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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불꽃놀이 (7) (92/181)

92. 불꽃놀이 (7)20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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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포도를 수확하고, 슬슬 양조장을 가동하기 시작하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는 시끌벅적했다. 이 지역의 명물이라 발레시나스 공작이 음식을 장만하여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하고, 불꽃놀이 역시 지원해줬다. 소들끼리 싸움을 하고, 사람들은 내기를 걸었다. 아이들도 간식거리를 잔뜩 얻어먹어서 신이 나는 날이다. 장도 열려서 이것저것 신기한 물건을 내다 파는 사람들도 많았다.

16606120793118.jpg“발레시나스에 오고부터는 매일매일이 축제인 것 같아요. 늘 재미있어요.”

소렐은 라이킨의 곁에 꼭 달라붙어서 말했다. 그건 그녀가 의도한 일은 아니었다. 라이킨은 예법을 따지는 엔버네스 귀족들이 뭐라 수군거리든, 헬레인 공주님이자 귀한 공비를 항상 빈틈없이 꼭꼭 안아서 데리고 다녔다. 안 그래도 발레시나스는 자유로운 휴양지라 예법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분위기였는데, 그래도 점잖기로 유명한 발레시나스 공작의 아들이 아내를 꼭 안고 다니니 눈길을 끌지 않을 수가 없었다.

16606120793123.jpg“그래요? 그럼 더 머무를까요?”

16606120793118.jpg“언제까지요?”

16606120793123.jpg“언제든, 공주님께서 원하시는 때까지.”

소렐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서 라이킨을 올려다보았다. 여태까지 주변에 있는 온갖 신기한 것들을 보며 또록또록 눈을 굴리더니, 이제야 그를 봐준다.

16606120793118.jpg“라이킨은 왜 원하는 게 없어요?”

그녀는 또랑또랑하게 물었다.

16606120793118.jpg“항상 나한테만 맞추잖아요.”

그는 픽 웃었다.

16606120793123.jpg“그건 당연한 겁니다.”

16606120793118.jpg“그런 게 어디 있어요, 같이하는 건데.”

16606120793123.jpg“함께하는 거지요.”

라이킨은 이번에도 그녀의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0793123.jpg“하지만 공주님. 저는 공주님께 맞춰드리는 게 쉽고, 공주님께서 제게 맞추시는 건 아직 어려우실 겁니다. 제가 그런 걸 바라지도 않고요.”

말랑말랑하고 귀엽고, 아직까지 세상을 다 아는 게 아닌 공주님에게 맞춰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앨리스 루이즈 칼리에르에 의해 뱀파이어가 된 뒤 전장에서 제멋대로 굴러다니고, 앨리스와 사사건건 대립하며 얻은 잔인한 성정은 싹 감추고 웃어주기만 하면 된다. 소렐에겐 최대한 그의 일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토끼는 겁먹을 것이다. 그녀가 그를 두려워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었다.

16606120793118.jpg“그래도, 힘들거나 싫지 않아요?”

16606120793123.jpg“언제나 기쁘고 아주 쉬운 일입니다.”

천 년을 산 그가 고작 스무 살인 토끼의 비위를 맞추는 걸 어려워할까. 넌 우리 딸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거야. 알아, 이 개자식아? 자신이 딸을 낳게 될 것이고, 그 소중한 외동딸이 이미 천 년 정도를 가뿐하게 산 성질 더러운 뱀파이어와 맺어질 거라는 예언을 아내가 하는 순간 펠릭스 이드리스의 머리가 터지지 않은 게 용했다. 라이킨 못지않게 불같은 성질머리를 지닌 그는 태어나지도 않은 딸이 얼마나 귀여울지 생각을 하면 저 뱀파이어의 목을 따버려야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16606120793123.jpg“제가 공주님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야지요.”

그는 꽃을 파는 행상에게서 작약과 라넌큘러스 다발을 사다가 소렐에게 안겨주었다. 소렐은 꽃만 보면 그렇게 방싯방싯 웃었다. 저녁 어스름은 푸르게 거리와 해변을 물들였고, 가벼운 차림을 한 사람들이 바구니며 부채를 들고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뜨겁게 작열하던 태양이 바다 너머로 사라진 지금, 더위를 몰아내는 시원한 바람이 바다로부터 불어왔다. 소렐의 머리카락이 그의 몸을 스쳤다.

16606120793118.jpg“영광이에요.”

소렐은 수줍게 대답했다. 아, 그래. 라이킨은 이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소렐이 웃으면 그걸로 차고도 넘쳤다. 한 사람만으로도 그의 건조한 세상이 꽉 들어찼다. 물기가 돌고, 생동감이 넘쳤다. 천적이나 다름없는 그에게 기꺼이 피를 내어주겠다고 한 유일한 존재가 그를 순식간에 하늘 꼭대기까지 올려놓았다. 소렐 이드리스가 좋아한다고 한마디 말만 해줘도 온 세상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었다. 더 바랄 것도 없었다.

16606120793118.jpg“내내 오늘과 같았으면 좋겠어요.”

소렐은 꽃에 코를 대고 향기를 맡으며 중얼거렸다. 요즘 일상이 하도 동화같이 아름다워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후에는 무조건 혼자 씩씩하게 지내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녀의 곁에는 어느덧 많은 사람이 있었다. 굳이 씩씩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16606120793123.jpg“예, 저도.”

라이킨은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0793123.jpg“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내 당신의 얼굴만 바라보았으면. 함께 있었으면. *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붉게 물들었던 하늘이 완전히 까맣게 변하자 축제는 더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물보다 많은 게 술이고, 소싸움이 계속 이어졌으며, 아이들이 거리를 뛰어다녔다. 별보다 더 화려하게 밤하늘을 차지하는 불꽃놀이가 시작되자, 모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소렐은 그만 넋을 잃고 하늘만 보았다.

16606120793123.jpg“공주님?”

슬쩍 불러봐도 미동도 않고 하늘만 쳐다본다. 무섭게 집중하는 표정이 예뻐서 라이킨은 곁에 서서 웃기만 했다. 그때 그는 문득, 불꽃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다른 소리’를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라이킨은 고개를 돌려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뱀파이어를 보았다.

16606120796581.jpg“소들이 흥분했다고 합니다.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 하는군요.”

그런가. 라이킨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소렐을 바라보았다. 그는 밤하늘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보다 소렐을 바라보는 게 훨씬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16606120793123.jpg‘공주님은 반짝거리는 걸 참 좋아하시지.’

그는 한 번 더 기억해놓았다. 소렐은 반짝거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 그녀가 이미 그리 반짝거리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금고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는 건 조금 유감이었지만, 그까짓 금고야 몇 개 더 들이면 된다. 부모가 채운 금고가 있다면 남편이 채워주는 금고도 당연히 있어야지. 컹! 컹! 이번에는 개가 짖는 소리가 사납게 들린다. 꼭 저번에 시골 사냥별장으로 소렐과 오붓하게 갔을 때 들었던 왕세자의 사냥개 짖는 소리 같다.

16606120793123.jpg‘저건 또 뭐지?’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16606120796581.jpg“들개다! 피해!”

들개라는 말에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이 놀라 일어났다. 들개라니? 이곳에 들개가 있던가? 라이킨의 미간이 좁혀지고, 그는 빠르게 소렐을 감싸 안았다.

16606120793123.jpg“공주님.”

인파가 급작스럽게 흩어지는 건 몹시 위험한 일이다. 모두가 비명을 질러대며 이리저리 도망쳤다. 침을 질질 흘리는 개들이 마구 달려들었다. 컹! 컹! 더구나 개들은 한 방향에서만 달려오지 않았다. 여러 방향에서 달려와서, 사람들을 순식간에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16606120793123.jpg“공주님!”

소렐은 놀라서 그녀를 안는 라이킨을 꼭 붙들었다. 이상했다. 라이킨도, 소렐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바로 감지했다.

16606120796581.jpg“엄마야!”

16606120796581.jpg“아악!”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흥분한 개들이 튀어나오는 방향은 제각기 달랐지만, 개들이 달려가는 목표는 동일했다.

16606120793123.jpg“이게 무슨……!”

라이킨은 이를 갈며, 그와 마찬가지로 이를 드러내며 소렐에게 달려드는 개를 걷어찼다. 하지만 개는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그것도 작은 놈들이 아니다.

16606120793118.jpg“꺄아악!”

결국 뱀파이어들이 단호하게 개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개를 베어도 떼로 달려드는 놈들을 전부 다 잡기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개들은 아주 빨랐다. 순식간에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소렐의 치맛자락을 물고 늘어졌다. 소렐은 넘어갈 듯 기겁하며 라이킨에게 바짝 안겼다. 사나운 개들이 그녀를 향해 짖어댔다. 물어뜯을 것처럼 뛰어올라서, 그녀를 기어이 물고 늘어졌다.

16606120793118.jpg“아……!”

소렐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라이킨은 상당히 큰 개들을 완력으로 떼어내며 한 손으로는 그녀를 더 높이 들어 올렸다. 갑자기 평온하던 일상이 깨지고, 눈이 반들거리는 개 십여 마리가 그녀를 향해 마구 달려들었다. 소렐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 생각 자체를 잊었다.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는 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펑, 하고 토끼 귀가 튀어나왔다.

16606120793123.jpg“제기랄, 이것들 좀……!”

라이킨이 욕설까지 중얼거리며 개들을 떼어내려 했지만, 한 손으로 소렐을 안고 있는 이상 그게 될 리가 없었다. 소렐은 이미 물렸다. 침에 젖은 날카로운 이빨이 그녀의 다리를 찢었다. 그녀는 공포에 젖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라이킨이 입고 있던 바지도 이상해 보였다. 찢어지고, 새카만 피가 바지에 스며들었다. 소렐이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16606120793118.jpg‘아, 안 돼.’

그도 물렸다. 그녀보다 훨씬 많이 물렸다. 개들이 뛰어올라 그녀를 끌어 내리고 있었다. 물고 놔주지 않는다. 안 된다. 이런 일은 생겨선 ‘안 된다’. 라이킨은 지금 그녀를 안은 채 거의 버티고만 있었다. 개들이 들러붙어 입을 쩍쩍 벌렸다. 그녀의 살을 한 움큼 베어 물기 위해 무서운 눈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16606120793118.jpg“저리 가!”

소렐은 소리 질렀다. 라이킨의 손이 금세 엉망이 되었다. 그녀는 저 개들을 떼어버리고 싶었다. 그녀에게서, 그리고 라이킨에게서 전부 다 떼어내 멀리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라이킨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이킨은 다치거나 아파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라이킨을 괴롭히지 마!

16606120793118.jpg“저리 가란 말이야!”

하얗게 질린 소녀는 덜덜 떨며 소리 질렀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되었다. 순식간에 개들이 튕겨 나갔다. 라이킨의 눈앞이 황금색으로 뒤덮였다. 어찌나 강한 마법을 사용했는지 결합점은 너무나 많아져서 폭포수처럼 흘러내렸고, 찬란하게 빛났다. 그리고 개들이 허공을 날았다.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무언가에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휙 날아서 내동댕이쳐졌다. 그들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던 뱀파이어들까지 개와 함께 날아갔다. 그들은 곧장 매끄럽게 굴러 착지한 뒤 눈을 깜빡이며 자신들의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16606120793118.jpg“거, 건드리지 마, 안 돼…….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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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킨은 안 돼. 소렐은 벌벌 떨면서 라이킨을 꼭 끌어안았다. 그녀가 보호받기 위함이 아니라, 그를 지키려고 온몸으로 끌어안아 공격을 막는 몸짓이었다. 소렐은 그를 안고 연신 중얼거렸다. 라이킨은 아프면 안 돼. 다치면 안 돼.

16606120793123.jpg“……공주님.”

아무도 그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불꽃보다 더 아름다운 황금색 실들이 마치 물결처럼 흔들렸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밀려나고, 보이지 않는 힘에 가로막힌 듯 더 이상 소렐과 라이킨에게로 다가설 수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소렐은 무척 크고 강한 마법을 사용했다. 오직 그를 위해서다.

16606120793123.jpg“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라이킨은 안 된다고 흐느끼는 소렐의 귓가에 중얼거리며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16606120793123.jpg“이젠 괜찮아요.”

다 괜찮다고, 아주 안전하다고 쉴 새 없이 말해주었다.

16606120793123.jpg“괜찮습니다.”

그는 새카만 피를 뚝뚝 흘리며 서서 소렐을 안고 연신 입을 맞췄다. 공황 상태에 빠진 그의 자그마한 공주님이 안정될 수만 있다면 그는 개에게 몇 번 더 물어 뜯겨도 상관없었다. 이건 그가 겪었던 부상 중에 별거 아닌 축에 속하는 부상이다. 하지만 소렐은 아니었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감쌌다. 피가 뚝뚝 떨어진다.

16606120793123.jpg“괜찮아요, 공주님.”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그를 힘주어 껴안고 있던 소렐의 팔이 느슨해지다가 툭 떨어졌다. 그리고 그에게 아무도 접근할 수 없도록 막고 있던 힘도 사라졌다. 라이킨은 허공에 번져가던 결합점이 점점 투명해지면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밀려났던 뱀파이어들은 사나운 들개들을 얼추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16606120796581.jpg“괜찮으십니까?”

16606120793123.jpg“나는 별거 아닌데.”

서둘러 달려온 뱀파이어는 라이킨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공비전하께서 다치셨다.

16606120796581.jpg“집으로 돌아가셔야겠습니다.”

16606120793123.jpg“개들을 다 죽이진 말고, 몇 마리는 남겨둬. 도대체 어떤 손을 타고 이쪽으로 왔는지 알아야겠다.”

16606120796581.jpg“예, 마스터!”

뱀파이어는 피를 뚝뚝 흘리면서 섰다. 달콤한, 아주 달콤한 향이 코를 꽉 채우고 있었다. 뱀파이어들이 환장하며 달려들 냄새지만, 그 누구도, 심지어 향의 주인을 안고 있는 그조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라이킨은 어디선가 달려온 샤를렌이 급하게 내미는 옷을 받아다 소렐의 다리부터 감쌌다.

16606120811691.jpg“깊게 물렸어?”

16606120793123.jpg“아무래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0811691.jpg“오빠는 도대체 얼마나 물린 거야?”

샤를렌이 사색이 되어 그의 다리를 살폈지만 라이킨은 고개를 저었다.

16606120793123.jpg“나는 괜찮아.”

괜찮다기보단, 다친 건 상관없다는 투였다.

16606120811691.jpg“가자. 개한테 물렸으면 큰일이야. 저게 무슨 개인지도 모르겠어.”

라이킨은 지나치게 작은 소렐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작으면서, 개들에게 물어 뜯겼으면서도 그녀는 정작 라이킨은 안 된다고 진땀을 흘리며 외쳤다. 키가 크고 탄탄한 그는 정말 괜찮은데 말이다.

16606120793123.jpg“……아마 괜찮을 거다.”

물어 뜯겨 다친 것만 문제지, 그 외의 것은 괜찮을 거다.

16606120811691.jpg“……그래, 그럼 그나마 다행이고.”

오빠가 하는 말을 듣던 샤를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16606120811691.jpg“빨리 와. 아버지가 보통 화가 나신 게 아니야.”

16606120793123.jpg“아, 나도 화가 났는데.”

16606120811691.jpg“나는 뭐 아닌 줄 알아?”

분명히 개를 풀은 놈은 따로 있다.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개들이 정확하게 소렐을 노렸다는 사실만 봐도 지나치게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16606120793123.jpg‘토끼인데.’

라이킨은 품 안에서 정신을 잃은 소렐을 꼭 껴안으며 이를 까드득 갈았다.

16606120793123.jpg‘개라.’

이건 사냥이었다. 소렐 이드리스는 훌륭한 사냥감이고, 사냥개를 풀어 물어버렸다. 자그마한 토끼가 축 늘어졌다. 라이킨은 소렐보다 더 물어뜯긴 다리를 서둘러 움직이며 머리를 굴렸다. 어떤 놈인가. 누가 이런 사냥을, 이딴 장난질을 했나. 그의 머릿속에서 여러 이름이 순식간에 떠올랐다가 하나하나 지워졌다.

16606120811691.jpg“엘펜하임이야?”

샤를렌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름을 물었다.

16606120793123.jpg“가능성이 있지. 하지만 모르겠어. 그놈들은 공주님을 생포하고 싶어 해.”

16606120811691.jpg“하지만 소렐 이드리스에겐 관심이 없지. 고대마법만 원할 뿐이잖아.”

16606120793123.jpg“그래서 용의선상에서 배제하지는 못해.”

뱀파이어들은 소렐의 피 냄새를 맡으면서도 라이킨에게 담요를 더 가져다주고, 서둘러 별장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마차를 끌고 왔다. 라이킨의 수하들은 모두 고도로 훈련된 이들이다. 그들 중 몇몇은 그와 함께 끔찍한 전쟁터까지 굴렀고, 모두가 다 암살이나 살인은 하면서도 라이킨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피를 마셔서 흔적을 남기는 짓은 결코 하지 않았다.

16606120821904.jpg“얘들아!”

또 다른 자제력 강한 뱀파이어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16606120811691.jpg“와, 나 아버지가 저렇게 뛰시는 건 오랜만에 보네.”

샤를렌이 아버지를 보며 놀랐다.

16606120811691.jpg“앞으로 오천 년은 끄떡없으시겠어.”

16606120821904.jpg“너는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오니? 세상에, 전부 피투성이구나!”

발레시나스 공작 합하께서는 딸의 말에 혀를 차다 아들을 보곤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16606120793123.jpg“공주님이 좀 심각하십니다.”

16606120821904.jpg“너는 뭐 안 그런 줄 알아? 이게 무슨 일이냐, 어서 가자! 의사 불러놨다!”

전통 있는 축제의 마지막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자식들을 데리고 마차에 오르는 발레시나스 공작의 뒤로, 이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불꽃이 허망하게 터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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