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Penny dreadful (9)2020.12.05.
라이킨은 자신에게로 돌진하듯 달려오는 소렐을 보고 의아해했다. 저 아가씨가 왜 저렇게 전속력으로 달려오지? 마침 데리러 가던 중이었으니 반가워서 달려오는 건가? 그렇다면 그는 좋았다.
“공주님?”
그러다가 다친다고 반사적으로 말하려는데, 소렐이 갑자기 몇 걸음을 남겨두고 멈춰 섰다. 일단 넘어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공주님?”
아무래도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보다가, 동공이 마구 흔들리다가, 그러다가…….
“공주님!”
히이이익, 하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어쩐지 그건 꼭 그에게서 달아나는 것 같았다. 라이킨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무슨 일이 있겠지. 두고 온 물건이 있든가, 아니면 잊은 일이 있다든가. 그래,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쾌하다. 사냥본능이 꿈틀거리는 포식자 앞에서 등을 돌리고 달아나는 건 정말 좋은 선택이 아닌데.
‘아, 미쳤어!’
소렐은 아무것도 모르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왜 하필, 왜 하필 그런 낯 뜨거운 소설이 딸려온 걸까! 제대로 확인을 했어야지! 그냥 한꺼번에 많은 책을 읽는다는 것에 신이 나다니, 소렐 이드리스는 바보인가!
‘바보 맞지.’
요즘 습격도 당하고 이래저래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라이킨이 다 읽었을까? 보자마자 그가 맡고 있는 여학생의 부도덕한 점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겠지?
“공주님.”
토끼의 동그랗고 좁은 어깨가 무섭게 치솟았다. 놀라서 비틀대는 몸이 단단한 힘에 탁 붙들렸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제 ‘요조숙녀가 결코 읽어서는 안 될 소설’의 행방을 알고 계시나요?
“어디 아프십니까?”
서늘하고 커다란 손이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평소였으면 당장 놀라 피했겠지만, 소렐은 그럴 경황도 없었다.
“왜 이렇게 뜨겁지?”
목덜미도, 귀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뱀파이어의 싸늘한 체향이 훅 끼쳐 온다. 단순히 이마만 짚는 게 아니다. 그녀보다 한참 커다란 남자는 그녀를 뒤덮듯 서서 양손으로 그녀의 뺨이며 이마를 꼭 보호하듯 감쌌다. 그 손은, 강인한 팔은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서 그녀의 무릎 뒤를 잡아 올렸다.
“집으로 가실까요. 몸이 안 좋으신 듯합니다.”
“그, 그런 게 아니고…….”
“아니고?”
라이킨은 그에게 폭 안긴 소렐을 내려다보았다.
“저 무거워요, 내려주세요……!”
“공주님이요?”
당신이 무겁다고? 라이킨은 헛웃음을 지었다.
“당근만 골라서 먹지 말고 그런 말씀 하세요, 공주님. 갑시다.”
큰일 났다. 그 야한 소설책, <벨벳 유혹> 말이다. 어떻게 빼 오지? 일단 라이킨의 어깨에 착 달라붙은 토끼의 눈동자가 도록도록 움직인다. 잔머리가 돌돌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아픈 거 아닌데…….”
“그러면 왜 도망갔습니까?”
“도망간 것도 아닌, 아닌데…….”
더듬는 거 보니 사실이다.
“날 보자마자 돌아서지 않았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지고 딱딱해졌다. 항상 차갑던 목소리의 온도가 더 내려간 듯했다.
“까먹은 게 생각나서…….”
“뭘 잊으셨습니까?”
야한 소설을 읽었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건 제 무덤을 파고 드러눕는 짓이란 걸 잊었지요.
“아니,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소렐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되도 않을 변명이었지만 그냥 이쯤에서 라이킨이 넘어가주길 바라면서. 그녀를 내려다보는 푸른 눈이 가늘어졌다.
“진짜, 진짜예요.”
완전히 거짓말인데. 스무 살, 곧 대학에 입학할 아가씨가 숨겨봤자 뭐 그리 대단한 거겠냐만, 라이킨은 딱히 좋은 어른이 아니라서 적당히 무관심해질 수가 없었다. 그러기 싫다. 소렐 이드리스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알아야만 했다. 찡긋거리는 뽀얗고 오뚝한 코, 데록데록 굴러가는 예쁜 눈, 제 초콜릿 상자를 감추듯 슬쩍 넘어가는 되도 않을 변명까지 전부 다. 그는 낱낱이 알아내고, 샅샅이 찾아 모조리 움켜쥐어야 직성이 풀리는 못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요?”
그러니 가만히 두고 살피면, 결국 소렐이 숨기는 것이 뭔지 알게 될 거다. 당장 그의 성미를 긁어대는 건 소렐이 그를 보자마자 도망갔다는 사실 하나였다. 그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아뇨, 집에 가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갈 시간이 어디 있나, 당장 집에 가서 문제의 소설이 어디에 있나 확인해야지. 소렐은 초조하게 생각하느라 자신을 내려다보는 라이킨의 시선이 어떤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단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공주님이 아이스크림을 거절한다, 라. 게다가 어디엔가 정신이 팔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하나 더 늘었다.
“그러지요.”
집에 가서 이 토끼가 뭘 하나 한번 두고 봐야겠다.
* 소렐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소중한 소설책들이 있는 작은 선반부터 살폈다. 으, 그렇게 야한 소설이 끼워져 있을 줄이야! 친구들이 꺅꺅대며 돌려보는 것을 어깨너머로만 봤던 순진한 토끼는 소설이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으……. 어쩌지?”
차라리 집에 없었으면 좋겠다. 루비의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문제의 소설책이 선반 위에 없다는 건, 아주 끔찍한 일이었다. 라이킨이 가지고 간 책 사이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니까.
“……없네.”
야한 소설이 끼워져 있을 것 같다는, <겨울별장 살인사건>도 없었다. 그게 없다는 건, 결국 라이킨이 가져갔다는 얘기겠지.
“아…….”
소렐은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어쩌면 라이킨이 <겨울별장 살인사건>을 읽지는 않았을지도 몰라. 지금 라이킨이 어디에 있지? 그 책을 어디다 뒀지? 서재에 있나? 아니면…….
“아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라이킨의 침실을 생각하자마자 소렐은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거기까지 가서 뒤질 용기는 차마 나지 않았다. 소렐은 제 방문을 돌아보았다. 제발. 제발 서재에 있어라. 그녀가 가도 좋다고 허락된 공간에 있었으면 좋겠다.
‘루비 걔는 왜 그걸 별장 살인사건 시리즈에 끼워놔서……!’
친구들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보는 야한 책이다. 좀 조숙한 친구는, 그 책에 등장하는 남자 같은 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야한 일을 ‘잘하는’ 남자는……, 으으, 그만 생각하자. 그녀는 도리질을 또 한 뒤 조심스럽게 방문 바깥으로 나섰다. 그녀의 방이 있는 이 층은 그녀 혼자서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서재가 있는 층은 얘기가 다르다.
‘제발 서재에 있어라.’
다른 책을 찾는 것처럼 하고 홀라당 집어 오게. 사실 라이킨에게 <겨울별장 살인사건>은 다 읽지 못했는데 혹시 가져갔냐고 물어보면 될 일이지만, 소렐은 그렇게까지는 뻔뻔하지 못했다. 그녀는 살금살금 서재가 있는 층으로 걸어 내려갔다. 손질이 잘된 묵직한 문은 살짝 밀면 소리도 없이 열린다.
‘없다!’
순식간에 소렐의 표정이 환해졌다. 서재의 주인은 지금 서재를 비웠다. 소렐은 얼른 서재로 들어가서 문을 꼭 닫고 모든 책장을 살피기 시작했다. 소설들은 일단 그녀의 물건이니 다른 책과 섞이게 두지는 않았을 거다. 토끼의 몸놀림은 잽싸다. 소렐은 책상을 한 번 훑어보고, 그다음에는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 아주 중요한 서류들도 있겠지만,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어디 있지……?”
어떡하지, 없으면 안 되는데. 루비가 혹시 자기 집에 있는 걸 못 찾아놓고 빌려줬다고 우기는 건 아닐까? 소렐은 그녀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보면서도 열심히 서재를 뒤졌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책은 나오지 않았다. 차마 그에게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소렐은 라이킨이 자주 앉아 있는 응접실이며 식당, 그리고 티룸까지 뒤졌다.
“뭘 찾니?”
항상 티룸에 앉아 있던 로렌스가 외투를 입으며 물었다.
“아, 어디 가세요?”
“일이 있어서 모레까지는 집을 비워야 할 것 같구나.”
공작은 용무가 많다. 소렐은 얼른 근처에 기대 놓았던 지팡이를 집어다 로렌스에게 건넸다.
“고맙다. 그래도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올 테니 걱정하지 말고, 학교 잘 다니고 있어요.”
“네, 다녀오세요, 아버님.”
아버님. 아직까지도 너무 어색하고 이상한 단어지만, 소렐은 최대한 사용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단어를 사용하기엔 그녀가 지나치게 어리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얼른 돌아오마.”
자, 로렌스가 나갔으니 소렐은 또 집을 뒤질 참이었다. 주방에 늘 걸려 있던 커다란 장바구니가 없는 걸 보니 에벌린도 장을 보러 갔나 보다. 그녀는 꼭대기 층부터 샅샅이 뒤졌다. 심지어 사소한 물건을 넣어놓는 다용도실 문도 열었다.
“여기 있을 리가 없지…….”
소렐은 한숨을 푹 쉬면서 문을 다시 닫았다. 자, 그러면 남은 곳은 결국 딱 한 군데, 그녀가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라이킨의 침실이었다. 그녀는 꼴깍 침을 삼킨 뒤 정확하게 그녀의 방과 대칭을 이루고 있는 그의 침실을 향해 걸어갔다. 이쪽 복도는 아예 걸어본 적이 없다. 이유 모를 냉기가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아니, 기분 탓인가?
“……라이킨?”
소렐은 조심스럽게 밤색 나무 문을 두드렸다.
“여기 있어요?”
제발 없어라. 들릴 듯 말 듯 속삭여 물은 소렐은 들려오는 소리가 없자,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아 밀었다. 묵직한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차마 많이 열 수가 없어서 아주 조금만 연 소렐은 문틈으로 열심히 안을 엿보았다. 서재와 동일한 양식을 채택한 방 안의 모든 걸 다 볼 수는 없었으나, 소렐은 분명히 확인했다. 그러곤 문을 닫고서 뒤돌아 발을 동동 굴렀다.
“으, 어떡해……!”
그가 쑥 집어간 소설 다섯 권이 커다란 침대 곁, 작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분명히 문제의 <겨울별장 살인사건>도 끼어 있는 걸 봤다. 그러니까 큰일 났다. 자, 침착하고 생각해보자.
‘몰래 가지고 나오거나, 아니면 라이킨을 불러서 부탁하거나.’
소렐은 바로 마음을 정했다. 라이킨에게 책을 달라고 할 거였으면 여태까지 몰래 뒤지지도 않았지! 토끼는 증거를 인멸하고 싶었다. 라이킨이 보기 전에―분명히 그는 바쁘니까 아직 다 읽지 않았을 거다―저 낯부끄러운 책을 어떻게든 숨겨버리고 싶었다. 소렐은 마른침을 크게 꿀꺽 삼킨 뒤, 용감하게 문을 다시 열었다.
‘빨리! 빨리! 빨리 가지고만 나오면 된다고!’
딱 <겨울별장 살인사건>만 집어서 나올 생각이었다. 아니, 그 안에 문제의 야한 소설 <벨벳 유혹>이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소렐은 살금살금, 뒤꿈치를 세우고 걸어서 침대 앞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그녀는 재빨리 가장 위에 있던 책을 치워내고 그 아래 있던 <겨울별장 살인사건>을 집어 들었다. 설마 있나?
“……으.”
있다. <벨벳 유혹>이 끼워져 있었다. 소렐은 제발, 제발 라이킨이 보지 않았길 바라며 돌아섰다.
“웬만하면 놀라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소렐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와, 동시에 그녀의 허리를 감싸는 굵은 팔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너무 놀라서 토끼 귀가 펑 튀어나오고 말았지만, 완전히 붙들린 터라 토끼로 변하지는 못했다.
“남편의 침실에 들어온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시고 이러시는 겁니까?”
싸늘한 목소리에 소렐은 숨도 쉬지 못했다. 잘못했다고 해야겠지.
“그것도 공주님의 남편은 뱀파이어인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소렐은 몰랐다. 몰라서 미안했다. 소렐은 뒤로 물러나다가 침대에 다리가 걸려 그대로 넘어갔다. 잡아줄 수도 있었지만 라이킨은 그녀를 일부러 침대에 눕혀버렸다. 그러는 편이 더 ‘보기 좋았다’. 깨끗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그의 체취가 물씬 느껴졌다. 그리고 눈앞에는 그녀를 서늘하게 내려다보는 체취의 당사자가 있었다.
“죄, 죄송…….”
“사과받고 싶지는 않군요.”
라이킨은 눈을 휘며 웃었다. 이상하게도 그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소렐은 귀를 가려야 할지, 아니면 책을 숨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손은 두 개뿐이다. 라이킨은 그녀가 자꾸 숨기려고 하는 책을 탁 낚아챘다.
“아……!”
“아, 이겁니까.”
소렐의 얼굴이 당장 사색이 되었다.
“주세요, 그거 이리 줘요……!”
라이킨은 그 책을 휙 던져버린 뒤, 그녀에게로 상체를 완전히 숙여버렸다.
“내용이 궁금하다면 나한테 물어봐요. 난 다 읽었으니까.”
맙소사. 소렐은 숨을 급하게 들이마셨다. 완전히 들켰어. 다 들켰어. 그러니까, 이미 끝나버린 셈이었다.
“지, 지, 지, 진짜요?”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라이킨이 고개를 더 숙였다. 새파란 안광이 무섭게 빛난다.
“‘그는 그녀에게로 몸을 완전히 숙였다. 그녀는 신음을 내뱉었다. 날카로운 이가…….’”
그의 낮은 목소리가 굉장히 즐거워하며 <벨벳 유혹>을 그대로 읊었다. 목소리는 마치 그녀의 귓가를 천천히 긁어내리는 것 같았다. 소렐은 저도 모르게 예쁘고 가느다란 목을 길게 빼고 그를 피하려고 했다. 뱀파이어의 침실이라니까. 라이킨은 한숨을 쉬며 그녀의 목에 입술을 댔다.
“라이……!”
소렐이 파드득 떨며 그를 부르다가, 결국 이름을 다 완성시키지도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예, 공주님.”
그는 성실한 남편답게 착실히 대답했다. 흐트러진 옷깃 사이로 움푹 들어간 쇄골이 언뜻 보였다. 보는 순간 끝난다. 사냥꾼의 시야에 들어왔다면, 그건 들어온 것으로 그의 것이다. 라이킨은 입술을 미끄러트리며 침대와 소렐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그녀의 등을 문질렀다.
“숨 쉬어요.”
“저, 저 맛 없어요…….”
겨우 숨을 쉬게 만들어놨더니 기껏 한다는 소리가 맛이 없으니 잡아먹지 말라는 소리라, 뱀파이어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맛이 없다니. 이렇게 단데.”
달다고? 어디가? 소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라이킨은 단 거 싫어하잖아요……!”
“누가 그럽니까. 좋아하는데.”
라이킨은 양손으로 소렐의 얼굴을 감싸고 감상하듯 곰곰이 뜯어보았다.
“공주님이 주시는 건 다 좋습니다.”
잡아먹는 게 아닌가? 소렐은 겨우 제대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 가깝고, 너무 많은 면적이 맞닿아 있었다. 라이킨은 그녀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아주 예쁜 보석을 섬세하게 만지듯, 통통한 뺨을 만져보다 혼자 픽 웃는다. 그 웃음이 너무나 근사했다. 그는 심장에는 해롭고, 눈에는 아주 이로운 외모를 가졌다.
“특히 당신 자체가.”
토끼는 용감하게 그의 침실 안으로 들어왔고, 그는 비열하고 교활한 뱀파이어라 딱히 그냥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너무 예쁘기도 하고.”
그 말에 또 말갛게 쳐다보고 눈을 깜빡거린다. 소렐은 그의 취향에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아니, 사실은 라이킨도 자신의 취향이란 걸 새롭게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나, 나는 이 책 아, 안 읽었어요!”
소렐은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말했다.
“다 읽으시고 저도 읽어보라고 두신 게 아니었습니까?”
“아니에요!”
바로 튀어나오는 대답에 뱀파이어의 입술이 심술궂게 휘말려 올라갔다. 깜찍하게 살금살금 들어와서 화들짝 놀라질 않나, 그래놓고 할 말은 다 하는 공주님은 무척 귀여웠다. 딱히 뭘 할 생각은 없었지만, 자꾸 말은 시켜보고 싶었다. 무슨 말을 할까 기대된다.
“저런, 좀 더 부부 사이가 가까워지길 원한다고 말씀하시는 줄 알고 무척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야한 소설이랑 부부 사이가 더 가까워지는 게 무슨 상관인데? 라이킨은 소렐이 잠시 의문을 가지다가, 순식간에 알아듣곤 눈이 커지는 걸 즐겁게 바라보았다. 소렐은 그제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순식간에 말갛던 뺨이며 귀, 목이 붉게 물들었다. 라이킨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더 예뻐졌다.
“마침 잘되었군요.”
그는 다시 몸을 숙여서 그녀에게 속삭였다.
“우리는 가까워져야 하는 부부지간이고.”
그거 큰일이다!
“지금 집에는 우리 둘밖에 없습니다.”
더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