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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해제 (1) (60/181)

60. 해제 (1)2021.02.24.

레너드 3세, 헬레인의 마지막 기사이자 왕, 그리고 예언을 하는 토끼. 그가 남겼다는 예언은 극비리에 숨겨졌다. 숨겨진 내용이 어찌나 무서웠던 건지, 엘펜하임은 레너드 3세가 남긴 예언을 봉해버렸다. 그래도 끝내 조롱은 잊지 않아서, 헬레인의 티아라들로 봉인을 유지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왕비와 여왕이 쓰는 다이아몬드 티아라가 사라진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면서. 헌데 그 티아라가 나타난 날, 봉인을 유지하던 진주 티아라 하나가 녹아내렸다.

16606118288535.jpg“……진주가 아닙니다. 모조군요. 눈으로 그냥 봐도 모조입니다.”

전문가가 와서 침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리 상자를 열고 티아라를 꺼내보려고 해도 그조차 단단하게 맞물려서 꺼낼 수가 없었다.

16606118288535.jpg“왜 꺼낼 수가 없지?”

부기사단장의 물음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16606118288535.jpg“애초에 워낙 단단히 봉해놓은 봉인의 지지대 아닙니까.”

하지만 부족한 대답이었다. 하하하, 하고 웃는 대마법사의 목소리를 엘펜하임 기사단 본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들었다. 그 목소리가 대마법사의 것인지 확실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다. 엘펜하임이 헬레인의 부귀영화를 전리품으로 전시해놨듯이, 대마법사도 녹아내린 모조품을 조롱하듯 전시하려는 것 아닐까? 그래서 유리상자가 아무리 용을 써도 열리지 않는 거 아닐까?

16606118288535.jpg“상자를 깨는 건 어떻습니까?”

엘펜하임이 여태까지 모조품을 전시했다는 건 대단한 망신이었기에 누구나 그것을 치워버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부기사단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16606118288535.jpg“단장님께 한번 건의해보겠지만, 그건 봉인을 유지하는 지지대네. 함부로 파괴할 수 없어.”

이미 금이 크게 가고, 균열이 생긴 봉인은 불안정한데 어떻게 그걸 함부로 깨버리겠는가. 건드렸다간 봉인 전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16606118288535.jpg“하지만 망가진 지지대는 대체해야 합니다.”

16606118288535.jpg“……그 또한 단장님께 건의해보겠네.”

마음이 급하다고 어설프게 움직였다간 그 끔찍한 예언이 다시 드러날지도 모른다. 전리품을 보란 듯이 전시했듯, 엘펜하임은 명예와 체면, 그리고 위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신문에는 칼리에르 공비이자 헬레인 공주가 새로 나타난 사건이 떠들썩하게 실렸다. 엘펜하임에는 대마법사의 저주가 내려졌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16606118288535.jpg“설마, 대마법사가 여태까지 살아 있었던 건가?”

공포 섞인 속삭임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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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606118288577.jpg“티아라가 녹았다고.”

당연히 그 일은 여기저기에 첩자를 심어두고 사람을 매수해둔 칼리에르 공에게 빠르게 들어갔다.

16606118303225.jpg“예, 마스터.”

라이킨은 담배 연기를 뱉으며 입귀를 비틀었다.

16606118303225.jpg“펠릭스 이드리스의 웃음소리를 모두가 똑똑히 들었다고 합니다. 대리석 바닥에 웃음소리가 메아리칠 정도로 컸다고 합니다.”

조슈아는 최대한 차분하게 보고했으나, 사실 그렇게 차분히 보고할 내용은 아니었다. 그도 나름 오래 산 뱀파이어이기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오래 산 뱀파이어가 할 법한 말을 했다.

16606118303225.jpg“대마법사의 저주일까요?”

라이킨은 픽 웃었다.

16606118303225.jpg“하긴 명성을 생각하면 얌전히 넘어갔던 것도 이상하긴 했습니다. 헬레인 왕조가 멸망하고서도 백오십 년은 더 산 사람인데.”

16606118288577.jpg“……언제 터질까 기대는 했는데.”

파이프를 문 로렌스가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16606118303249.jpg“대마법사도 아버지구나.”

조슈아가 로렌스를 돌아보았다.

16606118303225.jpg“그게 무슨 뜻이십니까?”

로렌스는 한가롭게 신문을 넘겼다. 그는 특히 며느리에 관한 기사를 아주 꼼꼼하게 읽고 있었다.

16606118303249.jpg“딸이 데뷔를 하자마자 바로 봉인에 손을 댄 거잖나. 어떻게 날짜를 맞췄는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지만, 아주 공들인 마법일 거야.”

아마 소렐이 쓰고 나온 다이아몬드 티아라와 연관이 있겠지. 로렌스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라이킨에게 물었다.

16606118303249.jpg“엘펜하임이 가지고 있는 티아라가 전부 모조라고?”

16606118288577.jpg“예. 진품을 제가 봤으니 다른 건 모조겠지요.”

16606118303249.jpg“전부 다?”

16606118288577.jpg“펠릭스 이드리스는 아주 치밀하고 꼼꼼합니다.”

함께 글래스턴 대학에 있었던 라이킨은 펠릭스의 성격을 잘 알았다.

16606118288577.jpg“한번 보거나 들으면 잊는 법이 없지요.”

그런 대마법사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의 복수를 안 해준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펠릭스 이드리스는 헬레인 토끼들의 부탁을 받고 그들의 모든 유산을 빼돌리고, 메리 헬레인도 안전하게 탈출시켰다.

16606118303225.jpg“그런 사람이 왜 엘펜하임을 막지 않았을까요?”

조슈아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질문했다. 대마법사라면 충분히 엘펜하임에 맞서 헬레인을 지킬 수 있지 않나? 헬레인 후계자의 남편이 되어 국서 칭호까지 받는 게 낫지, 망한 나라의 유일한 생존자를 데리고 이리저리 도망치는 건 누구나 사양할 일 아닌가.

16606118288577.jpg“헬레인 토끼들은 자신들의 최후를 기다리고 있었어.”

라이킨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는 아무도 바꾸지 못할,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16606118288577.jpg“토끼들은 그때 이미 쇠락했지. 나는 대마법사마저 어쩌지 못할 멸망이었다고 생각해. 그러지 않고서야 그 위인이 포기했을 리가 없어.”

그리고 바로 그 점을 그의 아내인 소렐이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소렐 이드리스는 한번 정하면 바꾸지 않았고, 고집이 무척 강했다. 그 고집이 아직까지는 ‘공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하겠다!’라는 것에만 국한되어 그렇지, 다른 쪽에 꽂힌다면 라이킨도 말리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니, 그는 딱히 소렐을 말릴 생각이 없었다. 별 욕심도 없는 공주님이 고집을 부린다면 그가 당연히 들어줘야지, 조그만 토끼를 상대로 말리고 싸워서 뭘 하겠다고.

16606118288577.jpg“대마법사가 끼어들어도 멸망으로 갈 수순이었다는 거지.”

라이킨의 결론에 조슈아는 뭐 그런 게 다 있냐는 표정을 지었다.

16606118288577.jpg“건강한 토끼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던 시점 아닌가. 예언하는 토끼들이 사라지고, 마법도 힘을 잃고, 신성력도 쇠락하고, 뭐 그런 이야기지.”

시대의 흐름은 아무런 신비한 힘도 없는 이들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뱀파이어들은 긴 수명과 뛰어난 신체적 능력으로 우위를 점했지만, 그들의 생식력은 인간을 따라가지 못했다.

16606118303249.jpg“하지만 복수는 할 수 있지.”

로렌스는 신문을 접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유쾌하게 들렸다.

16606118303249.jpg“죽기 전까지 치밀하게 준비했을 거다. 사후에 벌어지는 복수라니 대단하구나.”

복수에는 복수가 따른다. 하지만 대마법사는 보복의 대상이 될 딸마저 가장 안전한 곳에 두었다. 그는 어디까지 내다본 것일까? 혹은, 메리 헬레인이 어디까지 예언한 것일까?

16606118288577.jpg“공주님의 경호인원을 두 배로 늘려. 당분간 내가 항상 곁에 있겠지만.”

라이킨이 지시했다.

16606118303225.jpg“예, 마스터.”

조슈아는 고개를 끄덕인 후 서재에서 나갔다.

16606118303249.jpg“못마땅한 것은 알겠다만, 그래도 그놈들이 가지고 간 전리품이 전부 모조품이란 건 알려지는 게 낫지 않니?”

담배 연기를 흘리던 라이킨은 아버지의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16606118303249.jpg“나는 내 며느리가 가짜를 가지고 있네 어쩌네 하며 떠들어대는 소리들이 싫구나.”

그리고 귀족들은 그런 것에 목숨을 걸었다. 오늘도 소렐이 쓰고 나타난 다이아몬드 티아라가 얼마나 유서 깊고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모두가 떠들어대고 있는 것만 봐도 분명했다.

16606118288577.jpg“펠릭스도 그걸 염두에 두고 벌인 일일 겁니다.”

칼리에르 공과 결혼시킨 딸이 결국 공비로 나서게 되었을 때 모든 게 드러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안배해놨을 거다. 라이킨도 걷어차다시피 해서 소렐의 곁으로 보낸 대마법사가 아닌가.

16606118303249.jpg“당분간은 조심하는 게 좋겠다. 안 그래도 초조한 엘펜하임에게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구나.”

16606118288577.jpg“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래서 칼리에르 공은 솔직히,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티아라 문제는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소렐이 당장 엘펜하임의 더더욱 집요한 공세를 받을 게 분명하지 않나. 일부러라도 그녀를 대중에게 보여서 유명세를 이용한 안전을 확보하려 했지만, 엘펜하임은 생겨날 때부터 날강도들이라, 이젠 체면도 불구하고 달려들 게 뻔했다. 라이킨은 담배를 결국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16606118288577.jpg‘이젠 일어나셨으려나?’

오늘은 날씨가 유독 화창했다. 창문이 활짝 열려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그는 잠시 손을 씻고, 바깥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하녀를 붙잡고 물었다.

16606118288577.jpg“공주님께서는 일어나셨나?”

16606118288535.jpg“아니요, 아직 아닙니다.”

어제 무척 피곤해서 픽 쓰러져 잔 소렐을 일부러 깨우지 말라고 말해뒀다. 라이킨은 시계를 한 번 본 뒤 소렐의 침실로 갔다. 침실 문은 여전히 어젯밤, 그가 닫은 그대로였다. 그는 슬쩍 주변을 살폈다. 아버지도 에벌린도 없다. 나쁜 짓을 하기 전에 주변을 확인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칼리에르 공은 그대로 공비의 침실 안으로 슬쩍 들어갔다.

16606118288577.jpg“……공주님.”

토끼는 어제 자던 모습 그대로였다. 라이킨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16606118288577.jpg“공주님, 이제는 일어나세요.”

짙고 곧은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너무 오래 자는 것도 좋지 않다. 그는 결국 손을 뻗어 소렐을 쓰다듬었다.

16606118288577.jpg“공주님.”

16606118323633.jpg“으응…….”

대답은 착실히 하는데 졸음과 짜증, 그리고 애원이 묻어 있다. 조금만 더 자게 해달라는 거다. 서늘하고 깨끗한 남자의 손은 물이 묻었다가 말라서 더 시원했다. 그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16606118288577.jpg“일어나셔야지요. 너무 자면 이따 밤에 잠을 못 이루십니다.”

소렐을 깨운다는 핑계로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뺨을 마음껏 만진 라이킨은 그의 손에 아예 얼굴을 파묻어버리는 그녀를 보고 웃었다. 어린 토끼 공주님과 함께 있으면 광대뼈가 무척 아프다.

16606118288577.jpg“일어나세요, 공주님.”

그는 속삭이듯 말하며 자꾸만 베개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소렐을 일으켰다. 사주식 침대에 늘어진 커튼이 젖혀지고, 햇살이 토끼의 얼굴에 떨어졌다.

16606118288577.jpg“이미 아침이 지나갔습니다.”

잠에 취한 소렐은 베개 대신 얼굴에 닿는 부드럽고 탄탄한 것에 기댔다. 햇살은 싫었다. 더 자면 안 될까?

16606118288577.jpg“……공주님.”

부드럽게 어르던 목소리가 약간 굳어졌다. 마냥 푹신하던 베개보다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이쪽이 훨씬 편했다. 이대로 그냥 자면 안 되나? 좀 더 자고 싶은데.

16606118288577.jpg“이렇게 저를 곤란하게 하시면 어떡합니까.”

곤란하다니, 라이킨은 가진 것도 많고 공작님이면서 곤란할 일이 뭐가 있다고. 소렐은 쓰다듬어주는 손과, 머리카락 위로 내려앉는 한숨에 간신히 눈을 떴다. 그녀는 누워 있는 게 아니었다. 반쯤 앉아서, 누군가에게 안겨 있었다.

16606118288577.jpg“매일 깨워드리지도 못하게 하실 거면서.”

토끼는 느릿느릿 눈을 뜨고, 주변도 돌아보고, 자신의 눈앞을 가리고 있는 게 뭔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게 라이킨의 팔뚝이란 걸 알아차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순식간에 잠이 확 달아났다. 그녀는 멋도 모르고 라이킨의 품이 새로운 베개인 양 치댄 것이다.

16606118288577.jpg“괜찮으니까 제발 토끼로 변하지 말아요.”

놀라고 겁을 먹으면 바로 토끼로 변해버리는 소렐에게 그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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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그는 괜찮았지만 소렐 이드리스는 괜찮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라이킨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뻣뻣하게 굳은 소렐을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품에서 떼어냈다.

16606118288577.jpg“좋은 꿈 꾸셨습니까?”

너는 내가 안는 것조차 놀랍고 어색하며 낯선 일이구나. 어리고 말간 아가씨에겐 당연한 일인데, 그게 어쩐지 조금 아프고 쓰라렸다. 당연한 것인데 도대체 그게 뭐라고.

16606118323633.jpg“……응, 네에…….”

소렐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커다란 손은 여전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려주고 있었다. 머리카락, 그리고 등까지. 라이킨은 안심했다. 적어도 아내가 토끼로 변하는 일은 간신히 넘겼기 때문이었다. 일어나기 싫어하는 아내가 안기길래 일단 안아줬는데, 잠에서 완전히 깨더니 오히려 놀라서 토끼로 변해버린다면 그건 좀 상처받을 것 같았다.

16606118288577.jpg“어제 춤을 너무 많이 춰서 피곤하셨나 봅니다. 씻으시고 함께 식사하실까요?”

귀 가까이에서 가만가만 속삭이는 목소리가 녹아날 듯 다정했다. 라이킨은 멍하니 주저앉은 소렐의 뺨에 입을 맞췄다. 이마에도, 코끝에도 그의 입술이 습관처럼 닿았다.

16606118323633.jpg“……라이킨이 베개인 줄 알았어요.”

작은 손으로 눈가를 비비며 소렐이 웅얼거렸다. 공주님은 깨어나서도 토끼답게 귀여웠다.

16606118288577.jpg“앞으로 자주 이용해주십시오.”

싫거나 불쾌하지 않았나 보다. 소렐은 싱긋 웃는 라이킨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결례를 저지른 게 아니었구나. 쏟아지는 입맞춤도 아마 같은 맥락일 거다. 그날 오전, 소렐은 그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았다. * 엘펜하임 기사단 소속 글래스턴 지부장 카메론 셀레스트는 소렐 이드리스에 대한 기사가 사교란을 뒤덮은 것을 보며, 글래스턴 추기경의 여론전은 끝장났다고 확신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엘펜하임 기사단이 헬레인 왕가의 모든 상징을 다 노획했다고 여겼기에, 기사단 전체가 타격을 입었다. 진주 티아라가 모조품이었으며, 완전히 녹아내렸다는 급보에 카메론은 진품을 소렐 이드리스가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16606118327094.jpg“이쯤이면 바보도 아니고, 봉인을 유지하는 지지대 전부가 모조라고 생각해야 해.”

글래스턴 추기경 틸로네 리퀘도가 들으면 게거품을 물고 기절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그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16606118288535.jpg“어디로 가십니까?”

16606118327094.jpg“졸지에 대마법사를 상대하게 되었으니, 우리도 동료를 불러야지. 웬만하면 비슷한 급으로.”

16606118288535.jpg“대마법사와 비슷한 급이 있습니까?”

듣던 성기사가 기겁을 하며 되물었다.

16606118327094.jpg“없지.”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16606118327094.jpg“그렇지만 칼리에르 공을 상대할 만한 이는 알지.”

지지대를 완성하고 있던 가짜 티아라가 녹아내렸다면, 나머지 지지대도 녹아내릴 거다. 펠릭스 이드리스가 부린 마법을 상대로 엘펜하임에 유리한 상상을 해봤자 멍청한 짓이다. 대마법사는 철두철미하기로 정평이 났다. 딸의 데뷔 날짜에 맞춰 일을 벌인 것만 봐도 그랬다.

16606118288535.jpg“대마법사가 아직까지도 살아 있는 게 분명하지요?”

16606118327094.jpg“아니, 죽었어.”

그건 카메론이 직접 확인했다. 소렐 이드리스가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와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이미 펠릭스 이드리스는 사망신고가 되었다. 그것도 갓 성인이 된 소렐 이드리스의 손으로 말이다.

16606118327094.jpg“……시신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카메론은 며칠 전, 폴리아나 그린이 힘없이 걸어갔던 엔버네스 중앙역으로 바쁘게 갔다.

16606118327094.jpg“어쨌든 죽었길 바라자고. 산 마법사보다는 죽은 마법사를 상대하는 편이 그나마 나으니까.”

16606118288535.jpg“죽은 쪽이 더 으스스합니다.”

16606118327094.jpg“그래? 그거 유감인데.”

카메론을 따라가던 성기사는 도대체 왜 유감이냐고, 하지만 별로 알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16606118327094.jpg“우리는 지금 시체를 깨우러 가거든.”

16606118288535.jpg“……안 가면 안 됩니까?”

으. 성기사는 질색했다.

16606118327094.jpg“안 돼. 지금밖에 없어.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일이잖나.”

16606118288535.jpg“그거 말입니다, 왜 갑자기 지시하셨습니까?”

이미 카메론이 지시한 지는 오래된 일이다.

16606118327094.jpg“……추기경 전하께서 실패하실 때를 대비해서 내 나름대로 마련해둔 대책이었는데, 결국 써먹게 된 거지.”

써먹게 되어서 유감이기도 하고. 카메론 셀레스트는 모두가 엘펜하임 기사단본부와 소렐 이드리스를 주목하고 있는 이때, 아무도 모르게 기차표를 끊었다. 그는 복잡하게 얽힌 기차 노선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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