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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불꽃놀이 (5) (90/181)

90. 불꽃놀이 (5)202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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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칼리에르 공이 결혼을 해서 신혼을 즐기고 있다는 건, 그의 수하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그가 진짜로 ‘신혼을 즐기는가’에 대한 사실 여부는 일단 차치하자. 어쨌든 엘펜하임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수하들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며, 칼리에르 공은 자그마한 헬레인 공주님에게 푹 빠져서 아주 기분이 좋았다. 물론 앞서 말한 ‘신혼을 즐기는가’에 대한 문제가 조금 있고, 또 공주님께서 어려서 칼리에르 공이 몇 번 단단히 화가 났지만, 그거야 언제나 칼리에르 공이 질 부부싸움일 뿐이다.

16606120648686.jpg‘마스터께서 결혼을 하신 게 우리한테는 다행이지.’

칼리에르 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조슈아부터 막내 제롬까지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은 간절히 마스터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빌었다. 처음에 헬레인 공주가 겁도 없이 칼리에르 공의 진짜 이름을 툭툭 부르던 걸 보고 경악했다가 칼리에르 공에게 욕을 잔뜩 얻어먹었던 날부터 진심이었다.

1660612064869.jpg‘제발 행복하셔서 성질머리가 튀어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특히 막내 제롬이 간절하게 빌었다. 소렐 빼고 다 아는 사실이지만, 라이킨이 참여하지 않은 전쟁이 없을 정도로 그는 긴 시간을 전장에서 보냈다. 때문에 얻은 건 귀족처럼 말하다가도 내키면 튀어나가는 상스럽고 껄렁한 말투요, 지랄 맞은 성미와 생존 방법이었다. 아니, 사실은 그는 날 때부터 천성적으로 성격이 그 모양 그 꼴이었던 건 아닐까?

16606120648695.jpg“유행은 계속 변하고, 시대도 변해가는데 에설론 백작은 늘 변함없이 여전하니 참 다행입니다.”

라이킨은 그런 말을 웃지도 않고 했다. 분명히 존대를 사용하지만 그것은 예법에 의한 존대일 뿐, 어쩐지 소렐이 듣기엔 루드밀라를 하대하는 듯했다.

16606120648699.jpg“……그걸 제임스가 다행이라고 생각할 줄은 몰랐네요.”

그녀는 꼬박꼬박 라이킨의 첫 번째 이름, 앨리스 루이즈 칼리에르가 본명을 천박한 평민의 것이라 무시하고 새로 지어버린 ‘제임스’를 불렀다. 루드밀라도 라이킨이 그녀의 첫 번째 이름을 불러주길 바랐지만 그는 결코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16606120648695.jpg“철도가 깔린 이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참 편하고 고마운 일 아닙니까.”

라이킨은 특히 ‘편하다’고 말했다.

16606120648695.jpg“예전과 똑같이 대할 수 있으니 반갑군요.”

루드밀라는, 순혈 뱀파이어이자 귀족들의 화법에 익숙한 그녀는 라이킨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넌 바뀐 게 하나도 없이 그 모양 그 꼴이라는 뜻이다. 루드밀라는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16606120648699.jpg“반가우시다니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종종 마주칠 것 같아서요. 제가 엔버네스로 돌아왔거든요, 제임스. ‘예전처럼’요.”

소렐 이드리스는 전혀 모르는 예전 기억들이 얼마나 많던가. 루드밀라는 특히 제임스의 어머니, 1대 칼리에르 공 덕분에 칼리에르 일가의 가족 행사에도 여러 번 참석해왔고, 나름 가깝게 지냈다. 그녀는 이 가족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았다. 주로 1대 칼리에르 공이 말해준 것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라이킨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소렐의 손을 더 꽉 잡았다.

16606120648695.jpg“백작은 내 어머니를 참 많이 닮았습니다.”

소렐은 움찔거리려다가 말았다. 그가 손을 잡은 이유가 ‘놀라지 말라’라는 뜻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라이킨의 미소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살육의 향기가 진하게 났다.

16606120648695.jpg“그래서 내 어머니가 백작을 참 아꼈던 게 기억납니다.”

루드밀라가 잠든 사이, 이 남자는 과연 뭘 하고 있었을까? 그녀는 더 위험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완벽한 공작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시 잠들어서 백칠십 년의 시간을 그저 멈춰진 채 살아왔다. 하지만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는 그 시간을 그저 헛되이 보낼 남자가 아니었다. 루드밀라는 처음으로 그가 낯설게 느껴졌다.

16606120648699.jpg“갑자기 돌아가셔서 유감이었어요. 그렇게 건강하신 분이었는데.”

루드밀라가 진심으로 말했다. 그녀에겐 1대 칼리에르 공의 죽음이 그토록 충격적이었다. 앨리스 루이즈 칼리에르가 살아 있었다면, 루드밀라도 곧장 칼리에르 공비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공비를 목전에 두고 모든 게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루드밀라는 이번에는 그녀의 힘으로 공비자리를 되찾아볼 생각이었다. 이제 앨리스 루이즈 칼리에르는 없지만, 그래도 소렐 이드리스를 치워버릴 곳이 하나 있었다.

16606120648695.jpg“예. 우리 모두 조심해야겠지요.”

라이킨은 예의 바르게 돌려 말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는 데에는 루드밀라보다 한 수 위였다. 미묘한 목소리 높낮이와 강조로 순식간에 대화를 종료한 그는 인사를 나누었다.

16606120648695.jpg“그럼 다음에 또.”

그리고 그녀를 스쳐지나갔다.

16606120648699.jpg“……아.”

루드밀라는 잠시 조용한 탄성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는 그녀가 원하고 그리는 모든 점을 다 넣어서 한 번에 빚어 만든 존재였다.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매력,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카리스마, 날카로운 눈매와 범접할 수 없는 힘까지, 그와 몇 마디만 나누었을 뿐인데도 그녀는 라이킨에게 다시 홀리는 기분이었다. 그녀만 그렇겠나. 라이킨과 마주하는 모든 숙녀들이 다 그럴 거다. *

16606120654924.jpg“유감이야.”

샤를렌은 탄식했다.

16606120654924.jpg“괜찮은 남자가 얼마나 없으면 멀쩡한 숙녀들이 오빠놈을 저런 눈으로 쳐다볼까.”

어차피 그녀의 말은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샤를렌은 마음껏 한탄했다. 멀쩡한 놈들이 죄다 멸종되어서 그래. 어쩌다 저런 성질머리도 불같고 내 오빠지만 내 오빠 같은 놈을 다 저리 선망의 대상처럼 쳐다보고 있을까. 그녀는 발레시나스 와인을 한 병 더 비우며 주변을 살폈다. 야외무도회에 좋은 와인이 있으니 그녀는 그걸로 됐다.

16606120654924.jpg‘……에설론 백작 쟤가 와 있고.’

죽은 어머니, 특히 약했기에 샤를렌을 더더욱 괴롭혔던 어머니는 에설론 백작을 예뻐해서 집에 자주 불렀다. 샤를렌에게도 ‘자매처럼 지내라’고 했다. 그게 말이나 되나. 첫눈에 보자마자 친구가 될 수 없겠구나, 안 맞겠다, 하고 결론을 내린 사이인데.

1660612065494.jpg“샤를렌, 샤를렌.”

그녀를 두 번 연달아 부르는 사람은 소렐밖에 없다. 그것도 달려와서 답삭 안겨 파고드는 사람은 정말 소렐밖에 없다. 샤를렌은 팔을 펴서 소렐을 꼭 감아 안았다.

16606120654924.jpg“아이구, 우리 올케. 재미있어요?”

그녀의 팔 안에 감겨 올려보느라 말랑한 얼굴이 눌린 소렐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065494.jpg“샤를렌은 재미없어요?”

16606120654924.jpg“아니요. 왜요? 재미없어 보여요?”

1660612065494.jpg“조금.”

어라. 샤를렌은 소렐을 옆자리에 앉혀놓고 쳐다보았다.

1660612065494.jpg“조금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왔어요.”

16606120654924.jpg“잠깐 별로인 생각을 했는데 그걸 우리 공주님이 용케 알아채셨네요.”

1660612065494.jpg“일이 힘들어요?”

16606120654924.jpg“힘들지 않은 일은 없지요.”

소렐은 열심히 샤를렌을 걱정해준다. 예쁘니까 샤를렌은 소렐을 꼭 안고 뺨에 뽀뽀를 해줬다. 쪽쪽 소리가 나자 소렐은 헤헤 웃었다.

16606120648695.jpg“적당히 마셔.”

라이킨이 소렐 곁에 앉으며 샤를렌 앞에 쌓인 와인 병을 쳐다보았다.

16606120654924.jpg“내가 여기 술 마시려고 왔지, 춤추러 왔나?”

1660612065494.jpg“둘이 춤 안 춰요?”

가운데에 낀 소렐이 남매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16606120654924.jpg“춤은 무슨.”

16606120648695.jpg“안 춥니다.”

샤를렌과 라이킨은 동시에 질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소렐은 두 사람이 인상을 찌푸린 모양이 아주 똑같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1660612066178.jpg“그럼 아가가 나랑 출까?”

16606120654924.jpg“아, 깜짝이야, 아버지. 제발 기척 좀 내고 다니세요.”

샤를렌이 화들짝 놀라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에게 한마디 했다.

1660612066178.jpg“기척 좀 내고 다니라니. 나는 내내 여기에 있었는데.”

1660612065494.jpg“맞아요.”

소렐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샤를렌 뒤에 앉아 있던 로렌스를 쳐다보았다. 그의 앞에도 제법 와인병이 많이 굴러다녔지만, 로렌스는 아주 멀쩡했다.

1660612066178.jpg“가자. 모처럼 야외무도회인데 나랑도 춰야지.”

1660612065494.jpg“네!”

대답하는 목소리가 경쾌하다. 듣는 사람의 기분이 아무리 울적해도 조금이라도 기운을 더 북돋워주는 목소리다. 샤를렌은 통통 뛰어가는 소렐의 뒷모습을 보았다.

16606120654924.jpg“공주님이 오늘 기분이 좋으시네.”

라이킨은 샤를렌이 마시고 있던 와인 병을 가져다 자신의 잔을 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넘쳐나는 술은 발레시나스에서 열리는 연회나 무도회의 미덕이었다.

16606120654924.jpg“다행이야. 나는 저 멍청한 게 공주님 속을 뒤집지는 않을까 걱정했거든.”

16606120648695.jpg“‘저 멍청한 게’라는 호칭이 에설론 백작을 칭하는 거라면 그 여자는 공주님께 딱 그 여자 수준으로만 무례하게 굴었어.”

16606120654924.jpg“무례하게? 아, 없는 사람 취급?”

라이킨은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0654924.jpg“그런데도 그냥 뒀어?”

16606120648695.jpg“죽여버리겠다고 했는데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아.”

16606120654924.jpg“죽여버리겠다고, 어떻게 돌려 말했는데?”

16606120648695.jpg“먼저 어머니의 죽음 이야기를 꺼내면서 갑작스러웠다고 하길래, 우리 모두 조심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

16606120654924.jpg“아, 걔는 아직 몰라.”

샤를렌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라이킨은 동생을 쳐다보았다.

16606120648695.jpg“아직 모른다니?”

붉은 입술에 잔을 가져다 대던 샤를렌은 오빠를 힐끗 보더니,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낮게 말했다.

16606120654924.jpg“우리가 그 여자를 죽였다는 걸 아직 모른다고. 정확히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아직 미치지 않았겠지.”

16606120648695.jpg“우리라니. 너는 아니지.”

16606120654924.jpg“나도 동조했어.”

그리고 딱히 죄책감이 들지도 않고. 하지만 오빠는 그녀를 늘 보호하려고 들었다.

16606120654924.jpg“법적으로 공범이지.”

16606120648695.jpg“그 얘기나 계속해봐. 왜 에설론 백작이 그걸 몰라?”

순혈 뱀파이어들부터 모든 뱀파이어들이 장례식에서부터 설마 하며 이 가족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보았다. 앨리스 루이즈 칼리에르가 갑자기 죽었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로렌스 오블리앙은 라이킨도 이해하지 못할 세기의 로맨티스트였고, 장례식에서 가장 슬퍼한 이가 바로 그였다. 라이킨은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냥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려니, 하고 넘겼다.

16606120654924.jpg“약혼이 깨진 게 죽은 사람보다 더 중요하지. 세상이 무너져서 사술도 걸어보고, 별짓을 다 했는데 그런 얘기가 걔 귀에 들렸겠어?”

16606120648695.jpg“몇 마디 흘리면 바로 눈치채는데.”

16606120654924.jpg“귀에 들릴 상태가 아니라니까. 이제 슬슬 들리기 시작할걸. 뭐, 오빠가 의미 있게 말했으니 오늘 집에 돌아가다가 눈치챌지도.”

샤를렌은 성의 없이 중얼거리며 술을 마셨다.

16606120654924.jpg“나는 솔직히 말이야. 에설론 백작, 쟤가 어머니의 숨겨진 딸이 아닌가, 싶어.”

16606120648695.jpg“너만 그 생각한 게 아니야.”

16606120654924.jpg“오빠도?”

라이킨은 픽 웃기만 할 뿐이다. 샤를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16606120654924.jpg“징그럽게 똑같아.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사람을 데려다 며느리로 삼으려고 할까, 싶었어.”

16606120648695.jpg“넌 그때 그런 말을 안 했지.”

16606120654924.jpg“그땐 별로 말이란 걸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은 직장에서 너무 많이 했고.”

직장을 가지고, 변호사로 일한다는 건 샤를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어머니가 가지라고 한 직업이 아니다. 그녀는 그래서 머리가 깨졌다. 법대를 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아버지의 도움 덕분이었다. 로렌스는 그걸 부모의 의무이자 즐거움이라 불렀다.

1660612066178.jpg‘우리 딸이 법대를 갔어요.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한답니다.’

  아버지는 보는 사람들에게 늘 자랑했다. 샤를렌은 처음으로 부모가 자식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게 뭔지 그때 알았다. 그건 어깨가 으쓱해지고,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16606120654924.jpg“가끔은 그렇게 생각해. 내가 어머니의 반이라도 닮으려고 노력했다면, 아니, 그런 시늉이라도 했다면 어머니가 저런 애를 오빠와 억지로 약혼시키지는 않았을 텐데.”

라이킨은 미간을 찌푸리며 샤를렌을 쳐다보았다.

16606120648695.jpg“너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16606120654924.jpg“내가 그랬어봐. 어머니는 쟤가 아니라 말 잘 듣고 온순하기만 한 여자를 데리고 왔을지도 몰라. 그랬다면 공주님이 저 여자 때문에 불쾌할 일도 없을 거고, 어쩌면 의외로 약혼도 순조롭게 합의하에 취소되었을 수도 있고…….”

샤를렌은 취한 사람처럼 목소리를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며 중얼거렸다.

16606120654924.jpg“적당히 위자료를 주고 합의하에 취소하는 게 참 깨끗했는데.”

16606120648695.jpg“이제 보니 직업병이군.”

라이킨은 기가 차서 여동생을 쳐다보았다. 변호사로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린다, 이거다.

16606120648695.jpg“과거를 가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런 생각 하지 마.”

그는 내내 좁힌 미간을 펴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16606120654924.jpg“아니, 그냥…….”

샤를렌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오빠를 쳐다보았다.

16606120654924.jpg“안 그래도 한참 어린 공주님한테 미안해서 그러지.”

16606120648695.jpg“미안하다고?”

16606120654924.jpg“시누이로서 미안하지. 오빠놈이 나이도 많은데, 얼굴은 반반해서…….”

16606120648695.jpg“그 얼굴 너랑 똑같다.”

16606120654924.jpg“기분 나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니 인정하겠어. 나도 인기가 많은 얼굴이니까. 그런데 그 얼굴에…….”

샤를렌은 오빠의 얼굴을 검지로 휘리릭 돌려 가리켰다.

16606120654924.jpg“이 여자 저 여자 다 달라붙는데, 안 그래도 나이 많은……. 아, 나 우리 공주님한테 미안해서 어떡하냐.”

16606120648695.jpg“이젠 작작 마시고 그냥 자라.”

16606120654924.jpg“너 여자 정리해, 여자. 빨리. 그거 이혼 사유야. 알아?”

라이킨은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골이 아파서 이마를 짚었다. 여동생은, 어머니와 닮았고 여전히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여자를 보고 술에 진탕 취했다. 그 역시 상당히 불쾌하긴 했지만 지금 공주님이 까르르 웃으면서 아버지와 춤을 추는 중이다. 라이킨은 소렐이 웃는 모습을 보다가 겉옷을 벗어 엎드린 여동생의 머리 위에 툭 덮어놓았다. 한가로운 여름밤이다. 루드밀라는 멀리서 라이킨을 보았다. 자색 눈은 칼리에르 공과 그 여동생을 지나, 발레시나스 공작과 춤을 추고 있는 칼리에르 공비에게로 와 닿았다. 공비라니. 루드밀라는 그녀가 앉아야 하는 자리에 앉은 저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계집애를 결코 공비로 인정할 수 없었다.

1660612064869.jpg‘키티 걔가 칼리에르 공작저에서, 예, 일하고 있습죠. 그런데 걔가 그……, 국왕폐하께서 즉위하셨다고 이리저리 축하 기념을 하던 그날 말입니다.’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는 반드시 협정서에 서명해야 했다. 고대마법의 계승자가 동족에게 위협이 될 시, 주저하지 않고 죽인다고 맹세해야 했다.

1660612064869.jpg‘예, 예. 그날이 맞습니다. 그날 그, 공작저에서 모시는 아가씨가 갑자기 공작저 홀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걔가 입이 근질거리는지 날 붙잡고 말하기는 했어요. 확실합니다요.’

  그리고 고대마법의 계승자는 ‘반드시’ 위협이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칼리에르 공은 협정서를 지켜야 했다. 저 한입 거리도 안 되는 계집애를 제 손으로 죽여야 할 것이다.

1660612064869.jpg‘뭐, 여기저기 나타나는 건 예사고, 공작전하도 이리 불렀다, 저리 불렀다 요술을 부린다 하대요?’

  술을 진탕 먹여놓고 동전 몇 푼을 넣어주면 중요한 정보도 술술 나온다. 비록 그 정보가 삼엄한 감시를 겨우 뚫고, 공작저 관련자의 사돈의 팔촌의 육촌에게 겨우 닿아 나온 것이라 해도 어쨌든 루드밀라는 중요한 것을 알아내었다. 저 꼬맹이는 마법을 부린다. 그것도 꽤 위험한 마법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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