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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불꽃놀이 (14) (99/181)

99. 불꽃놀이 (14)2021.07.10.

뱀파이어들은 음울한 회색과 백색의 도시, 글래스턴을 무척 사랑했다. 이곳에는 안개가 자주 끼고, 때론 비가 추적추적 내렸으며, 어둠이 내리면 고풍스러운 건물에 조명이 걸리고, 사람들은 오래된 학문을 탐구했다. 이곳에 반짝 해가 나게 했던 여름도 이젠 물러가고 있었다. 기온이 떨어지고, 다시 안개가 피어오르며, 단풍이 지기 시작하면 새로운 신입생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도시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16606121278509.jpg“너무 일찍 돌아온 건가, 했는데 또 그렇지도 않대요.”

라이킨은 소렐이 종알거리는 소리를 묵묵히 들었다. 그녀는 친구들과 한참 어울린 뒤에 돌아와서 무슨 이야기를 했고, 또 어딜 갔는지 다 말했다. 사실 라이킨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인데도, 소렐이 하는 이야기는 늘 재미있게 들었다.

16606121278509.jpg“해야 할 일이 이만큼 많은데, 한 달 일찍 온 것도 일찍 온 게 아니라잖아요. 데뷔탕트들 중에서 대학교에 다시 가야 하는 애들은 무조건 일찍 돌아왔대요. 걔들은 결혼이 목표가 아니니까요.”

결혼이 목표인 신사와 숙녀들은 엔버네스에 남았다고 했다.

1660612127852.jpg“공주님은 이미 결혼을 하셨지요.”

라이킨은 그걸 괜히 상기시켰다.

16606121278509.jpg“네, 그러니까 이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요!”

1660612127852.jpg“……굳이 열심히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부부생활 아닙니까. 아니, 열심히 할 생각이 있으시긴 하신 겁니까. 라이킨은 바짝 다가서는 소렐을 보고는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16606121278509.jpg“왜요, 내가 일등을 하면 라이킨이 무척 자랑스럽지 않을까요?”

1660612127852.jpg“지금도 자랑스러운 아내이십니다.”

라이킨은 그녀의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집어넣어 휙 들어 올린 뒤, 그대로 아이를 안 듯 안아들었다.

16606121278509.jpg“대학생의 목표는 4년 연속 장학금이래요!”

1660612127852.jpg“아니, 그냥 졸업입니다.”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정정했다.

1660612127852.jpg“졸업만 해도 목표는 완수되는 겁니다.”

16606121278509.jpg“그……렇게 어려워요?”

1660612127852.jpg“공주님께서는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똑똑하신 공주님께서 못하실 리가 없지. 라이킨은 그녀와 이마를 맞대며 확신했다.

16606121278509.jpg“근데 장학금은 왜요?”

1660612127852.jpg“뭐하러 장학금을 탑니까. 그런 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양보하시고, 공주님께서는 즐겁게 학교를 다니시고, 졸업하시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16606121278509.jpg“아, 그러네…….”

약초 판 돈을 낑낑대며 모아서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는 거였지. 소렐에겐 글래스턴 대학의 4년 간 학비를 충분히 낼만 한 능력이, 정확하게는 유산이 있었다.

16606121278509.jpg“그래도 내가 일등도 하고, 공부 열심히 한다고 소문나면 교수님인 라이킨도 뿌듯하잖아요.”

소렐은 그의 속도 모르고 헤헤 웃었다.

1660612127852.jpg“지금도 충분히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니까요.”

라이킨은 한숨을 쉬듯 말했다. 지금으로도 충분한데, 뭘 더 열심히 하려고? 그녀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그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차라리 열심히 하지 않고 대충 살면서 안온하게 살면 안 될까? 공주님인데, 칼리에르 공비전하인데 굳이 그렇게 성실할 필요가 있나. 태어나면서부터 앞날은 그저 휘황찬란할 인생이다. 펠릭스와 메리가 그렇게 만들었고, 그들의 뒤를 이어 라이킨이 그렇게 만들 인생이기도 했다.

16606121278509.jpg“그건 고맙지만…….”

1660612127852.jpg“고맙지만?”

라이킨은 석연치 않게 흐려지는 말끝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16606121278509.jpg“그래도, 그래도 열심히…….”

사실은 라이킨에게 걸맞은 아내가 되고 싶었다. 그는 소렐이 보기에, 그리고 누구나 보기에 너무 잘나고, 또 모자란 것도 없는 사람이라 지나치게 멋있는데, 소렐은 별 거 없지 않나. 좀 더 멋있고, 좀 더 똑똑해져서 라이킨의 곁이라는 영예로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수많은 이유 중 굵직한 하나였다.

1660612127852.jpg“열심히 하실 필요도 없다니까요.”

하지만 라이킨은 뭐가 불만스러운지,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16606121278509.jpg“그럼 제일 중요한 게 뭔데요?”

공주님 남편에게 관심을 쏟는 것,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라이킨은 겉으로는 정상적인 남편인 양 행세해야 했다.

1660612127852.jpg“건강이지요.”

16606121278509.jpg“나는 건강해요.”

소렐은 아주 씩씩하게 말했다. 다친 곳도 다 나았다.

1660612127852.jpg“밤새워 공부하겠다고 하지 마시고.”

16606121278509.jpg“안 그럴게요.”

1660612127852.jpg“가끔, 아니, 자주 이 남편에게도 관심을 보여주시고.”

16606121278509.jpg“어……, 어쩐지 그게 본심인 것 같은데요.”

1660612127852.jpg“예, 그렇습니다.”

라이킨은 순순히 인정하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맞췄다. 깊게, 더 깊게. 이리저리 튀는 작은 머리의 관심사를 모조리 다 빼앗아오고, 온통 그로 가득 차도록 정신없게.

1660612127852.jpg“……공주님께서 집을 떠나신다니 서운해서.”

16606121278509.jpg“누가 집을 떠나요……. 남이 들으면 내가 기숙사 생활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소렐은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서 괜히 그에게 파고들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심장이 두근두근 달음박질 치고, 너무 간지럽게 설레서 좋았다. 그가 좋았다.

1660612127852.jpg“집을 떠나 계시는 시간이 길지 않습니까.”

16606121278509.jpg“그래도 집에 꼭 돌아올 거예요. 외박은 안 되잖아.”

이미 외박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 적이 있는 부부의 불문율이기도 했다.

1660612127852.jpg“그럼요. 외박은 큰일 나지요.”

하지만 대학에 가면 외박도 하고 싶어질 거고, 아주 늦게 오고 싶어질걸. 라이킨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소렐을 안은 팔에 힘을 더 주었다. 아니, 그걸 알기 전에 차단하면 될 일이지. 그렇게 그의 품에서 안락하고 편안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그도 좀 더 스스로에게 신경을 써야 했다. 소렐 이드리스의 눈에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남자여야 하니까.

1660612127852.jpg‘몸이라도 더 키워볼까……?’

공주님은 근육이 더 붙은 쪽을 좋아하시려나, 아니면 덜 붙은 쪽을 좋아하시려나. 어느 쪽이든 그 취향에 맞게 바꿀 용의가 있었다.

1660612127852.jpg“어쨌든 즐거우실 겁니다.”

앞으로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늘 즐겁도록 최선을 다할 거다.

16606121278509.jpg“응, 알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1278509.jpg“항상 라이킨이 함께 있어줄 거잖아요. 내가 어딜 가든, 뭘 하고 있든.”

어쩌면 소렐도 이미 그의 비정상적인 마음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1660612127852.jpg“예. 그렇지요.”

라이킨은 딱히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1660612127852.jpg“공주님이 어디 계시든, 뭘 하시든 제가 항상 함께 있을 겁니다.”

떼어내고 싶으셔도 떼어내지 못하실 거예요. * 소렐 이드리스는 지금 글래스턴으로 돌아가, 대학 입학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16606121290495.jpg“……팔자가 늘어졌네.”

루드밀라는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16606121290495.jpg“나는 바빠 죽겠는데.”

그녀는 실로 바빴다. 그녀보다 더 숨이 찰 만큼 일하는 사람도 없을 거다. 깨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쉬는 건 칼리에르 공비가 된 다음에 쉬면 된다. 그녀는 새카맣게 고인 액체를 내려다보았다.

16606121290495.jpg“이거면 된다고?”

지금 소렐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려준 카메론 셀레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1290509.jpg“뱀파이어들에겐 통하지 않지만, 소렐 이드리스에게는 통할 거야. 평범한 인간은 즉사할 거고.”

16606121290495.jpg“무척 편리한데. 역시 엘펜하임이야.”

루드밀라는 씩 웃었다. 뱀파이어고 마법사고 죄다 배척하면서도 스리슬쩍 힘만 빼내서 쓰려고 한 날강도들답게, 온갖 무기와 극약이 많았다. 그중에는 개발하다 실패한 것들도 있어서, 카메론은 의외로 이번 상황에 적합한 실패작을 찾아내 가져왔다.

16606121290495.jpg“별게 다 있어.”

뱀파이어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마법사나 마녀에게는 통하고, 특별히 헬레인 토끼에게 치명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약이라니.

16606121290509.jpg“대신 증기로 쐬어야 해. 연기를 들이마셔야 한다고.”

16606121290495.jpg“그거야 뭐. 먹이는 것보다 쉽네. 헬레인 토끼를 잡는 비법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을 줄은 몰랐어.”

루드밀라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16606121290509.jpg“가장 오랜 숙적이었으니 창고며 도서관을 뒤지다 보면 다 남아 있는 거지.”

카메론 셀레스트는 별 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16606121290509.jpg“그리고 그 약은 헬레인 토끼를 죽일 수는 없고, 잠시 기절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해. 물론 마법사가 마법을 잠시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기도 한 약이지.”

16606121290495.jpg“아주 훌륭해.”

엘펜하임의 먼지 쌓인 창고에서 이렇게 구미에 딱 맞는 약이 나올 줄이야. 루드밀라는 진심을 가득 담아 말했다.

16606121290495.jpg“딱 맞는 걸 구해줘서 고맙군.”

16606121290509.jpg“실패작이지만 이런 때라도 쓰임새가 있다니 다행이야. 하지만 말이야.”

카메론 셀레스트는 어쩐지 회의적이었다.

16606121290509.jpg“그 약이 고대마법의 계승자에게 통할 거라는 장담은 못 해. 만일 통한다 해도 아주 잠시, 정말 찰나일 뿐일 거야. 그건 말 그대로 실패작이니까.”

16606121290495.jpg“상관없어. 내가 바라는 건 그 ‘찰나’니까.”

16606121290509.jpg“처음부터 고대마법을 억제하는 건 불가능할 수도 있다니까. 이번에는 당신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 수도 있어, 백작.”

물론 그럴 수도 있었다.

16606121290495.jpg“나는 방법이 따로 있어.”

16606121290509.jpg“세 치 혀로?”

카메론 셀레스트는 픽 웃었지만, 그게 의외로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건 인정했다. 혀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가장 좋은 무기이기도 했다.

16606121290509.jpg“……백작의 목표는 참 확고하군.”

16606121290495.jpg“확고하지. 그러니까 접선할 시간이나 잘 지켜. 이건 다 시간 싸움이라고.”

16606121290509.jpg“거침없기도 하고.”

카메론은 감탄하는 게 아니라 평가를 하고 있었다. 거슬린다. 제깟 게 뭐라고 감히 평가하냐는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16606121290509.jpg“칼리에르 공비 자리를 원하는 거지? 그 자리에 있는 건 그냥 치워내면 그만이고. 죽든지 말든지, 고대마법이 엄연히 당신들과 적인 우리의 손에 들어가든지 말든지.”

루드밀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16606121290509.jpg“난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사랑하는 사람이 끔찍하게 싫어할 짓을 하지?”

너나, 필로미나나. 카메론은 쓴웃음을 지었다.

16606121290509.jpg“미움받는 건 안 무서워?”

16606121290495.jpg“난 계속 미움이 아니라 경멸을 받아왔어.”

고고한 에설론 백작의 자존심을 몇 번이나 부러트리고, 가루가 될 만큼 짓밟았다. 미워하는 것보다 경멸받는 게 수백 배 더 굴욕이었다.

16606121290495.jpg“그러니 거기에 미움을 더한다고 해도 딱히 새롭지 않아. 그렇게 해서라도 가질 거야.”

16606121290509.jpg“너네는 제정신이 아니야.”

16606121290495.jpg“너‘네’? 단수가 아니라 복수인데.”

16606121290509.jpg“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를 좋아하는 여자들.”

16606121290495.jpg“아. 남자들도 있어. 남자들도 끼워줘.”

카메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 그런 미친놈들도 있다고?

16606121290509.jpg“둘이 아니라 둘 이상이라고?”

16606121290495.jpg“제임스는 쳐다보지도 않지만. 옛날부터 유구했지. 그런데 둘이라니, 나 말고 다른 누구를 말하는 거야?”

카메론은 일그러트렸던 표정을 다시 폈다.

16606121290509.jpg“말하면 관심 가지게?”

16606121290495.jpg“아니, 관심 없어.”

16606121290509.jpg“거봐.”

다 똑같다니까. 하지만 카메론은 에설론 백작보다는 더 오래 알고 있었던 여자에게 조금 더 마음이 쓰였다. 에설론 백작은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사람 취급도 하지 않지만,. 폴리아나 그린은 에설론 백작도 신경 썼고 또 소렐 이드리스도 지독하게 의식했다. 폴리아나 쪽이 더 사람답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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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킨이 서명한 협정서에 묻은 새카만 피들이 바짝 말랐다. 뱀파이어들끼리 모인 회합에서 협정서 수십 장이 나온 날로부터 여드레가량 지났을 때, 라이킨은 협정서에 서명된 이름 중 하나를 지목했다.

1660612127852.jpg“실종부터 시키지.”

협정서에 서명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뱀파이어였다. 실종이란 그의 행방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어야 성립하는 법이다. 따라서 칼리에르 공 휘하에 있는 무시무시한 그림자들이 작업을 끝냈을 때, 아직까지 실종 상태가 되지는 않았다. 며칠이 걸려야 할 일이다.

1660612127852.jpg“다음.”

라이킨은 다음 이름을 지체하지 않고 지목했다. 그 누구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소렐 때문에 손에 피를 묻히는 걸, 당사자인 소렐은 질색하며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그거야 소렐이 평생 모를 일이고. 그림자들은 어둠 속에서 목숨을 수확했다. 뱀파이어를 살해하는 일은 뱀파이어가 전문인 법. 라이킨은 글래스턴에 평화를 깔아놓고, 아무도 모르는 살인을 시작했다. 그리고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뿐만 아니라, 빠르게 움직이는 뱀파이어는 하나가 더 있었다. 에설론 백작 루드밀라 아스테어 프랑슈틸은 멀리 삼엄한 경비 속에 움직이고 있는 소렐 이드리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뜻 봐서는 그녀가 도저히 저 경비를 뚫을 수가 없을 것 같았지만, 보기에 불가능하다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법이다.

16606121298935.jpg“아, 소렐!”

소렐 이드리스에게 친구 하나가 손을 크게 흔들었다. 자신이 어떤 경비를 받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토끼가 통통 뛰어서 친구에게로 다가갔다.

16606121298935.jpg“왔어?”

16606121278509.jpg“나보다 일찍 왔네, 사비나. 많이 기다렸어?”

16606121298935.jpg“아니, 나도 이제 왔어.”

16606121278509.jpg“그럼 가자.”

가방을 하나씩 든 숙녀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재잘대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제 ‘애완’ 토끼가 외출하는 것쯤은 관대한 ‘주인’으로서 괜찮은가 보다. 루드밀라는 라이킨이 철저하게 심어놓은 애완토끼의 친구까지 훑어보다가 슬슬 움직였다. 오늘 두 아가씨가 가는 곳은 조용히 공부를 할 수 있는 글래스턴 시립도서관이다.

16606121298935.jpg“나 엄청 이상한 책을 찾았어.”

16606121278509.jpg“이상한 책?”

사비나가 소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1298935.jpg“응. 도대체 어디서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내 가방 안에 들어 있더라?”

16606121278509.jpg“뭐야, 그거 이상한 거 아니야?”

16606121298935.jpg“아니야, 아주 멀쩡해. 내 생각에는 우리 삼촌이 넣어둔 게 틀림없어. 무슨 말만 하면 ‘책은 아주 골고루 읽어야 해’ 이러면서 별의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책들을 줄줄이 주신단 말야.”

16606121278509.jpg“한번 읽어봐, 재미있겠다!”

16606121298935.jpg“근데…….”

사비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16606121298935.jpg“무슨, 기사 어쩌고의 무슨 시라는 책이 있어야 읽을 수 있는 책이래. 완전 암호야.”

16606121278509.jpg“재미있겠다!”

16606121298935.jpg“응, 그래서 기사 어쩌고가 도서관에 있는지 오늘 한번 찾아보려고.”

16606121290495.jpg‘도서관이라, 좋지.’

루드밀라는 좋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정숙해야 하며, 또 교양 있는 신사와 숙녀만 드나들어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고, 아주 조용하지 않은가.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의 탁월한 특기대로, 조용히 일을 처리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이다. 이미 소렐 이드리스는 도서관을 사흘째 출입하고 있었다. 자연히 루드밀라는 이곳을 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16606121290509.jpg“본부에서는 이미 이동 중이야.”

카메론 셀레스트가 루드밀라에게 말했다.

16606121290495.jpg“그래.”

엘펜하임 기사단장이 직접 글래스턴 외곽까지 오는 위험한 짓을 벌이는 건, 전부 다 오늘 저 토끼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들에게 토끼를 인도해주고, 낙인을 지우기로 약속받은 에설론 백작이 움직일 것이기에 그들은 나서지 않을 거다. 괜히 나섰다가 일이 틀어지면 그거만큼 곤란한 일도 없으니까.

16606121290495.jpg“가만히 기다리기나 해.”

16606121290509.jpg“자신이 있나 보지?”

16606121290495.jpg“보기만 할 사람한테 그딴 소리 안 듣고 싶어.”

엄청나게 예민해진 루드밀라가 차갑게 말하며 걸어갔다. 오늘 글래스턴,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의 관할 하에 있는 이곳에서 그의 애완토끼가 사라질 예정이다. 그 생각만 해도 루드밀라는 힘을 얻고,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도서관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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