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불꽃놀이 (13)2021.07.07.
여름휴가철도 이젠 지나갔다. 아직까지 더운 열기가 가시지는 않았지만, 푸른 바다와 따가운 햇살, 그리고 얇은 옷차림에 싫증이 난 귀족들은 다시 엔버네스로 돌아갔다. 소렐은 라이킨의 품에 안겨 글래스턴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포도 수확철이 끝날 때까지는 이곳에 있어야지.”
“하긴 모처럼 오래 발레시나스를 비우셨지요.”
아들이 갑자기 결혼했다는 말에, 음울하고 또 죽은 아내에 대한 추억이 서려 있는 글래스턴으로 발걸음 한 이후로 답지 않게 엔버네스까지 갔으니 이만하면 발레시나스 공작이 모처럼 바빴던 셈이다.
“내가 굳이 없어도 너와 샤를렌이 알아서 잘할 거라는 건 안다.”
로렌스 오블리앙 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더구나 라이킨은 이제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킬 예정이었다. 아버지는 걱정스럽게 아들을 바라보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수많은 죽음이 어떻게 조용히 처리되겠니?”
“알음알음 소문이 난다면 더 좋고요.”
라이킨은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렇지.”
로렌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은 숨길 생각이 없는 것이다. 목숨들이 순식간에 거둬지는 끔찍한 일을 숨길 대상은 오직 하나, 아무것도 모르고 시누이가 하는 장난에 말려들어 까르르 웃고 있는 소렐밖에 없었다.
“아가가 학교에 갈 때쯤에는 잠시 가마. 그래도 가서 축하해줘야지.”
“예, 아버지.”
“글래스턴 공작저도 너무 비워놓지는 말아라.”
“예.”
“꼬박꼬박 끼니 챙겨 먹고, 아가한테 해야 할 말은 숨기지 말고 다 하고. 마차 조심하고.”
“예, 그럴게요.”
기차역까지 전송을 나온 발레시나스 공작은 특별히 잘 웃는 어린 며느리에게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내가 학교 입학할 때 쯤 또 갈 거다.”
“진짜요? 그럼 곧 오시겠네요?”
“아이고, 다쳤는데 뛰지 말아요.”
소렐은 깡총거리려다가 그녀를 제지하는 어른들 때문에 다시 얌전해졌다.
“이리 뛰는 걸 좋아하는데 다쳐서 어쩌나.”
로렌스는 허허 웃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리 겁에 질려서 낯을 가리더니, 그래도 로렌스는 친하고 다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지 토끼는 더 이상 겁을 먹지 않았다. 로렌스는 소렐에게 있어서 가까운 사람에 속했다.
“그러니까요…….”
소렐이 순식간에 풀이 죽어서 고개를 떨어트렸다.
“곧 나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라. 잘 먹고 잘 자면 금방 나을 거야.”
“제가, 제가 치유마법을 할 줄 몰라서……!”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가능한 마법은 어쩌다 하게 된 마법들 뿐, 연습을 하고 억지로 배운다 해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게 가능한 일이었다면 소렐은 이미 대마법사였을 거다. 그저 가만히 세월이 지나가면서 저절로 익혀지는 게 마법이란 건 알고 있지만, 소렐은 괜히 풀이 죽었다.
“모를 수도 있지. 벌써 큰 마법을 두루두루 하고 있으면서 욕심도 많다.”
로렌스는 껄껄 웃었다.
“그리고 웬만한 건 마법으로 낫게 하는 것보다 그냥 천천히 깨끗하게 아물게 하는 게 이래저래 건강에도 좋으니 조급하게 생각할 거 없어.”
“네에…….”
“여름 동안 즐거웠니?”
물어보자 토끼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글래스턴에서 지내는 건 어땠고?”
“그것도 좋아요!”
삐약삐약! 로렌스의 눈에 자그마한 토끼는 그저 아직까지도 한참 아가였다. 아이고, 이 아가가 저 무서운 아들놈이 휘두르는 서슬 시퍼런 칼날 아래 숨어서 언제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려나.
“그래서 지금 돌아가는 것도 좋아요! 여기에 조금 더 머물고 싶긴 하지만, 여긴 여름에 와도 되고, 겨울에 와도 되는 거지요?”
“그렇지요.”
“그럼 겨울에 다시 올래요. 추억은 조금씩 아껴야지.”
로렌스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라. 입학준비 잘하고, 꼬박꼬박 끼니 잘 챙겨서 골고루 먹어요.”
“네.”
“항상 마차 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편지하고.”
“네.”
“별일이 없어도 편지해요.”
“네!”
소렐은 신나게 손을 흔들며 기차를 타고 발레시나스를 떠나갔다. 아직까지 여름이지만, 곧 가을이 올 것이고, 이미 성실한 엔버네스 귀족들은 자식들의 대학 생활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식이 아니라 아내가 대학에 입학하는 라이킨은 남들이 하는 거야 당연히 다 해야 하고, 또 안 하는 것까지 다 챙겨줘야 하는 성미이기 때문에 그도 서둘러 글래스턴으로 돌아갔다. *
“넌 쉬지도 않는구나.”
루벤은 짐을 싸면서 루드밀라를 보며 한마디 했다.
“그러는 너는 쓸데없이 여유롭네.”
“나야 학생이니까.”
“대학은 얼른 다니고 얼른 졸업했어야지.”
예전에는 돈이 없어서 못 다녔다, 어쩔래. 혀끝까지 올라온 말을 삼킨 루벤은 그저 묵묵히 짐을 쌌다. 저 집안은 방계의 설움이라고는 전혀 모른다. 점점 뻗어 나온 자식들을 무시하고 그저 장자, 혹은 순혈에게만 재산과 작위를 몰아주었으니 당연하지. 저들이 가난하고, 또 무시당하는 설움을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모른다는 건, 그만큼 무지하다는 뜻이다. 어쨌든 모르는 거니까. 루벤은 가끔 저 잘난 머리를 진창에 처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진짜 갈 거야?”
루드밀라가 그를 싸늘하게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가야지. 이제라도 졸업해야 할 거 아냐.”
루벤은 정말 바쁘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 여자 옆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성의가 있는 척, 성의 없는 짓을 하느니 차라리 글래스턴이 나았다.
“그래, 글래스턴에도 눈과 귀가 있긴 해야지.”
루드밀라는 어쩔 수 없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눈과 귀는 누가 눈과 귀가 되어준다고 했나? 루벤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가까이하기에는 루드밀라보다는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칼리에르 공이 훨씬 더 낫다는 걸 잘 알았다. 그는 적어도 설움이란 게 뭔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휘하에 있는 뱀파이어들, 그리고 수인들은 그에게 목숨을 걸고 충성했다.
“잘 가, 루벤.”
이유가 뭐겠는가. 그만큼 칼리에르 공도 그들을 목숨을 걸고 아껴주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전쟁에서 만났던 이들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 폴리아나 그린 역시 그랬다. 배우고 싶다면 장학금을 아낌없이 대줬고, 뱀파이어들이든 수인이든 포로로 잡혔다면 직접 화살비를 뚫고 들어가서 구해왔다.
“네가 인사해줄 줄은 몰랐네.”
루벤은 픽 웃었다.
“나도 인사 정도는 할 줄 알아.”
루드밀라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러곤 멀어졌다. 그녀는 무척 바빴기 때문이다. 루벤 실베스터는 쓸 만한 인재였지만 손에 착착 감기는 연장은 아니다. 루드밀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걸어갔다. 카메론 셀레스트가 낙인을 찍어놓은 곳이 쑤셔댔다. 그녀는 그 낙인을 찍어놓은 빌어먹을 자식을 찾아갔다.
“마법사를 묶어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카메론은 쉬지도 않고 몰아치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저런 질문을 할 줄 알았다.
“알면서 뭘 물어?”
“안 돼. 적어도 의식은 있어야 한단 말이야.”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바로 그 방법은 안 된다고 루드밀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마법사가 깨어 있으면 마법을 쓰지.”
“의식이 있어야 해.”
“그럼 답이 없는데.”
루드밀라는 욕을 하는 대신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이 그녀가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입에 넣어주는 거나 받아먹으려는 무능한 성기사들과는 일을 못해먹겠다.
“협조를 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의식이 왜 있어야 하는데?”
“그쪽도 그 토끼가 날뛰어대는 상태로 인수받으면 곤란할 거 아냐. 애 힘까지 다 빼주겠다는데 그걸 못 해?”
카메론은 잠시 입을 다물고 루드밀라를 쳐다보기만 했다. 소렐 이드리스는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멋대로 이곳저곳 옮겨 다닐 수도 있고, 이젠 개들을 포함해서 주변에 있는 건 전부 물리적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 그녀가 더 거대한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하루빨리 손에 넣어야 했다. 더 거대한 마법을 쓰기 시작하면 그때는 엘펜하임도, 그 누구도 그녀에게 손을 댈 수 없을 테니까. 그나마 소렐 이드리스가 아직 어리고 순진하다는 게 다행이었다.
“일단 가장 쉽고 정확한 쪽으로 가.”
의식을 잃게 하는 방법이 뭐겠는가. 약이지. 카메론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의식이 있어야 한다면, 그건 방법을 강구해보도록 하고.”
“나 혼자서?”
날카로운 대꾸에 카메론은 한숨을 쉬었다.
“같이 해보자고, 같이.”
“웬일로 그런 말을 해? 의외네.”
같이해준다고 해도 지랄이다. 카메론은 골이 아파왔다. 엘펜하임 입장에서는 카메론이 지금 올리는 보고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을 거다. 뱀파이어들의 협정서가 뭐 어쨌단 말인가. 그래서 뱀파이어들과 손을 잡으라는 건가. 이래저래 말이 많은데, 소렐 이드리스 납치 시도를 함부로 할 수는 없고, 뾰족한 수도 없으니 일단은 참는 거다.
“정확하게 원하는 게 뭐야?”
“내가 당신들에게 토끼를 넘길 때, 토끼가 의식이 있었으면 해.”
“어째서?”
“그때 완전히 기를 꺾어놓을 거거든. 아주 온순한 토끼를 넘겨받을 거야. 반항도 안 할 거고. 약속해.”
카메론은 루드밀라를 찬찬히 살폈다.
“그런 말은 그때 가서나 해.”
저 머릿속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건가. 이제부터 찬찬히 알아봐야 했지만, 루드밀라는 ‘찬찬히’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발레시나스 야외무도회에서 마주쳤던 칼리에르 공과 그 토끼의 표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순혈 뱀파이어의 싸늘한 얼굴이 생각에 잠겼다. 시곗바늘은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 소렐은 학교에서 온 두툼한 우편물을 보고 기분이 좋아서 환호성을 질렀다. 새 학기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는 내용만큼 재미있는 게 또 있을까. 대부분은 이미 저번 예비과정을 다닐 때 라이킨이 잔뜩 사다준 것이지만, 소렐은 필요한 목록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젠 사교계에 데뷔도 했겠다, 여기저기 모임들이 열릴 거예요. 아마 요즘도 그러겠지, 오빠?”
샤를렌이 함께 봐주면서 라이킨을 건너다보았다.
“그래.”
라이킨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학생들은 클럽이다 뭐다 해서 뭉쳐 다니며 매그놀리아 칼리지의 여학생들을 넘볼 거다. 매그놀리아 칼리지의 여학생들에게 매번 배달되는 초대장만 해도 엄청났다. 그걸 어떻게 처리해야 치사하고 좀스러운 남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도 소렐을 붙잡아 놓을 수 있을까? 그는 내내 고민 중이었다.
“자주 다녀요. 독서 모임이나 박물관 견학 같은 것도 많이 할 테니까, 많이많이 다녀요, 공주님.”
“네.”
소렐은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걸 할 수 있겠다! 그녀는 벌써 필독도서 목록을 보고 라이킨의 서재를 훑어보고 있었다. 서재의 주인은 토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가를 탐색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저 정성으로 남편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준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실상은 그가 그녀의 시선을 한 번이라도 받고자 안달내고 있었다. 저리 예쁘니 입학하면 케르고 칼리지를 비롯한 온갖 남학생들이 득시글대며 몰려들 텐데 말이다.
“라이킨, 라이킨.”
아. 그녀가 그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는다. 책상에 기대선 그는 그 웃음만으로도 부글부글 끓던 생각을 싹 잊었다.
“예, 공주님.”
“나 이제 라이킨이 도와주지 않아도 저 위에 있는 책 꺼낼 수 있어요.”
이거 봐라! 소렐은 그녀의 손이 닿지 않는 저 꼭대기 책장에서 덜걱대며 빠져나오려는 책을 가리켰다. 이 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 소렐은 할 줄 알게 된 마법은 열심히 연습했고, 괜히 더 사용해보았다. 당장 새로운 건 못 하니까 할 줄 아는 거라도 열심히 해야지! 그 모습이 귀엽긴 하지만, 라이킨은 몸을 일으켜서 덜컹대던 책을 탁 잡아 직접 빼냈다.
“제가 없는 곳에서 마법을 사용하시고, 제가 있으면 그냥 제게 말씀하십시오.”
“왜요? 나 혼자 할 수 있는데?”
라이킨은 그녀와 그 사이에 희미하게 이어진 황금색 실 한 올을 보며 잠시 미간을 좁혔다. 이런 작은 마법으론 더 이상 그들 사이에 있는 결합점 전부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이건가. 아니면 그만큼 결합점이 많이 쌓였다는 건가. 어쨌든 소렐 이드리스가 계속 고대마법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제 기쁨입니다.”
라이킨은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그깟 책 한 권 혼자 뽑아 가는 게 뭐 그리 서운해할 일이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서운했다. 서운하고 섭섭하고, 동시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소렐이 그의 손을 타지 않는 게 싫었다. 소렐의 뒤에 있던 동생이 ‘옘병’이라고 토할 것 같다는 시늉을 해도 싫은 건 싫은 거였다.
“어, 음……. 그렇구나.”
그렇다고 해서 라이킨이 그리 살뜰한 성격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했고, 하고 싶은 일만 했다. 다른 건 영 귀찮아했다. 그저 소렐만이 예외일 뿐이다. 문제는 소렐의 외모에 있다고 생각했다. 키도 작고, 아직 물정도 모르고, 그런데 저리 기가 막히게 예쁘니 어떻게 세상에 덥석 내놓겠는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가 다해줘야지, 귀한 공주님께서 따로 마법으로 책을 빼내신다든가 하는 일은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쾌했다. 그녀에게서 라이킨이 조금씩 뒷전으로 밀리고, 굳이 남편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는 게 불쾌하고 또 불안했다. 똘망똘망하니 영리해서, 조금씩 시간이 지나 마침내 고대마법을 전부 다 이해하고 깨닫는 순간 분명히 그의 손안에서 벗어날 게 뻔했다.
“알겠어요, 그럼.”
소렐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쁨이라니 할 수 없지, 뭐. 좋아하는 걸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귀찮아하는 것도 아니고 기쁨이라는데.
“그럼 저것도 꺼내줘요.”
좀 병적인 건가. 라이킨은 소렐이 가리키는 책을 더 꺼내면서 슬쩍 소렐을 살폈다. 그녀가 학교에 가서 누굴 만나는지,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속속들이 다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병이었다. 범죄다. 알고 있지만, 소렐에겐 들키지 않을 테니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아주 심각한 지점까지 이르렀다.
“또?”
“또……, 음, 일단 이것만 다 읽어볼래요. 너무 많이 꺼내놓고 다 읽지도 못하면 어떡해.”
“금방 다 읽으실 겁니다.”
라이킨은 싱긋 웃었다. 그가 철저하게 가려놓은 소렐의 눈에 세상은 아주 아름답고 평온한 곳이리라. 하긴, 공주님이 세상 험한 걸 알아서 뭐하시려고.
“……오빠, 공주님 이제 입학하는 거야.”
소렐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며 샤를렌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일단은 좀 놔둬야 해.”
라이킨은 대답 대신 동생을 쳐다보았다.
“설마 일일이 간섭하는 미친 짓은 안 할 거지……?”
“내가 뭐하러 간섭을 해? 그런 거 안 해.”
작은 공주님이 하시고 싶은 건 다 하셔야지, 쪼잔하게 간섭이라니. 라이킨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지?”
“미리 정리해놓으면 간섭을 할 필요도 없는 거지.”
“아이고, 미친놈아…….”
그럼 그렇지. 샤를렌은 뻔뻔한 오빠에게 욕했지만, 오빠란 놈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