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해제 (6)2021.03.13.
“금화가 녹고 있습니다. 봉인을 유지하고 있는 나머지 티아라들도 솔직히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
엘펜하임은 이미 난리가 났다.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 그리고 펠릭스 이드리스 두 남자에게 제대로 당한 기사단은 헬레인 왕조에게서 탈취한 보물들을 일제히 점검하기 시작했다.
“봉인을 보수하고 있습니다.”
“만일 티아라가 가짜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아닙니까?”
“애초에 티아라와 연결해서 만들어진 봉인이니…….”
모두가 한마디씩 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시끄러워진다. 해서 수뇌부는 더더욱 침묵을 지켰다. 차분히 봉인을 보수하고, 녹아내리기 시작한 금화는 어쩔 수 없이 다 골라낸다. 보석도 마찬가지였다. 낄낄대는 대마법사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실체가 있는 것과는 얼마든지 싸워서 이겼다고 증거까지 남겼는데, 이건 실체가 없는 거지.”
늙은 수도사들, 이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는 이들이 중얼거렸다.
“죽은 망령과 어떻게 싸워 이기나? 대마법사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못 이길 텐데.”
“왕년의 그 엘펜하임이 아니야.”
“그 엘펜하임은 어디로 간 건지.”
죽은 망령과 함께 수군거림도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엘펜하임에서 일을 제대로 하는 이가 소식을 보내왔다.
“……극비로 처리해야지.”
글래스턴 지부장, 카메론 셀레스트가 보내온 소식은 단단히 봉해져서 엘펜하임 단장에게로 올라갔다.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 하지만 아주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예.”
“……글래스턴 지부장이 오래 있으면 파고들 구멍 하나는 알아놓긴 했군.”
모두가 엔버네스를 쳐다보고 있는 사이, 칼리에르의 옛 약혼녀를 깨워서 사로잡았다, 라. 딱히 믿을 만한 카드는 아니지만 어쨌든 써먹을 패 하나가 간절한 상태에선 이거라도 감지덕지다.
*
“으!”
“……무리하지 마시라니까요…….”
“으으으!”
양 주먹을 꼭 쥐고 눈까지 꼭 감아가며 온몸에 힘을 주고 바들바들 떠는 모습은 참 귀엽긴 하다만. 라이킨은 그냥 두 다리를 접고 소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귀엽다. 항상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 게 귀엽고 예뻤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생명체가 어떻게 존재하는 걸까.
“으으으으…….”
아, 포기했다. 그리고 풀도 죽었다.
“난 마법 못해…….”
“못하시는 게 아니라 아직 익숙하지 않으신 거라고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요.”
라이킨은 부드럽지만 엄숙하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손에 닿는 모든 부위가 그저 말랑하니 부드럽다. 그러니 자꾸만 손이 가고 만지게 된다.
“절 부르실 줄 알면 된 겁니다. 그 이상 무리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기왕 하는 거 더 하고 싶다고요!”
뭐하러? 라이킨은 소렐을 쳐다보았다.
“평생 못하다가 이제 겨우 해보기 시작한 건데…….”
그러다가 아차, 싶어서 그를 쳐다본다. 저 조그만 머릿속에서 뭐가 그렇게 많이 돌아다니는 걸까.
“내가 마법 쓰면 라이킨이 힘들어요?”
“전혀 아닙니다. 공주님께서 제가 없으면 마법을 쓰는 게 힘드시지요.”
아예 못 쓰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강제로 열렸다가 끝내 망가지거나. 소렐의 부모는 후자를 염려하여 라이킨을 붙여놓았다.
“제가 강하니까요.”
“아.”
“예.”
“라이킨이 엄청나게 대단한 거구나.”
그래서 마법을 쓰게 된 건가?
“정확하게는, 공주님이 대단하신 겁니다. 저 정도 되는 가디언이 붙어 있지 않으면 고대마법은 구동되지 않아요. 계승자를 망가트리느니, 차라리 가만히 죽은 듯이 있는 게 낫다는 거지요.”
“아빠는 그런 거 없었는데…….”
펠릭스 이드리스는 가디언 없이도 혼자 마법을 잘 사용했다.
“공주님은 담은 게 너무 많으셔서 그런 겁니다.”
라이킨은 그게 당신 잘못은 아니라고 웃으며 말했다.
“뭘 담아요?”
“고대마법도 담았고, 헬레인 왕족의 혈통도 받았고, 받은 게 많으셔서 혼자 지탱하기는 힘드십니다.”
“……혹시 예언도 하게 될까요?”
“예. 그러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렐은 잠시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다가 배시시 웃었다.
“나는 라이킨을 만나서 참 다행이네요. 못하던 걸 다 하게 됐어요.”
새파란 눈은 그녀에게 고정되었다. 잠시 굳어버린 것도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처음 듣는 말을 믿지 못하고 되물었다. 어린 아가씨가 결혼이란 게 뭔지, 또 얼마나 많은 책임과 속박이 따르는지 알기나 할까? 속박, 그래, 그건 속박이었다. 칼리에르 공비라는 자리에 앉자마자 당장 날아드는 저 초대장들과 따라붙는 시선들을 보라. 소렐은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를 만나 다행이라고 한다.
“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정확하게 말하면 라이킨보다는, 그를 선택한 부모님을 믿었다. 엄마와 아빠가 정했으니 좋은 사람이었고,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다. 라이킨은 다정했다. 다정하면서도 그녀를 결코 아이 취급하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엄마랑 아빠한테 많이 미안했거든요. 기껏 낳아놨는데 마법도 못하고, 예언도 못하니까 속상하셨을까 봐…….”
“아니,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라이킨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살아만 있어줘도 기쁜 게 자식입니다. 건강하면 더할 나위 없지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마치 지금 소렐이 그에게 그렇듯이, 간신히 얻은 외동딸은 부부에게 크나큰 기쁨이었을 것이다. 라이킨은 알 수 있었다.
“아버님이 한 번이라도 공주님께 섭섭하거나 서운하다는 내색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공주님께서는 아주 명민하시지요. 모르셨을 리가 없습니다.”
“그냥, 내가 너무 실망하니까 괜찮다고…….”
마법을 하지 못해도 괜찮아.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을 겁니다.”
라이킨은 뽀얀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물론 그는 부모의 마음과는 아예 관계가 없는 마음을 품고 입맛을 다시며 그녀를 돌보는 중이지만 말이다.
“그렇구나.”
“예, 그렇습니다.”
“고마워요.”
무엇을? 라이킨은 아무 의심이나 사심 없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말간 시선을 마주 보았다.
“엄마 아빠 이야기도 들려주고, 잘 챙겨줘서요.”
“……치하만 하시고 끝내실 겁니까?”
소렐은 이젠 조금 알아들었다. 혹은 라이킨에게 익숙해졌다. 그녀는 또 배시시 웃었다. 그를 환장하게 만드는 그 웃음이다. 계속 보고 싶고, 동시에 계속 보다가 돌아버릴 것 같은 웃음이었다.
“뭘 드릴까요?”
게다가 많이 늘었다.
“가지고 싶은 거 있어요? 다 사줄 수 있어요!”
글래스턴 은행장은 은행 최고의 고객이 으쓱거리며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보고 웃어버렸다. 소렐은 아주 쉽게 그를 웃게 만들었다.
“감히 살 수 없는 것을 주십시오.”
“살 수 없는 거? 그런 게 있나?”
“공주님께서 살 수 없는 건 거의 없긴 하시지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나한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감히 살 수 없는 것이라니? 소렐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신의 손을 잡고 한쪽 무릎을 꿇는 라이킨을 쳐다보았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는 소렐을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툭툭, 자신의 뺨을 가리켰다.
“해주십시오.”
토끼는 어깨를 움츠리고 조금 뒤로 물러났지만, 이미 그럴 줄 알고 라이킨은 그녀를 잡고 있었다.
“어서요.”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가리키니 알아들었다. 그 또한 참 기특하고 예뻤다. 매일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입술이 닳도록 얼굴에 입을 맞추길 잘했다.
“저번에 한 번 해주시고, 전혀 해주지 않으시니 서운합니다.”
용감하게 그의 뺨에 쪽 소리를 내줄 때는 언제고, 소렐은 새삼스럽게 부끄러워했다. 부끄러워할 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청했다. 부끄러워하고, 잔뜩 수줍은 표정으로 결국 못 이기고 해줄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거면 돼요?”
“가끔 해주시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일단은’. 사악하고 교활한 뱀파이어는 교묘하게 조건을 숨기고, 뻔뻔하게 뺨을 내밀었다. 이렇게 시작해야지, 아니면 함께 침실을 사용하는 데 이백 년은 걸리겠다. 소렐은 몸이 바짝 달은 남편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특유의 웃음을 배시시 짓더니 그의 뺨에 순순히 입을 맞췄다. 그러곤 그를 빤히 보았다. 라이킨이 반사적으로 환히 웃어버리는 걸 눈에 새기듯 바라보았다. 그런 뒤 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춰 주었다.
“……이리 오세요.”
순식간에 뱀파이어의 한계를 무너트린 토끼가 답삭 품 안에 잡혀 들어갔다.
“어?”
어, 하는 사이에 이미 라이킨은 그녀의 어깨에 코를 박고 숨을 깊게 몰아쉬고 있었다. 무언가를 참듯, 혹은 그녀의 체취를 급히 들이마시듯 두터운 흉통을 크게 부풀렸다. 그녀를 안은 마디 굵고 긴 손에 힘이 들어가 꿈틀거렸다.
“……이걸로 충분하다면서.”
토끼는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고 중얼거렸다. 예민하고 경계심이 많지만, 뱀파이어에게 순식간에 갇힌 이 상황에도 겁이 나지 않았다. 라이킨이 손에 힘을 주고 있는 까닭은 참고 있기 때문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참고 있다는 걸 알아서 부끄러웠다.
“맛을 보면 참기가 힘듭니다.”
소렐은 그의 머리에 툭 기댔다.
“라이킨.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예.”
“진짜 실례되는 질문이긴 해서요.”
“말씀하십시오.”
“라이킨도 내 피 먹고 싶어요?”
먹고 싶어서 자꾸 이러는 건가? 소렐에게는 조심스럽지만 확인하고픈 질문이었으나, 라이킨에게는 그보다 더 끔찍한 질문이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고개를 쳐들었다. 쳐들고, 그게 도대체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푸른 눈에서 순식간에 불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겁 많은 토끼는 의외로 차분했다.
“먹고 싶으면 줄 수 있어요.”
제임스, 너는 뱀파이어다.
“절대 뱀파이어 앞에서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그는 으르렁거렸지만 소렐은 그가 겁나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저 내내 차분할 뿐이었다.
“라이킨은 날 아프게 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저 나약하고 멍청한 버러지 같은 인간들은 너를 피에 굶주린 짐승 취급할 거야.
“……저도 그럴 수 있습니다.”
혹은, 당신이 이미 날 아프게 했다는 눈으로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도 공주님을 아프게 할 수 있고, 괴롭게 할 수 있습니다.”
네가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들에게 너는 짐승일 뿐이란다, 아들아. 아무것도 모른다. 소렐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여태까지 구애하던 것이 구애가 아니라 피를 갈망하는 추잡한 욕심으로 보였다는 건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떨치듯 물러났다.
“그런 것을 바랐다면 진작 흡혈하고, 공주님의 시신은 길바닥에 버렸을 겁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 그런 이들은 기꺼이 찢어발겨 피를 다 마셔야 한다. 이건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조차도 처음 이 사랑스러운 존재를 보았을 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속도와 말도 안 되는 깊이로 빠져버릴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이리도 모른단 말인가. 아니, 그가 뱀파이어인 게 문제인가. 상관없다 생각했는데 저 까만 눈에 들어찬 무지가 그를 화나게 했다. 귀엽다고 생각한 순진함이 짜증스러웠다. 여전히 모르겠다는 눈이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저는 배를 채우기 위해 공주님께 이때까지 구애한 것이 아닙니다. 모르시는 건 괜찮으나, 곡해하시는 것은 화가 나는군요.”
너는 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어.
빠른 연정은 독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누가 칼리에르 공이 연정을 품었다 상처를 입었다는 말을 믿을까. 본인도 지금 믿어지지 않는데. 그는 이마를 짚었다. 눈앞이 어지럽고, 저 순진해서 그를 답답하다 못해 숨 막히게 만드는 눈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내내 보고 있으면 아플 걸 알면서도 또 보게 될 테니까. 그토록 아름답고 예뻐서 이미 그를 홀린 눈이니까.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몸을 돌려 사라졌다. 당분간 소렐을 보고 싶지 않았다.
“……왜?”
뒤에 남은 소렐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운 눈썹이 일그러졌다. 실례되는 질문이나 괜찮다 해도, 그냥 말하지 말걸 그랬다. 라이킨이 화가 났다. 그녀에게 몹시 실망했다. * 카메론 셀레스트는 루벤 실베스터가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루 만에 입이 무겁고, 또 무슨 일을 봐도 놀라지 않을 고용인들을 곧장 에설론 백작 저택에 밀어 넣을 수가 있겠는가. 실베스터가 이문에 밝고, 또 인맥이 넓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엔버네스로 당장은 못 가. 이 꼴을 하고 어떻게 가라고?”
깨어난 지 백육십팔 년 만에 기사단에게 제대로 목덜미가 잡혀 인까지 쳐졌다. 순혈 뱀파이어에게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으나 루드밀라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몰골이라도 제대로 갖추고 난 다음에 머리를 굴리고 움직여야지, 깨어난 지 사흘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밖에 나갔다가 어떻게 될지 어찌 알아?”
배운 건 패악질밖에 없나. 카메론 셀레스트는 굴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앞에서 조금도 기세가 꺾이지 않는 루드밀라에게 말했다.
“그러게. 그 꼴로 봐선 칼리에르 공 앞에 나서지도 못하겠군.”
“그래! 알면 좀 내버려두라고! 내 나이가 천 살이야! 늙은이를 공경할 줄 알도록 해!”
“아직 새파랗게 젊은 청년 뱀파이어 입에서 딱히 듣고 싶은 말은 아닌데.”
카메론 셀레스트는 느물대며 루드밀라를 박박 긁었다.
“칼리에르 공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도 않으면서 유세는. ‘그’ 칼리에르 공도 내 앞에서 나이 운운은 안 했어. 좀 젊게 살아. 그러니까 차이지.”
“야!”
루드밀라가 소리를 지르다가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엄청난 통증이 덮쳐오자, 그녀는 반사적으로 성기사단이 낙인을 찍어놓은 부위를 꽉 붙잡았다.
“상황파악을 하고, 현재 분수도 잘 알도록 해, 백작.”
“죽여……, 버릴 거야…….”
질린 눈으로 루드밀라를 보던 부관이 자리에서 일어난 카메론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손을 더 볼까요?”
카메론은 픽 웃었다.
“천 년을 산 존재를 그깟 인간의 방식으로 꺾을 수 있다면 그건 헛산 거지. 눈을 봐라. 고문 몇 번에 꺾일 눈인가.”
“저런 독살스러운 눈은 처음 봅니다.”
“아, 처음 보나? 순혈 뱀파이어들은 다 저런 눈이지.”
“칼리에르 공은 저런 눈은 아니던데요.”
“그쪽 집안은 좀 예외야.”
카메론은 고개를 저었다.
“제 손으로 따르지 않겠다고 다 끊어냈으니, 당연히 눈이 다를 수밖에.”
그러니 그런 이에게 루드밀라, 에설론 백작이 영향을 미쳐봤자 얼마나 미치겠는가. 카메론은 자신이 겨우 쥔 패가 참 쓸모없다고 느꼈다. 이대로 아마 엘펜하임은 멸망해갈 것이고, 그는 정해진 멸망 앞에서 몸부림을 치는 일개 개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그가 일개 개미에 불과해서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