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 Penny dreadful (7) (35/181)

35. Penny dreadful (7)2020.11.28.

16606116178919.jpg“숨긴다며.”

라이킨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16606116178919.jpg“공주님이 학교 조용히 다니고 싶어 하시니 숨긴다며.”

그래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새로 찾아낸 보석을 가만히 쳐다보다, 이건 아무래도 소렐의 브로치나 맞춰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더 예쁜 보석, 더 ‘결혼반지’에 잘 어울리는 보석 없나?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16606116178919.jpg“그런 인간이 보란 듯이 금요일 밤에 시내 중심가를 쓸고 다니면서 옷부터 보석까지 맞추는 것도 모자라서.”

라이킨의 앞에 신문이 팍 날아들었다. <웨스턴 가젯>이다.

16606116178919.jpg“<섀넌도어>에 가서 저녁을 먹고 극장까지 가?”

또 다른 신문이 날아들었다. 이번엔 <글래스턴 포스트>다. 라이킨은 미간을 살짝 좁히며 슬쩍 피했다.

16606116178919.jpg“이 도둑놈아!”

16606116178946.jpg“아내랑 밥 먹는 게 그런 소리까지 들을 일이야?”

16606116178919.jpg“나는 도둑놈 뒤치다꺼리하려고 변호사가 된 게 아니야!”

자주색 정장을 맵시 있게 차려입은 샤를렌이 도끼눈을 떴다.

16606116178919.jpg“이젠 수도에도 소문이 다 퍼졌을 거야.”

16606116178946.jpg“기사는 막았잖아.”

16606116178919.jpg“그래, 내가 새벽 다섯 시에 출근해서 막았지.”

16606116178946.jpg“넌 잠 안 자잖아.”

뱀파이어가 잠은 무슨. 필요하다면 백 년도 뜬 눈으로 거뜬히 보낼 수 있는데. 샤를렌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오빠를 노려보다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16606116178919.jpg“……공주님이랑 적당히 있다가 이혼할 거 아니었어?”

16606116178946.jpg“우리 문제로 너한테 상담할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다만.”

부부 문제로 법적 상담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겠는가. 저놈이 진짜 도둑놈이라는 거지.

16606116178919.jpg“아, 뭐, 그래. 그럼 평생 데리고 있는다 쳐. 난 솔직히 후견인 제도를…….”

16606116178946.jpg“결혼이야.”

후견인은 무슨. 그런 건 생각도 안 해봤고 지금도 관심이 없었다. 이미 펠릭스 이드리스와 메리 헬레인이 라이킨과 약속한 일이다. 소렐은 태어날 때부터 남편이 정해져 있었다.

16606116178946.jpg“그리고 내가 고대 마법을 수호하는데, 어떻게 이혼을 해?”

라이킨은 그거야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혼이라니? 그런 게 소렐 이드리스와 그 사이에 존재하는 줄 아나? 두 사람 사이의 이혼이란, 물에 섞이는 기름, 서쪽에서 뜨는 해, 새빨간 눈, 새파란 피나 다름없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16606116178919.jpg“그래……. 적어도 양심이란 게 조금, 아주 조금은 있어서 나중에라도 이혼해줄 줄 알았는데, 그래……. 내가 믿을 걸 믿었어야지…….”

샤를렌은 환멸이 난다는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16606116178946.jpg“이혼이라니, 무슨 그렇게 끔찍한 소리를.”

16606116178919.jpg“마법 때문이야?”

샤를렌은 변호사지만, 오빠에게도 말을 빙빙 돌려가며 함정을 파놓지는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16606116178946.jpg“엘펜하임, 그 머저리들은 사람 몸에서 아예 마법을 빼낼 거라는 멍청한 생각이나 해대고 있는데 그런 건 불가능해.”

16606116178919.jpg“지들 신성력을 강화하고 싶어서 난리잖아. 그래서 고대 마법을 노리는 거고.”

16606116178946.jpg“글쎄, 불가능하다니까. 그건 내가 말한 게 아니라 펠릭스가 말한 거야.”

대마법사께서 그렇다는데 어쩌겠어. 라이킨은 빙긋 웃으면서 담배 상자를 열었으나, 샤를렌의 손이 더 빨랐다. 오빠의 고급담배를 휙 채어간 그녀는 복잡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16606116178919.jpg“계속해봐. 그래서?”

내내 법조계에서만 일하고 마법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더니 새롭게 듣는 이야기가 많았다.

16606116178919.jpg“엘펜하임이 뻘짓을 하고 있다는 거야?”

16606116178946.jpg“그놈들 손에 공주님이 넘어가면 생체실험부터 시작이야.”

라이킨은 뒤늦게 담배를 물다가 인상을 쓰며 뱉었다. 말해놓고 보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16606116178946.jpg“고대 마법을 무슨 증기기관 정도로 취급하는 놈들이니, 일단 마법부터 분리해내려고 하다가 안 된다는 걸 깨달으면 어쩌겠어. 공주님은 그대로 감금이지.”

엘펜하임을 겪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는 진부한 결말이었다. 라이킨은 이미 다 알고 있었고, 펠릭스 이드리스와 오래전에 충분한 토론 끝에 결정했다. 아니, 그는 솔직히 일방적으로 통보만 받고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16606116178946.jpg“그나마 엘펜하임이 헬레인을 무너뜨릴 때만큼의 위세는 없다는 게 다행이지만.”

칼리에르 공이라면 소렐 이드리스를 충분히 지킬 수 있었다. 칼리에르 공뿐인가. 지금 아무 말 않고 딸이 집어 던진 신문을 주워다 탁탁 정리해서 점잖게 펼치는 오블리앙 공도 있었다.

16606116178919.jpg“……계속 기사만 틀어막으면, 또 안 좋은 뒷소문이 날 텐데.”

칼리에르 공비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무슨 흠집이 있길래 숨기는 것이냐, 왜 그러냐, 모두가 다 궁금해 미칠 거다.

16606116178919.jpg“난 마법 쪽은 관심도 없고 잘 모르지만, 적어도 사교계와 언론 쪽은 잘 알아. 숨기는 건 약점이야. 그리고 엘펜하임이 언론을 움직일 줄 모르는 게 아니야. 분명히 이쪽으로도 공격을 할 거라고.”

라이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16178946.jpg“알고 있어.”

16606116178919.jpg“어쩌려고?”

16606116178946.jpg“공주님이 언젠가는 조용한 대학생활을 포기하셔야겠지.”

그는 중얼거리며 담배를 다시 물고 불을 붙였다.

16606116178946.jpg“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보는 거야.”

소렐이 몹시 실망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보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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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류사회는 철저히 동맹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 사이의 까다로운 법칙을 지키는 이들만, 혈통과 재산, 신분에 따라 가려져서 들어왔고, 유지되었다. 결혼이란 전부 가문의 이해득실을 따져 정략결혼으로 진행되었으며, 당연히 아이들을 낳아야 했고, 당연히 아이들은 똑같은 교육과정을 거쳐 또 이해득실에 따라 결혼했다. 그러니 이 법칙 외에 있는 이들은 배척되거나 질시의 눈초리를 받았다. 칼리에르 공이 벌이고 있는 기행 역시 법칙을 위반한 셈이었다.

16606116187871.jpg“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요?”

이 상류층으로 올라오려는 이들이 법칙을 위반하는 건 문제지만, 정점에 서 있는 칼리에르 공이 위반해봤자 찬사나 들을 뿐이다. 힘의 논리란 실로 자명하고 노골적이어서, 모두가 칼리에르 공이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순응했다. 그의 영향력은 글래스턴뿐만 아니라 이 나라 최대의 사교계가 집결해 있는 수도에까지 막강하게 뻗어 있었다.

16606116187871.jpg“칼리에르 공이 그러고 싶다면야 그러는 거죠.”

다만 궁금할 뿐이다. 언제나 조용히, 오랜 시간 동안 나오지 않던 칼리에르 공이 왜 갑자기 어린 숙녀를 데리고 외부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는지, 궁금할 뿐인 거다. 대중들의 호기심은 관음증에 가까웠다. 그리고 오직 소렐만이 그 호기심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오늘도 학교에 갔다.

16606116187881.jpg“사비나!”

사비나 로체는 핼쑥한 얼굴을 하고도 소렐과 부둥켜안았다.

16606116187887.jpg“소레엘, 건강해서 다행이야아.”

사비나는 말을 길게 늘려 말하면서 그녀를 꼭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16606116187881.jpg“너도 학교에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16606116187887.jpg“이젠 학교에 올 수 있을 것 같았어.”

16606116187881.jpg“응. 진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16606116187887.jpg“고맙긴,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나야말로 고마워. 보내줬던 소설이랑 꽃 잘 받았어.”

사비나는 그쯤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16606116187887.jpg“그거 진짜 재미있더라! 그래서, 그다음 권은 나왔어? 있어?”

16606116187881.jpg“나 다 읽었어. 여기 있어. 너 줄게.”

16606116187887.jpg“진짜 재미있어. 카디날 경이 너무 멋있지 않아?”

소곤거림을 정확하게 들은 다른 친구가 끼어들었다.

16606116187871.jpg“사비나도 그거 봤어?”

16606116187887.jpg“봤어!”

16606116187871.jpg“진짜 재밌지!”

16606116187887.jpg“나 설레 죽을 것 같아…….”

통속소설을 몰래 읽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건 단연 <보석> 시리즈였다. 소렐은 <보석> 시리즈의 남자주인공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수다에 푹 빠졌다.

16606116187871.jpg“무도회 장면도 너무 멋있었어. 카디날 경 같은 신사는 없을까?”

다이애나의 중얼거림에 소렐이 대답했다.

16606116187881.jpg“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그때 사비나가 소렐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16606116187887.jpg“넌 찾아볼 생각을 하면 안 되지. 바로 옆에 있잖아.”

다른 친구들은 듣지 못하게 소곤거리는 말에 소렐은 정말 그녀의 옆을 돌아보았다. 카디날 경이? 어디?

16606116187887.jpg“지금 옆 말구. 저번에 우리, 그 일이 있을 때 구하러 오셨다며?”

‘그’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때 구하러 온 사람은 폴리아나와 라이킨이다. 사비나가 말하는 건 아마 후자일 거다. 그녀는 어렴풋이 라이킨과 소렐 사이의 관계를 눈치챈 모양이니까.

16606116187887.jpg“지금 사교계에 칼리에르 공 전하께서 공비전하를 데리고 외출하셨다는 소문이 파다해.”

소렐이 깜짝 놀랐다. 그때 누군가가 사비나의 말을 용케 들었다.

16606116187871.jpg“어, 그거 소문 아니야. 사실이야. 내 사촌언니가 그날 극장에 갔거든. 두 눈으로 똑똑히 봤대.”

16606116187871.jpg“칼리에르 공비를?”

소렐은 다른 쪽에서 또 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랐다. 뭐야, 왜 나 빼고 다 알고 있는 거야?

16606116187871.jpg“응. 봤대. 엄청 예쁘게 생겼대. 게다가 티아라까지 하고 있었다더라. 공비전하가 어린지, 다이아몬드를 다 엮어서 이렇게 머리띠처럼 하고 있었대. 너무 번쩍거려서 조명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나.”

그,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소렐의 눈동자가 곤란하다는 듯 갈 길을 잃었다.

16606116187871.jpg“근데, 똑같이 뱀파이어래?”

16606116187871.jpg“그건 아닌 것 같대. 하지만 또 모르지. 외모는 어리게 보여도 수백 년 산 사람일 수도 있잖아.”

16606116187871.jpg“근데 그렇게 예쁘대?”

16606116187871.jpg“예쁘니까 칼리에르 공비를 하겠지.”

16606116187871.jpg“칼리에르 공비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칼리에르 공은 아무 말도 없다는데. 기사 하나 안 났잖아.”

전부 다 상류층 출신 숙녀들이다. 자연히 다들 모여서 부모님들이 말하던 이야기들을 들은 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16606116187871.jpg“근데 칼리에르 공 얼굴도 봤어?”

사실 아직 어린 숙녀들은 그의 얼굴도 잘 몰랐다.

16606116187871.jpg“어. 어른들이 공이 틀림없다고 하셔서 언니도 그제야 알았대. 진짜 잘생겼대. 깎아놓은 조각 같다고 하더라고. 금발에 푸른 눈이야. 키도 아주 크고, 어깨도 넓대!”

16606116187871.jpg“근데 너무 이상하지 않아? 어떻게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안 해?”

16606116187871.jpg“뱀파이어잖아. 칼리에르 공은 뭐, 벌써 글래스턴 공작위에 앉은 지가 몇 년이야? 이백 년? 삼백 년? 그러니까 얼굴도 잘 모르지.”

16606116187871.jpg“그래도 그렇지. 어쩌면 진짜 공비가 아닐 수도 있어. 혹시 그냥 아는 손님인 거 아냐?”

16606116187871.jpg“아니야. 우리 사촌언니가 봤대. 로열박스에서 아주 그냥, 그 공비전하가 예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더래. 그래, 이 카디날 경처럼!”

눈이 커다래진 다이애나는 <보석> 시리즈를 냅다 잡아채서 들이민 뒤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16606116187871.jpg“아주 정중하게 손을 잡고, 손등에 입을 맞추더니……!”

여학생들은 흐읍, 하고 숨을 들이켰다.

16606116187871.jpg“무대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공비전하만 뚫어지게 보더래!”

어머어머, 세상에, 어쩜 좋아.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이애나가 풀어놓는 이야기에만 무섭게 집중했다. 소렐만이 묘하게 미간을 모으고 생각에 잠겼다. 진짜로 그랬나?

16606116187871.jpg“잘생기긴 엄청나게 잘생겼다잖아. 근데 그 얼굴로 딱, 옆에 앉은 공비전하만 보더래.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그때 무대가 시작해서 못 봤는데, 언니는 봤대. 사람들이 안 보는 사이에 이마에 키스까지 했대.”

어우우우, 여학생들 사이에서 자신들만 알아듣는 은밀한 소란이 일어났다.

16606116187871.jpg“그쯤이면 손님이 아닌 거야. 무조건이야, 무조건. 무조건 공비전하가 맞아.”

16606116187871.jpg“근데 그럼 결혼한 거야? 약혼이야?”

16606116187871.jpg“반지는 받았을까?”

소렐은 반사적으로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반지를 받지는 않았다. 티아라와 펜던트, 그리고 시계만 받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날 라이킨이 그녀에게 꽃다발을 선물했었지.

16606116187871.jpg“난 진주가 좋더라.”

16606116187871.jpg“난 루비. 불타오르는 사랑이래.”

정작 칼리에르 공비전하는 여러 색으로 아롱진 펜던트를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16606116187871.jpg“아무튼 다들 엄청나게 궁금해하고 있어. 진짜 ‘엄청나게’. 진짜 공비가 맞는지, 아니면 약혼녀? 아니면, 그냥 애인? 어쨌든 누군지 궁금해 한다고.”

16606116187871.jpg“너네 언니가 반지는 못 봤대, 다이애나?”

16606116187871.jpg“유감스럽게도 못 봤대. 아, 그거만 확인하면 되는 건데.”

다이애나는 너무나 아쉬워했다. 반지라니. 반지를 만들어야 하는 걸까? 소렐은 왼손을 바라보았다. 카디날 경은 <보석> 시리즈의 <다이아몬드> 편에서, 사랑하는 숙녀에게 기꺼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바쳤다. 아니, 지금 반지가 문제인가? 사람들이 그녀를 몹시 궁금해 하고 있다는 게 문제지!

16606116187881.jpg“칼리에르 공비가 그렇게 중요해?”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말았다.

16606116187871.jpg“작위니까. 반지가 없다면 뭐…….”

아이들의 목소리가 미묘해졌다.

16606116187871.jpg“정부지, 뭐.”

으, 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질색을 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16606116187871.jpg“소렐은 글래스턴에 온지 얼마 안 됐다고 했지?”

소렐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16606116187871.jpg“반지가 진짜 중요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글래스턴 공비니까. 다른 공작위보다 훨씬 높다고. 그런데 반지가 없다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비 대우를 정부한테 한 거잖아. 더러워.”

아이들이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16606116187871.jpg“게다가 칼리에르 공은 돈이 엄청나게 많고, 땅은 더 많고, 장차 발레시나스 공작위까지 물려받을 사람이잖아? 솔직히 핏줄로만 따지면 왕실이랑 맞먹어.”

16606116187871.jpg“당연하지. 왕실은 계속 내려왔지만 칼리에르 공은 이제 겨우 2대째잖아.”

16606116187871.jpg“게다가 잘생기고, 키 큰 걸로 유명하잖아. 뱀파이어라서 좀 무섭긴 하지만, 칼리에르 공비 자리는 진짜 누구나 다 노릴걸? 솔직히, 나는 다이애나 사촌 언니가 봤다는 그 숙녀가 어느 나라 공주라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아.”

공주이긴 공주였다. 백오십 년도 전에 망한 나라의 공주라 그렇지.

16606116187871.jpg“하긴 칼리에르 공이랑 그런 사이가 되려면 혈통도 엄청나겠지?”

16606116187871.jpg“근데 왜 알아보는 사람이 없지?”

16606116187871.jpg“외국사람 아냐?”

따져보자면 그럴 수도 있겠다. 비록 소렐은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랐지만 말이다. 이거 아무래도 그녀와 라이킨 사이가 들키는 건 시간문제겠다. 라이킨이 외부활동을 하면, 오랜 초상화로만 보이던 얼굴이 다시 대중에게 친숙해질 테고, 매그놀리아 칼리지의 여학생들도 그의 얼굴을 알아볼 테니까. 소렐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16606116187881.jpg‘라이킨이 대학은 조용히 다니라고 했는데…….’

들키면 어쩌지? 반지도 안 받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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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래스턴 추기경이 엘펜하임에서 돌아왔다. 보고를 하고, 더불어 섣부른 행동으로 막대한 피해를 낸 데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 엘펜하임이 소환한 것이었지만, 추기경은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 라이킨이 보란 듯이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16606116258649.jpg“그냥 극장에 좀 데려간 게 뭐가 그리 공식적입니까?”

카메론 셀레스트 교수는 상대적으로 사교계에 능숙하지는 않다. 그랬기에 추기경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16606116187871.jpg“보란 듯이 얼굴을 내보이고 다니겠다는 거지. 소렐 이드리스의 얼굴을 아는 이가 늘어나면 어떻게 되겠나?”

16606116258649.jpg“……납치가 힘들지요.”

까다로워진다.

16606116258649.jpg“하지만 못할 것도 없습니다.”

16606116187871.jpg“칼리에르 공비를 납치하는 게?”

16606116258649.jpg“우리는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있어야 합니다.”

칼리에르와의 전면전도 불사해야 했다. 그것이 전쟁이 된다 해도 말이다.

16606116187871.jpg“이 일을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때까지는 조용히 처리해보자고. 어쩌면 아주 손쉽게 해결할 수도 있어.”

16606116258649.jpg“설마 칼리에르가 이드리스의 딸을 포기하겠습니까?”

16606116187871.jpg“아니, 하지만 칼리에르의 힘을 약화시킬 수는 있지. 사교계에서만큼은.”

카메론은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그게 될 리가 있나.

16606116187871.jpg“아주 조그만 흠집이라도, 꾸준히 내는 게 중요하네. 데뷔도 하지 않은 숙녀의 평판은 꺾기가 쉽거든.”

소렐 이드리스는 엘펜하임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때, 감히 헬레인 공주의 딸이라는 사실을 입 밖에도 내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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