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불꽃놀이 (3)2021.06.02.
라이킨은 넓고 두툼한 상체를 가지고 있었다. 고도로 발달한 상체의 근육은 무섭게 꿈틀거렸고, 하나하나 다 쪼개져서 엄청난 힘을 자랑했다. 그는 상체를 다 벗다 못해 짧은 바지 모양을 한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젖어도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진 옷이다. 그 옷은 아직 젖지 않았지만, 그의 전반적으로 길쭉하며 탄탄하게 굵은 하반신 실루엣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소렐 이드리스는 그녀가 이렇게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구나, 하고 반성해야 했다.
‘너무 좋아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자꾸 보고 싶어서 눈이 라이킨 쪽으로 간다. 원래 그녀가 이렇게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나? 아닌데, 동네 남자애들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하긴 그 애들이 그녀의 눈에 차지 않기는 했다. 아니, 그러면 그녀는 외모와 몸에 혹하는 사람이었단 말인가!
“공주님.”
그때 그가 그녀를 불렀다. 라이킨은 목소리도 야릇할 정도로 좋았다.
‘좋은 걸 생각할 게 아니라 정신을 차리자, 소렐 이드리스.’
소렐은 수건을 꼭 쥐고 애썼다.
“제가 그리 보기 싫으십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람!
“아뇨! 아닌데요!”
그건 아니었다. 소렐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저 멀리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던 샤를렌마저 돌아볼 정도로 큰 소리라는 걸 깨닫자 얼굴이 빨개져서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혼자 저걸 보고 있담…….”
물론 소렐은 멀리서 샤를렌이 무슨 소리를 중얼거리는지 전혀 몰랐다. 고개를 흔든 샤를렌은 아예 해변에 대해 신경을 끄기로 했다. 결국 그녀의 오빠놈이 원하는 대로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낼 게 뻔했으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인상을 쓰십니까. 제 몸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이 남자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건가. 소렐은 귀를 의심했다.
“마음에 안 드시면 바꿔보겠습니다.”
“몸을 어떻게 바꿔요?”
그리고 그걸 왜 바꾸나요! 그게 얼마나 대단한 몸인데! 잘 모르는 소렐도 라이킨과 같은 몸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 거라는 건 알았다.
“너무 크면 줄여볼 수는 있지요.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소렐은 놀라서 빼액 외쳤다가 합 하고 입을 가리고 얼른 다시 수건을 뒤집어썼다. 라이킨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수건 아래에서 꼬물대는 공주님을 쳐다보다가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웃음을 깨물었다.
“좋은데 왜 안 보십니까? 안 보시면 제가 많이 서럽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자꾸 계속 쳐다볼 것 같단 말이에요!”
공주님은 꽤 솔직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해요!”
또다시 두껍고 커다란 해변용 수건 아래에서 토끼가 조그맣게 외쳤다.
“이상한 게 아니라 좋아서 죽을 것 같군요.”
라이킨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공주님에게도 취향이란 게 있을 텐데, 그 취향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좋아요?”
수건 아래에서 까만 눈이 반짝 내밀어졌다.
“예. 좋습니다.”
라이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계속 공주님을 바라보고 싶으니, 이쯤이면 공평한 거 아닙니까.”
도톰한 수건이 볼록하게 올라왔다. 호기심 많은 토끼는 수건을 뒤집어 쓴 채 몸을 일으켜서 라이킨을 바라보았다.
“진심입니다. 그러니 이리 오세요, 공주님.”
그는 두 손을 내밀었다.
“와주시지 않으면 제가 몹시 슬픕니다.”
토끼는 조금 기다려야 한다. 완전히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경계심이 사라질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노련한 사냥꾼이자 토끼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 조금 인내하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이젠 익숙해지기까지 했다. 조금 기다리고, 내내 다정하게 웃어주면 토끼는 망설이다가 조금 더 가까이 온다.
“다정하기도 하시지.”
그는 소렐이 다정하다 칭찬하며 안아다가 키스를 퍼부었다. 토끼는 부끄러워하다가도 곧잘 적응했다.
“라이킨, 라이킨.”
“예?”
“샤를렌이 없어요.”
어디 갔지? 토끼는 목을 빼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샤를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에 저쪽 해변으로 갔습니다.”
“그랬어요? 왜 갔지?”
“그건 나중에 물어보시고.”
그는 민망해서라도 다른 쪽을 보려는 소렐의 얼굴을 감싸 기어이 자신 쪽으로 돌려놓았다.
“알아서 자리를 피해줬으니 이젠 저를 봐주셔야지요.”
아, 그런 거였어? 소렐은 뒤늦게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
“나, 나는 수영 배우러 온 건데…….”
“그건 저도 가르쳐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자상하게 웃었으나, 그의 눈은 아주 따뜻하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다. 푸른 눈 깊숙한 곳에서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고, 정염이 휘몰아쳤다. 소렐은 그가 딱히 수영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란 걸 단번에 알았다. 아무도 없는 별장 해변에서 뱀파이어는 그녀를 꼭 안고 놔주지 않았다.
“공주님.”
그녀는 따뜻했다. 볕에 달궈져 약간 뜨겁기도 했다. 서늘한 그의 체온과 만나면 가장 쾌적하다. 소렐은 섬세하고 긴 손이 그녀를 안정되게 안고, 얄팍하게 젖은 수영복 위로 쓸어내려주는 촉감에 살짝 움찔거렸다.
“괜찮습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중얼거렸다.
“뭐든 괜찮아요.”
작은 토끼에게 욕망이란 게 있다면 그는 더없이 기쁠 것이고, 그 욕망이 그를 향한 것이라면 당장 침실 문에 못질부터 할 생각이었다. 소렐은, 그녀만은 그를 어떻게 해도 괜찮다고 여러 번 속삭였다. 진심이었다.
“만져주십시오.”
라이킨은 자그마한 소렐의 손을 잡고 마디마다 입을 맞추며 중얼거렸다.
“공주님 것입니다. 부디 마음대로.”
소렐은 그를 어떻게 다뤄도 상관없었지만, 그는 그녀를 마치 숭배하듯 조심스럽게 안고 솜털보다 더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소렐이 불쾌해하거나 싫어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해가며 허락받은 곳에만 입술을 댔다. 라이킨은 자신의 덩치가 자그마한 공주님에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그리고 순진한 공주님에게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마음대로 사용해주세요.”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고 눈가에 와 닿는 입맞춤을 받았다. 맞닿는 피부가 몹시 서늘하고 시원했다. 적당히 좋아서 소렐은 자꾸만 라이킨에게 파고들었다. 그는 그녀를 거절하지 않는다. 언제나 기꺼운 듯 꼭 안아주고, 더 보듬어주었다.
“저는 공주님의 소유입니다. 아시겠지요?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는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선 바깥에서는 무척 집요했다. 소렐은 라이킨의 눈에서 쏟아지는 정염에 순식간에 휩쓸렸다. 대담하게 그의 목을 끌어안으면, 순식간에 입술부터 잡아먹힌다. 그늘 사이로 여름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온통 투명한 하늘을 닮은 바다가 모래사장으로 미끄러졌다가 포말을 일으키며 사라진다.
“그건 좀 과해요.”
소렐은 하늘보다 새파란 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 과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아니라면 누가 그를 온전히 소유하고, 완벽하게 사로잡아 아무런 생각도 못하게 할까.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는 이 작은 공주님의 충실한 기사이자 종이었다.
“전혀 과하지 않아요.”
라이킨은 어쩐지 아주 만족스러워 보였다. 소렐은 아직까지도 부끄러운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기색이다. 오히려 그녀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웃었다. 소렐은 척추부터 올라오는 불길하고도 짜릿한 느낌에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그저 제게 익숙해지세요.”
그가 입고 있던 셔츠를 벗더니, 소렐의 어깨에 걸쳐주며 중얼거렸다. 서로 섞인 온도, 촉감, 파고드는 눈빛까지 전부 다 그녀가 긴 시간 동안 느낄 감각이었다.
“언젠간 같은 침실을 사용해주셔야지요.”
“언젠간.”
“예, 언젠간.”
싫다 소리는 하지 않는데, 약속한 것은 먼 미래라 라이킨은 아직 동그랗고 귀여운 소렐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앳되고 어리지만, 유일하게 그에게 욕망이란 걸 품게 하는 존재였다. 그게 참 고문 같고도 괴롭게 즐거워서 라이킨은 품 안에 있는 소렐을 꽉 안고, 입을 맞췄다.
“라이……!”
근육이 선명하게 선 굵은 팔뚝을 작은 손이 잡고 보챘다. 그의 품에서 뻗어져 나온 다리가 한동안 바동거리다, 결국 포기하고 늘어지고 말았다.
* 라이킨과는 달리 발레시나스 공작 로렌스 오블리앙은 꽤나 영지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꼬박꼬박 중요한 행사에 얼굴을 비추고, 영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앞장서기도 했다. 덕분에 소렐은 어렵지 않게 가보고 싶었던 야외무도회에 갈 수 있었다. 발레시나스 공작은 야외무도회를 주최하는 이들과도 이미 안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대돼요!”
여태까지 참석했던 대단한 무도회들과는 달리 간단하게 격식만 갖추는 자리다. 라이킨은 그래서 검은 보타이를 매고, 소렐이 즐거워하는 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가 행복해하면 그걸로 됐다. 아무리 야외무도회에 불쾌한 뱀파이어가 출몰한다 해도, 소렐이 저리 좋아하니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 좋으십니까?”
“네! 여름밤이잖아요. 여름밤에 무도회라니 낭만적이야.”
소렐은 중얼거리며 뽀얀 뺨을 감쌌다. 라이킨은 그것마저도 예뻐서 웃었다. 또 어떤 통속소설에서 아주 낭만적으로 묘사된 야외무도회 장면을 읽고 폭 빠져든 게 분명했다. 소렐 이드리스는 파릇파릇한 스무 살이다. 라이킨에게는 제기랄이다.
‘만난 지가 언젠데 이제 겨우 키스……, 아니, 키스도 아주 대단한 거지……. 그래, 대단한 거지…….’
라이킨은 소렐을 보며 웃다가 고개를 툭 떨어트렸다. 토끼는 호기심은 많았지만 그만큼 겁도 많았다. 여기까진 괜찮나, 하고 용감하게 가보다가 결국 못하겠다고 파드득 놀라 도리질 치니 그가 어떻게 할 재간이 없었다. 그냥 그러냐고 하고 바로 물러나는 수밖에. 그는 소렐에게 미움 받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그때 그녀가 조금 더 다가와서 라이킨의 손을 먼저 살짝 잡았다.
“라이킨이랑 같이 가서 더 좋아요.”
말을 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웃으면서 그를 또 홀렸다.
“저도 공주님과 함께여서 늘 좋습니다.”
좋긴 한데 말이다.
“공주님. 무도회에서 불쾌하실 수도 있습니다.”
“라이킨, 그 말 벌써 일곱 번째예요.”
발레시나스의 유지 에스페소 씨가 주최하는 야외무도회에는 에설론 백작, 라이킨의 전 약혼녀도 온다. 그녀가 분명히 소렐을 그냥 넘기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아는 라이킨은 그 점이 못내 걱정이었다.
“라이킨이 가만 두지 않겠다면서요.”
“예.”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공주님께서 불쾌하신 건 싫어서 그럽니다.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그의 사과에 뜻밖에도 소렐은 눈을 치떴다.
“사과하지 말아요!”
목소리도 높아졌다.
“사과하면 꼭 옛날에 그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잖아요!”
“그게 그렇게 됩니까?”
“어쩐지 옛날에 이런저런 치정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에요.”
“치정이라뇨, 공주님…….”
라이킨은 그 여자와 치정이라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나랑은 약혼 안 했지만 그 사람이랑은 했잖아!”
어이구. 그는 팩 고개를 돌리는 소렐을 보곤 웃음을 꾹 깨물었다.
“아닌데요, 공주님. 저는 이미 그전에, 한참 전에 공주님과 약혼해서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데? 소렐이 의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공주님과 결혼할 거라는 예언을 들은 게 이백 년 전인데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따지고 보면 약혼기간만 이백 년이었는데요.”
토끼는 눈을 깜빡깜빡하더니, 조금 더 다가와서 기웃거렸다.
“진짜요?”
“아버님께서 말씀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게 약혼이 된다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소렐은 열심히 대답했다.
“아니, 알고는 있었는데……. 예전에, 한참 전에 엄마가 그랬다고는 얘기해주셨는데…….”
당연히 시커먼, 아니, 창백한 뱀파이어가 이렇게 귀엽고 예쁘고 어리기만 한 딸의 남편이라니 생각만 해도 이가 바득바득 갈려서 말해주고 싶지 않았겠지. 펠릭스 이드리스의 성격을 훤히 아는 라이킨은 픽 웃었다.
“진짜 이백 년?”
우리가 이백 년이나 약혼을 한, 그렇게 길고 긴 인연이었단 말야? 그렇게 되나? 토끼의 보이지 않는 귀가 팔랑거렸다.
“이백 년 하고도 좀 더 넘었습니다. 그때 펠릭스, 아, 공주님 아버님에게 살해당할 뻔했지요.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으음, 미안해요.”
“아닙니다. 제 딸이 그랬다면 저도 똑같이 그랬을 텐데요. 어쨌든 그때 약속을 했으니 제가 공주님을 모시러 간 거 아닙니까.”
“그렇구나아.”
소렐은 소녀답게 말끝을 길게 늘이며 대답했다.
“그런 거지요. 저는 공주님과 약혼을 했으니 어머니가 무슨 난리를 치든, 그 여자를…….”
라이킨은 잠시 말을 끊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깊게 생각했지만, 길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게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정서로 생각하는 약혼의 무게만큼도 부여하지 않았군요.”
사실 별생각 하지 않고 그저 미래에 그런가 보다, 하고 감흥 없이 내버려뒀던 소렐과의 예언도 그보다는 더 무게가 있었다. 그는 애초에 앞으로 뭘 하겠다는 꿈이나 계획이 없는 사람이었다. 뱀파이어의 피를 억지로 마실 때부터 그의 삶이 아닌 삶을 살아왔다. 아니, 산 것도 아니고, 그저 살아남기만 하려고 악전고투했다.
“제게는 공주님과 이어진 약혼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중요하고, 또 유일한 것인데 공주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소렐은 조금 대답하는 게 느렸고, 라이킨은 그녀와 함께 걸어가면서도 결코 재촉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신기하다.”
약혼이었구나.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구나. 소렐은 눈이 동그래져서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주변으로 흰 모슬린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들이 화관을 쓰고 까르르 웃으며 무도회장으로 향했다. 소렐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라이킨은 엔버네스에서 만날 거라고 했는데.”
“예, 제가 그랬지요.”
“결국 여기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소렐은 이미 시작된 야외무도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에설론 백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공주님.”
부르는 말에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라이킨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녀만을 보고 있었다.
“다른 곳에는 관심을 두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투기가 심합니다.”
“그, 그래요?”
“예.”
칼리에르 공은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사실이니까.
“그러니 오늘도 저와 함께 있어주시고.”
그는 소렐에게 손을 내밀었다. 착한 토끼는 그 위에 얼른 손을 올려놓는다. 작은 손이 덥석 잡혀서 다시는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아는지, 아니면 모르는 건지.
“신경 쓰이시는 건 알겠지만 저 여자보다는 제게 더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이건 숫제 구걸이다. 라이킨도 알고 있었지만,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아직 한참 어린 소렐의 눈은 더 넓은 세상으로 자꾸만 향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구걸이라도 해서 저 눈을 그에게 잠시라도 돌려놔야 했다. 그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구걸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