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해제 (3)2021.03.03.
소렐 이드리스가 법적으로 칼리에르 공비가 된 지도 벌써 석 달이 지났다. 그동안 아주 많은 일이 있었고, 소렐은 엔버네스의 공작저에 편히 머물면서 책을 읽거나, 엄마가 티아라 상자 안에 남긴 두꺼운 편지를 아껴가며 읽었다. 가끔 친구들이 놀러 온다.
“공비전하.”
공작저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하도 불려서 이젠 익숙해졌다. 소렐은 집사가 가져다놓은 은대접 위에 수북하게 쌓인 초대장들을 뒤적거렸다. 그녀는 연주회나 무도회, 차를 마시는 모임 등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호기심에 몇 번 가보았지만, 거기 참석한 모두가 그녀의 사생활, 특히 라이킨과의 사생활이나 라이킨의 향후 정치활동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뭐가 있습니까?”
공작저는 무척 넓고 광활했지만, 라이킨은 언제나 소렐의 지척에 있었다. 그 어떤 하녀보다도 그가 소렐의 시중을 가장 많이 들었다.
“음, 사비나가 보낸 거랑……, 아, 샤를렌한테서 답장이 왔어요.”
소렐은 종종 글래스턴에 있는 샤를렌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라이킨은 가까이 다가와서 그녀의 뒤에 섰다. 그는 키가 무척 커서, 그녀의 등 뒤에 서서 충분히 편지들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뱀파이어가 등 뒤에 선다는 건 예민한 토끼에겐 무척 꺼려질 일이었으나, 소렐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를 두 번이나 구해준 라이킨이 그녀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소렐은 은대접을 가득 채운 초대장들을 계속 골라냈다.
“다들 무척 체력이 좋은가 봐요. 어떻게 이렇게 많은 모임들을 만들지?”
하루에도 온갖 모임이 쏟아졌다. 오전에는 차모임, 점심에는 오찬 모임, 오후에는 소규모 연주회, 저녁에는 무도회, 혹은 극장의 공연. 번화가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고, 부촌에는 쉴 새 없이 마차가 다녔다.
“공주님이 참석하지 않으시면 사라질 모임도 꽤 될 겁니다.”
초대장의 이름을 힐끗 본 라이킨이 웃었다. 소렐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말 그대로, 공주님만 받으신 초대장이 꽤 될 거라는 거지요.”
그는 은대접이 놓인 탁자 끄트머리를 잡았다. 졸지에 소렐은 탁자와 라이킨 사이에 갇히게 되었다. 느긋하게 허리를 숙이고 손으로 무게중심을 조금 더 옮긴 그는 웃으며 작달막한 공주님을 바라보았다.
‘라이킨은 너무 근사하게 웃는단 말야.’
소렐은 그게 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거울을 보면서 웃어봐도 그냥 웃음에 불과한데, 라이킨은 약간 미소를 짓는 순간 모든 시선을 다 끌어당겼다. 하긴 뱀파이어니까 당연한 거겠지? 소렐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라이킨을 뚱하니 바라보았다. 저 웃음에 홀라당 넘어가지 않겠다는, 괜한 오기가 생겼다.
“가시고 싶으시면 가세요.”
“저번엔 초대장을 홀라당 태워버리더니 왜 말을 바꿔요?”
“공주님께서 무척 심심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그야, 호기심에 나갔던 모임들이 전부 다 재미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새 친구를 사귈 줄 알았는데, 새 친구는 무슨, 순진한 토끼가 엔버네스를 꿰어차고 앉은 능구렁이들에게 물어뜯기지만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능구렁이 수백 마리가 들어앉은 뱀파이어와 마주하고 있었다.
“심심해요.”
소렐은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얼른 새 학기가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새 학기가 최대한 늦게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만.”
동그래진 토끼 눈이 그를 바라보았다. 라이킨은 또 웃었다. 잘생긴 입술이 호선을 그리고, 시리게 푸른 눈은 따뜻한 감정을 듬뿍 담고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조금 더 소렐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신입생은 특히 바쁘지요. 공주님께서 바빠지시면 저는 얼굴을 뵐 기회도 없을 텐데.”
“같이 살잖아요.”
“공주님께서 제 공비전하라는 게 알려지지만 않았어도 저는 새 학기에도 출강했을 겁니다.”
소렐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려다가 은대접을 둔 탁자와 닿았다. 그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겁이 나지 않았다.
“그건……, 그건 안 되는 일이에요. 제가 어려도 그건 이리저리 말이 나올 거라는 건 알아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라 일단은 안 될 겁니다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는 가만 보다가 소렐의 뺨에 입을 맞췄다. 가까이만 오면 시도 때도 없이 얼굴에 입을 맞추고, 손을 잡는데 소렐은 조금 곤란하고, 솔직히 많이 좋았다. 그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딱 소렐이 괜찮은 정도까지만 다가와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다정하고, 상냥하고, 또 사랑스러워하는 마음이란 걸 소렐도 잘 알았다.
“부부 사이는 그 누구보다도 더 친밀해야지요.”
그는 가까이에서 느물거렸다.
“그렇다고 해서 수업시간에도 만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여서 난처해지지 말아요.”
예비과정은 말 그대로 성적을 매기지 않고, 맛만 보는 예비과정이라 가능했을 뿐이다.
“공주님께서 이제 누구와 결혼했는지 다 알려졌으니.”
라이킨은 그게 가장 기쁘다는 듯, 말할 때마다 눈을 빛냈다.
“제가 공주님을 가르쳐드릴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출강하는 건 관뒀습니다. 하지만 걱정이군요.”
“라이킨이 학교에 없어도 저는 혼자서 충분히 씩씩하게 잘할 수 있어요.”
“아……, 그거야 물론 그러시겠지요.”
“전혀 그럴 거라는 생각이 아닌 것처럼 들리는데요!”
발끈해버린 소렐은 바로 후회하고 말았다. 농담에도 바로 발끈하다니, 어린애 같아. 이러니 라이킨이 그녀를 그저 귀여워하고, 결정적일 때 참고 물러나는 거 아니겠나. 그가 조금이라도 덜 참게 해주고 싶었다. 아니, 그녀도 조금은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뱀파이어가 위험하다는 것도 새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그가 보여주는 모든 건 그저 다정하고 포근하기만 했다.
“공주님은 씩씩하게 잘하실 겁니다. 저는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고요.”
그럼 뭘 걱정하는 거지? 라이킨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소렐의 표정에 다 드러나는 의문을 읽었다.
“글쎄요……. 공주님은 너무나 어여쁘시고, 똑똑하시며, 사랑스럽기까지 하신데 저는 공주님과 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질 거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대학에는 여자에 목숨을 건 사내놈들이 득실거리겠지요.”
그는 험악하게 중얼거리더니 소렐을 보곤 싱긋 웃었다.
“제가 걱정하는 건 그뿐입니다.”
“제가 결혼했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데요.”
라이킨의 눈웃음이 짙어졌다. 무슨 남자가 저렇게 예쁘게 웃을까. 소렐은 남편이 자신을 볼 때마다 하는 생각을 하며,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나마 다행이지요.”
뱀파이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을 뻗어 소렐의 왼손을 잡고, 그녀의 약지에 걸린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라이킨, 저는 한눈팔지 않아요.”
그는 그와 똑같이 나눠 낀 반지를 내려다보다, 서늘한 시선을 들어 올렸다. 고대마법을 유일하게 계승한 영민한 눈동자가 그가 정확하게 신경 쓰고 있는 것을 아무것도 모르고서 찔러냈다.
“한번 한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고, 그게 결혼이면 더더욱 잘 지켜야 하는 거잖아요.”
라이킨은 빙긋 웃었다.
“절더러 갑자기 한 결혼이니 다른 여자가 좋으면 따로 연애를 해도 좋다고 말씀하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실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건……, 그건 그…….”
소렐은 시선을 떨어트렸다.
“결혼이, 그러니까, 우리는…….”
그녀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방황하면 라이킨은 채근하지 않았다. 한마디도 보태지 않고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혹시라도 그가 먼저 말하면, 소렐이 속마음을 숨기고 그가 한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일까 봐 염려가 되기 때문이었다. 종종 몇 달 전에 돌아가신 아빠가 그리워서 우는 경계심 많은 토끼가 속마음을 숨기고, 입을 다무는 건 너무나 쉬웠다.
“어, 연애해서 결혼한 게 아니잖아요.”
소렐이 아는 결혼이란 사랑해서 맺어지는 결합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그랬다. 어찌나 서로를 사랑하던지, 병치레가 잦았던 엄마를 아빠는 항상 안고 다녔고, 직접 간호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는데, 그런데…….”
처음 라이킨을 만났을 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은 라이킨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건 너무 속상할 것 같다. 아니, 속상했다. 그녀에게 이렇게 다정한데, 이렇게 예뻐해 주는데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해준다고? 말문이 턱 막혔다.
“……아니, 그래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건 부도덕한 짓입니다.”
부도덕하다는 말이 라이킨의 입에서 나온 걸 알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샤를렌이 배를 잡고 뒹굴 것이다. 입 밖으로 내자니 라이킨마저도 어색했으나, 그는 아주 뻔뻔하게 말했다.
“보통 연애해서 결혼하는 게 순서이긴 합니다만, 거꾸로 하면 뭐 어떻습니까.”
거꾸로, 뭐라고? 소렐은 고개를 들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된다고 말씀하실 만큼 개방적이신 공주님이니, 순서를 거꾸로 해도 개의치 않으시겠지요?”
토끼는 경계심이 많고, 둔한 것 같으면서도 사소한 데에서는 예리했다.
“……제가 다른 사람을 만나도 된다고 해서 화났어요?”
“조금.”
그는 뚫어져라 토끼를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 말씀하셨을 때는 그냥 기가 막혔는데…….”
그는 가늠하듯 소렐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화가 났다는 말이 그녀를 겁먹게 하진 않았나, 불쑥 걱정이 치솟았다.
“지금은 많이 서운합니다.”
“미안…….”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미안하다는 말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그가 빠르게 말허리를 잘랐다. 사과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이젠 그런 건 바라지 않는다고 말씀해주십시오.”
반지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그녀의 왼손 전체를 감싸 쥐었다.
“제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건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고 말씀해주십시오.”
소렐은 그가 꽉 잡은 왼손과, 분명하게 그녀에게 내리꽂히는 푸른 눈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놀라고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라이킨은 이번만큼은 그녀를 그냥 놔줄 수가 없었다. 이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했다. 혹시나, 아주 먼 미래에 뼈아프게 후회할 일이 생길 가능성이 적게나마 있었다. 그가 그 정도로 후회하는 일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랬기에 더 확답을 받고 싶었다.
“어서요.”
묵직한 존재감을 가진 남자가 웃으며 재촉했으나, 그의 속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바짝 달아있었다.
“그리 말씀해주세요, 공주님.”
이 남편의 인내심이 바싹 말라서, 당신을 가둬놓기 전에. 아니, 이미 품안에 가뒀으니 일단 인내심의 반절은 깎여나간 건가.
‘말해달라 애원해도 절대로 거짓말은 못할 성격이니.’
라이킨은 솔직한 소렐을 보며 무슨 대답이 나올까, 가늠했다. 그런 말은 못 한다고 할까, 아니면 소렐 나름의 타협점을 찾아서 그걸 협상하듯 내밀까? 원하는 대답을 해달라고 보채고는 있었지만, 공주님이 그의 마음에 차지 않는 대답을 한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 그래. 어쩔 수 없다. 라이킨은 실소를 터트렸다.
‘무슨 대답이 나와도 참고 물러나야겠지.’
그는 그리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었고, 오래 산 지금도 성미가 무척 급했다. 그런데도 소렐이 무슨 대답을 하건, 그 대답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무조건 참고 넘어가겠다고 미리 결정해놓는 자신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눈앞에 있는 곤란한 기색의 공주님은 너무 작고 한참 어린 것을.
“그런 건 싫어요.”
역시나. 소렐을 똑바로 바라보며 갈망하던 푸른 눈이 갈 곳을 잃고 추락했다. 언젠간 분명히 사라질, 유한한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속이 아렸다. 소렐이 툭 말해놓고 고개를 푹 숙이니 더 아려서, 그러냐고, 알았다고 대답하려고 라이킨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 만나는 거 싫어요.”
고개는 숙였지만 도톰한 다홍빛 입술이 부루퉁하게 나온 게 보였다. 그녀는 조금 부끄럽고, 또 많이 속상해서 바닥을 뚫어져라 보았다.
“……예전에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조금 싫어요.”
“……조금?”
“네, 조금.”
라이킨은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가 과연, ‘조금’이라는 단어에 만족하는 위인이던가?
“조금 싫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아, 그래. 무척 만족스러웠다. ‘조금’이지만 어쨌든 싫다잖나.
“다른 사람은 절대 만나지 말라고, 응?”
숫제 애원이었다.
“……그럼, 안 만날 거예요?”
“공주님 분부신데 제가 어찌 감히.”
작은 토끼의 말 따위는 싹 무시해도 까딱없는 남자가 분명하게 지시에 따르겠다며 대답하는 건 무척 위화감이 드는 일이었다. 소렐에겐 모든 게 다 신기했다. 라이킨, 그녀가 아는 가장 강한 남자는 그녀의 말이라면 뭐든 따르겠다며 어서 명령하라고 성화였다.
“만나지 말아요.”
쭈뼛대며 웅얼거리듯 한 말이었다.
“예.”
“다른 사람 만나지 말아요.”
“예.”
“결혼은 약속이니까, 나도 성실하게 지킬 거예요.”
“아, 공주님께서도 약속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건 좀 치사하잖아요.”
“괜찮습니다.”
그는 웃었다. 그런 약속은 하지 않아도, 소렐의 시선을 끄는 남자는 소렐이 미처 마음을 주기 전에 처리할 테니까.
“그러면 뭐가 달라요? 저번에는 내가 다른 사람 만나도 괜찮다고 했다가, 이제는 라이킨이 괜찮다고 한 거잖아요.”
“무척 다릅니다.”
소렐은 도대체 뭐가 다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적어도 라이킨이 대답해주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다. 그는 무척 기뻐하고 있었다. 그게 살짝 정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소렐은 그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루벤 실베스터는 전보 한 장을 받았다.
“……이게 얼마 만이야?”
루벤은 픽 웃었다. 그는 에설론 백작위를 가지고 있는 프랑슈틸 가의 방계혈족으로, 방계라 작위는 없었지만 재산은 많은 뱀파이어였다. 동시에 글래스턴 대학에 재학 중인 그는 딱히 달갑지만은 않은, 프랑슈틸 가에서 날아온 전보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루드밀라 아스테어 프랑슈틸이 깨어났다, 라.”
약혼이 깨진 충격과 망신에 도피하듯 잠들었던 에설론 백작이 깨어났다. 그녀가 석관 속으로 몸을 감추게 된 경위를 곰곰이 생각해보던 루벤은 또 픽픽 웃었다. 이거 재미있게 되었다. 1대 칼리에르 공이 죽고 나서 그녀의 아들이었던 라이킨과의 약혼도 깨진 에설론 백작은 성미가 대단한 여자였다.
“칼리에르 공비 자리가 채워졌다면 가만 안 있을 텐데.”
루드밀라 아스테어 프랑슈틸의 이름에 비해 소렐 이드리스라는 작은 토끼는 한입거리도 안 되었다. 단 것을 좋아하고 통속소설을 파는 서점이나 기웃대는 연약한 공주님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뭐, 어쨌든 소환령이 떨어졌으니 가봐야겠지.”
지긋지긋한 방계 같으니. 성까지 달라졌으면 딱히 무시해도 좋을 것 같은데, 번식력이 낮은 뱀파이어들은 아무리 방계라도 같은 가족 운운을 하며 큰일이 생기면 꼭 써먹으려고 들었다. 필요한 것만 쏙쏙 빼내는 게 무슨 놈의 가족인가. 루벤 실베스터는 에설론으로 출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