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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연모와 음모 (1) (76/181)

76. 연모와 음모 (1)2021.04.21.

공주님은 집을 뛰쳐나가도 친정 대신 갈 곳이 있었다. 부족함 없이 그저 하고 싶은 것만 잔뜩 하게 해주는 곳이고, 경비도 삼엄해서 남편이 찾아가봤자 머리가 깨지도록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었다. 라이킨은 술에 잘 취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와 대작하는 건 꽤 힘들었다. 아니, 지난 일주일간 그가 겪은 건 악몽의 연속이라 더 그런 모양이었다.

16606119390576.jpg“공주님.”

라이킨은 소렐이 집을 나가지 않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나가지 않으면 된다. 간단했다. 소렐은 차분하고, 또 웬만한 일들은 규범에 맞춰 생활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으니까. 그가 그녀의 자존심과 고집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될 일이었다. 고로, 이번 사건은 그가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자초한 일이었다.

16606119390581.jpg“네?”

그는 고개를 숙여 부르면 착하게 쳐다보는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16606119390576.jpg“돌아와 주셔서 기쁩니다.”

16606119390581.jpg“어, 저기, 기쁜 건 알겠는데요…….”

16606119390576.jpg“예.”

16606119390581.jpg“이게 다 뭐예요?”

소렐은 그녀의 침실 한쪽을 가득 채운 꽃이며 선물상자를 쳐다보다 다시 라이킨을 바라보았다.

16606119390576.jpg“다시 와주셔서, 기뻐서.”

16606119390581.jpg“그러니까요.”

16606119390576.jpg“예. 그래서 준비했습니다만, 너무 미흡합니까?”

미흡하다니. 저기 저 산더미처럼 쌓인 꽃들 덕분에 오늘 밤에는 꽃향기에 잠겨 잠들 수 있겠다.

16606119390581.jpg“두 번 가출했다간 은행 금고를 또 하나 채우겠어요.”

16606119390576.jpg“그거야 하나 더 사면 그만이지요.”

16606119390581.jpg“금고를요?”

16606119390576.jpg“아니, 은행을요.”

소렐은 선물더미에 가까이 다가가서 액자에 넣어둔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다 기가 막히다는 듯 웃었다. 저 그림도 아마 엄청난 가격으로 경매에서 팔리는 걸작일 거다.

16606119390576.jpg“……너무 뭐라 하지는 말아주십시오. 공주님께서 돌아오신다는 말에 너무 기뻐서 이것저것 공주님께 어울리는 것을 고른 것뿐이니.”

그녀는 곁에 와서 나지막하게 고백하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이라는 단어는 그녀에게 아직까지도 조금 어색했다. 그녀보다 훨씬 원숙한 여자들이 남편을 가지는 거 아닐까? 하지만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는 자신이 그녀의 ‘남편’이라고 분명하게 못 박았다.

16606119390576.jpg“이 남편의 취미이자 기쁨입니다.”

바로 옆에서 그녀와 눈높이를 맞춰가며 말해주면, 소렐은 좀 더 세련되고 멋진 방식으로 대답해주고 싶었다. 예를 들면 폴리아나 그린 교수가 할 것 같은 말들 말이다. 하지만 소렐은 아직까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좀 더 그녀는 잘 모르는 라이킨의 수준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래.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흔들리고,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는 것만큼 그도 똑같이 되길 바랐다.

16606119390576.jpg“빼앗아 가시면 제가 무척 슬플 겁니다.”

소렐은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녀가 아는 거라곤, 기쁨을 표현하고 감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뺨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춰주고 다시 냉큼 제자리로 돌아갔다. 부끄러워서 라이킨을 다시 볼 수가 없었지만, 좋아할지 궁금해서 안 보는 척, 슬쩍 돌아보았다.

16606119390581.jpg“……라이킨?”

뜻밖에도 그는 커다란 손으로 눈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싫은가? 아니, 싫은 게 아니다. 소렐은 저도 모르게 다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뱀파이어는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리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겁나지 않았다. 경계심이 강한 토끼에게 그건 참 별난 일이었다.

16606119390581.jpg“라이킨, 라이킨.”

공주님께서 부르시니, 대답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는 가린 손 사이로 날카로운 안광을 빛내며 그녀를 간신히 쳐다보았다. 토끼가 겁먹진 않으려나 걱정했지만, 그녀는 뜻밖에도 발꿈치를 들어가며 그의 뺨에 또다시 쪽쪽 소리를 냈다.

16606119390576.jpg“공주님, 제발…….”

왜애? 소렐은 딱 두 번만 그의 뺨에 키스를 한 뒤 떨어져서 얌전히 앉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래, 내내 모르겠지. 라이킨은 즐겁다는 듯 웃었다.

16606119390581.jpg“……싫어요?”

16606119390576.jpg“싫지 않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그럼 한 번 더. 그녀는 또 같은 자리에 입을 맞춰주곤 배시시 웃었다. 라이킨은 순식간에 소렐의 허리를 휙 감쌌다. 안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통달할 정도로 오래 살았고, 소렐은 그저 평범한 속도로 자라나는 중이다. 결국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 욕망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그의 잘못 아니겠는가.

16606119390576.jpg“알아주신 김에 이대로 잠시만.”

그는 두 손으로 소렐의 얼굴을 감싸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부끄러워서 시선을 내려도, 집요하게 시선을 맞춰가며 바라보더니 이마에 아주 신중하게 입을 맞춰 주었다.

16606119390581.jpg“으…….”

소렐은 결국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라이킨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16606119390576.jpg“왜요, 공주님. 해주시는 건 괜찮고, 받으시는 건 부끄러우십니까?”

그는 나지막하게 말하며 그녀를 놀렸다.

16606119390581.jpg“익숙, 익숙하지가 않아서…….”

16606119390576.jpg“뭐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지요. 적절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어쩐지 라이킨은 처음부터 잘했을 것 같았다. 그는 말랑말랑하고 뽀얀 뺨을 한 번 부드럽게 쓰다듬은 뒤 싱긋 웃었다.

16606119390576.jpg“그리고 연습은 자주 할수록 좋지요.”

부드럽지만 분명히 그녀를 향한 욕망이 담긴 눈길에 소렐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녀는 빨개진 채로 그의 품 안에 파고들었다. 이상하게 라이킨은 불쾌하거나 싫지가 않았다. 부끄러우면 그에게 안겨서 시선을 피하게 된다.

16606119390576.jpg“공주님.”

16606119390581.jpg“네.”

16606119390576.jpg“다시 돌아오셔서 정말 기쁩니다.”

16606119390581.jpg“나도요.”

라이킨은 품 안에서 꼬물대서 그를 괴롭게 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행복하게 만드는 토끼를 귀한 것을 쓰다듬듯 살살 쓰다듬었다.

16606119390576.jpg“다시는 공주님을 혼자 계시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다짐하듯 말했다. 도저히 소렐의 얼굴을 또 볼 자신이 없어 피했지만, 할 짓이 못 된다. 보고 상처를 받는 쪽이 차라리 안 보고 메말라가는 것보다 훨씬 나았고, 그걸 깨닫는 순간에 소렐이 박차고 나갔다. 여러모로 쓸데없다 못해 다신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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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606119399323.jpg“결국 부부싸움 첫 판을 공주님이 이긴 거네.”

샤를렌은 아주 간단하게 평을 내렸다.

16606119399323.jpg“오빠는 앞으로도 내내 잡혀 살 예정이고.”

16606119390576.jpg“한참 어린 아내와 결혼했는데 당연한 일이지.”

라이킨은 점잖게 말하며 장갑을 챙겼다.

16606119390576.jpg“애초에 내가 이기지 못할 일이기도 했고, 싸움도 아니었어.”

자그만 공주님을 이겨서 뭐하려고. 그런 건 다 쓸데없는 짓이다.

16606119399323.jpg“그렇게까지 말하는 거야?”

16606119390576.jpg“공주님도 같은 생각이실걸.”

마침 소렐이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라이킨이 선물한 붉은 장미다발 중 하나를 꼭 안고 향을 맡아보는 중이었다.

16606119390581.jpg“라이킨, 어디 가요?”

그녀는 아래 현관을 보다 라이킨이 외투를 입은 것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16606119390576.jpg“예. 잠시 일이 생겨서, 공주님, 뛰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그는 소렐이 깡총대며 계단에서 뛰어내려오기 시작하자마자 당장 달려갔다. 빠르게 타다닥 내려오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라이킨에게 휙 들어 안길 수밖에 없었다.

16606119390581.jpg“괜찮은데요. 넘어지지 않아요.”

16606119390576.jpg“위험한 건 위험한 겁니다.”

샤를렌은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 깊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싸울 때는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오빠가 빌빌대는 건 영 재미없었고, 다시 서로 좋아 죽는 걸 보니…….

16606119399323.jpg‘옘병……. 계단에서 뛰어다니지도 못하게 할 거면 아예 안고 다니질 그러냐, 오빠놈아.’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안 그래도 라이킨은 그녀를 안은 채로 흔들림 없이 계단을 마저 내려오던 참이었다.

16606119390581.jpg“오래 걸려요?”

16606119390576.jpg“글쎄요.”

16606119390581.jpg“같이 저녁 먹으려고 그랬는데…….”

16606119390576.jpg“금방 오겠습니다.”

곧장 대답이 튀어나왔다.

16606119390581.jpg“아, 그, 왕세자 전하께서 보내셨다는 꽃은 어디에 있어요?”

16606119390576.jpg“저기 있습니다.”

라이킨은 자신이 선물한 꽃들에 비하면 형편없이 작고, 이젠 너무 만개해버린 장미꽃을 성의 없이 가리켰다.

16606119390581.jpg“아, 저거구나.”

소렐은 고개를 숙여 장미를 살폈다.

16606119390581.jpg“왕세자전하는 참 친절하시네요. 이런 것도 다 보내시고. 그냥 잠깐 왕궁을 구경시켜주시겠다 해서 쫓아간 것뿐인데.”

16606119390576.jpg“아마 왕세자의 궁무관이 보냈겠지요.”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장미가 얼어붙을 듯이 싸늘하게 보았다.

16606119390581.jpg“나한테만 보낸 것도 아니라면서요.”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장미를 뒤로 하고 그에게로 향했다.

16606119390581.jpg“짜증내지 말아요. 나는 관심도 없으니까.”

라이킨은 쓴웃음을 지었다.

16606119390576.jpg“저를 벌써 다 들여다보고 계시는군요.”

16606119390581.jpg“무도회 때 무척 화내면서 신경 썼잖아요.”

16606119390576.jpg“화는 내지 않았습니다만.”

16606119390581.jpg“냈어요. 자, 이제 내려놔요.”

소렐은 그의 팔을 톡톡 쳤고, 라이킨은 ‘안전한’ 바닥에 분부대로 그녀를 내려놓았다.

16606119390581.jpg“잘 다녀와요.”

그는 인사를 하는 소렐을 가만히 보다가 허리를 숙이고 뺨을 내밀었다. 그녀는 또로록 눈을 굴려 샤를렌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지만, 샤를렌은 이미 오빠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 지 오래였다. 그리고 소렐이 주저하는 사이, 라이킨이 짐짓 실망한 듯이 슬프게 물었다.

16606119390576.jpg“안 해주실 겁니까?”

아뇨! 소렐은 얼른 그의 뺨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럼 당연히 같은 답례도 돌아온다.

16606119390576.jpg“다녀오겠습니다. 저녁식사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하지요.”

칼리에르 공은 천진하게 손을 흔들어주는 공비를 뒤로하고 잠시 공작저를 비웠다. 그가 탄 마차는 지극히 평범했고, 새카만 커튼을 드리운 채 대낮에 거리를 어지럽게 채우는 마차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섞였다. 마차는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면서 완전히 추적하는 눈들을 떨쳐낸 뒤 아주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러곤 가만히 기다렸다. 이윽고 마차에 루벤 실베스터가 올라탔다.

16606119406371.jpg“추적자는?”

루벤의 물음에 라이킨이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16606119390576.jpg“그건 내가 물어야 할 말인데.”

16606119406371.jpg“하긴 그렇지요.”

루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19406371.jpg“오랜만입니다, 칼리에르 공.”

16606119390576.jpg“뭐 때문에 날 보자고 한 거지?”

16606119406371.jpg“에설론 백작이 깨어났습니다.”

라이킨은 루벤을 응시했다. 그보다 어린 뱀파이어지만, 나름 영리하게 실베스터를 비롯한 에설론 백작의 방계를 잘 이끌고 있다.

16606119390576.jpg“고작 그걸 말하려고 날 이리로 부른 건 아니겠지.”

루벤 실베스터보다 나이가 많은 뱀파이어들도 많았지만, 루벤이 그들을 이끌게 된 건 그는 의외로 혈족을 잘 챙겼고, 또 거래를 제대로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16606119406371.jpg“절 부르기에 에설론까지 갔더니 성기사 놈들 냄새가 진동하더군요.”

라이킨은 표정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루벤은 칼리에르 공이 한때 도박판을 휩쓸고 다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공의 포커 실력은 아직도 여전할 거다.

16606119390576.jpg‘요즘 카메론 셀레스트가 조용했지.’

라이킨은 굳이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의 생각을 들어도 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루벤 실베스터는 철저하게 후자였다.

16606119406371.jpg“그럼 결국 두 가지인데. 에설론 백작이 깨어날 때 마침 성기사들이 있어서, 배고픈 참에 성기사들을 다 먹어치웠다.”

루벤은 손가락을 꼽았다.

16606119406371.jpg“아니면, 성기사들이 에설론 백작을 깨웠다.”

어느 쪽에 더 무게가 실리는지는 웬만한 뱀파이어라면 다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이킨은 짐짓 가벼운 쪽에 한번 추를 실어보았다.

16606119390576.jpg“에설론 백작이 강하긴 하지.”

손가락을 꼽던 루벤이 ‘이러기냐’라는 표정으로 라이킨을 바라보았다.

16606119406371.jpg“그 정도로 강한 뱀파이어가 성기사에게 잡혔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 아닙니까.”

라이킨은 지팡이를 쥔 채 루벤을 잠시 바라보았다. 아직 어리지만 머리는 기가 막히게 돌아가는 뱀파이어다. 라이킨은 잠시 입을 다문 채 그가 지금 신중하게 두고 있는 체스판을 헤아렸다. 그에겐 강력하지만 아직까지 연약한 여왕이 하나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했다. 하지만 상대편에는 카메론 셀레스트를 비롯한 엘펜하임, 뱀파이어의 협약서에 서명하여 유사시에는 여왕을 죽이라고 윽박지르는 원로들, 그리고 루벤 실베스터처럼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 기타 뱀파이어들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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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06119390576.jpg“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나?”

루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라이킨은 믿을 사람과 믿지 못할 사람을 신중하게 구분했다. 물론 아군과 적군은 또 다른 분류기준을 가진다. 믿지 못하든, 믿을 수 있든 간에 적군도 가능하다면 체스판의 말로 사용할 수 있었다.

16606119390576.jpg“나한테 가장 먼저 말한 이유는?”

16606119406371.jpg“모두가 뻔히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또 듣고 싶습니까?”

라이킨은 실소했다.

16606119406371.jpg“이미 에설론 백작은 공이 결혼했다는 사실과, 그 상대가 누구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16606119390576.jpg“그것도 모두가 뻔히 다 아는 이야기지. 자네도 알고 있는 사실이고.”

특히 너는, 내 아내를 슬쩍 빼돌려서 얼굴을 봤지. 라이킨은 우아하고 완곡하지만 분명하게 그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결코 잊는 법이 없었다.

16606119406371.jpg“예. 그리고 에설론 백작의 성격도 모두가 다 알고 있지요.”

날 신경 쓸 게 아니라 에설론 백작의 성질머리를 조심해야 할 텐데. 루벤도 돌려서 받아쳤다. 라이킨은 픽 웃었다.

16606119390576.jpg“뭐라 하든가?”

16606119406371.jpg“예상하시는 대로의 말만 했습니다.”

라이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설론 백작이 깨어났는데 성기사들이 얽혀 있다, 라. 하긴 엘펜하임의 봉인이 깨져가고 있는 이 마당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대로 멸망하겠다는 자살 선언이나 다름없긴 하지. 그들은 쇠심줄처럼 질겨서, 죽기 전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으려 발버둥 칠 것이다.

16606119406371.jpg“곧 엔버네스로 올 것 같더군요.”

16606119390576.jpg“‘곧’?”

에설론 백작은 더 이상 에설론 백작 혼자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 뒤에 엘펜하임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엘펜하임과 에설론 백작의 목표가 공교롭게도 같았을 뿐이다. 그 목표는 지금 칼리에르 공작저에서 방싯방싯 웃으며 평온하게 저녁식사 시간을,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16606119406371.jpg“계속 힘을 회복하고 있으니까요.”

16606119390576.jpg“누가 열심히 살아 있는 인간을 꼬박꼬박 수급해주나 보군.”

라이킨은 일침을 날렸고, 루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다는 건 긍정이다.

16606119390576.jpg“……곧 온다고.”

16606119406371.jpg“예.”

16606119390576.jpg“알겠네.”

라이킨은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19390576.jpg“기억해두도록 하지.”

그리고 실베스터에서 칼리에르에 협력했다는 것까지. 에설론 백작에게도, 또 칼리에르 공에게도 한 다리씩 걸쳐놓은 루벤은 일단은 숨을 돌렸다. 자, 이제부터는 줄타기를 하며 섬세하게 균형을 잡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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