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불꽃놀이 (9)2021.06.23.
소렐은 모든 걸 다 알기에는 많이 아팠고, 또 어렸다. 어리다고 판단한 건 기본적으로 천 년 이상을 산 어른들이었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별장에는 불온한 공기가 떠돌았고, 소렐은 자신이 배제되었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라이킨, 괜찮아요?”
하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불쾌하고, 시무룩해지는 건 아니었다. 위험한 일이라 소렐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건, 당사자인 소렐이 가장 잘 알았다. 그저 그녀 때문에 모두가 바쁘고, 살벌해진 것 같아 좀 미안할 뿐이었다.
“괜찮냐니, 공주님.”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으며 손을 뻗어서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공주님은 아직까지도 열이 있으시면서 제게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괜찮지 않습니다.”
“아직 아파요?”
“공주님께서 아프시니 저도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겁니다.”
그래서 딱히 괜찮지 않았다. 다리를 꿰매는 내내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 주룩주룩 울던 소렐 때문에 그도 마음이 미어졌다. 그는 소렐의 이마를 짚던 손을 내려 뺨을 살살 쓸어보다가, 결국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아무것도.”
그는 소렐의 머릿속에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생각들을 멈춰버렸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녀의 모든 걱정은 그가 다 가져가서 대신 골몰할 것이고, 대신 해결해줄 것이다. 다치고 아픈 공주님은 뱀파이어들의 일까지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녀가 안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이제 막 마법이란 걸 제대로 사용하기 시작한 토끼는 아는 것도 없었고, 또 쥐고 있는 힘도 별로 없었다.
“나 때문에 많이들 다쳤어요……?”
툭 치면 울 것 같은 커다란 눈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제일 많이 다친 사람은 공주님이십니다. 지금 다른 사람 걱정하실 때가 아니에요.”
“라이킨이 제일 많이 다쳤는데…….”
“저는 이제 다닐 정도는 되었습니다만, 공주님께서는 아직 걸으셔서는 안 되지요.”
소렐은 라이킨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마주치다가, 그녀의 눈가에 입을 또 맞췄다. 그러면 소렐은 그의 눈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한다. 시선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차단된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던데, 라이킨의 마음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게, 볼 수 없게 한다.
“에벌린이 시나몬롤을 가득 굽고 있다고 하더군요. 오븐이 터져나갈 지경이랍니다.”
소렐은 힘없이 웃었다.
“많이 드시고 얼른 나으세요, 공주님.”
“……시나몬롤도 무척 좋긴 한데요.”
그녀가 팔을 뻗으면, 라이킨은 더더욱 몸을 낮춰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안아주었다.
“나는 라이킨이랑 같이 먹고 싶어요.”
“그거야 당연하지요. 쓴 커피를 준비해야겠지만.”
아니, 사실은 지금 바깥에서 무슨 일이 돌아가는 건지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소렐은 말을 할까, 하다가 말았다. 그녀가 알아야 할 일이었다면 분명히 라이킨이 알려줬을 거다.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모른다는 건, 그녀가 알 필요가 없는 일이다.
‘아마 뱀파이어들 간의 일이겠지.’
‘아마’가 아니라 ‘분명히’ 뱀파이어들 사이에 무슨 말이 나온 거다. 소렐이 뱀파이어들까지 날려버린 사실과 또 ‘분명히’ 상관있는 일이리라. 하지만 라이킨은 말해주지 않는다.
‘나중에는 말해줄 거예요?’
소렐은 가끔 이토록 강력하고 잘난 뱀파이어가 왜 보잘것없고 사고만 치는 자신에게 기꺼이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 라이킨의 마음이 의심스러운 게 아니라 스스로가 못나 보이는 순간이 때때로 찾아온다. 그녀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잘 알지 못하는 일이 지척에서 일어나는데도 볼 수 없다는 건 조금 답답하면서도 서글프기만 하다.
“내가 축제를 망친 것 같아요.”
“축제를 망친 건 개들이지요.”
정확하게는 그녀에게 달려들라고 개들을 풀어버린 그 못된 손들이 망친 거다.
“공주님께서 잘못하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생각 하지 마십시오.”
소렐은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님.”
라이킨은 그녀가 왜 자꾸 눈치를 살피고, 함께 있어달라고 하는지 안다. 잘 알았다.
“저는 공주님께서 아무 걱정하지 않으시고, 마음 편히 이 여름을 잘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빨리 나아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즐겁게 수영이나 하고, 새로 다가올 학기에 마음이 설레 어쩔 줄 몰라 했으면 좋겠다.
“그게 절 도와주시는 겁니다.”
그랬다. 소렐은 결국 그를 돕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느라 괜히 무력해지고, 어깨가 처졌던 그녀는 핵심을 찌르는 라이킨을 쳐다보았다.
“……그런 거 말고 제대로 도와주고 싶어요.”
그녀는 어깨가 처져서 중얼거렸다.
“이미 도와주시고 계시는걸요.”
“그거 꼭 우리 아빠가 하던 말이랑 똑같아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제 양심이 엄청나게 찔립니다. 아빠라니…….”
“애 취급하지 말라는 거예요.”
소렐은 그렇게 말하다가 더 축 늘어지고 말았다.
“라이킨에 비하면 내가 엄청나게 애긴 하지…….”
멋진, 그런 멋진 여성이 되어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 라이킨은 멋있는데 그녀는 그러지 못한 것 같았다.
“저도 제대로 된 남편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별거 아닌 일로 안 그래도 다친 아내가 걱정하고 마음 졸이게 하는 것만큼 못난 남편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웃으면서 소렐을 안고, 결국 제 무릎 위에 조심히 앉혔다. 사실 이럴 시간이 없었지만 소렐만 보면 그는 한없이 게으르게 늘어졌다.
“누가 개를 풀었는지 확인만 하는 것뿐입니다. 아프신데 마음 쓰시면, 빨리 낫지 않을 겁니다.”
소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나을게요.”
그걸 꼭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듯, 그녀는 힘주어 말했다.
“신경 안 쓰고 얼른 나을게요.”
어린 토끼는 남편에게 할 수 있는 한 씩씩하게 말했다. 신경이 온통 곤두서 있다가도 이 보드랍고 따뜻한 존재가 열심히 뭘 하는 것만 봐도 뭉그러지듯 완전히 풀어진다. 꼬물꼬물, 그의 무릎 위에서 깜찍한 주먹을 제 딴에는 다부지게 쥐어 보인다.
“꼭 나을게요.”
라이킨은 가만히 보다가 그 주먹을 잡고 도드라진 뼈마디마다 입을 맞췄다. 그녀에게서는 달콤하고 연한 향이 났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향에 코를 박은 채 내내 안고 싶었다. 그 누구에게도 상처 입지 않도록, 그의 품 안에 가두고 안전하게 지키고 싶었다.
“그러니까 라이킨도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그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평범한 당부다. 그런데도 소렐이 하면 이토록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가 어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원래부터 이렇게 깜찍하고 귀여우며 사랑스러운 존재에게 사족을 못 썼나? 가끔 그런 의문이 들어서 소렐 또래의 아가씨들을 관찰해보지만, 늘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소렐만큼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는 없다. 남자들은 더 짜증이 났으니 그는 여자를 좋아하는 게 맞고, 여자 중에서 소렐 빼고는 죄다 그저 남자들보다는 짜증이 덜 나는 수준이었다.
“제가 반성해야겠습니다. 아프신 아내께 걱정을 끼치다니.”
라이킨은 소렐의 양손을 다 잡고 연신 입을 맞추어댔다.
“미안해요.”
“그런 말씀 하지 마시라니까…….”
입을 맞추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슬쩍 눈을 들었다. 푸른 눈이 난처하고도 날카롭게 번뜩였다.
“내가 마법을 잘 못 써서…….”
“잘 못하는 게 아니라 초보라서 가끔 실수를 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공주님께서 어떤 실수를 하셔도 그 실수를 수습할 충분한 능력과 재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신경 쓰시지 마시고 마음껏 실수하셔도 됩니다.”
라이킨은 몇 번을 들어도 늘 한결같이 ‘공주님은 마법을 못하는 게 아니다’라고 정정했다. 지겹다는 기색도 없이, 전혀 평범하지 않은 얼굴로 평범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실수를 할 수도 있지요. 서투를 수도 있어요. 아직 신참 마법사인데 뭐 어떻습니까.”
아기 토끼가 마법 좀 써보다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누굴 죽인 것도 아니고 얼마나 기특해? 물론 라이킨은 소렐이 살인을 했다 해도 꼭 필요한 일을 배웠다며 칭찬한 뒤, 알아서 목격자부터 시체까지 깨끗하게 처리할 위인이었다.
“그런 건 잘못이 아닙니다.”
잘못 같은데……? 소렐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라이킨은 온화한 얼굴로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에요?”
“예.”
“아니구나.”
“예, 아닙니다. 잘하셨습니다.”
“잘한 거예요?”
“절 구해주셨는데, 그럼 잘못하신 걸까요?”
라이킨은 웃었다. 아하. 소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다시 폭 안겼다. 안기기만 하면 익숙하게 키스가 쏟아진다. 그녀는 사랑받고 있었다. 다른 존재들을 볼 때 무미건조하던 눈이 그녀를 보면 애정이 담기고, 아름답게 휘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주님.”
그는 하루에 한 번씩, 그녀의 상처를 살피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작 개들에게 물어뜯기면서도 그녀를 높이 안았던 건 라이킨이면서도, 항상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소렐은 그녀가 큰 사고를 쳐서 라이킨이 바빠진 것 같아 미안하다가도, 그 인사를 들으면 그래도 어떤 큰일을 그녀가 해낸 것 같아 뿌듯했다.
“그건 내가 이번 여름에 가장 잘한 일이에요.”
소렐은 어깨를 쭉 펴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칭찬을 해주면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사랑을 퍼부어주면 밝아졌다.
“예. 멋지십니다.”
라이킨은 웃으며 지루한 부상 중에 도움이 될 통속소설 몇 권을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 슬쩍 내려놓았다.
“조금 지루해도 참아주세요.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당신을 물어뜯었던 개새끼들의 목을 따버리고 돌아올 것이다. * 개들이 짖어댄다.
“이 사안을 어떻게 할 거요, 칼리에르 공!”
어차피 개들은 호랑이가 으르렁대면 당장 깨갱대며 꼬리를 말 것이다.
“뱀파이어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부상을 입었소. 이건 그냥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마법은 위험합니다.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는 게 이번 일로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최소한의 방비를 해야지요!”
여기저기에서 라이킨에게 협정서에 서명하라 난리들이었다. 만일 그가 서명을 한다면, 그다음에는 어쩌겠는가?
‘비겁한 새끼들.’
라이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결코 고운 말이 나가지 않는다. 협정서에 서명한 상태에서 또다시 이번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저 비겁한 새끼들은 바로 그에게 협정서를 지키라고 지금처럼 난리를 쳐댈 거다. 누가 고대마법의 후계자를 대적하겠는가? 뱀파이어들도 마법이 끔찍하게 두려운 거다. 그래서 그들 중, 그래도 마법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가장 강력한 이만 쳐다본다. 그가 마법사의 남편이라는 사실은 말끔히 무시하고서.
“그러면 자리를 만들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칼리에르 공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뭘 더 하겠다는 말도 없이 딱 그뿐이었지만, 무슨 신호라도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슈토넨 후작이 들썩거리던 엉덩이를 움직이기엔 충분했다. 그는 이번 일에 혁혁히 공로를 세운 에설론 백작, 루드밀라를 만나러 갔다. *
“……잘했군.”
특유의 심술궂은 표정으로 루드밀라를 보던 슈토넨 후작이 말을 툭 던졌다.
“제가 뭘 했다고요?”
혹시나 성기사 냄새가 날까, 슈토넨 후작을 바람이 쌩쌩 부는 정원에서 만난 루드밀라가 똑같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한테까지 모른 척할 일 있나?”
“오시자마자 대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무슨 말인지 모르지요.”
“원, 늙은이에게 이 말 저 말 다 하게 만드는군. 개 푼 거 잘했다고.”
슈토넨 후작은 이 나이가 되었으니 딱히 돌려 말하는 것도 싫어했다. 그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요.”
루드밀라는 딴청을 피웠다. 그녀는 처음부터 인정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원, 마음대로 하게.”
하지만 그녀가 저지른 짓이란 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카메론 셀레스트마저 알고 있어서, 협정서 일이 이만큼 진척되자 일단 그녀를 죽여서 치우는 걸 보류했다. 루드밀라는 그렇게 조금씩 자신의 생명을 연장해가고 있었다. ‘죽여서 치우는 건’ 카메론이 루드밀라에게가 아니라, 루드밀라가 소렐 이드리스에게 직접 할 일이다. 루드밀라는 악착같이 살아남아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그녀는 절박했다. 카메론 셀레스트에게 어이없이 잡힌 목숨을 구하는 게 절박한 게 아니라, 그녀가 빼앗긴 공비자리가 뼈에 사무치게 절박했다. 되찾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곧 자리가 만들어질 걸세.”
이번에 제대로 한 방을 날려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꿔놓은 루드밀라에게 모처럼 말이 부드럽게 나왔다.
“칼리에르 공도 참석해야 해.”
사실 뒤에서 라이킨이 만들어놓은 자리였지만, 슈토넨 후작은 그런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아주 교묘하게 이 분위기를 타고 당연한 듯이 만들어진 자리인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을 할까.
“절대로 협정서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버티겠지만 모두가 강하게 압박해야 해.”
“네, 뱀파이어들이 다쳤지요.”
그 뱀파이어들이 대부분 라이킨 휘하의 뱀파이어들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뱀파이어들뿐인가? 민간인까지 다쳤으니 왕도 가만히 있지는 못할 거야. 지금 지켜보고는 있지만, 우려하는 기색을 표하고 있다더군.”
슈토넨 후작은 아주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소렐 이드리스가 알아서 사고를 쳐주었으니, 칼리에르 공도 꼼짝없이 서명하게 될 거다. 분위기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집에 서명해야 할 뱀파이어가 셋이나 되는데요.”
오블리앙 공에, 제인 샤를렌 칼리에르도 엄밀히 순혈 뱀파이어다.
“일단은 칼리에르 공부터 받아놓자고. 그 동생이야 오빠가 서명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할 거고…….”
‘아닐 텐데.’
루드밀라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제인 칼리에르가 어디 오빠가 했다고 얌전히 따라가는 성격이던가. 앨리스 루이즈 칼리에르가 살아 있었을 때도 어떻게든 대학을 가서 악착같이 변호사 자격증을 땄던 성격이다. 그럴 리가 없다.
“오블리앙 공이야 아들이 했다면 좀 더 움직이기가 쉬울 거야.”
루드밀라는 침묵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그녀는 이번 일로 일단 칼리에르 공, 가장 큰 거물만 옭아맸을 뿐이다.
“그러니 자네도 순혈의 당당한 일원으로 나와서 함께 압박해주게.”
“그건 당연히 그래야지요.”
루드밀라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라이킨이 협정서에 서명했다는 구실을 다시 한번 카메론 셀레스트에게 당당히 내보일 것이다. 그러니 두 눈으로 똑똑히 라이킨이 서명하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카메론은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며 되묻겠지만, 루드밀라는 라이킨이 서명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서명한 협정 또한 이행하게 만들 것이다. 그녀는 그저 평범한 표정으로, 평범하게 슈토넨 후작을 배웅했다. 딱히 화를 표시할 것도, 또 지금 잘되었다고 좋아할 것도 없다. 이 모든 일은 사사로운 일이다. 토끼 한 마리 잡는 게 뭐 그리 특별할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