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Penny dreadful (11)2020.12.12.
엘펜하임의 영향력은 뱀파이어들은 무시할 수 있었으나, 보통의 인간들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오래도록 자리 잡아왔고, 사실 내부에서는 점점 사라져가는 신성력 때문에 난리가 났으나 적어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어쨌든 헬레인 왕국을 완전히 몰살시킨 대단한 세력이기도 했으니까.
“까딱하다가 공주님이 헬레인 왕가의 후손을 사칭하는 범죄자가 될 판이야.”
샤를렌이 신문을 탁 접으면서 말했다. 추기경은 자꾸만 야료를 부리고 있었다. ‘숨기는 거 없이 떳떳하면 축복받는 결혼식을 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라든가, ‘혹시 숨겨야 하는 출신이냐’라는 식으로 알게 모르게 라이킨을 도발했다.
“우리 공주님이 신경만 안 쓰면 상관없어.”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별일을 다 겪었던 라이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소렐이 서둘러 친구에게 돌려준 문제의 야한 소설을, 소렐이 조금 읽어봤는지가 더 궁금했다. 그리고 도대체 언제 마음에 드는 보석이 나타날지 조급하기만 했다. 그놈의 반지, 반지를 선물해야 할 텐데. 제기랄.
“추기경 따위가 뭐라 떠들든 결국 제 무덤을 파는 짓인데 무슨 상관이야?”
라이킨은 싸늘하게 뇌까렸다.
“헬레인 왕조가 어지간히 무섭긴 한가 보지. 엘펜하임의 마지막에 대해 헬레인이 예언을 한 게 있다면서? 오빠는 알아?”
“몰라.”
라이킨은 대충 대답했다.
“그래놓고 나중에 또 알고 있었다면서 슬쩍 말하기만 해봐.”
예언을 하는 토끼 종족, 헬레인 왕족은 예언을 한다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엘펜하임에게 최후를 맞았다. 라이킨은 헬레인 토끼들이 자신들의 황혼과 최후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공주님이 ‘이드리스’라는 성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시비가 붙을 수 있어.”
가만히 앉아 있던 조슈아마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샤를렌의 말이 맞다는 뜻이었다.
“흔한 성은 아니지요.”
그것도 펠릭스 이드리스와 메리 헬레인의 딸이라고 버젓이 출생신고가 되어 있는 소렐은, 여러모로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그러나 라이킨은 의자에 파묻혀서 딱히 반응다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멋대로 떠들라고 해.”
헬레인 왕족들이 그들의 최후를 준비하지 않은 줄 아나. 토끼들은 유일하게 남을 공주를 가장 강력한 대마법사에게 부탁하며, 재산까지 알차게 맡겼다. 헬레인 왕조의 유산은 엘펜하임이 전부 다 약탈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진짜 유산을 지키는 이는 지금 멀쩡하게 앉아서 추기경이 하는 꼴을 보고만 있었다.
“그럼 그만 막아?”
“막을 수 있는 데까지만 막고, 그 이상은 너도 지나치게 애쓰지 마, 샤를렌. 공주님께는 내가 말씀드려놨지만, 한 번 더 말씀드려야지.”
라이킨은 와인을 삼켰다. 핏빛 액체가 그의 손안에서 이리저리 굴렀다.
“버러지들이 붙을 것 같다고.”
그건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공주님은 버러지들을 무척 싫어하실 텐데.
* 어느덧 글래스턴 대학 예비과정도 그 짧은 일정이 다 끝나가고 있었다. 소렐은 사비나 로체를 비롯해 제법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대학 근처에서 친구들과 놀 만한 곳들도 알게 되었으며, 친구들과 공유하는 비밀도 생겼다.
“여기, 루비, 이 책. 진짜 <겨울별장 살인사건> 사이에 끼어 있었어.”
소렐은 얼굴이 빨개져서 <벨벳 유혹>을 슬쩍 루비에게 숨기듯 건넸다.
“아, 역시. 거기에 있었구나. 소렐, 재미있었어? 어땠어?”
“아, 아니, 나는 아직…….”
“별로였어? 취향이 뭔지 말해봐. 나 종류별로 있어. 너는 특별히 다 빌려줄게.”
루비는 눈을 반짝거리면서 그녀의 가방을 열어 보였다. 소렐은 이런 ‘특별한’ 친구도 사귀었다. 어느덧 예비과정이 거의 끝이 나자, 학생들은 서로 다시 만날 약속을 정하거나 어느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이야기를 꽃피웠다.
“글래스턴 대학이 좋긴 해. 매그놀리아 칼리지는 좀 재미가 없지만.”
“난 완전 재미있어. 계속 다닐 거야.”
“아, 헤어지면 섭섭해서 어쩌지?”
“그래봤자 어차피 사교계 시즌이니까 다들 만날 거 아냐.”
사교계 시즌? 소렐은 친구들과 헤어질 생각에 혼자 섭섭해서 의기소침해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드레스를 또 맞춰야 해?”
“으, 귀찮아.”
“엄마는 날더러 결혼하라고 해. 아빠가 안 된다고 필사적으로 막아서 대학에 온 거라니까.”
“난 그냥 빨리 결혼하고 싶어. 얼른 시집가서 내 가정을 일구고 싶어.”
“결혼은 무덤이야.”
“쟨 남자애들이나 할 소리를 해.”
소렐은 친구들의 말을 귀담아듣기만 하다가, 역시 가장 편하고 가까운 사비나를 쿡쿡 찔렀다. 사비나는 뱀파이어 혼혈이라서 그런지, 소렐이 사교계에 관해 잘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응? 소렐, 왜?”
“있잖아, 예비과정이 끝나면 다들 수도로 올라가는 거야?”
“그렇지. 아니면 글래스턴에 남아 있기도 해.”
“사교계 시즌이라서?”
사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교계 시즌이라서. 아주 중요하지.”
“……남편감을 골라야 하니까?”
“응. 학기가 시작되면 약혼한 애들도 있을걸?”
그렇구나. 소렐은 모르던 것을 한 가지 더 알았다. 사교계는 일종의 결혼 시장이었다. 막 데뷔하는 아가씨들도, 신사들도 전부 다 좋은 혼처를 찾아 헤매는 거다.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나. 통속소설에서 맨날 말하는 사랑이란 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애들이 다 통속소설을 읽나? 없는 걸 찾느라 다들 혈안인 모양이다. 그게 조금 짠해서 소렐은 괜히 친구들을 둘러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근데 나도 마찬가지잖아!’
그녀 역시 아빠가 시키는 대로 결혼했다. 다를 게 뭐가 있나. 물론 남편이 그녀더러 정말정말 예쁘다고 몇 번이나 말해주고, 학교에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는 건 행운이지만 말이다. 정략결혼을 한 사이가 그렇긴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아무리 순진한 소렐이라도 알고 있었다.
‘빨리 자라세요, 공주님.’
게다가 초야도 기다려주고 말이다. 초야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하고 ‘다른 여자랑 만나셔도 괜찮아요, 하지만 만나게 되면 알려주세요, 나도 다른 남자 만날 거니까!’라고 말한 소렐이 조금 민망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소렐. 오늘은 뒷문으로 나가는 게 좋을 거야.”
“왜?”
“왜긴, 칼리에르 공께서 자꾸만 널 데리러 오신다는 소문이 쫙 돌아서, 이젠 기자들까지 나오나 봐. 칼리에르 공의 얼굴을 모르는 애들도 슬슬 그런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어.”
워낙 오래 묵은 뱀파이어가 너무 오래도록 두문불출하고 있어서인지, 라이킨의 얼굴은 대외적으로 잘 알려졌으면서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오래된 초상화에서나 볼 수 있다나. 그렇다 해도 그가 수백 년 전에 대외활동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알아볼 수 있다는 거다. 스물, 이제 막 사교계에 데뷔할 파릇파릇한 영애들만 모르는 얼굴인 거다.
“시간문제야. 게다가 교수님은 수업도 몇 번 하셨고, 성까지 칼리에르잖아. 애들이 대충 눈치를 채고 있다고.”
그랬다. 라이킨은 좀 더 각오해두라고 했다. 로렌스가 여전히 타운하우스를 떠나지 않는 것도 그런 의미일 거다.
“그러니까 일단 오늘은 뒷문으로 나가.”
소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제임스 교수님 마지막 수업이네.”
그의 수업은 수업이랄 것도 없었다. 라이킨이 해주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다가 수업이 끝나버렸다. 혹은 그의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과 엄청난 몸을 감상하다가 끝나든가. 어쨌든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수업 시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그가 싱그럽게 웃으면서 들어오면, 모두가 입을 모아 안녕하세요! 하고 대답했다. 하긴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는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끝내주긴 했다. 눈부신 금발, 지혜롭고 언뜻 날카로워 보이는 벽안, 매끄러운 피부와 딱 알맞게 발달해서 더 남성적인 턱, 곧게 뻗은 몸은 또 어떤가. 드넓은 어깨와 두툼한 흉통, 맵시 있는 슈트 아래에는 쩍쩍 쪼개진 근육들이 자리했다. 그는 한 팔로도 소렐을 충분히 가볍게 다룰 수 있는 힘을 소유했다.
“오늘이 마지막이군요.”
우으으으, 섭섭하다며 앓는 소리가 나자 라이킨은 가볍게 웃었다.
“앞으로도 글래스턴 대학에서 여러분들을 계속 만나길 바랍니다.”
그 말만으로도 이곳에 남기로 결심을 굳힌 학생들이 꽤 될 거다. 그는 시종일관 예의와 재치를 잃지 않고 학생들을 대했다. 어떻게 벨파이어 칼리지, 연구에만 전념하는 칼리지 소속 교수가 수업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말이다.
“입학식 사이에 있을 사교계도 즐겁게 보내도록 하고요.”
라이킨이 진행하는 수업은 이상하게도 항상 지나치게 빠르게 끝나는 기분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항상 아쉬웠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학생들이 교단 근처를 떠나지도 않자, 소렐은 조금 마음이 급해졌다. 이따 뒷문에서 보자고 말을 해야 하는데!
“교수님, 새 학기에도 수업하시나요?”
학생들은 궁금한 걸 질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근데 교수님은 칼리에르 공이랑 무슨 관계시지?”
“둘 다 뱀파이어인 거 보면 가족인가 보지.”
으아. 소렐은 괜히 찔려서 얼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점점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는 건, 아무리 잘 모르는 소렐이라도 알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들킨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자, 그러면 다음에 봅시다.”
소렐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으나, 라이킨은 이미 강의실을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그녀 사이에는 구름같이 몰려든 학생들이 가득했다.
“아…….”
“왜 그래, 소렐?”
사비나가 소렐을 보며 물었다.
“이따가 뒤에서 만나자고 하려고 했는데…….”
엇갈리면 어쩌지? 첫날에 엇갈려서 소렐은 하마터면 혼자 삯마차를 타는 위험천만한 짓을 할 뻔했다. 소렐은 당황했지만, 사비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말 안 해도 괜찮을걸? 교수님은 알아서 찾아오실 거야.”
“어떻게 말도 안 했는데 찾아와?”
“너한테서 교수님 냄새 나니까.”
아, 맞다. 사비나가 처음 만난 날 그녀에게 뱀파이어 냄새가 난다고 그랬지.
“엄청 심하게 나.”
소렐은 울상이 되어 괜히 소매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그렇게 심해? 지독해?”
“지독하다고 할 사람도 있긴 하겠다. 향수를 들이부으면 지독하다고 하잖아.”
사비나는 아주 침착한 얼굴로 소렐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난 결혼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소렐. 넌 누가 봐도 칼리에르 공비야.”
“……눈치챈 애들도 있겠지?”
라이킨의 체취를 ‘들이붓다’시피 했지, 그가 항상 데리러 오지, 게다가 그는 금발 벽안에 ‘칼리에르’라는 성까지 사용하고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슬슬 눈치채기 시작하는 학생들이 있을 거다. 어쩌면 소렐 혼자서 아무것도 모르고, 둔하게 앉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 주위로 폭풍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도 바보같이.
“뱀파이어들은 다 알지, 뭐. 너무 마음 쓰지 마. 이미 표면 위에 드러난 일이고, 교수님이 널더러 신경 쓰지 말랬으면 신경 안 쓰는 게 맞아.”
“그래도 내 일이잖아.”
그녀의 일이니까,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녀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사교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소렐의 어깨가 축 처졌다.
‘아, 그래서 라이킨이 빨리 자라라고 한 건가?’
“……경호해주시는 분들한테 말씀드려도 되겠네.”
소렐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언제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주변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강의동 뒤편으로 걸어갔다. 굳이 경호하는 뱀파이어들에게 말하지 않아도, 어쩐지 라이킨이 알아서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건 확신이 아니라 어떤 예감이었다. 게다가 사비나가 사색이 된 채로 소렐을 쿡쿡 찔렀다.
“소렐, 진짜 뒷문으로 가. 정문에 기자들이 깔렸어. 나 태어나서 저렇게 많은 기자들은 처음 봐.”
말할 겨를이 어디 있나. 소렐은 사비나가 떠미는 대로 상대적으로 한적한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으아…….”
저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수업이 끝나고 예비과정마저 마무리되면, 사교계가 시작된다. 소렐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이번 시즌 최대 관심사는 칼리에르 공비다. 누가 누구와 결혼하느냐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누군가가 그렇게 관심사가 쏠리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어쩌다……?”
소렐은 반사적으로 그녀에게 무척 친절한 어른들을 떠올렸다. 모두가 뱀파이어들이다. 그들은 알고 있었겠지.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예비과정만 즐겁게 다녔다. 즐겁게 다니는 게 소렐이 할 일이었다. 그녀는 구두 끝을 내려다보았다. 학생다운 단화 앞에 갈색 정장 구두가 멈춰 섰다. 단화보다 훨씬 커다랗고 날렵한 구두다.
“공주님.”
소렐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왔다는 걸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와 똑같은 손목시계를 찬 손이 내밀어졌다.
“여기 계셨군요. 앞이 번잡합니다.”
그녀는 진짜 공주였다. 헬레인 왕가의 피를 이어, 아주 귀한 신분이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라이킨은 그녀를 그렇게 대접했다. 정중하고 다정한 말투에 소렐은 고개를 들었다.
“기자들이 많이 있대요.”
“예, 그렇군요.”
“사비나가 이쪽으로 가라고 했어요.”
“로체 양이 판단이 빨랐군요.”
역시 소렐에게 붙여놓길 잘했다.
“라이킨, 저 앞에 있는 기자들은 나 때문에 온 거죠?”
“아닙니다.”
그는 부드럽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주님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에 온 겁니다.”
그녀의 손이 그의 손 위에 올라앉은 후에야 그는 안심했다. 이건 중증이다. 갑작스럽게 생기고, 더 깊어져서 당황스러운 중증.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웠다. 커다랗고 날렵한 손이 작은 손을 순식간에 삼켰다.
“다 공주님을 겨냥하는 것 같아도, 결국 저를 겨냥한 거지요.”
버러지들이 감히.
“저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공주님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소렐은 그의 달콤한 말에 그냥 넘어가는 토끼가 아니었다.
“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어째서요?”
“그래도 나, 나, 나, 남편의 일인데…….”
말하는 토끼의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아, 사랑스럽다. 바로 삼켜버리고 싶을 만큼 예뻤다.
“남편의 일인데?”
어서 말해보라는 독촉 같은 말에 소렐은 조금 더 용기를 냈다.
“아, 아내가 신경을 써야지요…….”
라이킨은 홀린 듯이 웃었다. 분명히 무언가에 홀린 눈이었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웃음이라 오히려 소렐이 홀리는 기분이었다. 그는 그녀와 이마를 맞댔다.
“공주님의 남편은 무척 영광스러운 자리군요. 제가 차지하길 잘했습니다. 이렇게 공주님께서 신경도 써주시니 말입니다.”
진심을 듬뿍 담아 이야기하면 소렐의 까만 눈은 조금 흔들리면서 아래로 향했다가, 다시 곧게 그를 향했다. 그래. 그렇게 그만 봐야 했다. 소렐 이드리스는 제임스 라이킨 칼리에르만을 똑바로 바라봐야 했다. 그녀가 그만을 바라보면 그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저 바깥에서 버러지들이 뭐라 떠들든, 만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