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불꽃놀이 (8)2021.06.19.
“집에 어른이 계시다는 건 편하네요.”
라이킨은 붕대를 감은 채 중얼거렸다.
“제가 정리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그가 챙겨야 할 일들을 순식간에 다 해치워놓은 로렌스는 안경을 끼며 대답했다.
“너 참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듣는 애비 섭섭하게.”
아차. 라이킨은 입을 다물었다.
“천 년씩이나 살았으면 이젠 철 좀 들 때도 되지 않았어? 다친 애한테 그럼 너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라고 시키랴?”
아버지께서 ‘섭섭하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때부터는 잔소리가 쏟아진다는 신호였다.
“개한테 물린 게 뭐 별거 아닌 상처인 줄 아니? 너 몇 바늘 꿰맸는지 알아?”
“금방 흉터도 없이 나을 텐데요, 뭐…….”
“곧 낫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잖니.”
도대체 우리 집 애들은 왜 이 모양인지. 로렌스는 팔짱을 끼며 안락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아이들에겐 결코 말하지 않겠지만, 이런 때마다 그는 평생 단 한 번뿐이던 사랑을 살해하는 게 ‘올바른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제가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애라고…….”
라이킨은 멋쩍게 웃었다.
“자식은 평생 애지.”
말도 않고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고서도 저리 다쳐놓고 별거 아니라고 애비 속을 뒤집어놓는다.
“사흘이면 멀쩡하게 걸을 겁니다. 지금도 나쁘지는 않아요.”
라이킨은 소년처럼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다친 것도 다친 거지만, 이제 어쩔 거냐?”
아버지는 아들이 날뛸 것을 더 걱정했다.
“뱀파이어들이 모였다. 원로들도 모이겠다는구나.”
아들은 미쳐 날뛸 것이다.
“공주님이 마법으로 뱀파이어들을 날려버렸으니, 협정서가 필요한 이유가 충분해진 것이지.”
아버지는 그게 몹시 걱정이었다. 우리 아들, 성격이 지랄맞아서 여기저기 때려 부수고 다녀야 겨우 성질이 가라앉을 텐데, 다친 몸을 해서 날뛰면 어쩌나.
“예. 그걸 노리고 개를 풀었겠지요.”
대답하는 목소리가 아주 사나웠다.
“그럼 배후도 좁혀지는구나. 협정서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짓을 벌였겠어.”
“예.”
라이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뻗어서, 누워 있는 소렐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그녀는 토끼답게 픽 쓰러지더니, 숨을 고르게 내쉬며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다.
“공주님을 자극하고 싶었던 겁니다.”
개들은 상태가 어떤지 확인을 한 뒤 서너 마리만 남기고 모조리 죽였다. 남은 개들은 증거이자, 혹시 소렐과 라이킨이 물린 상처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지켜봐야 했기에 관찰대상이기도 했다. 소렐은 상처를 깨끗하게 하고, 감염위험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자 그제야 상처를 꿰맸다. 꿰매는 내내 소렐은 울었다.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라이킨에게 매달려 비명 한번 지르지 않고 꾹꾹 참았다. 그걸 고스란히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라이킨의 분노는 타오르는 화염이 되었다.
“자극해서, 마법이 어느 정도인가 확인하고 싶었겠지요.”
“뱀파이어에게 위협이 될 정도인지, 아닌지.”
“예.”
“그럼 이제 머리는 차갑게 하고, 가슴은 뜨겁게 해야겠구나. 범인을 단순히 뱀파이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돼.”
로렌스는 무엇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라이킨.”
“예, 아버지.”
“찬찬히 살펴서 하나하나 확실하게 죽여라.”
그들은 잔혹한 뱀파이어다. 한가로운 여름휴가를 망치고, 가족들을 물어뜯은 이를 샅샅이 찾아내 관련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는 전부 목숨으로 죗값을 받아낼 것이다.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이킨은 딱히 죽일 생각이 없었다. 뼈를 으스러뜨리듯 확실하게, 하나하나 잡아다가 차라리 죽음을 갈망하고 빌게 만들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게 저주이자 절망으로 느껴지게 할 요량이었다.
“그래, 노력이라도 한다니 참 기특하구나.”
로렌스도 라이킨이 ‘노력’만 할 뿐, 결국 죽음이라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그래도 노력하는 게 어디인가. 지금 뇌가 절절 끓는 기분일 텐데. * 소렐은 깜빡 잠이 들었다가 잠시 깼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뱀파이어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누군가가 말한다. 낯선 목소리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수하들이 다쳤지.”
라이킨이 대답했다. 개들한테 라이킨의 수하들도 많이 다쳤나?
“마법의 힘이 대단하더군요. 멀쩡한 사람들도 그렇게 날려버리다니. 떨어지면서 뼈가 부러진 애도 있습니다.”
“치료는?”
“바로 치료 중입니다.”
“다행이군. 완치될 때까지 임무는 절대로 맡기지 마.”
“예, 마스터.”
아. 소렐은 약기운 때문에 멍한 머리로 생각했다.
‘내가 부린 마법으로 뱀파이어들도 다쳤구나.’
그다음에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물린 다리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약은 독하고, 자꾸 잠만 자게 만들었다. * 일이 하나 터지니, 기다렸다는 듯이 나머지 일들도 연쇄적으로 차례차례 터진다. 발레시나스의 여름 축제에서 소렐 이드리스가 마법을 사용했다는 일은 여기저기 알려졌다. 반경 5m 이내의 모든 게 다 날아갔다는 소식에 뱀파이어들이 들고 일어난 건 물론이고, 왕실마저 우려했다. 개들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은 일찌감치 도망간 지 오래였지만, 라이킨과 소렐을 지키려던 뱀파이어들이 개들과 함께 날아가서 부상을 입고 말았다. 게다가 함께 날아간 가판대에 다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어떻게 제어도 못 할 마법을 부리겠다는 거요? 아주 위험하오!”
당장 문제의 아서 모드릭 헴피온, 슈토넨 후작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는 아주 명문가로 이름난 뱀파이어 가문들부터 동원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순혈이다. 그다음이 딱히 명문가라고 칠 수는 없지만 작위가 있는 뱀파이어들도 포섭했다. 협정서가 만들어진 이유에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뱀파이어들을 위협할 수 있는 마법사가 나타났다.
“뭐 저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아직 애라면서. 갓 스물이 마법을 잘 못 쓸 수도 있는 거지. 칼리에르 공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슈토넨 후작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는 게 못마땅한 뱀파이어들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에, 뒤에서만 수군거렸다.
“맞아. 게다가 오블리앙 공도 있잖아. 어린 마법사 하나 못 챙기겠어?”
“하여튼 어떻게든 책을 잡고 싶어서 난리가 났지. 심술궂은 영감 같으니.”
“누가 개를 풀었다면서?”
“토끼를 잡고 싶었나 보지.”
딱히 칼리에르 공에게 밉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헬레인 토끼를 은근히 깔보는 시선도 있었다. 약해빠진 토끼라서 누가 개를 풀었나 봐? 그것참 제대로 된 ‘사냥’이네. 너무나 노골적인 방식이었기에 칼리에르 공은 지금 격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화가 났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몰랐다. 라이킨이 바깥에 어떤 반응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침묵하고 있었다. *
‘누가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칼리에르 공 휘하에 있는 수많은 가문을 대표하는 뱀파이어들은 서로를 쿡쿡 찔러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그들이 모시는 마스터가 앞으로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갈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소렐 이드리스 칼리에르 공비 전하이자 헬레인 공주님’을 ‘토끼’라고 지칭했던 뱀파이어는 라이킨이 던진 재떨이에 미간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더랬다.
‘미쳤냐, 이번엔 네가 재떨이 맞고 기절할래?’
그 누구도 요즘도 심심찮게 날아오는 재떨이를 또 맞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피하려고 노력한다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천 년 내리 전쟁터에서 이른바 ‘효율적인 실기’만 수행한 라이킨은 어떠한 면이라도 그들을 전부 압도했다.
‘저 바뀐 재떨이, 크리스탈 묵직한 거 봐라. 나는 죽어도 싫다, 죽어도 싫어.’
‘내가 조슈아한테 제발 나무로 바꾸라고 했는데!’
‘미쳤다고 재떨이를 나무로 쓰겠냐?’
하지만 그들은 전부 외부에서 협정서에 서명하라고 압박을 받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서명을 하는 여부는 라이킨이 결정한다. 그는 그들과 함께 전장에서 생사를 함께한 전우이자, 그들을 어떻게든 살리고 구해내서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온 은인이자, 언제나 묵직한 책임을 지고 그들을 돌보았던 어린 주군이었다.
“……누구 협정서에 서명한 사람 없어?”
그 주군은 나른한 목소리로 뜬금없이 물었다. 돌아오는 반응은 제각기 달랐다.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냐는 충격, 있겠냐고 되묻는 시선, 있다면 자신이 죽이고 시작하겠다며 둘러보는 놈까지.
“없군.”
라이킨은 고개를 돌렸다.
“마……스터.”
잘한다! 뱀파이어들은 간신히 입이라도 연 동료를 쳐다보며 응원했다. 그래! 헛소리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봐!
“서명을 한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한 뱀파이어는 말을 잇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혹은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 것 같았다.
“여기 있을 리가 있습니까?”
있다면 죽여버려야지. 아니, 죽는 게 소원이도록 해줘야지. 동료의 말에 깃든 살벌한 의지에 모두가 동조했다. 그렇지, 그렇지.
“바깥에서 들쑤시고 있잖아. 빨리 서명하라고.”
개한테 몇 번 물린 라이킨의 심사는 언제나 그렇듯 비틀릴 대로 비틀려 있었다. 이젠 딱히 새롭지도 않다. 원래 그들을 다스리는 이는 성격이 참 더러웠고, 오만했다. 딱 그 정도였다면 아무도 따르지 않았겠지만 그러면서도 그들과 눈높이를 맞춰 기꺼이 진흙탕을 함께 굴렀고, 가장 어린 뱀파이어에게 피를 따로 양보했으며, 좋은 물건도 부하들에게 먼저 던져줬다.
“슈토넨 변경백……, 후작이 건수 하나 잡아서 날뛰는 것뿐입니다.”
아차, 이젠 변경백이 아니라 후작이다. 라이킨이 그를 변경백이라고 종종 칭해서, 부하들도 같이 그를 변경백이라고 하곤 했다.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고, 들쑤신다고 해서 서명을 할 바보였으면 저희가 아직까지 여기에 엉덩이 붙이고 있겠습니까?”
라이킨은 삐딱하게 앉아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들쑤시는 정도가 아니던데.”
들쑤시는 게 아니라 사방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마치 협정서가 고대마법을 어떻게든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무기라고 믿고 싶은 양, 아니, 이미 믿고 있는 양 다들 서명하라 아우성이다.
“개새끼들이.”
이를 갈지는 않았지만 뱀파이어들은 순식간에 입을 다물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아직 신혼에 벌써부터 아내를 죽이라고.”
씹어 먹고 갈아 마셔도 시원찮은 것들. 우리 토끼는 솜털도 안 빠졌는데 수틀리면 죽이겠다는 그딴 쓰레기에 왜 서명을 해야 해?
“토끼가 겁을 먹어서 들러붙는 것들 좀 털어낸 게 뭐 어때서.”
네? 뱀파이어들은 귀를 의심했다.
“아직 어린데 그럴 수도 있지.”
빌어 처먹을 것들. X 같다고 했더니 정말 XX스럽게 X같은 소리만 하고 있는데 그 XX들의 XX을 뽑아다 X되게 만들어버릴까. 라이킨은 아주 고상하고 귀족적인 위엄이 서린 얼굴로 마치 전쟁터에 있을 때처럼 천박한 쌍욕을 주르르 나열하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뱀파이어 하나가 곧장 라이킨에게 담배 상자를 열어주고, 다른 하나는 얼른 불을 붙여주었다.
“내가 마법을 사용했으면 그놈의 개새끼들 주둥이부터 잘랐어.”
작정하고 소렐을 물어뜯으려고 아가리를 쩍쩍 벌려대던 걸 보면 당장 도살해야 할 놈들이었다. 라이킨은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자리에서 목을 딴 것도 아니고, 저리 가라고 떨쳐낸 거니까 얼마나 착해.”
그것도 그녀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한 게 아니라, 라이킨에게 손대지 말라고, 바들바들 떨면서 연신 중얼거렸다. 개에게 크게 물렸으면서도 그를 꼭 안고 외쳤다. 작은 토끼가 그를 지켜주려고 애썼다. 얼마나 기특하고 예쁘고, 또한 감사한 특권인가. 공주님께서 수호 기사를 지켜주시다니. 아, 이렇게 되면 그가 무능력한 수호 기사다. 반성하고 다시 한번 성심성의껏 임무에 임해야겠다.
“그렇……죠.”
가만히 듣고 있던 막내 제롬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이 제정신인가. 쟤도 휙 떠밀려 공중으로 몇 미터나 솟구쳤다가 내동댕이쳐져 팔이 부러졌는데도 저딴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러네요, 피를 본 것도 아니고.”
피는 봤어, 인마……! 너 팔 부러졌다고! 피 본 거라고! 뱀파이어들이 소리 없이 외쳤다.
“그렇지?”
라이킨이 힘주어 물었다.
“예.”
제롬도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킨은 어릴 때부터 그의 정신적 지주였다. 우리 마스터께서 그러시다면 그러신 거다. 그를 이상하다는 듯이 보고 있는 형과 누나들도 결국 맞다고 고개를 끄덕일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 개새끼들이…….”
뱀파이어들은 얼른 고개를 처박고, 이젠 노골적으로 칼리에르 공에게 ‘당신이 데리고 있는 토끼가 위험하니 수틀리면 죽이겠다고 맹세하시오’라고 협정서를 들이대는 눈치 없는 순혈 뱀파이어들을 속으로 욕했다. 병신들! 토끼가 아니라 공비전하라고! 똑바로 호칭을 붙이란 말이야! 우리 수명 줄어들게 하지 말라고!
“아직 솜털도 안 빠진 우리 공주님한테…….”
듣는 이는 다른 의미로 오한이 드는 무서운 소리다. 씹어 뱉듯이 말하는 ‘솜털도 안 빠진’ ‘우리 공주님’이란다. 꼬박꼬박 공주님이라고 붙이면서 그 앞에 ‘우리’라고 제 아내라는 표시를 굳이 내는데, 양심은 있는지 ‘솜털도 안 빠졌다’라는 객관적인 사실도 붙인다. 하지만 그 솜털도 안 빠진 토끼와 결혼한 게 누구더라? 결혼! 무려 결혼이다!
“똑같이 물어뜯어줘야겠지.”
라이킨은 연기를 불어내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개한테 물어 뜯겼더니 정신이 확 든다. 상처를 꿰매고 봉합하는 거야 익숙한 일이었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라이킨이 지키고, 또 키워낸 전우이자 암살자들이 어둠 속에서 웃지도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손가락을 까딱이자마자 바로 명단을 가져다 바쳤다. 라이킨은 우아하게 명단을 넘겨보았다.
“이것밖에 안 돼?”
“일단 파악한 건 그게 전부입니다.”
“아니, 이것보다 더 돼. 개떼같이 달려드는 걸 보면 머릿수가 이것보다는 더 된다고.”
그 같잖은 협정서인지 나부랭이인지, ‘그 여자’의 유일한 유산에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불을 싸질러 버릴 테다. 그리고 그놈의 것에 이름을 적어 넣은 새끼들은 전부 다 목을 따버려야지. 그래. 목을 따버리자. 그 자신은 빼고.
“서명을 해야겠지.”
“……예?”
“내가 서명을 해야 거기에 이름 적은 새끼들이 누구인지 면상을 볼 거 아니야.”
말투가 심히 껄렁하고 밑바닥까지 내려갔지만, 저 말투야 소렐 이드리스 앞에서는 재깍 원위치 될 거다. 그러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개새끼들을 잡으려면 개집에 들어가야지.”
“……호랑이 아닙니까?”
“호랑이는 에벌린이고.”
우리 공주님은 토끼고. 그러니 개새끼들을 잡는 건 남편이 할 일이고. 다소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줄줄 늘여 논리를 완성한 라이킨은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