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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연모와 음모 (9) (84/181)

84. 연모와 음모 (9)2021.05.19.

시끄러운 늑대부터 거슬리는 왕세자까지 싹 치워내고 나니 그렇게 편하고 안락할 수가 없었다.

16606120224306.jpg“……여긴.”

그가 말을 하면 소렐은 저절로 그를 돌아본다. 까만 눈동자가 그만을 오롯이 담고 있다는 건 무척이나 뿌듯하고 또 과분한 관심이기도 했다. 라이킨은 저 관심만큼은 결코 잃고 싶지 않았다.

16606120224306.jpg“글래스턴에서부터 공주님과 함께 꼭 오고 싶었던 곳입니다.”

그는 손을 뻗어 소렐의 머리카락을 살살 만졌다. 긴 머리카락이 그의 손가락을 타고 휘감겼다가 매끄럽게 떨어졌다.

16606120224306.jpg“고즈넉하고 조용하지요. 늑대들 때문에 한동안 정신 사나웠습니다만, 한결 낫군요.”

아, 그가 학교를 빼먹고 따로 가고 싶다는 눈치를 한참 내비치던 바로 그곳 말인가.

16606120224306.jpg“이곳 말고도 비슷한 별장이 몇 군데 더 있습니다. 공주님께서도 좋아하실 겁니다.”

16606120224322.jpg“여긴 엄마 아빠랑 살던 곳 같아요.”

소렐은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 중얼거렸다.

16606120224322.jpg“꽃이 많이 피었어요. 아빠는 항상 꽃을 따다가 엄마한테 가져다줬고요.”

라이킨은 곁에 피어 있던 들국화를 하나 툭 따서 소렐에게 내밀었다.

16606120224322.jpg“어, 고마워요. 나중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엄마의 무덤에 항상 꽃을 가져다놓았어요. 지금은 교회에 부탁해뒀지만요.”

16606120224306.jpg“조만간 들를까요?”

소렐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0224322.jpg“하지만 아빠가 너무 자주 오지는 말라고 했어요. 아빠랑 엄마는 그곳에 함께 묻히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대로 편안하다고.”

그녀는 잠시 미간을 살짝 좁히며 기억을 떠올렸다.

16606120224322.jpg“저는 학교를 가고, 많이 배우고, 세상을 접해야 한다고 항상 귀가 따갑도록 말씀하셨거든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의 몫인 거라고, 무덤에 많이 오는 건 의미가 없는 짓이라고 하셨어요.”

16606120224306.jpg“대마법사다운 말입니다.”

딱 펠릭스 이드리스가 할 법한 말이었다.

16606120224322.jpg“라이킨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했어요. 뱀파이어도 좋고, 많은 수인들도 다양하게 만나보고……, 마법사와 마녀들, 그리고 성기사들은 특히 조심하라고 하셨지만요.”

16606120224306.jpg“전부 다 옳은 말이지요.”

라이킨은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20224322.jpg“라이킨은 마음에 안 든다고 했는데도요?”

16606120224306.jpg“당연한 일입니다. 저라도 공주님 같은 딸이 있다면 모든 남자들을 경계할 겁니다. 얼마나 소중한데요.”

16606120224322.jpg“그런데도 웃네요.”

16606120224306.jpg“예. 저는 공주님의 남편이니까요.”

라이킨은 그 사실이 못내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16606120224306.jpg“아버님은 무척 싫어하셨지만, 제가 바로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니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싱그러운 계절이고, 곧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음울한 겨울을 지나, 환하게 꽃이 피어난 별장 앞에 자리를 깔고 앉은 두 사람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서로만 보아도 재미있어 죽을 지경이었다.

16606120224322.jpg“라이킨은 날 많이 아껴주는 것 같아요.”

누워 있던 그가 그 말에 몸을 휙 일으켰다. 안 그래도 상체가 두툼하고 체구도 큰 편인 그가 날렵하게 일어나니 소렐이 약간 놀랐다.

16606120224306.jpg“‘아껴주는’ 것 ‘같다’니오, 공주님.”

말실수를 한 걸까? 많이 아껴주는 게 아닌 건가? 소렐은 시선을 일단 피하고서 생각하려 했지만 그는 세워둔 무릎 위에 팔을 걸친 채 집요하게 그녀의 시선을 따라왔다.

16606120224306.jpg“그냥 단정하고, 정의 내리십시오.”

그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건 싫은 모양이었다.

16606120224306.jpg“아니면 제가 표현을 충분히 하지 않았습니까?”

소렐은 또 슬쩍 시선을 피했다. 라이킨은 그게 못내 싫었지만 웃었다. 그러곤 기어이 그녀와 이마를 맞대고 시선을 똑바로 맞췄다. 새파란 눈이 새까만 눈을 가득 담았다.

16606120224306.jpg“제게는 공주님 한 분뿐입니다.”

그는 조용히, 소렐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16606120224306.jpg“평생에 이렇게 마음에 깊이 품은 분은 공주님이 처음이라 저도 당황스럽고 서툴러서, 공주님이 속상하실 때도 많이 있을 겁니다.”

어떡해. 눈을 못 마주치겠어. 소렐은 어깨를 움츠렸다.

16606120224306.jpg“하지만 속이 상하시면 곧바로 말씀하십시오. 시정하겠습니다.”

16606120224322.jpg“별로, 속이 상하지는…….”

16606120224306.jpg“아니, 마음에 걸리시는 게 있다면 혼자 참으시면 안 됩니다. 그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니까요.”

라이킨은 고개를 저었다.

16606120224306.jpg“반드시 제가 알게 하십시오.”

말해주지 않는다면 섭섭해 죽을 거라는 표정으로 간절하게 부탁했다.

16606120224306.jpg“저는 공주님이 저 때문에 속상하신 게 싫습니다. 늘 환하게 웃으시고, 세상에 가득한 재미있는 일들을 저와 함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멍청한 놈들은 어린 아내가 넓은 세상을 알까 봐 걱정하며 가두는 범죄를 저지른다. 라이킨은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소렐은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넓은 세상을 공부해야 했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젊고 싱그러운 놈들은 그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몫이다. 라이킨은 성가시지만 즐거울 예정이었다. 그만큼 안목이 있는 놈들이라는 소리니까.

16606120224306.jpg“많이 아껴드리고 싶습니다.”

16606120224322.jpg“그건 지금도 그런데…….”

16606120224306.jpg“앞으로도요.”

그는 싱긋 웃었다.

16606120224306.jpg“앞으로도, 공주님이 학교를 다니시고, 또 졸업하시고……, 직업을 가지신다면 직업을 가지시는 그런 순간들까지, 전부.”

꽤나 긴 시간일 거다. 어머니의 악몽은 이제 빛이 바래고 풍화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지워낼 수는 없지만, 그는 이제 미래를 기대할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딱 그때 소렐 이드리스가 그의 앞에 뚝 떨어졌다. 마치 이 아가씨만 바라보면 된다는 듯, 그렇게 우연하고도 기가 막힌 찰나였다.

16606120224306.jpg“그러니 제 마음은 언제나.”

소렐은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며 이마, 코끝에 그가 무수히 키스를 뿌렸기 때문이다.

16606120224306.jpg“언제나 공주님의 소유입니다.”

남편의 마음을 몽땅 다 가진 아내는 볼우물이 쏙 패도록 웃었다.

16606120224322.jpg“그럼 나는 아주 부자네요.”

16606120224306.jpg“그렇게 되는 겁니까?”

16606120224322.jpg“네. 그렇게 생각할래요.”

16606120224306.jpg“그렇다면 공주님 뜻대로 하시지요.”

소렐이 뒤로 스르르 넘어갔다.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가 언제나 받쳐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로 그녀와 함께 몸을 숙인 라이킨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살 정리해주었다.

16606120224306.jpg“허락해주신다면, 저는 언제나 공주님 곁에 있을 겁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가 그녀의 가디언이자, 수호기사이자, 남편이었다. 그는 말은 ‘허락해주신다면’이라고 전제를 붙였지만, 소렐이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조용히 따라붙어 그녀를 지킬 것이다. 눈에서 떼어낼 수가 없는 존재에게서 어떻게 멀어질 수 있을까.

16606120224306.jpg“그러니 공주님도 언제나 제 곁에 있어주십시오.”

소렐은 방싯 웃으며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그를 끌어당겼다. 라이킨은 곧장 그녀의 입술에 달려들며 잠시 실없는 생각을 했다.

16606120224306.jpg‘펠릭스가 무척 화내겠는데.’

스무 살짜리 딸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스스럼 없이 키스를 하는 걸 알았다면 가장 강력한 뱀파이어와 대마법사는 전쟁을 불사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유감스럽게도 지금 소렐의 보호자는 소렐 자신이자 라이킨이기도 해서, 그는 마음껏 제 아내의 여린 입술을 탐했다. 늦게 배운 버릇이 더 무서운 법이다. 소렐을 보고, 키스만 하는 것으로도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16606120224322.jpg“이렇게나 시간이 흘렀어요?”

소렐은 그의 손목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그는 솔직히 더 진도를 나가고 싶은 걸 꾹꾹 참느라 죽을 맛인 세 시간이었다. 도대체 왜 만족이란 걸 모르느냔 말이다. 라이킨은 책망하는 눈으로 스스로를 내려다보았다.

16606120224306.jpg‘음탕하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데.’

성기사들이 가장 시급하게 처치해야 할 대단히 문제 많은 뱀파이어다. 소렐은 키스만으로도 만족하는지 얼굴이 빨개졌지만, 라이킨은 다른 걸 더 잘 알아서 그런지 내내 갈증이 해소가 되지 않았다.

16606120224306.jpg‘공주님께서 색욕에 미친놈이라고 욕을 해주셔야 정신이 차려지려나?’

아니, 그래도 미친놈인 건 사실이니까 그냥 용납하시라고 빌면서 달려들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라이킨은 그냥 생각하는 걸 관뒀다. 이래저래 답이 없었다. * 아서 모드릭 헴피온, 슈토넨의 후작, 혹은 변경백은 자신이 순혈 뱀파이어들 사이에 남은 원로 중의 원로라는 데 자부심을 가졌다. 젊은이들은 언제나 늙은이의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그들은 혈기 왕성하며, 실수를 자주 한다. 그래서 아서 모드릭 헴피온은 지금 뱀파이어들의 사회가 돌아가는 꼴이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16606120234663.jpg‘나 때는 생각도 못 했던 일들이지. 암, 그렇고말고!’

어떻게 협정서에 서명하지 않는 순혈 뱀파이어가 있을 수가 있나! 그것도 ‘그’ 칼리에르가 말이다! 칼리에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물려받고서도 그 이름대로 행동하길 거부하다니, 새파란 놈이 아주 발랑 까졌다. 그의 아버지인 로렌스 오블리앙이라도 어떻게 말려봐야 할 텐데, 문제는 그마저 제대로 된 원로역할을 할 생각이 영 없다는 거였다.

16606120234663.jpg“에잉, 쯧,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건지!”

아서 모드릭 헴피온은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마 그가 지켜왔던 영지, 슈토넨이나마 제대로 돌아가는 게 다행이었다.

16606120234663.jpg‘심히 우려되는 일이야.’

칼리에르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순혈 뱀파이어의 정점이자 상징이다. 칼리에르 남매는 부정하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보였다. 칼리에르의 이름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고,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치는 뱀파이어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는…….

16606120234663.jpg‘찝찝하고 음침하고 무서운 놈.’

아서 모드릭 헴피온은 괜히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칼리에르 공, 글래스턴 공작에게는 무시무시한 힘이 숨어 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뱀파이어들을 전부 그림자 속에 숨겼다. 뱀파이어들은 어둠 속에서 암약하며, 소리 없이 정보를 훔치고 밝게 타오르던 생명을 꺼트렸다. 아서 모드릭 헴피온은 아직까지도 앨리스 루이즈 칼리에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의심스러웠다.

16606120234663.jpg‘그렇게 활달하고 정력적이던 사람이었는데…….’

게다가 남매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도 않았다. 슬퍼했던 건 남편인 발레시나스 공작 하나뿐이었다. 아서 모드릭 헴피온은 그에게 요즘 자주 오고 있는 편지를 집어 들었다. 뱀파이어들을 모아주세요. 안 된다면 힘으로 밀어붙여야 합니다. 루드밀라의 어조는 아주 단호했다. 칼리에르 공이 협정서에 서명하길 거부한다면, 모든 권위 있는 뱀파이어들이 힘을 합쳐 칼리에르 공을 압박하자는 얘기였다.

16606120234663.jpg“그나마 바람직한 젊은이가 하나 있구만.”

안 그래도 세력을 모으고 있던 아서 모드릭 헴피온은 끙끙대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이젠 몸이 예전 같지 않다. 그도 이제는 땅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짐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 했다.

16606120234663.jpg“캄본, 델루테, 니아얄…….”

노인은 그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내줄 뱀파이어 가문들을 중얼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16606120224322.jpg“……술을 한 번 더 마셔볼까요?”

소렐의 질문에 라이킨이 펄쩍 뛰었다.

16606120224306.jpg“절대로, 절대로 안 됩니다.”

소렐은 이해할 수 없었다.

16606120224322.jpg“왜요?”

16606120224306.jpg“정 하시려거든 제 사지를 묶어놓고 하십시오. 제 하체도 좀 가려주시고요. 제가 공주님을 보고 참을 자신이 없습니다.”

무척 엄숙한 얼굴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16606120224322.jpg“미쳤나 봐.”

소렐은 방금 느낀 감정을 그대로 뱉었다.

16606120224306.jpg“예. 이성은 놓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다 공주님 탓이고요.”

16606120224322.jpg“내가 왜요?”

그녀는 억울했다.

16606120224322.jpg“가만 보면 라이킨도 남 탓을 참 잘하는 것 같아요. 내가 뭘 했다고?”

16606120224306.jpg“공주님.”

그는 빙긋 웃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16606120224306.jpg“공주님께서 술에 취하셨을 때 말입니다.”

그때는 조금 부끄러운 기억이라 다시 생각하기가 싫어서 소렐은 입을 오므렸다.

16606120224306.jpg“제가 공주님께 키스를 하지 않았다면, 무슨 상황이 발생했을까요?”

갑자기 많이 부끄러워졌다.

16606120224306.jpg“공주님은 술에 취하시면 말씀이 많아지십니다.”

뭐라뭐라 입술을 달싹대며 종알대려던 걸 그가 물리적으로 막아버렸으니 망정이지, 그녀가 재잘대는 소리를 듣다가 현기증이 일어날 게 뻔했다.

16606120224322.jpg“그게 뭐 어때서요.”

실수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 좀 많아지는 것뿐이면 괜찮지 않나? 소렐은 볼멘 목소리로 대꾸했다.

16606120224306.jpg“예. 귀여우시지요.”

그는 턱을 괴고 소렐을 바라보았다. 늘 그렇듯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생명체를 보는 눈이다.

16606120224306.jpg“마음껏 말씀하시게 가만 기다려야 할 텐데, 제가 그걸 참지 못해서 문제일 뿐입니다.”

소렐의 입이 다시 꾹 다물렸다.

16606120224306.jpg“그러니 술을 더 마셔서 마법을 더 부리시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시고,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16606120224322.jpg“하지만 많이 늘었는데요.”

라이킨은 그의 머리 근처에서 둥둥 떠다니는 책을 잡아채서 다시 내려놓았다.

16606120224322.jpg“꾸준히 하다 보면 나도 마법을 아주 능숙하게 잘 부릴지도 몰라요!”

거 앙증맞은 주먹을 꼭 쥐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게 참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긴 하다만. 라이킨은 안 그래도 그녀의 피를 삼켰던 입가를 가렸다.

16606120224306.jpg“꾸준히 ‘음주’를 하시다 보면, 이라는 말씀이시지요. 그건 건강에 아주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니, 안 되겠습니다.”

순식간에 라이킨의 머리 위로 시야를 가릴 만큼 많은 꽃잎이 후드득 떨어졌다. 성질이 난 토끼가 턱을 쪼글쪼글하게 만들고 또 입술을 뚜 하고 내밀었다. 아이고야.

16606120224322.jpg“나도 마법을 잘해보고 싶단 말이에요!”

라이킨은 점잖게 머리를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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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06120224306.jpg“굳이 잘하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잖습니까.”

공주님은 화를 내도 꼭 공주님답게 화를 냈다고 표시한다. 꽃잎이라니, 귀엽기도 하지. 꽃을 좋아하긴 엄청나게 좋아하나 보다. 더 많이 선물해줘야겠다.

16606120224306.jpg“왜 자꾸 ‘잘’하시려고 하십니까.”

라이킨은 소렐이 자꾸만 안달을 내는 게 안쓰러웠다. 습격을 당했을 때 마법을 잘하지 못한다고, 반쯤 정신을 놓은 채 헛소리를 중얼거렸던 걸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16606120224306.jpg“굳이 잘하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16606120224322.jpg“아니, 나는 그냥 신기해서…….”

양손을 맞잡고 꼼지락대는 걸 보니 아직도 어리긴 어리다. 그럼 자신은 얼마나 어린 아가씨를 잡아먹은 건가 싶어 라이킨은 이마를 짚었다.

16606120224306.jpg“뭐가 그렇게 신기하실까요?”

그러면서도 묻는 건 잊지 않았다.

16606120224322.jpg“하나도 못 했는데 조금씩 늘어나니까…….”

16606120224306.jpg“그건 제가 함께 있기 때문이지, 술 덕분이 아닙니다.”

라이킨은 그의 머리 위에 소렐이 쏟아 부었던 꽃잎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 이쪽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16606120224306.jpg“제가 공주님의 가디언이니 마법을 점점 안정적으로 사용하시는 것이고요.”

무거운 목소리로 엄숙하게 말했다. 술이든 뭐든 간에 다른 것에 순위가 밀리는 건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16606120224306.jpg“제가 잘 버티고 있으니 앞으로도 더 많은 마법을 저절로 사용하실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16606120224322.jpg“나는 그냥 신기해서…….”

16606120224306.jpg“예. 압니다.”

라이킨은 웃었다.

16606120224306.jpg“그래도 술을 더 마시겠다는 생각은 너무 위험하니 하지 마십시오, 공주님.”

16606120224322.jpg“그렇게 많이 마실 생각은 없다니까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16606120224306.jpg“술이 위험한 게 아니라 제가 위험합니다, 제가.”

16606120224322.jpg“……그것도 알아요…….”

알면서도 더 마시겠다고 했단 말인가. 라이킨의 눈이 가늘어졌다. 소렐이 그를 보다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였다. 물론 곧장 들어야 했다.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당장 키스부터 퍼부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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