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The golden wave (3)2021.08.28.
모든 마법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대마법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첫 번째 철칙이었다. 대마법사의 모든 역할과 책임은 이 철칙을 기본으로 이루어진다. 책임 없이 남발되는 마법들을 없애고, 책임 있는 마법만을 사용하며, 힘없는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소렐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분명히 그러지 못했다.
“……공주님의 아버지가 제게 가디언 역할을 맡긴 것은, 메리 공주님의 예언도 있었지만 제가 공주님보다 훨씬 고대마법에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라이킨 역시 그녀와 똑같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공주님을 잘 이끌어드리고, 실수하시지 않게 막는 역할을 잘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제 탓입니다. 너무 혼자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 말에 소렐은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라이킨이 늘 그랬듯, 다정하게 그녀를 위로해주고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경솔하고 혈기만 부리며 날뛴 대마법사라고 손가락질하거나 비난을 해도 할 말이 없는데 말이다.
“……말 붙이기가 어려워서 여태까지 못 물어봤는데……, 라이킨은 괜찮아요?”
“저 말입니까?”
소렐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아래로 숙였다.
“피 토하는 건 봤어요.”
“피……. 아, 그때 말씀이시군요.”
라이킨의 기억으로는 벌써 석 달이 가깝게 지난 ‘그날’이지만, 소렐의 기억으로는 바로 그제였다. 그날 라이킨은 고대마법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가며 마법을 깨부수고 금지된 구역에 들어와 소렐의 피를 마셨다. 그는 어쨌든 가디언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소렐은 새삼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공주님의 피를 제가 마신 건 기억하십니까?”
까만 정수리가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열심히 끄덕였다.
“덕분에 버텼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다.
“공주님께서 토하신 피를 열심히 마시길 잘했지요.”
“고대마법이……, 많이 사나웠지요…….”
아무도 마법진 근처에 접근도 못하게 해놓은 걸 라이킨이 가디언답게 몸으로 깨고 들어왔으니 안 그래도 결합점이 끊어져 균형을 잃은 고대마법이 사납게 날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공주님께서 피를 토하시고 뼈가 부러지신 거나, 제가 피 토하고 부러진 거나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공주님의 부상이 더 중합니다.”
그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소렐은 어쩐지 알 것 같았고, 그는 정확하게 그녀가 예상하는 대로 말했다.
“저는 여러 번 골절상도 입어보고, 자상도 입어본 사람입니다. 전장에선 더 끔찍한 부상이 즐비하지요. 하지만 공주님은 처음이셨던 데다, 마법을 실행하신 당사자이니 결합점을 끊은 타격을 고스란히 혼자 받아 두 달 넘게 잠드셨던 건데…….”
라이킨은 그제야 자신을 똑바로 보는 까만 눈을 보고 한마디 했다.
“왜 그러셨습니까? 저는 뱀파이어입니다. 회복력도 남다르고, 공주님을 몹시 속상하게 했는데 왜 그런 타격은 혼자 다 떠맡으셨어요?”
“……그게 내가 져야 할 책임이니까……, 그런데 라이킨 뼈가 왜 부러져요?”
소렐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예?”
“방금 뼈도 부러졌다고 했잖아요. 마법을 깼다면 내상을 입지, 뼈가 부러지지는 않아요. 나는…….”
말을 하던 소렐의 미간이 점점 좁혀졌다. 이거 정말 이상하다.
“나는 결합점을 끊는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 대가로 골절이 된 건데…….”
그러는 당신은 왜 뼈가 부러졌지? 묻는 눈에 라이킨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이크.
“라이킨.”
대마법사가 위엄 있게 가디언을 불렀다. 바른대로 말하라는 뜻이 그 이름 한마디에 전부 다 함축되어 있었다. *
“저주?”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다루는 건 분명히 다르다. 소렐은 지금 마법을 제어하지 못해 여전히 머리카락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고, 눈에도 황금빛이 더 맴돌았다. 아빠의 외모는 이상한 점이 없었던 걸 생각해보면, 그녀는 여전히 마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게다가 지식 외에 모르는 것도 많았다. 이제부터 알아가야 하는 것 천지였다.
“저주라고요? 아빠가? 라이킨한테?”
저주라는 말에 소렐의 눈이 엄청나게 커졌다. 그녀는 라이킨이 애를 먹어가며 머리카락을 말리던 것도 뿌리치고 그를 마주 보았다.
“왜, 왜요? 왜? 왜 그런 짓을……?”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를 더듬으며 놀라 묻는 표정을 분명히 확인한 라이킨은 저도 모르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단호하게 잡아 내렸다. 처음에 저주 이야기를 한 건 실수였지만, 생각해보니 말하길 잘했다.
“왜긴요.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소중한 딸이…….”
그는 소렐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은근히 뺨을 쓸어내렸다. 그녀는 그를 분명히 걱정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게 동정이든, 죄책감이든, 망가졌지만 찌꺼기라도 남은 첫사랑이든 상관없다. 라이킨은 무엇이든 망설임 없이 움켜쥘 것이다.
“남자 때문에 울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설마. 소렐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라이킨을 바라보다가, 손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확인만, 확인만 해볼게요. 내가 확인해보고 풀 수 있는 거면 풀게요. 잡아도 되나요?”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제 몸은 다 공주님 건데.”
그러나 그 말은 소렐 귀에 안 들리나 보다. 그녀는 라이킨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는지 확인했다. 소렐의 손을 통해 들어온 마력이 라이킨을 휘감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청량하면서도 따뜻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다.
“아……. 으음……, 이게 뭐지?”
소렐의 머리카락은 그 와중에 착 가라앉았다. 그가 손을 대면 가라앉고, 손을 대지 않으면 정신 사납게 너풀댄다는 걸 소렐이 알아차렸을까? 얼른 눈치채주셨으면 좋겠는데.
“으응……?”
그녀는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리면서 중얼거렸다. 라이킨은 소렐이 제 손을 붙들고 끙끙대는 상황을 몹시 즐겼다. 자그마한 공주님이 오랜만에 무려 손까지 붙잡아주시면서 동그란 눈을 도록도록 굴리는데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왜……?”
다시 한번 황금색 물결이 라이킨과 소렐 사이에 연결되었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갑자기 얼굴을 확 굳혔다. 그러곤 냅다 소리쳤다.
“아빠!”
챙,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소렐의 마력이 라이킨에게 심겨져 있던 펠릭스 이드리스의 마력과 부딪쳤다. 라이킨은 그의 온몸을 사슬처럼 휘감은 백색 마법을 보자마자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주 치밀하게 준비하셨군.
“이게 무슨, 이게 뭐야!”
소렐은 경악했다. 그녀는 황급히 라이킨을 묶고 있는 저주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저주는 까딱하지 않고 그녀의 힘을 튕겨냈다.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딪치는 곳에서 더 큰 힘이 흘러나오더니, 급기야 사람 크기로 변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검은빛이 도는 황금색 눈에 희끗한 갈색 머리카락, 훤칠하고 잘생긴 40대 남성이 소렐과 라이킨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러곤 살벌하게 눈을 떴다.
“일단은 당장 둘이 떨어지는 게 좋겠다. 그리 붙어 있기 좋은 차림들이 아니구나.”
라이킨은 딱히 떨어질 생각이 없었지만, 아빠 말을 착실히 잘 듣는 토끼는 당장 라이킨의 손을 놓았다. 아니, 아빠 말을 잘 듣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그대로 갑자기 나타난 아빠를 꽉 끌어안았다.
“……어?”
하지만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소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어?”
소렐은 울상을 지으며 아빠의 모습을 자꾸만 손으로 휘저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아빠?”
부르는 말에 펠릭스 이드리스는 무섭게 떴던 눈을 얼른 바꾸고 자상하게 말했다.
“나는 마법으로 남겨놓은 기억의 일부야. 잡힐 리가 없지.”
소렐의 어깨가 실망으로 축 처졌다.
“아빠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싱긋 웃으면 접히는 주름에,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던 다정한 손길.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던 소렐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금세 공주님이 울상을 지었다. 펠릭스는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울지 마, 울지 마. 사람이 죽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뭘 그렇게 울어.”
“이거 뭐야, 아빠? 마법이야?”
“마법이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허상이란다. 내 성격과 내 기억을 다 가지고 있지만, 결국 내가 아니야. 그저 설명을 하기 위한 존재일 뿐이지. 진짜 나는 이미 죽어서 흙으로 돌아갔잖아.”
펠릭스는 대단한 마법사로, 아무리 허상이라 해도 그가 풍기는 분위기서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엄마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법은 마법일 뿐이야. 과거의 기억에 매몰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선 안 돼. 나도 이번만 나타나고 사라질 거란다. 혹시나 싶어 만들어 놓은 장치였는데…….”
그 범상치 않은 마법사가 한참 늦게 얻은 딸에게는 그저 따뜻한 아버지처럼 웃어주더니, 고개를 휙 돌리자마자 라이킨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라이킨에게는 아주 익숙한 눈빛이었다.
“역시나 네놈이 내 딸을 울려놓고 뻔뻔하게 저주까지 풀어달라고 했군!”
“아, 오랜만이야, 펠릭스……, 가 아니라 아버님.”
딸에서 그에게로 옮겨진 펠릭스 이드리스의 눈이 살벌하기만 하다. 라이킨은 이미 익숙한 일이라, 장인어른을 맞이하기엔 지나치게 방만한 가운차림을 하고도 빙글빙글 웃었다.
“내가 비록 허상이긴 하지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아.”
눈이 동그래져서 여유만만한 남편과 살벌한 아빠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소렐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라이킨은 펠릭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결합점이 끊어졌다가 재연결되었다는 걸, 그리고 그 사이에 저주며 온갖 일이 다 벌어졌다는 걸 알았다는 뜻이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거지? 응? 어쩌다 소렐 네 상태가 그 모양이야?”
그 말은 붕대도 감고, 마법 각성상태도 엉망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소렐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저기, 아빠, 이거 내가 잘못한 거야, 내가 잘못 판단했어.”
아니야, 내가 잘못한 거야. 소렐은 고개를 흔들며 아빠를 열심히 만류하려고 했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어, 내 탓이야.”
“공주님.”
라이킨은 그게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고, 펠릭스도 딱히 어린 딸을 다그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소렐, 귀 막아라.”
소렐은 눈을 깜빡거리며 아빠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이거 불길하다.
“왜?”
“귀 막으라면 막아요.”
“그래도 나 토끼라 다 들리는데…….”
“어허.”
소렐은 어쩔 수 없이 착실히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당장 고함이 터졌다.
“누가 아버님이야, 이 개만도 못한 새끼야! 기어이 내가 튀어나오게 만들어? 우리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울려? 애가 왜 강제로 각성이 됐어? 네놈이 그러고도 가디언이야? 내가 그러라고 우리 애한테 붙인 줄 알아?”
라이킨은 그냥 듣고만 있었다.
“아빠, 제발 그만 좀…….”
“소렐 너는 저기 가 있어!”
소렐이 안절부절못했지만 허리에 손을 짚은 펠릭스는 못 들은 척하고 라이킨을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너보다 한참 어린 애를 울리면 행복하냐, 이 개새끼야? 그런데 네놈이 당한 거 치곤 꽤나 멀쩡한데?”
펠릭스가 라이킨을 훑어보았다. 그는 딸을 착실히 사랑하는 아빠답게 아주 살벌한 저주를 걸어 놨다. 그 저주가 보통이 아닌데 왜 멀쩡해? 자리보전이나 겨우 하고 앉아 있어도 성에 차지 않을 판이다.
“……갈비뼈 포함 일곱 군데 골절이었다가 겨우 붙은 참이지. 덕분에 오랜만에 골절상이 뭔지 다시 경험했어.”
라이킨은 느릿하게 대답했다.
“뭐야?”
펠릭스는 당장 소렐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라이킨이 말한 자세한 내용에 입을 틀어막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 공주, 정확하게 다리랑 어디가 더 부러졌어? 응?”
“여기 다리가 끝이야, 왜 그래, 아빠, 진짜…….”
딸은 아빠가 곤혹스럽다. 그러면서 연신 저보다 더 심하게 다쳤다고 말한 남편을 힐끔댔지만, 남편은 괜찮다며 부드럽게 웃어줄 뿐이다. 소렐은 그래서 그에게 더 미안해졌다.
“얼마나 부러진 거야?”
“몰라, 두 군데 이상인 것 같던데, 지금은 다 붙었어.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파!”
소렐은 애써 배시시 웃었지만, 토끼 같은 자식이 뼈가 부러졌다는 말에 가만히 있을 부모는 아무도 없었다. 펠릭스는 바로 라이킨을 노려보았다.
“오른쪽 고관절, 그리고 대퇴골. 대퇴골은 두 군데나 부러지셔서 제발 좀 다리를 사용하지 마시라고 주의를 드리는 중이지.”
“아이고, 공주야…….”
“더불어 내상도 입으셨고.”
“피까지 토했어? 그렇게 크게 다쳐본 적도 없는데……, 얼마나 아팠어?”
“괜찮아, 나는 괜찮아…….”
펠릭스는 소렐을 보며 안쓰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째 안절부절못하는 건 부녀가 똑같다. 하긴 메리 헬레인 공주가 훨씬 차분한 편이긴 했다. 언제나 날뛰는 대마법사를 진정시키는 건 메리 공주였고, 메리 공주가 없는 지금은 대마법사의 무시무시한 분노를 라이킨이 전부 다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네놈이 무슨 짓을 했길래 소렐이 강제 각성을 하다못해 그렇게 다쳐? 내가 그러라고 가디언 자리를 허락한 줄 알아?”
“이미 처음부터 내가 공주님 가디언으로 정해진 건데 무슨 허락?”
라이킨은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빙글 웃었다.
“그래.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아서 내가 최소한의 장치를 해놓은 거야.”
오, 맙소사. 소렐은 노기등등한 얼굴로 라이킨에게 서릿발같이 매섭게 구는 아빠를 쳐다보았다. 진짜로 저주를 건 건 맞나 보다. 하지만 라이킨은 이미 죽은 장인에게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일곱 군데 골절이 ‘최소한’인 저주군.”
“내가 괜히 네놈한테 저주를 해둔 줄 알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아빠!”
“소렐, 이럴 때는 아빠가 나서야 하는 거야. 가만히 있어요. 하는 짓은 뺀질뺀질해가지고…….”
여전히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눈초리로 펠릭스가 라이킨을 훑어보았다.
“머리나 굴려대는 네놈이 내 딸 울릴 건 뻔히 알았어.”
그 말을 하자마자 라이킨은 진심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공주님 오해하실 테니까 그런 소리는 그만하지? 안 그래도 너무 오해받아서 나도 상처 많이 받았는데 거기에 뭘 더 얹고 싶지는 않거든.”
소렐의 동그란 눈이 또로록 굴러서 라이킨에게로 갔다. 그녀가 봐줄 때마다 라이킨은 척추를 휘감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오해? 오해를 했는데 소렐이 결합점을 끊다가 뼈가 부러져? 오죽했으면! 오죽했으면 애가 결합점을 끊으려고 할까! 네놈 꼴도 보기 싫다, 이거잖아!”
허상치곤 지나치게 펠릭스 이드리스다웠다. 라이킨은 쓴웃음을 지었다. 제 아내의 일에도 유달리 예민하게 굴더니, 딸이 뼈가 부러졌다니까 아예 목소리가 바뀐다. 그의 멱살을 쥐고 흔들 셈이었다.
“아빠, 그거 내가 오해한 거야! 아, 진짜 자꾸 그럴 거야?”
소렐은 결국 짜증을 냈다.
“저놈이 무슨 짓을 했으니까 네가 결합점을 끊으려고 했겠지. 근데 그거 끊으면 큰일 나는 건데 알고는 있었어?”
“아빠처럼 가디언 없이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으니까, 그게 잘못된 거니까 내 잘못이라고.”
“너 왜 자꾸 네 잘못이라고 하냐? 저놈이 뭐라고 눈치 주고 구박했냐?”
“아, 맙소사, 말이 안 통해…….”
“그러니까 어쩌다 결합점을 끊을 생각까지 했냐고. 아빠가 지금 이 질문을 몇 번째 하니?”
라이킨은 펠릭스의 시선을 단번에 읽어내곤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이 새끼 저 새끼하며 죽일 듯이 그와 치받았던 대마법사라도 알아온 세월이 있다. 저 시선은 ‘네놈이 무슨 짓을 했겠지’라고 확신하는 아버지의 시선이었다. 하긴 소렐이 마흔이 되고, 백 살이 되고, 오백 살을 먹어도 펠릭스에겐 언제나 어린아이일 거다.
“아빠, 이건 나랑 라이킨이랑 해결할 문제고…….”
“네가 대답하라고, 이 새끼야.”
이미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빠는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사위놈을 보며 아주 조용히 추궁했다.
“무슨 짓을 했길래 얘가 네놈이랑 연을 끊고 싶어 해?”
“……그게 바로 내가 절실히 해명하고 싶은 부분인데.”
여기서 혀를 잘못 놀렸다간 대마법사의 허상에 불과한 존재에게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겠다. 아, 물론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가 맞고만 있을 정도로 만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사위가 어떻게 감히 장인어른에게 주먹을 올리겠나. 때리시면 사위답게 그냥 맞고만 있어야지.
“잘못을 안 했으면 해명을 할 필요가 없지.”
“아니, 그게 무슨 개 같은 논리입니까, 장인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