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방랑 (2)2021.07.21.
라이킨은 자신에게서 뻗어져 나온 거대한 황금빛 물결이 어디론가 이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여태까지 모인 결합점이 많긴 했지만 저렇게 거대한 물결이 될 만한 양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저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는 건, 소렐이 아주 커다란 마법을 사용했다는 뜻이었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함께 수색하던 조슈아가 보고했으나 라이킨은 더 멀리 바라보았다.
“아니, 저쪽이야.”
그는 어두운 숲 끝으로 나아갔다. 커다란 건초 저장고 하나가 버려져 있었다. 제법 튼튼하게 잘 지은 건물이었으나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문은 부서졌고, 창문은 떨어져 나간 지 오래며, 벽을 감싼 널빤지도 쪼개져 툭툭 떨어졌다. 그리고 시체도 툭툭 떨어져 있었다.
“……마스터.”
정색을 한 조슈아가 라이킨을 바라보았다.
“확인해봐.”
그 말에 수하 하나가 시신을 살펴보았다.
“……엘펜하임입니다.”
엘펜하임이란 말이지. 라이킨을 비롯한 뱀파이어들은 창고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황금빛 물결, 그와 소렐 이드리스가 연결되어 함께 고대마법을 제어하고 있는 결합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건초 저장고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시신들이 더 많이 보였다.
‘……불에 타고……, 뼈가 부러졌고.’
라이킨은 눈으로 훑어가며 시신들을 확인했다. 넓게 퍼져 접근하는 뱀파이어들이 시신을 확인할 때마다 엘펜하임이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라이킨은 툭툭 끊어지려고 하는 이성을 애써 잡으며 창고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 순간 결합점 역시 사라졌다.
“……공주님!”
라이킨은 소렐을 불렀지만 대답할 공주님은 없었다. 뱀파이어들은 무기를 치켜들었다가 창고 안의 상황을 보곤 기함하며 무기를 내려놓았다. 안에는 시신이 더 많았다. 대충 잡아도 스무 구정도 되는 것 같았다. 라이킨은 창고 한가운데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를 향해 뛰어갔다.
“……로체 양.”
늘 또래보다 조숙하고 차분하던 사비나 로체가 얼굴이 엉망이 될 정도로 엉엉 울고 있었다. 다쳤나? 아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저 멍이 든 것 외에는 뼈도 부러지지 않고 괜찮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공주님은?”
“마스터!”
조슈아가 라이킨을 불렀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조슈아가 쓰러져 있는 사람 하나를 가리켰다. 옷은 타버렸고, 몸도 심하게 그을렸지만 라이킨은 통증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 여자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에설론 백작.”
엘펜하임에 에설론 백작이 널브러져 있고, 소렐 이드리스와 도서관에 갔던 사비나 로체는 멀쩡하게 살아있다니. 하지만 정작 소렐은 없었다.
“소, 소렐이 갔어요.”
라이킨은 다시 사비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말을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충격이 커서 말도 안 나오는 것 같았다. 애쓰는 모습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소렐이, 다, 알았어요.”
흐느낌에 말이 뚝뚝 끊어져 나왔다.
“저 여자가 다 말해서……, 제가, 부탁받고 소렐이랑 친해졌, 다고……. 저 여자가 저를 이용해서 소렐을 납치했, 납치, 납, 납…….”
사비나는 말을 하다가 자신의 말에 스스로 놀라 더 크게 울고 말았다.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가가던 라이킨은 아까 정신이 없는 와중에 미처 보지 못했던 물건이 허공에 반짝거리며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엇인지 확인하자마자 숨이 꽉 막혔다.
“죄송해요…….”
“로체 양이 잘못한 게 아닙니다.”
“소렐이 실망했어요.”
사비나는 단숨에 말한 뒤에 또 울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친하게 지내라고 해서 일부러 인사부터 했으니, 어린 사비나가 생각해도 딱히 떳떳한 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좋아했다. 좋아하는 친구였다.
“다 알았어요.”
“공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라이킨은 그가 한참 고르고 골라 세공한 약혼반지와 결혼반지를 보며 나올 답변을 어느 정도 예감했다. 사비나는 흐느낌을 애써 멈추고 누워 있는 에설론 백작을 가리켰다.
“저 여자의……, 협정서인가, 그걸 가지고 간대요.”
라이킨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사비나는 어떻게든 소렐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썼다.
“너무 엄청난 짓을 저질러서 미안하대요.”
칼리에르 공은 고개를 숙였다. 그게 왜 당신 잘못이냐고 고함을 치고 싶었는데 들을 사람이 없다. 사비나는 그의 눈치를 엄청나게 보았다. 마지막 말을 듣기엔 라이킨의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또?”
하지만 라이킨은 그게 끝이 아닐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또 무슨 말씀을 하셨냐고, 어서 말하라고 사비나를 재촉했다. 사비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이혼장을 곧 보내겠대요.”
이혼? 라이킨이 아는 가장 잔인하고 험악한 단어였다. 오늘은 분명히 평범한 하루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혼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나올까? 라이킨은 그게 말이 되냐는 표정으로 사비나를 바라보았다.
“……모든 마법에는 책임이 뒤따른대요.”
사비나는 고개를 숙였다.
“너무 많이 죽였댔어요……. 그렇지만 그건 소렐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녀는 다시 고개를 팍 들었다.
“저 사람이 우리를 여기까지 억지로 끌고 와서 소렐에게 협정서인지 뭔지, 그 종이를 막, 눈앞에 이렇게 붙여놨어요!”
사비나는 루드밀라를 가리키며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뱀파이어들이 그녀의 어깨에 겉옷을 둘러주었지만, 그녀는 그렇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보라고, 공작전하가 서명했다고……. 저도 공작전하가 붙인…….”
사비나는 화가 나서 씩씩대다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만 울어요. 로체 양이 잘못한 건 없습니다. 아주 잘해줬어요.”
‘모든 마법에는 책임이 따른다.’
펠릭스 이드리스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라이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주님께서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사비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줄 알았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사람이니, 이곳에서도 감쪽같이 사라졌을 거다. 라이킨은 허탈한 얼굴로 손을 뻗어 반지를 잡았다. 반지 두 개가 그의 손에 남았다.
“시신은 전부 다 처리해. 아무도 모르게 해.”
“하지만 마스터, 저기 엘펜하임 기사단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라이킨은 조슈아의 말에 반지를 보던 시선을 돌렸다. 이거 가면 갈수록 가관이다.
“기사단장까지 직접 납셨나.”
그 차가운 말은 루드밀라를 향했다. 그녀는 자신에게로 향하는 새파란 시선에 숨을 헐떡거렸다. 라이킨은 그녀를 마치 짐승 바라보듯 경멸이 가득한 시선으로 보다가, 문득 손을 뻗었다. 그는 그나마 온전한 루드밀라의 뺨을 만졌다. 루드밀라를 향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손길에 조슈아마저 표정을 일그러트리고 그를 보았다. 도대체 마스터께서 지금 뭘 하시는 건가?
“작은데.”
얼굴에 난 새빨간 손자국 크기가 작았다. 라이킨은 반지를 제외한 소렐의 흔적을 보고 부드럽게 웃었다.
“우리 공주님께 제대로 맞았군, 백작.”
“저 사람도 소렐 얼굴 때렸어요!”
사비나가 그제야 퍼뜩 생각이 났는지 소리를 질렀다.
“여러 번 때렸어요!”
“우리 공주님은 몇 대 때리셨지요?”
라이킨은 상냥하게 물으며 에설론 백작의 몰골을 살폈다. 성기사의 낙인이 찢어진 옷 사이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두 대요! 근데 저 여자가 더 많이 때렸어요!”
“조슈아, 카메론 셀레스트 시신이 있는지 확인해.”
“예, 마스터.”
“두 대라.”
두 대에 더해서 마법으로 저만큼 부상을 입혔다. 루드밀라는 아마 평생 제대로 된 뱀파이어 구실을 못한 채 침대에서만 생활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석관 안에 들어가서 영원히 잠만 자든가. 아무리 뱀파이어의 재생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보통 상처가 아니었다. 일단 루드밀라는 혼자 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재생능력이 힘을 쓰는 것 같지 않다. 마치 사라진 것 같았다. 라이킨은 안 그래도 핏기가 없던 얼굴로 입귀만 비틀었다.
“잘하셨군.”
우리 공주님 장하시기도 하지. 그런데, 왜 이 못난 남편에게 이혼이니 뭐니 하는 무서운 소리를 하시고 사라지신 걸까.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 이상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이 건초 저장고에 시신을 널어놨다 해도 그게 왜 이혼 사유가 되는가. 혼자 지금 얼마나 겁에 질려서 달아나고 있을지, 생각하자니 가슴이 찢어졌다. 괜찮다고 안아주고 달래줘야 하는데, 이혼이라.
“페르난데스 7세에게 극비리에 알현 신청을 한다고 해. 시신들을 전부 수습하고, 근방에 있을 다른 엘펜하임 잔당들을 추적해라. 아버지와 샤를렌에게 연락해. 국왕에겐 아버지가 대신 가달라고 부탁드리면 되겠군.”
그의 머리는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공주님께서 머무르시던 집으로 가볼 거다.”
“예, 마스터.”
“그리고 로체 양.”
“네, 네!”
줄줄 울다가 상냥한 뱀파이어들이 내미는 손수건을 꼭 쥐고 있던 사비나가 화들짝 놀랐다.
“공주님을 지켜봐달라고 부탁한 내가 잘못한 것이지, 로체 양이 잘못한 건 없습니다. 그러니까 마음 쓰지 말아요.”
라이킨은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로체 양은 집에 잘 바래다드려. 의사에게 진찰하라고 하고.”
“예, 마스터.”
“그리고…….”
라이킨의 살기 어린 시선이 루드밀라에게로 향했다. 루드밀라는 그냥 기절을 하거나, 차라리 이 끔찍한 고통에 죽어버리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의식만은 또렷했다.
‘너는 그대로 살아.’
소렐 이드리스가 선언했던 바로 그 상태 그대로,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
“라이킨이 그런 말을 했어도, 이유가 있었을 거야.”
소렐은 웅크리고 앉아서 계속 생각하던 것을 중얼거려보았다. 입 밖으로 내면 말도 힘을 가진다고 했지만, 딱히 강한 힘을 가지진 못한 모양이다. 버석거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혼잣말은 조금도 신뢰를 주지 못하고 휙 사라졌다. 소렐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갈 곳이 없어서 결국 아빠와 마지막으로 살았던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라이킨이 다 닫아걸었던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성냥을 찾아 난로에 불을 붙였다. 소렐은 앞을 노려보다가 다른 말을 한번 해보았다.
“나는 정당방위였어.”
그 또한 별로 신뢰를 주지 못했다.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할 사람은 소렐 한 사람뿐이었다.
‘괜찮아, 이게 왜 네 잘못이야?’
아, 사비나도 있었다. 사비나를 떠올리자마자 소렐의 눈이 다시 가라앉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내내 마력 때문에 미친 듯이 일렁이며 제멋대로 춤을 추었다. 누가 봐도 소렐 이드리스는 넘쳐흐르는 마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대마법사였다. 어서 이 마력을 잘 갈무리했지만, 소렐은 반쯤 넋이 나간지라 그럴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가지고 온 협정서를 펼쳤다. 새카만 피는 이젠 굳고 말랐지만, 소렐에게 선명한 기억을 전달했다.
‘토끼를 키우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기르는 것에 위협당하면 도살해야 하는 법 아닌가.’
소렐은 질색을 하며 협정서를 다시 닫았다. 벽에 이마를 댄 그녀의 어깨가 떨렸다. 거짓말일 거다. 아마도. 라이킨도 가서 연기를 하고, 거짓을 말한 거다. 아마도.
‘아마도.’
소렐은 속으로 그 모호한 말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 이곳에서 약초를 뜯던 소렐에게 와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긴 유언장 반쪽을 내민 남자. 죽을 때까지 그녀를 지키는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남자. 그녀의 작은 손은 아까 덮었던 것이 무색하게 다시 협정서를 열었다. 그러면 그 싸늘하다 못해 두렵고 무서운 남자가 다시 나타난다.
‘스무 살짜리 비위 맞추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수틀리면 당장 이런 일이 발생하잖나.’
그는 짜증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말하는 모든 게 전부 다 진심 같았다. 어느 쪽이 진심인 거지? 다정하게 말해줄 때도 진심이었고, 뱀파이어들 앞에서 토끼는 도살해야 한다고 하는 말을 내뱉는 것도 진심인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그녀를 위해서 저랬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아마도’.
사실은 모르겠다. 소렐은 더 정확하게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꾸만 협정서를 펼쳤다. 그러나 새카만 피들이 전해주는 기억은 그저 라이킨에 대한 의심만을 높일 뿐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보지 말았어야 했다. 소렐은 간신히 꺼내온 담요를 털어 둘러쓰고 웅크려 누웠다. 춥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쩐지 온몸이 떨려왔다. * 라이킨은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딱히 정신을 차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빠드득 이를 갈며 빠르게 움직였다. 이번 일을 꾸민 놈들 중 간신히 살아남은 것들은 살아 있다는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라이킨은 널려 있던 시신 중에서도 살아남은 이가 있다는 보고에 그나마 기뻤다. 그들은 죽음을 애원하게 될 것이다. 에설론 백작까지 포함해서.
‘에설론을 누가 이어받게 되더라.’
루드밀라에게는 자식이 없으니 아마 프랑슈틸 가문 쪽으로 승계가 될 텐데, 라이킨은 에설론을 그대로 가져다가 소렐에게 바칠 요량이었다. 작위까지 전부 다. 그 정도는 되어야 계산이 얼추 공정하게 끝나지 않나. 공주님은 지금 살인을 하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했다는 충격에 고대마법이 강제로 열어젖혀져 고생만 하고 있었다.
‘……뺨 한두 대 정도는 각오해야 하나.’
아니, 뺨이 문제가 아니라 뼈가 부러져도 상관없었다. 협정서에 서명한 건 고의가 아니었다고, 그녀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하고 데리고 올 것이다.
‘이혼이라니, 어디서 그런 못된 말을 배우셔서.’
라이킨은 그런 험악한 말이 제 사랑스러운 아내 입에서 툭 나왔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그딴 걸 가르쳐준 새끼가 도대체 누구야?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소렐이 밤잠도 못 이루고 덜덜 떨며 울고 있을 걸 생각하면 애간장이 녹아내렸다. 도서관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어딜 가든 그가 함께 갔어야 했다. 라이킨은 저 멀리 보이는 시골집을 보곤 옷매무새를 다시 만졌다. 불은 온통 꺼져 있었고, 주위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엄청나군.’
고대마법이 완전히 각성했다. 라이킨도 이렇게 선명하게 느낄 정도라면 엘펜하임이나, 뱀파이어들이나, 잡스러운 마법사에 마녀들, 수인들도 느낄 것이다. 대부분은 감당을 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도망가겠지만 주제를 모르고 덤비는 것들도 꽤 될 거다. 그러기 전에 소렐을 데리고 와야 했다. 그는 오늘 엄청나게 상처받았을 소렐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공주님.”
제발.
“접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물었다. 그때였다. 라이킨은 또다시 황금색 물결을 보고 말았고, 그는 발작적으로 문을 두드렸다.
“공주님, 제발! 제발 가지 마십시오! 공주님!”
안 된다. 또 사라진다고? 어디로 가려고? 그를 두고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공주님!”
라이킨은 결국 문을 강제로 열었다. 하지만 물결의 끄트머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제발…….”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눈가를 짚은 채 닿지 않을 애원을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