흑마법사들과 싸워야 할 딸을 내려다보았다.

16606122704325.jpg“그래서 아빠가 모든 걸 대신 해줄 수는 없지. 아빠는 이미 간 사람이잖아. 네가 살아야지.”

소렐의 미간이 슬프게 좁혀졌다.

16606122704334.jpg“그건 다 아는 이야기니까 자꾸 반복해서 얘기하지 마.”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아빠는 죽은 사람이라고, 아빠 입으로 듣는 건 지금 너무 괴로웠다. 몇 년이 지나도 아빠의 부재는 괜찮아지지 않을 거다.

16606122704325.jpg“소렐.”

불렀지만 대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를 한참 숙였던 소렐은 훌쩍거리면서 다시 일어났다.

16606122704334.jpg“아냐, 아빠 말이 맞아요. 이제 내가 대마법사니까, 내가 잘 판단해서 지켜내고 힘써야지.”

그녀는 눈물을 마저 닦았다.

16606122704334.jpg“내가 잘할 거야. 할 수 있어.”

16606122704325.jpg“……때론 말이다. 네가 겪기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일도 있어. 갑자기 벌어지고, 막을 수도 없지. 아빠가 늘 말했던 거 있지. 혹시 잊어버렸니?”

16606122704334.jpg“아냐, 기억해.”

소렐은 꾹꾹 눌러 말했다.

16606122704334.jpg“아빠가 없어도 씩씩하게 용감하게 행복하게. 기억해.”

16606122704325.jpg“겁먹지 마라. 우리 용감한 공주가 뭐 때문에 그리 겁을 많이 먹었을까?”

16606122704334.jpg“갑자기 막 납치되어서 끌려가고, 각성하고, 일이 한꺼번에 터져서 그때 나도 정신이 없었어……. 뭘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16606122704325.jpg“이젠 좀 괜찮아?”

16606122704334.jpg“응.”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똑바로 앉았다. 이젠 중심을 찾아서, 조금씩 단단해져가고 있었다. 일단 글래스턴 공작저에서 쉬는 것조차 그녀에게 안정적인 일상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일이었다.

16606122704334.jpg“괜찮으니까 라이킨한테 건 저주를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지 말해주세요, 당장.”

소렐은 단호하게 말했으나, 아빠는 고개를 홱 돌렸다.

16606122704325.jpg“싫다. 허상이 무슨 힘이 있다고.”

16606122704334.jpg“아, 방법은 알 거 아냐, 아빠……! 아빠는 라이킨을 그렇게 싫어하면서 왜 날 맡겼어?”

16606122704325.jpg“그러는 너는 결합점을 끊어낼 지경이면서 왜 붙어 있냐?”

16606122704334.jpg“말장난하자는 게 아니잖아아아…….”

말을 길게 늘이면서 투덜대는 딸 때문에 펠릭스는 픽 웃었다.

16606122704325.jpg“널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데. 그리고 그냥 걸린 채로 두는 게 뭐가 어때서? 널 지나치게 속상하게만 안 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그놈도 다칠 일이 없어.”

16606122704334.jpg“아빠!”

16606122704325.jpg“저주에 걸린 당사자에게 의견을 물어봐야지.”

소렐이 뭐라 하기도 전에 펠릭스는 허공을 마치 둥둥 떠가듯 걸어서 문으로 향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소렐은 아빠가 문을 열지 않고 쑥 통과해버리는 걸 보곤, 아빠의 죽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아빠는 행복할 거다. 죽음으로 안식을 찾고, 아마 엄마와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아빠에겐 엄마가 언제나 첫 번째였다. 아빠와 엄마가 행복하다면, 소렐은 그걸로 같이 행복할 수 있었다. 어쨌든 쫓아가야겠기에 그녀는 다쳤던 다리를 조금 움직여보려다가 그냥 허공에 둥둥 뜨기로 했다. 그러곤 조금 더 움직였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16606122718648.jpg“……공주님, 마법은 당분간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라이킨은 당장 달려와서 그녀를 허공에서 내리듯 안아 들었다.

16606122704334.jpg“아, 미안해요. 까먹었어요…….”

그녀는 아차, 하고 놀라 조그맣게 사과했다.

16606122704325.jpg“좋아. 소렐 네 말대로 하자. 두 사람의 문제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해결해. 자식 연애문제까지 관여하면 안 되지.”

펠릭스의 한가로운 목소리에 라이킨이 기가 막히다는 듯 웃었다.

16606122718648.jpg“이미 관여했으면서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래도 장인이라고 최대한 말을 정제해서 한 거다. 소렐만 없었으면 라이킨도 펠릭스 못지않게 말을 험하게 했을 거다. 뒤에 최소한 ‘이 새끼야’가 붙었겠지.

16606122704325.jpg“내가 딸 지키겠다고 그 정도도 못 해? 처음부터 잘했어야지.”

죽은 대마법사가 아주 뻔뻔하게 말했다.

16606122718648.jpg“논리가 없어, 논리가…….”

16606122704325.jpg“너도 딸 낳아서 너 같은 놈한테 시집보내봐.”

펠릭스의 모습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소렐은 그게 마법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란 걸 알아차렸다. 아. 붙잡고 싶었으나 붙잡을 수가 없다.

16606122704325.jpg“그래서, 저주 풀어줘, 말아?”

16606122718648.jpg“풀어줄 수나 있어?”

16606122704325.jpg“소렐이 좀 더 크면 쟤한테 부탁해.”

16606122718648.jpg“됐어, 상관없어.”

라이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16606122718648.jpg“계속 저주에 걸려 있다 해도 좋아.”

16606122704325.jpg“그래, 그럼.”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렐이 다급하게 물었다.

16606122704334.jpg“아빠, 또 만날 수 있어?”

16606122704325.jpg“아니.”

단호한 대답에 그녀는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16606122704334.jpg“……응, 알았어……. 나 뭐든 열심히 할게! 라이킨도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걱정하지 마!”

16606122704325.jpg“걱정하지 않아. 잘할 거라는 거 알고 있어.”

과거의 대마법사는, 현재의 대마법사가 남편의 어깨에 손을 짚고 열심히 말하는 걸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아빠의 허상이고, 기억의 일부일 뿐이다. 그게 사라진다 해서 그리 슬플 이유는 없다. 라이킨은 자신의 목을 소렐이 저도 모르게 꼭 껴안는 것을 느꼈다.

16606122704325.jpg“소렐한테 잘해.”

희미해지는 펠릭스가 분명하게 라이킨을 가리키며 말했다.

16606122718648.jpg“당연하지.”

16606122704325.jpg“저주는 너희 둘이 사이좋게 알아서 하고…….”

그러다가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

16606122704325.jpg“실수 좀 해도 괜찮다. 그깟 거 좀 하는 게 뭐 어떠냐. 그러면서 배우는 거니까 자책은 너무 심하게 하지 마.”

16606122704334.jpg“응.”

소렐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잘 알고 있었다.

16606122704325.jpg“너무 곱씹지도 말고. 결합점 정리는 한번 해라.”

16606122704334.jpg“응.”

16606122704325.jpg“잘 있어.”

16606122704334.jpg“아빠, 안녕.”

펠릭스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곤 끝내 사라졌다. 소렐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고, 라이킨은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모든 이별은 힘들다. 단지 기억의 파편에 불과한 존재와 이별했다 해도, 오랜만에 보는 아빠의 모습과 그 생생한 목소리에 소렐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16606122704334.jpg“……라이킨.”

잔뜩 물기 어린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16606122718648.jpg“예.”

16606122704334.jpg“저주는 내가 잘 책임지고 언젠간 풀어줄게요.”

16606122718648.jpg“그러실 필요 없다니까요.”

그녀를 붙잡기 위해 혈안이 된 뱀파이어가 그녀와 연결된 저주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16606122704334.jpg“아빠가 사악한 마법사들을 조심하래요.”

16606122718648.jpg“흑마법사 말씀이시군요.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16606122704334.jpg“……아빠가 갔어요.”

16606122718648.jpg“예.”

소렐은 황급히 얼굴을 닦았다. 오늘 참 많이 울어서 뺨이 따끔거리고 눈가가 아팠다.

16606122704334.jpg“나는 괜찮아요.”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소렐을 안았다.

16606122704334.jpg“나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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